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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65화 : 진오는 꿈, 하면서 고개를 든다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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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지쳤다는 생각도 없이 밥 먹고 일하고 잠자고 살아가면서 분노가 풍선처럼 가득 차 있다가 바늘 끝만 한 계기라도 생기면 폭발해 버리는 거지. (2019.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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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도망 다니던 시절에 건강이 안 좋았던 지숙은 안정을 하고 싶어서 정자 언니를 무작정 찾아갔다. 정자 언니는 기적적으로 예전 그 공장에 여전히 다니고 있었다. 도시 외곽에서 망하지는 않지만 발전은 정체된 채 하청 일을 계속하는 작은 업체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정자 언니는 고향 물안골의 같은 동네 사람으로 그녀가 열다섯 살에 집을 뛰쳐나와 찾아갔을 때에도 부천 그 동네에 살았다. 그녀는 지숙이 보다 다섯 살 위였고 누구든 도시에 가려면 부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고 오빠가 택시 운전을 하며 살고 있었다. 처음에는 오빠 집에서 있다가 직장이 정해지면서 쪽방을 얻어 나왔다. 정자 언니는 바지런하고 손재주가 많아서 시다에서 보조까지 얼른 떼고 미싱사가 되었다. 지숙이 찾아가자 언니는 자기가 처음 도시로 올라왔을 때가 생각난다며 함께 있자고 선선히 받아 주었다. 지숙은 신문배달을 하면서 낮에는 작은 공사장에 가서 잔심부름을 했고 봉제공장에 시다로 일을 얻었다. 정자 언니가 있어서 지숙은 서울 근교에서 노동자가 될 수 있었다. 지숙은 다시 버스 안내양을 했지만 그런 일로는 제대로 먹고 살 수가 없다는 걸 알았다. 용접기능사 학원에 다니고 현장 실습을 하고 시험에 합격한 것이 스물한 살이었다. 서울에 올라온 지 육 년 만의 작은 성공이었다.

 

부천을 떠나게 된 것은 그녀가 한성중공업에 취직을 하게 되면서였다. 스물여섯에 노조의 일원이 되면서 해고당했고 다른 하청 공장을 전전하며 수배 당했을 때에는 삼십 대 중반이 넘었다. 그녀는 설마 하면서 정자 언니에게 연락을 해보았고 놀랍게도 사십 대의 언니가 기적처럼 망하지 않은 부천의 그 봉제공장에서 여전히 미싱사로 일하고 있었다. 사장 겸 공장장이며 반장인 마음 좋은 미싱사 출신의 오십 대 남자는 정자 언니 같은 숙련공이 자기의 동업자나 마찬가지라고 대놓고 얘기했다. 언니는 같은 또래의 노동자와 만나 결혼했다. 대개 여공들은 큰 욕심 내지 않고 예전 일을 하면서 나이 들어가지만 그녀의 남편을 비롯해서 남성 노동자들은 기술자가 아니면 경공업 공장의 반복되는 단순작업을 지겨워했다. 그러나 공장을 그만두고 나와서 할 일이란 배워보지 않은 먹는 장사나 행상이 고작이었고 망해 먹고 신통치 않으면 결국은 공사장이었다. 요즈음은 외국인 노동자가 많아서 노임 좋고 형편도 괜찮은 막노동 일거리를 잡기도 쉽지 않았다. 새벽부터 인력시장에 나가 기다렸다가 뽑히면 일이 생기지만 날마다 그렇지는 않았다.

 

개중에는 지방으로 일터를 찾아 나섰다가 돌아오지 않기도 했다. 정자 언니네가 그러했다. 나중에 남편을 수소문하여 찾아보니 남쪽 어느 섬에서 다른 여성을 만나 수산물 양식하며 살고 있었다. 그 동안 언니는 딸 하나를 낳았고 남은 것은 십오 평짜리 임대아파트뿐이었다. 그 애는 이제 중학생인데 벌써부터 속을 썩였다. 툭하면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공장에 매어있는 정자 언니는 딸을 찾으러 다닐 수도 없었다. 걱정 끝에 김지숙도 나서서 학교에 찾아가 보았지만 무단결석한지 한 달이 넘었다고 했다. 같은 반 아이에게서 그 애가 잘 들른다는 게임방을 알아냈고 게임방 알바 총각이 얘기해준 모텔을 알아냈다. 가출한 남녀 중딩들이 합숙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숙은 고민 끝에 정자 언니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았고 그녀는 거의 눈이 뒤집혔다. 정자 언니도 봉제공장 다니기 전인 앳된 스무 살 시절에 버스 안내양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녀는 거친 운전기사들과 막무가내 승객들 사이에서 저절로 습득한 깡다구가 가슴 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던 터였다. 그런 깡은 지숙에게도 낯선 일이 아니었고 자신에게도 가득 차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숙의 말을 듣자마자 언니가 얼굴에 핏기가 가시면서 부들부들 떨면서 일어났다.

 

 “당장 가서 패 죽이구 와야겠다!”

 

그러고는 집안을 두리번거리더니 씽크대 옆의 쓰레기통 뒤편에 세워둔 야구방망이를 성큼 뽑아들었다. 모녀 둘이서 사니까 방범용이라고 우스개처럼 말하던 언니였다. 모텔의 이름만 말했는데도 정자 언니는 아파트에서 나가자마자 복잡한 길거리를 잰걸음으로 헤치고 나아갔다.

 

 “언니, 어딘 줄 아는 거야? 메이트 모텔이라구.”

 

 “모텔 좋아하네. 그거 아리랑 여관이다.”

 

찾아가 보니 그야말로 삼 층짜리 시멘트 건물에 타일을 덕지덕지 붙인 초라하고 낡은 집이었다. 그녀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수부에 앉아있던 늙수그레한 여인에게 다짜고짜 다그쳤다.

 

 “여기서 미성년자들 장기투숙 받고 있다메? 그 방 어디요?”

 

 “아니 지금 무슨 난리를……”

 

더듬거리는 여인에게 정자 언니는 야구방망이를 시멘트 바닥에 탕탕 두들기며 외쳤다.

 

 “당신이 사장이야? 내가 이 집구석 신고해서 문 닫게 만들기 전에 어서 몇 호실인가 대라구.”

 

아마도 여인은 옛날 말로 조바라는 종업원인 듯 더듬더듬 중얼거렸다.

 

 “난 몰라요. 삼층 끝방인가 그럴 걸.”

 

종업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언니가 거친 숨을 내뿜으며 삼층까지 두어 계단씩 뛰어 올라갔다. 그녀는 어두운 복도를 지나 가르쳐준 맨 끝 방에 이르러 잠시 귀를 기울여 보는가 싶더니 문을 두드렸다. 뒷전에 섰던 지숙의 귀에도 안에서 여럿이 떠드는 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하는 소리가 들리고 말없이 계속 문을 두드리자 문이 빼꼼이 열렸다. 정자 언니가 상대방을 밀치며 문을 열어젖히고 뛰어들었다. 지숙이도 그녀를 따라 안으로 쳐들어갔다. 어린 것들이 여섯 명 있었다. 남자 애가 넷, 여자 애가 둘이 있었고 이불이 사방에 뭉쳐진 방 가운데 맥주병과 소주병이며 과자 부스러기들이 널려 있다. 언니는 야구방망이를 총처럼 앞으로 겨누면서 고함을 질렀다.

 

 “너희들 모두 꿇어앉아!”

 

물론 두 여자 아이 중에 하나는 그녀의 딸이었다. 사내아이들 가운데 어른처럼 장발을 기르고 키가 껑청한 녀석이 항의조로 말했다.

 

 “경찰두 아닌데 왜 이러세요?”

 

정자 언니가 다짜고짜로 그 녀석의 가슴팍을 방망이로 거세게 지르자 아이는 헉 하고 숨이 막히는 시늉을 하면서 주저앉았다.

 

 “이 새끼야, 내가 경찰보다 더 무서운 학부형이다.”

 

 “엄마아 집에 갈게요.”

 

지숙은 정자 언니 딸아이의 손을 잡아 이끌어내며 말했다.

 

 “어서 가자.”

 

 “가긴 어딜 가? 이 새끼들 전부 지구대에 넘겨야지.”

 

지숙이 언니를 달래어 방에서 데리고 나오자마자 그녀는 울음을 터뜨리며 딸의 등짝을 후려패기 시작했다. 지숙은 둘을 뜯어 말리랴 딸을 가로막으랴 애를 쓰면서 거리로 나왔고 집에 돌아오자 정자 언니는 마음을 놓았는지 방성대곡을 했다.

 

 “남편 복 없는 년은 새끼 복두 없다더니, 저런 화냥년을 머하러 학교 보내고 처멕이고 했는지.”

 

그러고는 두리번거리다가 가위를 찾아내어 딸의 머리카락을 썩썩 잘라냈고 아이가 몸부림을 치면 아무데나 두들겨 팼다. 지숙은 아이를 방에 밀어 넣고 이불을 들씌워 주었다.

 

 “그렇게 씩씩하게 잘 살아가던 언니가 이게 웬 난리유?”

 

지숙이 차분하게 갈아 앉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더니 언니가 고함을 질렀다.

 

 “내 앞에서 잘난 척 하지 말어. 큰 직장 들어가서 배지가 부르니까 노조네 운동이네 하구 다니냐? 너 같은 것들 지긋지긋하다. 너희 땜에 우리처럼 못 배우고 열심히 살아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더 힘들어지는 거야. 너 빨갱이지? 괜히 세상 좋아진다구 남들 거짓말루 꾀이지 말구 꺼져. 보기 싫으니까.”

 

언니는 갑자기 생각났는지 주방 구석에 놓여있던 지숙의 못생긴 가방을 던지고 옷걸이에 걸렸던 옷가지를 주섬주섬 걷어서 발치에 팽개쳤다.

 

 “얼른 내 집에서 나가!”
 
지숙은 마음 같아서는 소주라도 몇 병 받아다가 언니와 밤새우며 여러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건만 그 무렵 수배자 생활에 지쳐 있었던 것 같았다고 진오에게 말했다.

 

 “한밤중에 쫓겨나서 어디든 잘 데를 찾아 가면서 나는 눈물도 나지 않더라. 모두들 지쳤다는 생각도 없이 밥 먹고 일하고 잠자고 살아가면서 분노가 풍선처럼 가득 차 있다가 바늘 끝만 한 계기라도 생기면 폭발해 버리는 거지.”

 

지숙이 누나는 진오에게 물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이들이 오히려 우리를 미워하게 될까?”

 

진오는 잠깐 생각해 본다. 글쎄 왜 그러는 건가.

 

 “우리가 그 사람들 가까이 있으니까 그럴 테고, 누나가 싸울 힘이 남아 있는 게 샘이 나서 그러지 않을까?”

 

 “싸울 힘? 나는 정말 언니보다 더 지쳤다. 그렇지만 꿈은 남아 있지.”

 

진오는 꿈, 하면서 고개를 든다. 지숙이 누나는 사라졌다. 먼 동쪽 하늘에 가느다란 빛의 띠가 보였다. 이제 곧 날이 밝을 것이다. 그는 오늘도 팔굽혀 펴기 삼십 번씩 삼 세트를 하고는 다리 굽혀 펴기를 백 번 가까이 실시했다. 뺨에 부딪는 새벽바람이 아직도 차가웠지만 한 겨울과 달리 목덜미와 이마에 땀이 배었다. 일곱 시 오 분에 해가 떴다. 그는 전기면도기로 수염을 밀고 보온용으로 썼던 페트병을 침낭에서 꺼내어 미지근한 물을 플라스틱 작은 대야에 따라놓고 세수를 했다. 손님들이 온다니 덥수룩하고 괴죄죄한 얼굴을 보여서는 안 될 것이다. 후배 동료인 정이 자기 일터로 나가기 전 이른 새벽에 쉼터에 들러 음식을 받아 오게 되어 있었지만, 그날은 행사 준비가 일곱 시에 예정되어 있고 출정식이 여덟 시여서 그 대신 쉼터의 여성 노동자가 아침을 가져오기로 되어 있었다.  

 

가까운 데서 두런두런 사람들의 말하는 소리가 들리고 무엇보다도 자동차의 엔진 소리가 다가온다. 굴뚝 아래 컨테이너 초소를 세우고 교대 근무를 해오던 의경 다섯 명이 뛰어나와 일 열로 섰다. 자동차는 정문을 통과하여 담장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와 굴뚝 아래 와서 멎었고 수십 명의 의경들이 경위의 인솔 아래 버스에서 내려 정렬했다. 오늘의 삼백일 문화제에 대비하려는 모양이다. 일곱 시 이십 분에 배낭을 짊어진 여성 두 사람이 굴뚝 아래 나타났다.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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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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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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