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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두리틀> 동물 말을 알아듣고 소통하는 인간이라고?
모든 생명체가 동등한 세계
<닥터 두리틀>은 동물에게 인격을 부여한 것처럼 인간과 동물과 남녀노소 구분 없이 영화 속 생명체가 모두 동등한 세계관을 지향한다. (2020.01.09)
영화 <닥터 두리틀>의 한 장면
“여기가 무슨 동물의 왕국이야” 그렇다. 지금 극장가는 동물의 왕국이다. 이번에 <기생충>(2019)으로 미국의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2003)에 나온 대사를 변형하여 인용한 건 동물이 주요하게 출연하는 작품들이 새해 극장가에 꽤 있어서다.
이 지면에서 소개한 <해치지 않아> (1월 15일 개봉)는 사람들이 동물 탈을 쓰고 동물 흉내를 내면서 콜라(?)도 마시는 코믹한 소동극이다. <미스터 주: 사라진 VIP> (1월 22일 개봉 예정) 는 사고 후 동물 말을 알아듣게 된 국가정보국 요원과 군견이 짝을 이룬 버디 무비의 성격이 있다.
할리우드는 일찍이 동물 배우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동물 출연 영화로 재미를 봤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졸업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출연한다고 해서 기대를 모으는 <닥터 두리틀> 은 1967년에 만들어진 영화를 1998년과 2001년에 에디 머피 출연의 영화로 리메이크하는 등 재활용(?)의 인기가 높다.
두리틀 박사가 동물들과 소통하고 이들과 협업하여 사건을 해결한다는 방식이 매력 있다는 의미다. <닥터 두리틀> 을 연출한 스티븐 개건 감독의 말이다. “두리틀이 모든 생명체와 의사소통할 수 있는 이유는 깊이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생명체는 무언가 할 말이 있어요. 자연 속에는 우리가 꼭 귀 기울여야 할 세계관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이런 고민을 한다면 우린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닥터 두리틀> 은 사랑하는 여인을 잃은 두리틀(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이 칩거하던 중 영국 여왕이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동물들과 힘을 합쳐 신비의 약초를 구해 치료한다는 이야기다. 디즈니 제작은 아니지만, 디즈니의 분위기가 물씬한 <닥터 두리틀> 은 동물에게 인격을 부여한 것처럼 인간과 동물과 남녀노소 구분 없이 영화 속 생명체가 모두 동등한 세계관을 지향한다.
두리틀과 동물 동료들과 더불어 이들의 여정에 동참하는 ‘소년’ 토미(해리 콜렛)의 역할은 사냥꾼 가족 안에서 동물 사냥을 두려워하고 동물과 친화하려는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이는 동물을 향한 일반의 편견을 깨는 영화의 메시지와 원을 그리는 설정으로 소수자의 토미처럼 동물들 또한 우리가 아는 성향과는 전혀 딴판인 점이 재미를 주기도 하거니와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끔 한다.
영화 <닥터 두리틀> 포스터
추위에 약한 북극곰이 따뜻한 곳을 찾고, 소심한 고릴라가 두리틀의 보살핌을 바라고, 분노에 찬 다람쥐가 자신에게 총을 쏜 이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등의 설정에 관해 스티븐 개건은 이런 의도를 드러낸다. “등장하는 모든 동물이 나름의 약점과 각각의 극복해야 할 트라우마를 갖기를 바랐어요. 이를 통해 상호 작용하는 발판이 되고 그럼으로써 모두의 진실성과 존엄성을 확보하려고 했습니다.”
동물들과 의사소통한다는 설정이 또 하나의 슈퍼히어로 한 능력이라고 할 수 있어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게 <닥터 두리틀> 이 특별할 수 있다면 자전적인 내용이 바탕이 되어서다. 마약 문제로 감옥을 여러 번 들락날락하는 등 인생의 나락에 빠졌을 때 그의 아내이자 이 영화의 프로듀서 수잔 다우니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갱생의 길로 이끌었다.
<닥터 두리틀> 에서 영화 초반 두리틀은 사랑하는 이를 잃고 세상과 단절한 채 피폐한 삶을 사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를 다시 세상으로 이끈 건 동물 친구들과 토미, 그리고 다시 세상에 나가겠다는 두리틀 자신의 의지였다. 특별하다는 이유로 세상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한 소수자, 비인간이란 이유로 평등의 가치를 누리지 못한 소수자, 다른 목소리를 낸다는 이유로 소외당하는 소수자가 모두 모여 ‘3000’만큼 된다면 <닥터 두리틀> 의 존엄하고 진실한 세계가 그저 판타지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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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태그: 영화 닥터 두리틀, 닥터 두리틀, 동물, 인격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