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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66화 : 오체투지 출정식이 시작되었다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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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체투지란 원래 불교 쪽에서 시작했던 형식인데 불자가 한없이 스스로를 낮추고 불법 아래 귀의한다는 적극적 표현을 신체로 나타내는 행동이었다. 이는 또한 치안당국에는 폭력적이지 않으며 상대방의 폭력까지도 무저항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동작이기도 했다. (2019.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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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지부장님 오늘은 우리가 왔어요.”

 

쉼터의 총무를 맡은 여성 노동자가 입가에 손나발을 만들어 위를 향하여 외쳤다. 진오도 마주 소리친다.

 “예 어제 전해 들었습니다.”

 

 “식사 올라가요.”

 

그는 도르래에 걸린 밧줄을 풀어 내렸다. 아래에서 배낭을 밧줄에 묶고는 두 번 튕겼다. 그는 배낭 속에서 보온 도시락과 보온병에 담긴 국과 반찬을 꺼냈다. 어제 저녁에 받아 올린 빈 그릇들을 챙겨서 아래로 내려 보내는데 쉼터 총무가 외쳤다.

 

 “오늘 삼백일 특식이에요. 힘내세요!”

 

뜨거운 소고기 무국과 촉촉하게 구운 불고기에 전에 나물과 김치 등속으로 무슨 자신의 생일이나 명절 상을 받은 것 같았다. 담장 너머 굴뚝이 올려다 뵈는 공터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주최 측은 그곳에 행사본부로 쓸 대형천막을 쳤다. 정문은 출입금지가 되어 있고 안쪽의 굴뚝 바로 밑에는 행사 때마다 언제나 그랬듯이 경찰 병력이 대기 중이었다. 오히려 반대편 담장 너머 공터에서는 굴뚝이 더욱 가깝게 올려다 보이고 농성자 이진오와 의사소통하기도 편리했다. 경찰에서는 담장 밖의 일에는 간섭하지 않았다. 당국에서는 노사간의 일에는 중립을 지키고 관여하지 않으면서 집단행동이나 폭력사태 등 치안이 불안해진다고 여겨지면 농성장을 분쇄할 것이다. 수년 전에 회사건물 옥상에서 농성하던 자동차회사 노조를 병력 투입으로 가차없이 진압해버린 일이나 용산에서 철거민과 세입자들의 집단 농성이 있었을 때에는 마치 전쟁 같은 진압작전 끝에 인명이 여럿 희생되기도 했었다. 따라서 일인시위나 노동자의 단독농성은 무책임 무개입을 원칙으로 내세우면서 방임되었다.

 

시민단체와 금속노조의 지원 팀들이 속속 모여들어 오백여 명의 군중을 이루었다. 정각 여덟 시에 삼백일 농성투쟁 기념식과 청와대로 가는 오체투지 출정식이 시작되었다. 각 노조 지부에서 나온 노동자들과 시민단체의 회원들 중에 백여 명이 지원하여 그들은 모두 노조 문화부에서 지원받은 흰 바지저고리에 머리에는 구호가 적힌 머리띠를 두르고 행진에 도보로 참여하는 사람들은 플래카드나 피켓을 들었다. 그들은 사회자의 제의에 따라서 몸을 돌려 굴뚝을 향하여 외쳤다.

 

 “이진오, 이진오, 이진오, 사랑해요! 힘내요!”

 

 “먹튀 자본은 해고를 철회하고 노조를 승계하고 공장을 가동하라!”

 

 “투쟁, 투쟁, 계속 투쟁!”

 

먼저 성명서가 낭독되었다. 핸드스피커에서는 뜨거운 음성이 흘러나와 굴뚝 위에서도 곁에서 외치는 것처럼 생생하게 들려왔다.
 
지난해 5월 27일 시작된 이진오 동지의 굴뚝농성이 오늘로 300일을 맞습니다.

 

청춘의 피땀으로 일군 공장, 5년의 폐업 반대투쟁 끝에 되찾은 공장을 먹튀자본에게 그냥 내어줄 수 없는 소수의 노동자들이 남아서 2년을 더 싸웠습니다. 꿈쩍도 않는 자본에 맞서 싸움의 활로를 열기 위해 선택한 극한투쟁의 날들이 마치 일상처럼 흐르고 사계절을 돌아 다시 봄, 그리고 300일을 맞습니다.

 

마지막 투쟁을 선택한 노동자들이 지쳐 나가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자본은 이제 일방적으로 공장을 철거하겠다고 달려듭니다. 돈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은 자본에게 안 되는 것도 있다는 것을 보여줍시다.

 

늘 함께 할 수는 없지만, 정말 힘을 모아야 할 때를 지나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노동자의 삶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 더는 외롭게 고립되지 않도록 한양중공업 굴뚝농성을 전 사회에 알리고 연대를 호소합시다.

 

출정식은 계속되었다. 시민단체 대표의 호소문 낭독과 연대에 동참한 사회단체와 개인들의 소감이 이어졌다. 오체투지 시위는 일단 시청 앞까지는 도보로 행진하고 거기서부터 청와대까지 절하고 걷기가 시작될 예정이었다. 오체투지란 원래 불교 쪽에서 시작했던 형식인데 불자가 한없이 스스로를 낮추고 불법 아래 귀의한다는 적극적 표현을 신체로 나타내는 행동이었다. 이는 또한 치안당국에는 폭력적이지 않으며 상대방의 폭력까지도 무저항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동작이기도 했다. 지금은 절집의 큰 행사에서나 시행되는 예식이건만 티베트에서는 인민들 사이에 일상적인 기도 방식이었다. 합장하고 몇 걸음 걷고 북장단에 따라서 허리를 곧추 펴고 꿇어앉는다. 꿇어앉은 뒤에 그대로 상체를 숙이며 두 팔을 뻗어 땅에 대고 두 다리도 뒤로 죽 뻗어 몸을 완전히 땅에 밀착시킨다. 그리고 머리를 숙여 이마를 땅에 댄다. 원래 부처에게 절할 때에 그의 발에 이마를 대라는 것이지만 대지와 합치한다는 모양이기도 하다. 이마와 양쪽 팔과 양쪽 무릎이 땅바닥에 닿아야 오체투지가 된다. 엎드려 절하면서 부처님의 발을 받드는 시늉으로 손바닥을 위로 하여 귀밑까지 들어올린다. 이는 부처님의 발을 조심스레 올려서 자신의 머리를 부처님의 발아래 둔다는 표현이다. 일어날 때에는 한 손바닥씩 차례로 짚고 상체를 일으키면서 동시에 두 발을 잡아당겨 꿇어앉은 자세로 되돌아간다. 합장을 하고 나서 발뒤꿈치를 붙이고 손바닥을 땅에 대고 머리를 앞으로 내밀며 몸의 탄력으로 가볍게 일어선다. 조류가 걷는 모습을 보면 목을 앞으로 조금씩 움직여 그 탄력을 이용해서 사뿐사뿐 몸을 움직이는 것과도 비슷하다. 마음을 비우고 간절한 소망을 기원한다. 


그들은 일단 출발점에서 한길로 나가기 전까지의 짧은 구간을 몸을 땅바닥에 던지며 출정하고 천천히 도보로 시청 앞까지 나아갈 것이다. 시민사회단체에서 참가한 스님 한 분이 나와서 오체투지의 합장에서 꿇어앉기 접족례 일어나기 서기의 순서대로 동작을 해 보이며 참가자들에게 시범을 보이고 동작을 몇 번 실습하고는 출정했다. 그들이 절하고 온몸을 던지고 일어섰다가 엎드렸다가를 되풀이하는 동안 뒤를 따르는 시위 참가자들 중에 몇몇이 북을 울려 장단을 맞춰 주었다.

 

이제 굴뚝에서는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북 소리는 차츰 멀어지면서도 한참이나 들려왔다. 모두들 떠나고 본부 천막에는 십여 명이 남아서 제각기 맡은 일을 해내고 있었다. 스피커에서는 녹음된 구호와 투쟁가가 연속으로 흘러나왔다. 아홉 시 정각에 동갑내기인 김형이 배낭을 지고 시민단체의 변호사 의사와 함께 정문을 통과하여 굴뚝 아래 다가왔다. 그들은 정문 경비실에서 몸수색과 검문을 받았을 터인데도 굴뚝 아래 이르러 다시 경찰의 짐 검색을 받았다. 의경 두 사람이 동행하는 가운데 김형과 변호사 의사 등 다섯 사람은 굴뚝 주위를 감돌아 오르는 비좁은 나선형 계단을 일 열로 늘어서서 올라왔다. 굴뚝 바로 아래 십여 미터는 아크릴 안전벽을 씌운 철제 사다리가 있었다. 


굴뚝에 올랐던 초창기에 진오가 밑 부분은 나사를 헐겁게 해놓고 윗부분은 아예 나사들을 뽑은 다음 사다리를 앞으로 젖혀 아크릴 방벽에 붙여 버려서 누구도 올라오고 내려가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았었다. 당국을 믿을 수 없으니 상황 변화에 따라 언제 진압하러 올라올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제까지 별일이 없는 걸 보면 아마도 당국에서는 방치 방관하려는 정책을 정한 것으로 보였다. 우선 저들이 올라오려면 통로를 회복해 놓아야 했다. 그는 보관해 두었던 사다리 윗부분의 나사와 멍키스패너를 쌕에 넣어 보조 밧줄에 묶어서 아래로 늘어뜨렸다. 김형이 줄을 잡아채어 쌕을 받았다. 의경을 데리고 오른 경사가 다급하게 물었다.

 

 “뭐요, 그게 뭡니까?”

 

김형은 쌕을 벌려 그의 가슴팍에 들이대며 말했다.

 

 “보슈, 멍키하구 볼트요. 저 사다리를 원상 복구해야 사람이 올라가지 않겠소?”

 

그는 말없이 물러났고 김형이 이진오에게 외쳤다.

 

 “위에서 당겨 줘!”

 

진오가 바깥쪽으로 밀어내어 아크릴 방벽에 붙어있던 사다리를 앞으로 당겼다. 뻑뻑했지만 힘주어 당기자 사다리가 굴뚝에 붙었다. 김형이 맨 아래쪽 계단을 딛고 오르면서 느슨하게 뽑아두었던 나사를 멍키로 조여 박기 시작했다. 위로 오르면서 나사가 뽑힌 곳은 보관해 두었던 것을 제 구멍에 다시 박고 조였다. 김형이 마지막 나사를 박고 굴뚝 테라스 난간을 넘자 진오가 손을 뻗어 앞으로 끌어당겨 주었다. 그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니건만 저절로 감정이 일어나서 서로를 끌어안았다.

 

 “고생 많았어.”

 

오히려 진오는 무덤덤한 표정인데 김형이 눈물을 손가락으로 찍어냈다.

 

 “나야 뭘…… 밑에서 고생들 많았지.”

 

김형이 아래쪽에 기다리는 사람들을 향하여 외쳤다.

 

 “천천히 올라오세요.”

 

안전을 위해서 한 사람씩 차례로 올라오도록 일렀다. 의사가 먼저 올라왔고 변호사가 나중에 올라왔다. 경찰 두 명은 사다리 아래에서 기다리고 서있었다. 허용된 면담 시간은 삼십 분이었다. 의사는 지고 온 배낭에서 혈압측정기며 청진기와 주사기 등속을 꺼냈다. 먼저 혈압을 재고 청진기로 가슴과 등을 진찰하고 주사기로는 소량의 혈액을 채취했다. 그는 진오의 안구를 살피고 입을 벌려 혀를 이리저리 뒤적였다. 혈압은 정상보다 좀 낮고 몸에 별 이상은 없어 보이지만 동상이 몇 군데 보이고 피 검사 결과는 며칠 지난 뒤에 나올 거라고 말했다. 그는 진오에게 몇 가지 동작을 해보라고 하고는 지켜보았다.

 

 “전체적으로 몸이 많이 쇠약해져 있는 게 사실입니다. 젊은이도 아닌데 이렇게 노숙하면서 일 년 가까이 지냈으니까요.”

 

 “운동은 열심히 했거든요. 이거 보세요.”

 

하면서 진오는 팔을 걷고 몇 번 구부려 알통을 보여준다. 김형이 웃자 긴장하고 있던 두 사람도 따라서 웃었다.

 

 “근육이 빠지지 않았다는 건 좋은 징조입니다.”

 

변호사는 가져온 소형 카메라로 이러한 광경들을 동영상으로 찍고 있었다. 그는 카메라에 눈을 댄 채로 진오에게 말했다.

 

 “살고 있는 이곳을 좀 설명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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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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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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