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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73화 : 해방이 되는 그날까지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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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수 일철은 머리 위의 줄을 당겨 기적을 울린다. 기차가 곧 출발한다는 신호였다. 그는 가감관을 당겼고 피스톤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2019.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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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기차에 타고도 안심을 할 수 없는 것이 이동 형사와 헌병이 차장과 함께 수시로 객차를 오가며 승객들을 살폈다. 그는 개성 역에서 형의 도움으로 안전하게 승차할 방법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인천에서는 조선조 이래로 강화도를 돌아서 한강 하구로 들어와 마포까지 오르는 배편도 있었고 현재는 정기연락선이 있었다. 그는 아예 고깃배를 세내어 강화까지 가서 맞은편 개풍군으로 건너갈 생각이었다. 기차를 타기 하루 전에 개성에 머물고 있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는 인천 부두 조직의 도움을 받아 연평도 연안으로 나가는 어선을 탈 수 있었다. 계획대로 강화도 건너편 갈대와 부들이 무성한 갯가에 닿았고 멀리 북동쪽으로 송악산이 보였다. 이철은 두 시간을 걸어서 개성 시내로 들어섰고 저녁의 특급이 도착하는 시각까지 변두리의 주점에 들어가 죽치고 있었다. 날이 저물고 경성에서 달려온 특급열차 히카리 호가 들어올 즈음에 이철은 역사와 떨어진 곳에 있는 수화물 창고의 뒤편으로 접근했다. 그는 마치 화물을 부치러 온 화주처럼 낮은 철문을 밀고 폼으로 들어가 창고 앞에서 기다리고 서있었다. 밀차를 끌고 밀며 왕래하는 노동자들 중 아무도 그에게 주의를 돌리는 사람은 없었다. 특급이 들어오는지 기적 소리가 길게 들려왔고 먼 철로의 끝에 기관차의 전조등 불빛이 재빨리 다가오고 있는 게 보였다. 그는 늘어선 창고의 끝에 있는 단층 건물에 역원들의 대기실이 있다는 걸 알았다. 이철은 그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맞은편에서 누군가가 다가오다가 말을 걸었다.

 

 “두쇠냐?”

 

 “형……”

 

기관수 작업복 차림의 일철이 그에게 와서 손을 잡아주었다. 주위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대기실로 가서 들고 온 보퉁이를 내밀며 그에게 말했다.

 

 “얼른 갈아입고 나와라.”  

 

형이 준비해 온 것은 철도원의 작업복 작업모 등속이었다. 이철은 담갈색 작업복을 입고 다리에 각반을 두르고 작업모를 썼다. 일철은 옷을 갈아입고 나온 아우의 아래 위를 훑어보고는 앞장서 걸었다. 그들은 철로를 건너 특급열차가 들어온 폼으로 갔고 기관차에 올랐다. 이철이 기관차의 외양과 운전실의 기기를 보고 나서 일철에게 말했다.

 

 “이거 터우인가?”

 

 “그래 텐더형이지. 그 중에 가장 큰 발틱 계열이다. 견인력 삼만 삼천 파운드야.”

 

 “마터는 없어요?”

 

 “응 그게 제일 많은데 대개가 화물열차를 끈다. 산악형이라 북선에서는 마터가 대부분이다. 산악지방에선 미카를 못 쓴다구.”

 

대답해 주다가 일철은 아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가와사키 공장에 뒤이어 이제 용산 공장에서도 터우를 제작하기 시작했다더라. 네가 그냥 착실하게 근무했으면 지금쯤 일급 기술자가 되어있을 텐데.”

 

일철은 기관조수가 오기 전에 아우에게 주의를 주었다.

 

 “대형 탱크의 기관차들은 모두 자동급탄 장치가 되어 있다. 물론 네가 신경 쓸 필요는 없지만 알아두어라.”

 

조수석 앞의 자동급탄장치를 누르면 뒤의 저탄고에 연결된 나선형 휠이 돌면서 석탄을 화구 속에 직접 공급하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구형 미카나 파시 같은 기관차와 다른 점은 화부 인력이 필요 없게 되었다. 텐더형 터우 기관차에는 기관수와 기관조수 두 사람이 운전을 했다.

 

 “다행이 오늘 내 조수는 조선인이다. 미리 얘기를 해두었으니까 별로 의심은 하지 않겠지. 너는 화물열차를 담당한 기관수다. 오늘 화물열차를 타러 신의주에 간다고 해두었다. 개성은 너의 처가다. 너는 양성소 출신이 아니라 화부 출신이다. 그런 것 몇 가지만 염두에 두고 말 많이 하지 말고.”

 

조수가 뛰어 와서 철계단을 붙잡고 기관차에 올라탔다. 그는 한 손에 보온병을 들고 있었다. 이철이 자연스럽게 그의 보온병을 받아 주고 한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잡아 이끌어 올렸다.

 

 “아! 말씀은 들었습니다.”

 

이십 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조수가 이철에게서 보온병을 받아들며 말했다.

 

 “사무실에 들렀더니 마침 미삼차를 한 주전자 끓여 놓았더군요. 가득 받아 왔습니다.”

 

그는 사물함에서 사기 컵 두 개를 꺼내어 일철과 이철에게 내밀어주고 조심스럽게 따랐다. 그들은 겨울철에 개성역에 도착하면 미삼차를 얻어다 마시는 게 근무일과 중 하나였다. 쇳가루와 탄가루를 마시며 일하는 기관수에게 인삼차가 몸에 좋다고 하여 내려오는 관행이었다. 호각 소리가 들리고 전방 선로의 폐색기가 올라갔다. 역원이 폼에서 붉은 기로 신호를 해왔다. 출발 방송이 들려왔다. 기관수 일철은 머리 위의 줄을 당겨 기적을 울린다. 기차가 곧 출발한다는 신호였다. 그는 가감관을 당겼고 피스톤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역 구내를 벗어나자 기관차는 더욱 속도를 냈고 육십에서 칠십 킬로의 안정된 속도에 접어들었다. 그 동안 기기를 살펴보며 조수는 자동급탄기를 누르거나 멈추면서 화력을 조절했다. 기차는 황해도의 평야지대를 달려갔다.

 

 “저는 철도학교 나온 지 이제 겨우 삼년 되었습니다. 옛날 같으면 이런 특급열차의 조수는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요즘 시국 때문에 조선인으로 운이 좋았던 거죠.”

 

기관수 일철은 그냥 너그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고 이철도 되도록 말을 많이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조수는 계속 말을 걸어왔다.

 

 “선배님들은 십 년이 넘어가야 여객열차를 탔다는데요. 그중 특급열차는 철도의 꽃이라고 하잖아요. 화물열차 타신다면서요?”

 

 “예? 그렇습니다.”

 

 “전에는 어느 선 타셨어요?”

 

 “아, 경인선 타고 경원선도 탔습니다.”

 

 “양성소 나오셨나요?”

 

이철은 형과 미리 입을 맞춰 두었으므로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저는 형씨보다 더 운이 좋았습니다. 다다키 아가리입니다.”

 

밑에서부터 올라왔다는 뜻으로 말하자 그는 대번에 알아들었다.

 

 “아! 용인 출신이군요.”

 

 “네 화부로 들어왔습니다.”

 

그는 이제 시키지 않은 말까지 해버렸다. 집은 경성인데 처가가 개성이다. 집사람이 오래 전부터 친정에 다녀오겠다고 했지만 피차 알다시피 철도 타는 사람이 언제 틈이 나느냐. 교대시기를 이용하여 아내를 개성에 데려다주고 내려가는 길에 태워서 돌아가려고 한다.

 

심야에 평양에 도착하고 다시 출발하여 새벽녘에 청천강 다리를 건너 아침이 되어서야 신의주로 들어갔다. 이일철은 합숙소로 가지 않고 아우와 함께 시내로 들어가 여관을 잡았다. 이철이 만나려는 사람은 활동가일 테니 안동에서 출입국 형식을 거쳐서 입국하지는 않을 게 뻔한 노릇이었다. 그는 의주의 주소지를 확인하고 십여 리 길을 걸어갔다. 그곳은 전래의 조선 관아가 있던 의주였고 신의주는 철도와 철교가 놓이면서 새로 생긴 신도시였다. 이철은 관아 거리의 모퉁이에 있는 한약방으로 찾아갔다. 돌담과 기와집이 거리를 향하여 있었고 앞쪽은 길게 툇마루가 달린 가게채였는데 환자며 방문객들이 드나드는 의원으로 쓰고 뒤가 살림집이었다. 그가 안을 기웃이 들여다보니 안경을 쓴 의원은 방 안쪽에 앉았고 마루 쪽에 젊은 총각이 무릎을 꿇고 앉아서 작두로 약초를 썰고 있었다. 그가 들여다보니 총각이 말했다.

 

 “어서 오세여.”

 

 “말 좀 물읍시다. 장 의원 계시는지요?”

 

 “어디가 편찮으신데요?”

 

 “몸이 좋지 않아서 진맥이나 해보려고 왔소.”

 

그들의 오가는 수작을 듣더니 안쪽 방에 있던 안경 쓴 이가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거 들어오시라구 해라.”

 

이이철이 마루에 올라 방으로 들어가 앉으니 의원이 말했다.

 

 “게 앉으시우. 팔뚝 걷어서 이리 내밀어 보시오.”

 

이철은 말없이 시키는대로 팔뚝을 걷고 책상 위로 내밀었고 의원이 그의 손목에 엄지 검지를 얹고는 맥을 짚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예, 지금 경성에서 오는 길입니다.”

 

 “먼 길을 오셨군요.”

 

 “저희 삼촌을 뵈러 왔습니다만.”

 

의원은 빙긋이 웃더니 가만히 말했다.

 

 “성함이 그러니까 두쇠가 맞는지요?”

 

 “그렇습니다.”


의원은 일어서며 말했다.

 

 “몸은 건장하시고 지금 조반을 놓쳐서 매우 시장하겠구려. 안으로 가십시다.”

 

이철은 서로를 확인하는 수인사가 모두 끝난 줄 눈치 채고 그를 따라서 안의 살림집으로 옮겨갔다. 안채에도 주인의 사랑방이 있었는데 그가 미닫이를 열자 양복 차림의 중년 남자가 앉아 있는 게 보였다. 그의 날카로운 눈길이 의원 뒷전에 서있는 이철의 얼굴에 와서 꽂혔다. 의원이 말씀들 나누시라며 소개를 하고는 돌아서 나갔다. 그가 앉기를 기다려 양복차림은 이철에게 물었다.

 

 “이이철 동무가 맞습니까?”

 

 “예 두쇠는 집에서 부르는 이름입니다만.”

 

남자가 껄껄 웃었다.

 

 “그러면 형 되는 이는 한쇠인가 보구려.”

 

 “그렇습니다. 지금 특급열차 기관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김 선생님을 경성까지 모셔오라구 해서……”

 

김 선생은 말했다.

 

 “번거롭게 원행을 하도록 만들어서 미안하오.”

 

그는 자기가 달포 전에 얼어붙은 강을 걸어서 건너왔다고 말했다. 신의주의 연락선을 통하여 소식이 오고갔을 것이다.

 

 “언제 출발할 수 있습니까?”

 

 “오늘 저녁 특급열차 편으로 상경합니다. 출발 두 시간 전에 역에 가있어야 합니다.”

 

 “음 그러면 아직 시간은 넉넉한 셈이로군.”

 

그는 이철에게 몇 가지 일을 물었다. 우선 현재 경성의 활동 상황과 조직의 형편에 대하여 물었고 그들 사이에 입수된 해외의 문건들이며 각 조직의 기관지등은 어떤 종류가 있는지도 물었다. 이철은 아는 대로 대답했으며 검거선풍 뒤에 소강기임을 알렸다. 김 선생은 말했다.

 

 “우리에게 불리하거나 유리한 상황은 따로 없습니다. 해방이 되는 그날까지 혁명 활동은 계속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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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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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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