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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76화 : 내일부터 박선옥이를 집중 사찰한다
『마터 2-10』 연재
그는 박선옥을 보내고 자기 동네로 돌아오면서 어쩐지 아까부터 뭔가 신경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산책로에서도 이철은 그 시간에 혼자 외출복 차림으로 호젓한 산책길에 지나쳐오는 남자를 힐끗 보았다. (2020. 01. 06)
<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그는 앞뒤로 쫓기게 되자 전차와 자동차들이 오가는 큰길을 가로질러 뛰었다. 형사들은 추격하며 호각을 요란하게 불었다. 지나던 행인들 중에 이러한 광경을 보고 아무 생각도 없이 이관수의 다리를 걸었고 그는 보기 좋게 길바닥에 나가떨어졌다. 넘어지면서 다리를 접질렸는지 그는 비틀거리며 몇 걸음 걷다가 주저앉았고 뒤쫓아온 형사들이 그를 덮쳤다. 경무국에서는 경성 일대의 모든 경찰서 고등계에 그와 관련된 사상범의 일제검거를 지시했다.
영등포서의 최달영 야마시타는 고등계의 형사반장으로 이제 경부보로 승진해 있었다. 그는 두쇠 이철이가 보호관찰자로서 지역을 이탈하여 행방불명이 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야마시타는 이일철 리노우에 이치데츠를 불러다 눈치를 살피기로 했다. 그는 온 가족이 철도관사에 입주해 살고 있었고 히카리호의 기관수로서 경의선과 안동 신경선을 교대로 타며 충실하게 자기 직무를 다하고 있었다. 그의 신분은 총독부 철도국 직원으로서 선량한 신민으로 보장 받아 마땅했다.
“자네 아우는 도대체 어디서 뭘 하구 있는 건가?”
야마시타가 이일철에게 묻자 그는 한숨을 내쉬더니 오히려 되물었다.
“나두 참 답답하네. 혹시 자네는 뭔가 알구 있지 않나?”
“보호관찰 수칙을 위반했기 때문에 검거되면 즉각 재구속이다.”
일철은 말없이 차를 마시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어디 지방에 있든지 외국으로 가버린 게 아닐까?”
야마시타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자네가 기차에 태워 대륙으로 빼돌린 건 아니겠지?”
“글쎄 그렇게라두 해서 집안의 말썽쟁이를 치워 버렸으면 좋겠구먼.”
이일철은 그렇게 대꾸하면서 등판이 서늘했지만 얼른 덧붙였다.
“요즈음 전시라 특급열차의 보안이 얼마나 철저한지 아는가.”
“그야……아무튼 연락이 오면 즉시 우리에게 알려줘야 하네. 위에서 채근이 빗발 같다구.”
“차라리 내가 그 놈을 잡아다가 집어 처넣으면 편히 발 뻗고 잘 텐데 말야.”
어쨌든 야마시타는 미행 잠복조를 과거 사건의 관련자들에게 붙여 놓고 일일보고를 받고 있었다. 어느 날 조원 중 하나가 들어와 보고했다.
“박선옥이가 오늘 인천에 갔다 왔습니다.”
“응 박선옥? 그게 누구지?”
“지난번 사건 때에 검거 되었던 여공입니다. 지금은 떡장수를 하는 집안일을 도우며 살고 있지요.”
“아, 떡집인가? 이이철이 조직한 독서회에 들어 있었지……”
만년필로 책상을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던 야마시타가 말했다.
“인천에 갔단 말이지. 내일부터 박선옥이를 집중 사찰한다.”
그는 형사 한 사람과 보조 세 명을 박선옥 전담조로 꾸렸다. 이제는 그녀를 감시할뿐 아니라 움직이는 모든 곳에 미행하고 그녀가 만나는 사람은 누구든 신분 확인을 할 작정이었다.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래, 인천이다. 거기서 뭔가 벌어지고 있는 거야.”
그로부터 보름쯤 지나서 야마시타는 전화로 보고를 받았다. 박선옥이 인천 가는 기차를 탔다는 것이었다. 그는 두 사람의 형사를 데리고 그 다음 기차로 인천으로 향했다. 그들은 약속된 장소인 혼마치의 카페에 가서 미행조의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다. 두 시간쯤 지나서 미행조로 나갔던 형사가 먼저 나타났다. 그는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되었다.
“야마시타 반장님, 놀라지 마십시오! 박선옥이 만난 게 누구겠어요?”
야마시타는 의자에 앉았다가 벌떡 일어났다.
“뭐야 누굴 만났다고?”
“이이철을 만났습니다.”
야마시타는 책상을 가볍게 두드리며 다시 주저앉았다.
“요오시! 이이철의 거처를 알아 놓았겠지.”
형사는 다시 상세하게 보고했다. 박선옥은 배다리 사거리를 지나 창영정의 감리교회 뒷산 산책로에 갔다. 밀착 미행이 어려워 미행자는 멀찍이서 그녀를 관찰했다. 삼십 분 후에 남자가 나타났는데 처음에는 그가 이이철인줄 알아보지 못했다. 그들은 삼십 분쯤 주위를 산책했고 언덕 위에 올라가 앉아 있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내려와 쇠뿔고개 길에서 두 사람은 헤어졌다. 박선옥은 이미 파악이 되어 있었으므로 미행조들은 그녀가 만난 남자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그가 영창정의 고갯마루 골목에 있는 주택가로 들어가 어떤 이층집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다. 그의 뒤를 따라서 집 앞에까지 다가갔던 조선인 보조원이 돌아와 형사에게 숨막히는 보고를 했다.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그가 길 좌우를 살폈는데 얼핏 보기에도 이이철이 틀림없었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덮칠까요?”
일본인 형사가 물었고 야마시타는 생각했다. 형사가 자기를 포함하여 네 사람이나 되고 노련한 형사보조도 둘이나 있었다. 여섯 명이면 그 어떤 돌발 상황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충분히 이이철을 체포할 수가 있었다. 그는 한참이나 생각해 보다가 결론을 내렸다.
“지금부터 잠복에 들어간다. 체포는 이십사 시간 유예한다. 내일 하루 동안 이이철이 누구를 만나는지 확인한 뒤에 검거할 것이다.”
그들은 여관을 잡았고 시간별로 교대하여 이이철의 집 부근에 잠복하기로 하였다. 밤 시간에는 이층에 불이 꺼질 때까지 그리고 날이 밝아오는 새벽부터 다시 잠복에 들어가기로 하였다. 밤에는 변장할 필요가 없었지만 날이 밝으면서 서성거릴 수가 없었으므로 군고구마 리어카를 빌려다 골목 북서쪽 입구에 자리를 잡았고 골목 반대편 남동쪽 입구에는 걸인 행색으로 넝마를 뒤집어쓰고 앉아 있기로 하였다.
이이철은 인천으로 온다는 박선옥의 전보 연락을 받았다. 물론 전보는 김근식의 다른 레포를 통해서 전달이 되었다. 기관지를 받아간 것이 이주 전이었는데 아마도 급한 상황이 발생했으리라고 그는 예측하고 있었다. 역시 박선옥이 달려온 것은 이관수가 체포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이관수는 중앙과 직접 연결되는 측근의 간부였고 이것은 비상 상황이었다. 그는 박선옥을 보내고 자기 동네로 돌아오면서 어쩐지 아까부터 뭔가 신경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산책로에서도 이철은 그 시간에 혼자 외출복 차림으로 호젓한 산책길에 지나쳐오는 남자를 힐끗 보았다. 산책 나온 동네 사람이 아니라면 어딘가 방문하는 길일 텐데 그 위쪽에는 인가가 없었다. 이철이 박선옥을 보내고 일부러 창영정 대로를 걸어 비탈길로 오르는데 누군가 걸음을 빨리하며 그의 등 뒤를 지나쳐갔다. 아까 산책로의 그 사내와는 다른 사람 같았다. 이철이 문 앞에 서서 살피는데 도리우치를 쓴 그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지나다가 모자챙 아래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시선이 맞부딪친다는 실감이 가는 그러한 눈길이었다. 개가 틀림없다! 하고 그는 느꼈다. 이층 자기 방에 들어선 이이철은 얼른 창가로 가서 커튼을 조금 젖히고 골목길을 내려다보았다. 역시 지나갔던 사내가 다시 되돌아서 집 앞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지나가면서 집을 올려다보았다. 이철은 그때에 방의 불을 켰다. 미행이 붙었다는 것은 이미 자기의 정체와 거처가 들어난 것을 의미했다. 그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다다미 위에 드러누워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후닥닥 일어나 외투를 걸치고 집 밖으로 나서자마자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일부러 그렇게 했지만 미행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예상대로 틈이 생긴 것이다. 거처를 확인했으므로 개들은 논의한 뒤에 다시 비상선을 치러 올 것이다. 그는 김근식 이금순 아지트 부부의 집으로 뛰어갔다. 겨울인데도 한참 뛰었더니 목덜미에 땀이 배었다. 그가 대문을 두드리자 이금순이 누구냐고 묻고는 이철의 목소리를 듣고 얼른 문을 열어 주었다. 그는 김근식과 이금순에게 소식을 알려주었다.
“오늘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관수 동지가 체포 당했답니다.”
이금순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아아, 하고 낮은 신음소리를 냈다.
“어서 여기를 정리해야겠군.”
김근식이 중얼거리자 이이철이 다급하게 말했다.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습니다. 영등포에서 저의 레포가 왔는데 꼬리가 달린 게 분명합니다.”
그는 자초지종을 간단하게 말해주었다. 김근식과 이금순은 오랜 활동가로서 이이철의 노련함을 믿고 있었다. 김근식이 말했다.
“이제 일초도 망설일 시간이 없소. 당신은 선생님을 모시고 이차 장소로 가시오. 나와 이 동무가 뒷정리를 해야겠소.”
이금순은 말대꾸도 없이 주섬주섬 가방에 옷가지를 넣고 외투 입고 목도리를 머리부터 휘감아 두르고 나서다가 지폐 몇 장을 김근식에게 내밀었다. 김은 그 손을 밀어내면서 말했다.
“우리는 이제 큰집 들어갈 터이니 여비는 당신들이 더 필요할 거요.”
이금순은 벌써 눈물에 젖은 얼굴을 훔칠 생각도 않고 돌아서다가 한 팔로 김의 허리를 안았다가 놓고는 대문 밖으로 달려 나갔다. 이금순은 율목정 반찬가게 집으로 가서 박헌영 선생을 탈출시킬 것이었다. 그녀가 나가자마자 이이철이 말했다.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김 선배도 어서 피하시지요.”
“그래요, 어쨌든 개들의 주의를 분산 시키려면 내가 일단 잠적했다가 잡히는 게 이롭겠어요. 헌데 이 동무고초가 심해질 텐데.”
“그래봤자 이십사 시간 원칙을 지키는 일인데요 뭐.”
김근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인천을 떠날 수는 없어요. 어찌 되었든 며칠 소나기를 피하면서 조직 정리를 해놓고 잡힐 거요.”
“저는 집으로 돌아가 있어야 합니다.”
김근식도 집안 정리를 해놓고 급한 대로 측근 야체이카들에게 비상을 알릴 생각이었다. 이이철은 쇠뿔고개의 자기 거처로 돌아왔다. 왕래한 시각은 삼십 분 정도였을 것이다. 그는 전등불을 켜놓은 채로 집을 비웠다가 돌아왔다. 아직 잠복조는 다시 오지 않은 것 같았다. 등사기며 문건등속을 가지고 내려와 집 뒤란의 수돗가에서 태웠다. 재까지 말끔하게 하수구로 흘려보내고 나서 방에 돌아가 누웠으나 잠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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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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