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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니까

<시동>과 <태양은 없다>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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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과 <태양은 없다>에는 공통으로 두 주인공이 옥탑방 좁은 마당의 난간에 걸터앉아 그 앞에 펼쳐진 세상을 바라보는 장면이 등장한다. (2019.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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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시동>의 한 장면

 

 

빵! 빵! 터지는 코미디인 줄 알았는데 <시동> 은 부릉부릉~ 다시 시작하는 청춘의 ‘태양은 없다’이었다. 제목의 ‘시동’은 이 영화를 연출한 최정열 감독의 말을 인용하자면, “그래도 괜찮아. 다시 시작할 수 있어. 시동을 걸 수 있어”의 의미를 담은 일종의 청춘 재부팅인 셈이다. 그렇다면 다시 시동 걸만한 작품으로 2019년의 청춘을 바라봐야 했을 터. <시동> 은 여러 모에서 한국 청춘물의 전설 같은 <태양은 없다> 1998)를 참고한 흔적이 역력하다.

 

<시동> 의 택일(박정민)과 상필(정해인)은 <태양은 없다> 의 홍기(이정재)와 도철(정우성)처럼 질풍노도의 시기가 청소년기에만 머물지 않고 청년기까지 여진으로 이어지는 반항아들이다. 스물여섯의 홍기와 도철과 다르다면 택일과 상필은 스무 살을 전후한 나이라는 것. 공부엔 영 관심 없어, 대학은 가기 싫지, 그렇다고 눈에 띄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주변 사람들의 속을 썩이기 일쑤다.

 

택일은 어디 가냐는 배구 선수 출신 엄마(염정아)의 등짝 강스파이크를 동반한 잔소리를 뒤로하고 무작정 군산으로 내려간다. 발 가는 대로 거닐다 짜장면이 ‘싸다구’해서 들어간 중국집 장풍반점에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단발머리를 한 주방장 거석(마동석)에게 ‘싸다구’를 맞는다. 반항기 가득한 택일의 태도가 못마땅했던 건데 그 때문에 둘은 서로 대치한다.

 

손맛이 매서워 가까이하기에 먼 당신이면서도 덩치에 안 맞게 찰랑거리는 단발머리가 궁금증을 자아내는 거석은 <태양은 없다> 로 치면 병국(이범수) 같은 인물이다. 빌려준 돈, 이자까지 높게 쳐서 받겠다며 홍기를 쥐 잡듯 못살게 구는 병국이나 장난감 가지고 놀듯 택일에게 수위 높은 장난을 치는 거석은 닮은 데가 꽤 많다. 영화 후반에 밝혀지듯, 거석이 과거 조직에 몸담았던 인물이라는 점도 병국과의 상관관계를 강화한다.

 

병국이 나쁜 놈이라면 거석은 조직과 연루된 안 좋은 과거와 안녕을 고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는 근본적으로 서로 다르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 둘이 각각 <태양은 없다> 의 홍기와 도철, <시동> 의 택일과 상필을 깊은 수렁에 빠뜨린 후 새 출발 할 수 있게 방아쇠 역할을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거석과 병국은 택일과 상필, 홍기와 도철에게 넘어야 하는 삶의 파도이면서 이를 극복하면 맞이하게 되는 맑은 하늘에 높이 뜬 새 출발의 태양이다.

 

<시동> <태양은 없다> 에는 공통으로 두 주인공이 옥탑방 좁은 마당의 난간에 걸터앉아 그 앞에 펼쳐진 세상을 바라보는 장면이 등장한다. <태양은 없다> 의 홍기가 병국의 돈을 갚지 못해, 도철이 펀치드렁크 증세를 가지고 권투 경기에 나가 패한 후 시련의 아픔을 달래려고 습관처럼 옥탑방의 난간을 찾듯이 택일과 상필도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나 고민이 있으면 똑같이 행동한다.

 

상필의 고민은 고생하는 할머니(고두심)다. 할머니를 위해서 빨리 돈을 벌고 싶다. 선배 소개로 들어간 곳이 하필 없는 사람들에게 비싼 이자율을 붙여 등쳐먹는 고리대금업 회사다. 택일 엄마도 토스트집을 차리겠다고 사채를 썼고 돈을 갚지 못했다. 이를 모르는 상필은 떼인 돈 받겠다며 토스트집을 찾았다가 ‘니가 우리한테 이럴 수 있어’ 택일에게 멱살 잡혀 회사 보스에게 어서 돈 받아내라며 위협받아, 세상 참 쉽지 않다는 뼈저린 경험을 한다.

 

홍기와 도철에게 혹독했던 그때 그 시절 이후 20여 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택일과 상필에게 더 잔혹해진 듯하다. 홍기와 도철이 빌딩 한 채 꼭 사고 말리라, 강남 거리를 활보했던 것과 다르게 택일과 상필은 꿈이 다 뭐야, 서울 변두리 재개발 지역의 좁은 골목에서 몇 평 되지 않는 삶의 터전을 뺏기지 않으려 싸우고 무릎 끓고 빌어야 하는 신세가 됐다.

 

그런데도 부릉부릉~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경사가 높은 도로를 올라가야 하는 인생의 기로에서 다시 시동을 걸 수 있는 건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삶을 지속할 젊음을 간직하고 있어서다. 젊음은 아무리 비바람이 몰아치더라도 꺼지지 않고 발열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혼란하거나 고민이 있을 때면 해바라기가 빛을 찾듯 태양을 바라보며 그 기운을 흡수하는 것처럼 말이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택일과 상필은 과거에 굴하지 않고 오늘도 시동을 걸고 내일로 나아갈 준비를 하는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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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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