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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70화 : 기차에 태워 달라는 거예요?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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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선일체’ 즉 일본과 조선은 하나라는 구호를 직장과 가정마다 써 붙이도록 했다. 철도관사의 공회당 정면에도 유리액자에 든 한문 붓글씨가 붙어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애국반상회에서 일본에 충성한다는 내용의 서약을 합창하듯 입을 모아 암송하도록 했다. (2019. 12.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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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대륙에서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면서 모든 생활은 전시체제로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이일철이 특급열차의 기관수가 되면서 월급도 올랐고 철도공제회에 가입하여 급전을 대부받거나 작은 돈을 넣어서 목돈으로 불릴 수 있는 금융혜택도 받게 되었다. 식량과 피복 등 생활필수품들은 배급제로 바뀌었지만 철도 국우회의 소비부에서는 철도국 종사자의 가족들을 위하여 대량 구입하여 시장보다 싸게 우선적으로 배급을 받을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나 이백만 가족이 철도관사에 입주를 하면서 일본인들 틈에 끼워 살게 되자마자 바깥세상 즉 조선인 사회에서는 아직은 총독부의 정책 시행령에 지나지 않던 모든 황국신민의 생활방침을 곧이곧대로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우선 회사에서는 은근한 압력으로만 창씨개명을 요구했고 조선인 사회에서는 두 해가 지나서야 강제로 집행되던 것이, 관사에 입주하자마자 거주지의 조선인 반장을 통하여 자진 개명하도록 하였다. 그들 가족의 이씨 성은 리노우에로 바뀌었고 이름은 이치데츠가 되었다. 아버지의 이름도 우스꽝스럽게 리노우에 햐쿠만이 되었고 지산이는 이케야마가 되었다. 신금이는 남편의 성인 리노우에를 따르고 이름은 원래 이름의 뜻을 따라 부르기가 조금 낫다는 키누로 정하였다.

 

불과 일 년 수개월 뒤에 총독부 시행령이 공포되었지만 자진 개명하는 조선인이 극소수여서 육 개월의 시한을 정하고 강제로 성과 이름을 바꾸게 했다. 창씨를 하지 않은 집안의 자녀에 대하여 각 급 학교의 입학과 진학을 거부하도록 했다. 이미 입학한 학생도 정학 또는 퇴학 조치하고 사립학교에서 학칙으로 따르지 않을 경우 해당 학교는 폐교한다는 방침이었다. 학교에서 창씨개명하지 않은 아동들을 이유 없이 질책 구타하여 아동들의 애원으로 부모들이 못 이겨서 창씨를 하도록 만들었다. 창씨를 하지 않은 성인 남녀는 어떤 공사기관에서도 채용하지 않으며 현직자도 점차 해고하도록 조치하고, 일본식 씨명으로 바꿀 경우에는 복직할 수 있었다. 행정기관에서는 창씨를 하지 않은 조선인의 모든 민원 사무를 취급하지 않았다. 창씨를 하지 않은 조선인은 비국민 또는 불령선인으로 간주하여 경찰수첩에 기입하여 사찰을 철저히 한다. 창씨를 하지 않은 자는 우선적인 노무 징용 대상자로 지명한다. 창씨를 하지 않은 자는 식량 생필품의 배급 대상에서 제외한다. 철도 수송 화물의 명패에 조선식 씨명이 쓰인 것은 취급하지 않으며 해당 화물은 즉시 반송 조치한다. 창씨하지 않은 자는 일본 내지로 도항할 수 없다. 창씨개명령 제정 이후 출생한 자녀에 대하여 일본식 씨명으로 출생신고하지 않은 경우에는 계속 반려하여 그 부모가 의무적으로 창씨 하도록 강제한다는 규정이었다.

 

‘내선일체’ 즉 일본과 조선은 하나라는 구호를 직장과 가정마다 써 붙이도록 했다. 철도관사의 공회당 정면에도 유리액자에 든 한문 붓글씨가 붙어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애국반상회에서 일본에 충성한다는 내용의 서약을 합창하듯 입을 모아 암송하도록 했다. 매일 아침마다 도쿄의 황궁 방향을 향하여 절을 하도록 정했지만 온 가족이 나와서 자진하여 예를 차리는 조선인 가족은 없었고, 어쩌다 일본식 명절이나 국경일에 반장 인솔로 궁성요배가 이루어지곤 하였다. 평소에 말이 없는 이백만도 철도관사에 입주한 지 한 달쯤 지나자 아들 일철을 불러놓고 불평을 말했다.

 

 “어째 두쇠가 드나들던 형무소 보다두 못한 데루 들어온 것 같구나.”

 

 일철은 아무 대답이 없었고 신금이가 말했다.

 

 “지금 바깥에선 백미 배급은 어림도 없구요, 시장에서 야미로 파는 것두 서너 배나 비싸대요. 생일에 쌀밥 먹는 게 옛말이 되었지요. 여긴 아직 물자가 모자란 적이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에요.”

 

그 무렵에 일철은 아버지와는 물론 아내와도 시국담에는 아예 입을 다물었다. 지산이가 여섯 살이라 관사 안의 탁아소에 보냈다. 신금이는 관사의 공회당에 나가서 일하기 시작했다. 공회당은 작은 강당과 사무실 몇 칸에 비품창고와 매점 등이 있는 목조 건물이었다. 일본인 조선인 주부들이 재봉반과 편물반 수선반으로 나누어 한 반에 십여 명 가까이 모여서 봉사 겸 부업 벌이를 했다. 신금이도 편물반에 들어가 털실 뜨개질을 배웠다. 대나무 바늘과 코바늘로 털실 뜨개질과 레이스 뜨기를 했다. 장갑 양말 등속에서 갖가지 무늬의 털스웨터를 떠서 국우회에 납품했다. 편물반의 반장은 사십 대의 일본인 여성이었고 그녀의 남편은 공작창의 기사였다. 어느 날 오후에 신금이가 한창 뜨개질에 열중해 있는데 누가 찾아왔다고 공회당의 조선인 사환이 알려 주었다. 공회당 정문으로 나가보니 박선옥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기다리고 서 있었다. 신금이는 가슴이 털썩 주저앉는 것만 같았다.

 

 “웬일이야?”

 

물으니 선옥은 간단히 말했다.

 

 “여기두 근무시간이 정해졌나?”

 

신금이는 잠깐 기다리라 해놓고는 얼른 반실로 돌아가서 반장 여인에게 집에 일이 생겨서 돌아간다고 말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박선옥은 신금이가 그녀를 집으로 데려갈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으로 들어가 앉자 선옥이 그제야 안심을 했는지 입을 떼었다.

 

 “다름 아니고요, 이철 씨가 언니를 뵈었으면 한대서……”

 

 “지금 어디 있는데?”

 

 “인천이죠 뭐.”

 

신금이는 한숨을 푹 쉬었다.

 

 “시국이 이런데 서방님은 좀 쉬면서 세월 보낼 생각을 해야지.”

 

  “만나 보시려우?”

 

 “뭔가 급한 일이 생겼으니 날 찾는 게 아니겠어?”

 

박선옥은 그녀가 응하는 눈치를 보이자 대뜸 말했다.

 

 “내일 나하구 월미도에나 놀러가지 머.”

 

 “내일 당장?”

 

 “왜 지산이 땜에? 우리 집에 맡겨두고 기차편으루 휭하니 다녀와요.”

 

신금이는 시아버지가 출근하자마자 박선옥이네 떡집으로 지산이를 데리고 갔고, 그 길로 인천 가는 기차를 타러 역으로 갔다. 영등포에서 기차로 사십 분이어서 두 사람은 오전 열 시 조금 지나서 하인천역에 도착했다. 박선옥은 야체이카 역할을 한지 수년이 되어서 노련했다. 도심지에서 만국공원으로 올라가 사방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바위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그것은 그들에게 미행이 붙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두어 시간의 소풍 끝에 뒤에 꼬리가 붙지 않았음을 완전히 확인하고 나서 박선옥은 신금이를 데리고 공원에서 내려가 중국거리 구역으로 갔다. 그녀는 간판을 몇 번씩 확인하고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이층의 구석방으로 신금이를 데려갔다. 두 여자가 앉아서 차를 마시며 음식을 주문하려는데 이철이가 불쑥 방문을 밀고 들어섰다. 그는 국방색 작업복에 작업모까지 깊숙이 눌러쓰고 있어서 어느 공장의 기술자나 되는 것처럼 보였다.

 

 “형수!”

 

그가 외마디로 중얼거렸고 신금이는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나 보였다. 박선옥이 일어서며 말했다.

 

 “두 분 얘기 나누세요. 저는 먼저 출발할게요.”

 

 “아니, 점심이라두 먹구 가지.”

 

신금이가 말했지만 박선옥은 대답도 없이 방금 들어선 이철의 등 뒤로 사라져버렸다. 신금이와 이철은 우동을 시켜놓고 말없이 앉아 있었다. 종업원이 음식을 놓고 나가자 그제야 형수가 먼저 시동생에게 물었다.

 

 “안착을 하셨다면서 또 무슨 일이 생겼어요?”

 

 “제가 출장을 가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어디로요?”

 

이철이 잠깐 망설였다가 대답했다.

 

 “국경이오. 신의주까지 어떻게 안 될까요?”

 

신금이는 남편을 떠올렸고 완강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서방님 부부가 모두 활동가였다는 걸 당국에서 알구 있어요. 그리고 지금 수배자나 마찬가지잖아요?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은 야마시타가 보낸 형사가 집에 와서는 행방을 묻고 가요. 지금 출장 간다는 건 지산이 아부지에게 부탁해 보려는 거 아녜요?”

 

이철은 간곡하게 말했다.

 

 “형수님과 형에게, 식구들 모두에게 제가 폐를 끼치고 있다는 건, 저를 아는 모든 사람들도 알구 있어요. 그래서 일철이 형이 특수한 직업을 갖고 있고 내가 그 아우라는 것도 다 알고들 있지요. 평생에 한번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럼 어떤 부탁이에요? 기차에 태워 달라는 거예요?”

 

 “신의주까지 가서 누군가를 안전하게 데려오는 일입니다.”

 

신금이는 대번에 두 눈이 젖어 버렸다.

 

 “그런 위험한 일에 지산이 아부지를 이용해서는 안 돼요!”

 

그때에 이철이 의자에서 비켜서더니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보였다.

 

 “형수, 그리고 형님께 제발 부탁드립니다. 도와주십시오.”

 

신금이는 놀라서 시동생에게 말했다.

 

 “어서 일어나 앉으세요. 지산이 아부지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얘기나 들어볼게요.”

 

이철은 얘기하기 시작했다. 류재익과 당재건파의 다수 조직원이 검거된 뒤에 남은 사람들과 국제당과 선이 닿았던 경성 코뮤니스트 그룹과 투옥되었던 지도적 인물들이 통합을 위하여 전국적인 연결을 시작하고 있다는 것, 그 중에 조직적 영향력을 가진 인사가 국내에 들어와 앞으로 지도적 역할을 해야 할 박 아무개 동지와 회합을 가진다는 내용이었다. 이철은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하고는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저는 다 말해버렸습니다. 가족으로서 신뢰하지 않는다면 발설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형수와 형이 돕지 않겠다면 이는 없었던 얘기가 되고 말 겁니다.”

 

신금이는 식어버린 우동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집에 가서 의논해 보겠어요. 언제 어떻게 특급열차에 타서 형님을 만날 건지 먼저 알려 주셔야지요.”

 

이철이 말했다. 지정하는 날짜에 기차를 타겠다. 다만 승차 역은 경성 지역이 아니라 개성에서 타려고 한다. 신의주에서 돌아올 때에도 하차 역은 개성이 될 것이다. 앞으로 연락은 박선옥이 해줄 것이니 형수는 더 이상 수고하지 않아도 된다. 신금이는 용건이 끝나자 돌돌 말아놓은 십 원짜리 열 장을 시동생에게 내밀었다.

 

 “지난번 집 떠나실 때 많이 드리지 못해 마음에 걸렸어요.”

 

이철은 거절하지 않고 아무 말 없이 형수가 준 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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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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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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