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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칼럼] 소설가들의 피해의식

<월간 채널예스> 2020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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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신문사의 문학 담당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일 분들이 꽤 있으실 거라 생각한다. (2020. 01.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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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_ 이내

 


지난 회에서 소설가들의 우정에 대해 훈훈한 말들을 썼는데, 이번에는 정반대인 주제를 꺼내볼까 한다. 소설가들의 직업병인 피해의식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시기심, 분노, 우울증, 그리고 자기파괴에 대한 이야기다. 특정인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며, 사실 나 자신이 이 모든 사항에 다 해당한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닌 듯하다. 은희경의 『태연한 인생』 을 읽다가 아래 대목에서 무릎을 치며 웃었다.

 

“조교 시절 이안은 작가 강사들을 많이 상대했고 교내 행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여러 작가들을 만났다. 작가들에게는 자신이 충분히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오해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름을 얻은 작가들도 다르지 않았다. 책이 많이 팔리는 작가는 그 때문에 편견이 생겨서 문학성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었고 반대인 경우는 문단의 상업주의 탓에 형편없는 작품이 대중의 인기를 업고 후하게 평가되고 있다고 불만이었다.”

 

이 뒤로 전자에 해당하는 소설가들이 망해가는 단계에 대한 등장인물의 냉소적인 분석이 이어지는데, 관심 있으신 분들은 직접 읽어보시기 바란다. 소설가들의 실제 모습을 아는 분이라면 무릎을 여러 번 치게 될 거다.

 

어느 신문사의 문학 담당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일 분들이 꽤 있으실 거라 생각한다.

 

“한국 소설가들의 공통점 중 하나가, 다들 자기가 문단의 아웃사이더이고 비주류라고 해요. 문단이 자기 싫어한다고. 밖에서 보기에는 문단 한가운데 있는 분도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기실 ‘나 인정 못 받아서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것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 모든 작가들의 습성이다. 레이먼드 카버랑 존 치버가 낮부터 술 마시면서 늘어놓은 소리가 뭐였을 거 같은가. 그들은 ‘비열한 소설’들에 대해 떠들고, 실험소설들을 함께 욕했다. 카버의 제자 한 사람은 “잡놈들보다 오래 살아남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다고 회고한다. 캐롤 스클레니카의 두툼한 평전 『레이먼드 카버』 에 나오는 얘기다.

 

그런가 하면 베스트셀러 소설가 제니퍼 와이너는 작가들의 에세이 모음집 『밥벌이로써의 글쓰기』 에서 분통을 터뜨린다. 책이 200만 부 넘게 팔리고 작품이 영화화되어 카메론 디아즈가 주연을 맡기도 했지만 “작가로 사는 내내 평론가나 문인 사회로부터 내 작품은 시시하고 의미 없다는 말을 들어왔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소설가 제임스 패터슨도 “오, 그 공항 가판대 작가가 책장이 절로 넘어가는 베스트셀러를 또 냈다지” 같은 빈정거림에 몹시 섭섭한 모양이다. 뉴욕타임스 북리뷰에서 펴낸 인터뷰집 『작가의 책』 에 보면 나온다. 스티븐 킹도 여기저기서 자격지심을 자주 드러냈다.

 

이런 피해의식은 작가 지망생부터 대문호까지 예외가 없는데, 그게 심해지면 정신건강을 갉아먹는다. SNS를 하면서 다른 소설가를 ‘저격’하는 소설가들을 보게 됐다. 문단문학이고 장르문학이고 가릴 것 없다. 그냥 푸념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누군가 가볍게 조리돌림을 해줬으면’ 하는 악의가 느껴질 때도 있었다. 글쓴이 본인에게도 명확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 소설 쓰는 사람들의 동네가 좁기도 하고, 말 많은 사람들이 많기도 하여, 그게 당사자 귀에도 들어간다. A가 ‘서로 페친, 트친도 아니고 이름도 안 썼으니 검색 못하겠지’ 하고 소설가 B에 대해 쓴 푸념에 대해 C가 “누가 누구 저격했네”하고 해설을 올리기도 하고, D가 B에게 “이건 작가님도 알아두시는 게 좋겠어요” 하고 화면 캡처를 보내기도 한다. 씩씩대는 B에게 A가 켕겼는지 미안해졌는지 “잘 지내시죠? 늘 응원해요” 하고 메시지를 보낸다. 이 사정을 모르는 편집자 E가 B에게 A의 새 책 추천사를 부탁한다.

 

한 번 더 강조하지만 이는 절대로 한국 문학계 특유의 문제가 아니다. 카뮈도 프랑스 문단에서 왕따를 당했다. 실존주의에 대한 견해 차이로 사르트르와 틀어지고 알제리 독립을 반대하며 마이웨이를 걷기도 했지만, 노벨문학상이 큰 원인이었다. 20대에 『이방인』 을 쓰고 40대에 노벨상을 받은, 젊고 잘 생기고 인기 많은 소설가를 시기하지 않기가 어려웠으리라(이 얘기는 유기환의 『알베르 카뮈』에 나오는데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고 두껍지도 않은, 숨은 보석 같은 책이다. 카뮈의 팬이라면 꼭 읽어보시기 바란다).

 

시샘보다 위험한 것은 안으로 문드러지는 것이다. 촉망 받던 소설가 F에 대한 일화는 내게 하나의 교훈으로 남아 있다. 그가 요즘 뭐하는지 궁금해서 누군가 찾아갔는데 몇 시간이고 이어진 술자리에서 F가 계속 다른 사람들 욕만 하더라는 것이었다. 어느 평론가가 자기를 깎아 내렸고, 어느 기자가 자기를 모함했고, 어느 편집자가 자기 원고를 묻으려 했다고……. 슬프고도 두려운 목격담이었다.

 

이런 일들은 소설가들이 유달리 탐욕스러워서가 아니라, 그들이 인지부조화에 빠지기 쉬운 처지에 있어서 벌어지는 것 같다. 작품이 기대만큼 평가받지 못할 때(대부분 그러한데) 작가들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내가 정말 글을 써도 되는 사람인가? 나한테 능력이 있나? ‘그렇다’고 답하지 못하는 사람은 우울증에 걸린다.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자기 작품이 평가받지 못하는 이유를 밖에서 찾게 된다. 거기서 몇 걸음 더 나아가면 망상과 음모론의 음험한 늪지대가 있다.

 

특히 전업 소설가들은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많다. 사람이 혼자 있으면 자꾸 전날이나 전전날 있었던 일에 대해, 또 자기 자신에 대해 곱씹게 된다. ‘그 편집자한테 내가 한 말이 무례하게 들리지 않았을까’와 ‘이 명단에 내 이름이 없는 이유가 뭘까’를 같이 고민하다가 어느 순간 그 두 생각이 비극적으로 만난다. 흔히들 고된 밥벌이를 가리켜 ‘춥고 배고픈 일’이라고 표현하는데, 외로움도 지나치면 추위나 허기만큼 해롭다. 그 또한 이 길을 택한 사람이 감당해야 할 몫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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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장강명(소설가)

기자 출신 소설가. 『한국이 싫어서』,『산 자들』, 『책 한번 써봅시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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