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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74화 : 륙색을 내던지고 기차에서 뛰어내렸다
『마터 2-10』 연재
철교를 지나는 소리가 들리고 그것이 임진강 다리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편실 직원들은 이제 종점이 다가오니 마음 푹 놓고 잠들어 있는 듯했다. 두 사람은 소화물실의 걸쇠를 젖히고 나무 문짝을 조금 열어 보았다. (2019. 12. 30)
<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이철은 김 선생을 데리고 신의주로 나가 여관에서 기다리던 형을 만났다. 일철이 두 사람에게 자기 계획을 간단히 말해 주었다.
“특급열차에는 이동 형사와 이동 헌병이 탑승합니다. 이들은 보조와 함께 이인 일개조로 근무하니까 네 명입니다. 이들은 비상시에 아무 역에나 기차를 정차시킬 수도 있고 어느 정거장이든 증원 인력을 요청할 수도 있지요. 따라서 일반 객차 칸은 위험하여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기관차 바로 뒤에 달고 가는 우편 칸에 탈 수 있습니다. 우편열차는 화물차 크기에 두 칸으로 나뉘어져 있어요. 행낭과 소포 등 화물을 싣는 소하물 칸과 우편물을 구분하고 사무를 볼 수 있는 우편실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소하물 칸에 숨어서 가야하는데 장시간이라 좀 괴로울 것입니다.”
“뭐 야행열차니까 한숨 푹 자면 될 겁니다.”
이철이 말했고 김 선생은 그의 형에게 물었다.
“기관차와 우편차 사이를 왕래할 수 있나요?”
“기관차의 후미는 석탄과 물을 채운 탄수차가 가로막고 있어서 그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사실상 어렵습니다.”
김 선생이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어쨌든 기차가 달리는 동안에는 위험하지 않다는 얘기도 되는구먼.”
그들은 저녁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할 때에 여관에서 나왔다. 일철은 아우에게 작은 륙색을 건네주었다. 안에는 군용 수통과 건빵 두 봉지 그리고 요강으로 사용할 유담뽀 두 개가 들어있었다. 아우가 의주에 나가있던 사이에 일철이 시장에 나가 준비해온 것들이었다.
“아마 우편실에는 두 세 사람이 탑승할 것입니다. 책임자인 편장과 장부를 정리하는 원부와 기차가 정차할 때에 우편물을 내리고 올리는 인부가 있습니다. 화물이 적으면 두 사람이 타고 좀 많을 때에는 서너 명이 탑니다. 지금은 명절 때도 아니고 환절기라서 아마도 화물이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특급열차 폼으로 가서 우편열차에 올랐다. 일철의 안내로 컴컴한 우편실을 지나 쪽문을 열고 소하물 칸으로 들어갔다. 안쪽에 미리 쌓아둔 화물이 있고 바깥쪽에는 행낭이 줄지어 놓였다. 안쪽에는 나무 상자들이 있었고 분류하기 좋게 칸마다 포장된 소하물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그들은 나무 상자를 바깥으로 밀어내고 벽 사이에 작은 공간을 만들었다. 두 사람이 벽에 기대어 앉을 수 있을만한 크기의 자리를 만들었다. 김 선생과 이철이 들어가 자리를 잡았고 일철은 그 위에 수하물들을 쌓아 올렸다. 물론 안쪽에 모여 있는 물건들은 경성이 최종 목적지였고 바깥으로 나오면서 평양과 개성 등지의 물건이 차례로 분류되어 있었다. 일철은 가만히 말했다.
“아마도 새벽에야 경성에 도착할 것입니다. 파주 고양을 지나 수색을 지난 뒤부터 기차가 서행을 하게 될 터인데 하차 지점은 알아서 하십시오.”
출발 삼십분 전에 직원 두 사람이 우편실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뒤늦게 도착한 행낭과 소하물을 받기 위해 소하물실로 들어와 출구를 열었다. 짐을 실은 수레가 다가왔고 그들은 행낭과 소포를 받아서 앞쪽에다 분류해서 쌓았다. 특급열차는 신의주에서 출발하여 평양을 거쳐 개성 그리고 경성으로 이어지는데 작은 역은 대부분 그대로 통과했다. 일철은 평양역에 당도하여 잠깐 기관차에서 내려 홈을 서성거리며 바람을 쐬는 척 하며 바로 뒤에 잇달린 우편차를 살펴보았다. 우편국 직원 두 사람이 수하물과 행낭을 내리고 평양에서 오르는 짐을 받아 올리고 있었다. 출구는 우편실 쪽과 수화물 칸의 양쪽에 옆으로 밀어 여는 행거도어가 달려있었다. 아무 일도 없는 평온한 밤이었다.
두 사람은 소포와 화물이 가득 담긴 나무 상자 뒤에 쪼그리고 앉아서 졸다 깨다가를 반복했다. 철교를 지나갈 때의 굉음에 놀라 깨어나기도 하고 평야를 지날 때면 규칙적으로 레일 간격에 쇠바퀴가 걸리는 소리에 저절로 잠이 들었다. 이철은 이제 평양을 지났으니 개성만 지나면 된다고 생각했다. 기차가 달리고 있을 때에는 우편실에서도 쉬고 있는지 조용했다. 평양역에 도착하기 전에 그랬듯이 개성역에 도착하기 전에도 직원들이 소하물 칸으로 들어오리라 예측할 수가 있었다. 그들은 밤참으로 건빵을 먹었고 유담뽀 뚜껑을 열고 오줌도 누었다. 이제는 처음의 긴장이 풀려서 짐 사이로 다리를 뻗고 등을 차벽에 기대고 잠들었다. 기적이 울리고 철교를 지나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 우편실의 쪽문이 열리면서 직원들이 들어와 불을 켰다. 삼십 촉짜리 전구가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그들은 서로 의견을 나누면서 행낭과 소포를 집어 한쪽에 모아 놓았다. 개성역 구내로 들어가는지 기차가 증기 뿜는 소리를 내며 속도를 늦췄다. 평양역에서처럼 손수레를 끌고 온 수하물 인부가 행낭과 짐을 받아 내리고 부칠 우편물을 올려 주었다. 그들은 개성역을 떠나면서 기지개를 펴고 하품을 했다. 경성역에 가면 그들은 기관수들처럼 경부선 직원들과 교대할 것이다. 두 사람은 이제 잠이 완전히 깨어 내릴 차비를 갖추었다. 다시 철교를 지나는 소리가 들리고 그것이 임진강 다리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편실 직원들은 이제 종점이 다가오니 마음 푹 놓고 잠들어 있는 듯했다. 두 사람은 소화물실의 걸쇠를 젖히고 나무 문짝을 조금 열어 보았다. 찬바람이 사정없이 몰아쳐 들어왔다. 기차는 어둠 속의 들판을 가로지르며 달리고 있었다. 희미하게 불이 켜진 간이역들을 지나치면서 수색 가까이 왔다는 걸 알았다. 아니나 다를까 기차가 증기 뿜는 소리를 내고 기적을 길게 울리더니 속도를 늦추었다. 일철이 김 선생에게 속삭였다.
“여기서 내립시다.”
이철은 륙색을 먼저 어둠 속으로 내던지고 기차에서 뛰어내렸다. 그는 마른 풀이 무성하게 자라난 언덕 아래로 굴러 내려갔다. 마른 논두렁에 처박혔다가 일어났다. 뒤이어 저 앞쪽에서 김 선생이 굴러 떨어지는 게 희끄무레하게 보였다. 그들은 철도변을 향하여 기어 올라갔다. 일철이 김 선생에게 다가서며 물었다.
“어디 다친 데 없죠?”
“멀쩡하오. 자아, 이제 다음 행선지는 어디요?”
이철은 륙색을 찾을 생각도 없이 앞서서 걷기 시작했다.
“경성이 지척입니다.”
두 사람은 날이 훤하게 밝아올 무렵 애오개 마루에 도착했다. 경성의 아침이 시작되고 있었다. 지게에 두부며 생선이며 반찬 등속을 짊어진 행상들이 종을 울리거나 목청을 높여 두부 사료오, 비웃드렁 사요오, 제각기 떠들썩하게 아침을 시작하고 있었다. 출근 시각으로 거리가 복잡해진 때에 두 사람은 전차를 타고 돈암정 종점에서 내렸다. 언덕길의 골목 안에 있는 이관수의 한옥에 이르러 이철이 문을 두드렸고 기다렸다는 듯이 대문이 열렸다. 이관수가 대문간에서 서성이며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세 사람은 말없이 이관수가 이끄는 대로 안방으로 올랐다.
“오늘 이 시각에 오실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김 선생이 말했고 이관수는 다시 이이철에게도 치하를 해주었다.
“누구도 할 수 없었던 일을 해주었소.”
이이철은 앉지 않고 문가에 서서 말했다.
“저는 가보겠습니다.”
그는 레포의 일이 여기까지임을 잘 알고 있었다. 이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인천까지 먼 길이니 잘 돌아가도록 하시오.”
이철은 그 길로 마포까지 전차를 타고 가서 인천으로 가는 연락선을 탔다. 당시에 김 선생과 경성 콤의 지도부를 맡게 된 박 선생의 회합이 이루어졌으리라는 걸 짐작할 뿐이었다. 박헌영은 감옥에서 자기의 오물까지 집어 먹는 미치광이 행세로 간수들의 눈을 속이고 형집행정지로 풀려났고 연이어 잠적할 수 있었다. 그를 영입한 것은 경성 재건파의 초창기 활동가들이었다. 류재익이 투옥된 뒤에 이들은 잔여 활동가들과 다른 파의 운동가들을 접촉하면서 조선공산당 창설의 장본인이었던 박을 조직 중심으로 세웠다. 활동가들 중에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들이 여러 노동 현장에 세포의 기반이 있었던데 비하여 박헌영은 오랫동안 해외 활동을 해왔고 거듭된 검거 투옥으로 국내에서 활동할 대중적 기반이 없었다. 그의 영입으로 활동가들에게 주는 상징적인 의미는 컸다. 박은 국제당에 뚜렷한 선이 닿아 있었고 경성콤의 실상을 전달할 수 있었다. 이들은 여러 갈래로 찢어진 사회주의 운동의 중심을 세우고 통합하기 위한 첫 단계로 기관지를 발간하려는 것이었다.
신금이는 시동생 이이철이 어떻게 체포 되었는지 자세히 알고 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박선옥은 이전과 달리 이철의 근황에 대하여 신금이에게 조금씩 알려주곤 했다. 그녀는 영등포와 경성 그리고 인천을 잇는 중요한 레포로서 연결점 노릇을 하고 있었다. 선옥은 신금이 남편 이일철이 비록 총독부 철도국의 성실한 기관수가 되어 주구 노릇을 하고 있으나, 지난번 그의 동생 이철의 신의주 출장 이래로 그들 가족이 혁명가 지원그룹인 모쁘르가 되었다고 믿고 있었다.
박선옥은 이듬해 봄에 경성의 연락을 받고 인천으로 나갔다. 이이철의 집에 연락차 몇 번 방문했던 적이 있어서 그녀는 만국공원 산책을 하고 나서 저녁 무렵에 찾아갔다. 언덕 아래부터 층층이 작은 집들이 있고 골목과 계단이 많은 동네였다. 이철이 다니던 인천 철공소의 오르그 박용길이 얻어 준 집이었다. 일본식 이층집이었는데 일층에는 편직기를 들여놓은 공장이었다. 주인 여자와 직공 여섯 명이 일하는 소공장이었다. 남편은 연안부두에 나가는 사무원이었다. 이층에 방이 두 개 있었고 부근 공장에 나가는 직공이 월세로 들어 있었고 이철이 그 중 한 방을 썼다. 선옥이 방문을 두드리자 런닝 바람의 이철이 미닫이문을 열어 주었다.
“웬일이오?”
“배고파 죽겠네요.”
“뭐야 보자마자 배가 고프다니. 영등포엔 밥 사줄 사람두 없나?”
선옥이 미닫이를 빼꼼이 열고 계단과 좁은 복도를 내다보고는 물었다.
“옆방은 비었어요?”
“비었지. 아마 한 열흘 됐을 걸, 이사 갔어.”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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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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