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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77화 : 사회주의 조직의 마지막 운동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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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시타가 주문한 음식이 나왔고 그들은 말없이 포크와 나이프를 딸깍거리며 저녁을 먹었다. 형사와 보조들은 입구와 부근 자리에 앉아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2020. 01.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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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그는 이튿날도 보통 때처럼 일어나 부근 밥집에 가서 아침을 먹고 곧장 돌아왔다. 골목 입구에 군고구마 드럼통을 얹은 리어카 한 대가 섰고 털모자를 쓴 행상이 손을 부비며 서있었다. 이철은 그가 잠복조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오후 늦게 일부러 누구를 만나려는 듯이 이철은 외투를 입고 배다리 사거리를 지나 신포정 번화가 방향으로 내려갔다. 그는 뒤에 미행이 따라붙은 것을 확인하고 길을 건너거나 공연히 이리 저리 골목을 우회하지도 않고 곧장 은행이며 상점 여관 등이 즐비한 번화가를 내려가서 일본식 그릴에 들어갔다. 저녁 시간으로는 아직 이른 때였지만 그는 비프까스를 시켜서 스프부터 차례로 나오는 경양식을 즐길 생각이었다. 그가 칼질을 시작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앞자리에 와서 털썩 앉았다.
 
“여어, 두쇠 오랜만이다.”

 

그는 야마시타 최달영이었다. 내심 예상하고 있던 터라 이철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김근식과 이미 말을 맞추어 두었던 것이다. 기관지는 경성에서 전달되어 왔고 그는 그것을 받아서 재등사 했으며 김근식이 배포해 왔다. 따라서 인천에서 자신과 김근식이 이들 문건을 등사 배포하는 책임자였다. 야마시타는 자기 판단이 잘못이었음을 미행 도중에 알아차렸다. 오히려 즉시 체포를 미루었다가 그들에게 시간을 벌어준 셈이 되지 않았는가. 야마시타는 이이철이 태연하게 신포정으로 곧장 걸어와 혼자서 저녁을 시켜 먹기 시작하자마자 그가 진작부터 미행을 알고 있었다는 것도 확인했다. 이철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이 집 음식이 맛있어요. 형님 제가 주문해 드릴까요?”

 

웨이터가 메뉴판을 들고 다가오자 야마시타는 함바그를 시키고는 말했다.

 

 “그래 이게 피차에 마지막 식사니까……”

 

야마시타는 분노를 가라앉히느라고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혼자서 감당하기에 힘든 일일 텐데. 내가 알아야 할 게 있으면 미리 말해주면 고맙겠다.”

 

 “우선 식사나 하시지요.”

 

야마시타가 주문한 음식이 나왔고 그들은 말없이 포크와 나이프를 딸깍거리며 저녁을 먹었다. 형사와 보조들은 입구와 부근 자리에 앉아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철이 말했다.

 

 “인천 서에 비상을 알려야 하지 않겠어요?”

 

야마시타는 후식으로 나온 커피에 각설탕을 넣어 천천히 저으면서 빙긋 웃었다.

 

 “니가 걱정해 줄 일은 아니고. 가족들 걱정이나 해라. 처신하기에 따라서 느이 형이 실직을 당하거나 감옥에 갈 수도 있으니까.”

 

이철은 소리 내어 웃었다.

 

 “친일파가 친일파를 잡는 일이 생기겠네. 내선일체의 좋은 사례가 되겠구려.”

 

 “하여튼 너는 이제 들어가면 다시는 풀려나지 못한다. 협조해서 서로 고생하지 않도록 해야겠지.”

 

후식까지 마친 두 사람은 마치 친구 사이처럼 경양식점을 나왔고 다른 형사가 이이철의 두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야마시타는 식사 전에 형사를 인천서에 보내어 상황 보고를 했다. 총독부 경무국이 총지휘하는 사상 사건이었으므로 인천서에서 이이철의 취조에 따라 현지 활동가들을 검거하고 되도록 빠른 시간 안에 기초조사를 마치고 사건을 총괄하는 종로서에 압송하도록 되어 있었다. 1940년 12월 이관수의 체포로 시작된 경성콤 사건은 이듬해 봄까지 백여 명이나 되는 준회원 및 회원들이 체포되면서 종결된다. 이이철은 인천서 고등계 조사실로 끌려갔고 문초와 고문이 시작되었다. 이철은 순순히 자기가 경성으로부터 기관지 문건을 받아 집에서 재등사했고 이를 김근식이 배포했다고 자백했다. 이전 독서회 사건에 연루 되었던 노동자들이 잡혀와 아는대로 진술하기 시작했으며 곧 부둣가 김근식의 은신처가 밝혀졌다. 역시 준비했던 진술이어서 경찰이 현장에 갔을 때 김근식은 태연히 자고 있다가 내복바람으로 잡혔다. 역시 고문 끝에 김근식이 못이기는 체하며 기관지를 배포했다는 몇 사람의 이름을 불었고, 이들도 검거되어 다시 문초 끝에 몇 사람이 잡혀오는 식이 되었다. 인천 지역에서 이십여 명의 노동자가 문건을 받아서 읽었다는 혐의로 잡혀왔다. 인천서에서는 그 정도면 체면을 세운 격이 되었으나 내심 야마시타는 이번 작전이 완전 실패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겉으로 내색할 수는 없었다. 결국 이이철과 김근식이 인천의 지도부가 되었고 박헌영의 존재를 끝내 은폐할 수가 있었다. 그들은 각각 동대문서와 종로서로 압송되었다. 경성콤 관계자들은 종로서를 중심으로 서대문서와 동대문서에 분산 수용되었다.     

 

이금순은 이미 박헌영을 호위하여 충청도 지방을 향하고 있었으며 충청북도 시골에 숨었다가 경성콤 사건이 잦아든지 일 년 뒤에야 광주로 내려가게 된다. 박헌영은 그 후 해방이 될 때까지 김성삼이란 가명으로 벽돌공장에 인부로 있었고 이금순이 유일한 외부와의 레포 역을 맡았다. 이것이 일제시대 국내에서 벌어진 사회주의 조직의 마지막 운동이었다. 경성콤이 와해된 1941년부터 해방이 될 때까지 국내운동은 물론 해외 조선인의 항일무장투쟁도 퇴조기에 접어들었다. 일본은 중국과의 전쟁에 연이어 진주만 습격으로 미국과 태평양 전쟁을 치르게 되었다. 활동가들은 서로의 연결을 최소화하고 각자 도생하면서 파쇼 일제의 패망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실감했다. 조선인의 창씨개명이 실시되었고 식량을 비롯한 모든 물자가 전시체제하의 배급제나 공출 대상이 되었다. 조선인에 대한 징용 징병제와 부녀자의 정신대 동원이 실시되었다. 모든 조선어 신문과 잡지가 폐간되고 사립 고등보통학교 사립 전문학교 등이 총독부 직할로 편입되었다.

어느 날 깊은 밤에 신금이는 저절로 잠이 깼다. 누군가 그녀의 가슴을 흔들어 깨웠던 것이다. 어둠 속에 주안댁이 앉아 있었다.

 

 “왜 또 오셨어요?”

 

그랬더니 주안댁이 두 다리를 퍼지르고 앉아서 키득키득 울음을 터뜨렸다.

 

 “애고 머시냐, 내 새끼 두쇠가 죽어버렸구나아!”

 

 “예에? 어, 언제요?”

 

 “방금……”

 

신금이는 이부자리를 걷으며 상반신을 일으키며 앉았고 주안댁은 방문께로 물러나서 서있었다. 어느 결에 나타났는지 주안댁의 옆에 수인복을 입은 이이철이 서있었다. 그들이 문을 열고 방을 나가려 할 때에 신금이는 두 손을 저으며 외쳤다.

 

 “잠깐요, 어디루 가세요?”

 

곁에서 자고 있던 남편 일철이 깨어 일어나 아내의 옷깃을 잡았다.

 

 “뭐야 무슨 일이오?”

 

그들은 사라졌다. 신금이는 어리둥절한 일철에게 울먹이며 중얼거렸다.

 

 “두쇠 서방님이……”

 

 “응, 그애가 어쨌다구?”

 

신금이는 울음을 터뜨렸고 평소 아내의 버릇을 아는지라 일철은 그녀를 안아주며 등을 토닥였다.

 

 “서방님이 옥사했어요.”

 

 “누가 그래……어머니가 오셨나?”

 

신금이는 더 이상 할 말을 잊고 고개만 끄덕였다.  

 

이이철이 일 년여의 예심을 거쳐 4년 형을 받고 공주형무소로 옮겨간 것이 몇 달 전이었다. 그는 서대문 형무소 구치감에 있을 적에도 고문 후유증으로 혈분을 쏟거나 밥을 먹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신금이가 면회를 가보면 뼈만 앙상하게 남은 시동생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그는 자기 때문에 박선옥과 조영춘이 일 년의 징역형을 받게 된 것을 못내 미안해 하였다. 그는 자기에게 사식이나 영치금을 넣지 말고 그들 두 사람에게 넣어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신금이는 박선옥이 가족이 있으니 별 염려는 되지 않으나 조영춘이 타관 객지의 홀몸이라 그에게 넣겠다고 하면 조금씩이라도 두 사람에게 공평히 넣어 달라며 신신당부하던 것이다.

 

신금이가 주안댁의 헛것을 본지 이틀 만에 형무소 당국에서 이이철의 사망과 시신을 인수해 가라는 전보가 왔다. 형 일철은 특급열차의 기관수로서 짬을 낼 수가 없었고 아버지 이백만과 형수 신금이가 이철의 주검을 수습하러 공주로 내려갔다. 조치원까지 경부선 기차를 타고 가서 하루에 오전 오후 두 번씩 다니는 승합버스를 타고 공주까지 갔다. 공주형무소에서 죄수들이 판자로 엉성하게 짠 초라한 관을 인수 받았으나 경성까지 운송한다는 것은 당시에 엄두도 낼 수 없는 큰일이었다. 형무소 인근에는 공동묘지가 있었고 부속 화장장도 있었다. 이백만은 아들을 타관 객지에 홀로 묻고 떠나올 수는 없었고 화장하여 유골이라도 데리고 가려고 하였다. 화장하고 재속에서 골라낸 골편들을 작은 항아리에 넣어 백포로 싸서 아비가 가슴에 안고 왔다. 그리고 영등포 외곽의 공동묘지에 묻고 작은 묘비까지 세웠다. 장례가 끝나자마자 그는 일철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당장 이사 나가자.”

 

이백만은 전부터 옥살이 하는 것 같다며 철도관사 생활을 싫어했다. 그는 누이 막음이가 만주 나갈 때 세를 주고 간 샛말 집에 들어가자고 주장했다. 이백만은 철도관사에서 나올 무렵에 영등포 철도공작창에서 퇴직했다. 그리고 샛말 집으로 이사를 가자마자 버드나무 집에서 그랬듯이 마당 앞에 공방을 지었다. 그는 둘째를 잃은 뒤에 공방에 틀어박혀 공예품들을 만들어내며 시름을 달랬다.       

    

이지산이 샛말로 이사 갔을 때 열 살이었고, 예전 보통학교가 소학교로 다시 황국신민을 줄인 국민학교가 되어서 삼학년이었다. 그는 철도관사에 살던 시절부터 아버지가 기관수라는 것이 은근히 자랑스러웠다. 학교에 가면 영단에 사는 노동자의 아이들은 이지산 아버지가 특급열차의 기관수라고 부러워했고 일본인 선생들도 그게 사실이냐고 되묻기까지 하던 것이다. 언젠가부터 이지산은 자기도 이담에 어른이 되면 기관수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할아버지 이백만은 장난감 기관차를 함석판으로 만들어 손자에게 주었다. 기관차의 구조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기차 수리공 이백만은 거의 실물과 똑같은 모양의 바퀴와 굴뚝과 기관실을 가진 작은 기차에 검은 뼁끼칠까지 했고 객차까지 한 량을 달아 주었다. 무엇보다도 이지산이 잊을 수 없는 것은 그가 국민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어머니 신금이와 함께 만주로 여행을 갔던 일이다. 철도국 직원이자 기관수의 가족이었으므로 그들 모자는 특급열차의 일등석을 탈 수 있었고 안동 신경 구간에는 아버지를 따라 기관차에 타볼 수도 있었다. 그들은 신경에 산다는 막음이 고모네 집을 방문할 작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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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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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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