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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 "한국어로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서 쓰는 시"

『오늘부터, 詩作』 출간 기념 강연회 시를 읽고 쓰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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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누군가 설득하고 내가 뭔가를 깨달았다고 쓰는 글이 아닌 것 같아요.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써서 선물하는 게 예술로서의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2019.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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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8일, 마포도서관에서  『오늘부터, 詩作』  출간을 기념해 김승일 작가의 강연회가 열렸다. 김승일은  『오늘부터, 詩作』  을 번역한 역자이자, 2009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으로 등단해 한국 현대 시의 ‘지금’을 알리는 젊은 시인이기도 하다. 60여 명 넘는 사람들이 참여한 가운데 시를 쓰는 방법과 시를 즐기는 감상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부터, 詩作』  은 영국의 계관 시인 테드 휴즈가 평생을 시인으로 살아오면서 글쓰기의 본질을 다룬다. 테드 휴즈는 시와 친해지고 싶은 모두에게 ‘동물 사로잡기’ ‘풍경에 대한 글쓰기’ ‘가족 만나기’ 등 총 9가지 주제를 놓고 실용적인 격려를 건네는 책이다. 해적판으로 한국에 소개된 적은 있지만, 정식 출간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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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의 이야기


김승일 작가는 “현대 시는 옛날에 쓰였던 시보다 훨씬 복잡하고 난해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보기에 지루할 수 있다”며 『오늘부터, 詩作』  에 나온 방법과 함께 자신이 진행했던 시 수업의 방법을 소개했다.


“2012년에  『에듀케이션』  을 내고 처음 했던 수업은 ‘당신 인생의 이야기’라는 제목이었어요. A4용지에 나이만큼 자기 인생 이야기를 쓰는 수업이에요. 13살이라면 13장, 30살은 30장까지 쓰는 거죠. 써온 걸 다 같이 읽어보고 그 다음 주에 반으로 줄입니다. 그 다음 주에는 다시 반으로 줄이고 나중에는 한 문장이 남을 때까지 줄이는 거예요.”


가장 좋은 이야기는 남들은 알지 못하고 자신만 알고 있는 이야기이고,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자신만 알고 있는 이야기이기에 좋은 이야기가 된다. 어떤 사람을 만난 기억이나 여행을 간 이야기 등을 쓰다 보면 생각보다 빨리 자기 나이만큼의 종이를 채우게 된다. 그 이야기를 줄이고 줄이다 보면 좋은 시가 될 수 있다.


“2013년에는 ‘서간체로 시를 써봅시다’라는 수업을 했었어요. 이건 편지로 시를 쓰는 수업이에요.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내는 거죠. 기억을 많이 공유한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는 게 그렇지 않은 것보다 훨씬 좋아요. 시가 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다르게 답하는데요. ‘한국어로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서 쓴다’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어떻게 하면 사랑한다는 말이 아니더라도 내가 널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달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우리가 같이 나누는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채게 된 것 같아요.”


김승일 작가는 자신의 시 「나의 자랑 이랑」을 예로 들었다. 친구에게 같이 있던 어느 날에 관해 그 공간에 무엇이 있었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적어서 선물한 시였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전달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시를 쓸 때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는 ‘누가 읽는가’예요.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시는 쓰이지 않아요. 시는 누군가 설득하고 내가 뭔가를 깨달았다고 쓰는 글이 아닌 것 같아요.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써서 선물하는 게 예술로서의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파고들어가면 복잡한 게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런 것 같아요.”


시를 쓴다면 어렵게 느껴지지만, 편지를 쓴다고 하면 상대적으로 쉽다. 서간체로 어떤 사람에게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봤고 그때 자신이 어땠는지 적어서 주기만 해도 시가 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다만 싸웠던 사람에게 편지를 쓰지는 마세요. 왜냐하면 그 사람과 화해하겠다는 목적이 생겨버려요. 목적을 가지지 않고 쓰는 게 중요해요. 고백한다거나 상대방의 환심을 사기 위해 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언제 어디서 어땠을 때 얼마나 깊숙하고 생생하게 기억이 남아 있는지, 그리고 이 기억을 종이에 봉인해서 썼다가 나중에 다시 읽어보면서 우리가 다시 그 장소로 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한 게 시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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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많이 쓰기


테드 휴즈가 책에서 밝힌 시를 쓰는 방법의 하나는 ‘빨리 대사를 포착하기’였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하면 가져오려는 대상이 흐려진다. 정해진 시간 안에 빨리 써서 쓰면 가져오려는 대상이 생소하게 느껴지는 효과가 있다.


“빨리, 많이 쓰는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다들 잘 못 썼어요. 그만큼 우리가 생각이 많다는 소리죠. 단순히 너무 생각이 많아서도 있지만, 김소월이 말했던 사랑이나 셰익스피어가 말한 사랑과 지금 사랑이 달라져서인 것도 있어요. 지금은 누굴 좋아한다는 게 너무 복잡해서 사랑한다고 말하기 위해 많은 말이 필요할 때가 있어요. 물론 아주 짧은 장면으로 보여줄 수도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전제된 장면들이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생각을 버리고 훌훌 털기가 어려워요. 그렇지만 시 쓰기가 너무 괴롭고 고통스러울 때 타이머를 맞춰두고 10분 만에 몸을 풀듯이 뭔가 써보면 생각보다 재미있어요. 종종 몸이 굳었다는 생각이 들 때 빨리, 많이 써보면 좋을 것 같아요.”


다음으로 김승일 작가가 했던 수업은 ‘서양사극의 등장인물이 되어보자’였다. 수강생들이 모이는 곳이 러시아의 한 마을이라고 생각하고, 수강생들은 러시아의 마을에 있는 어떤 사람들이 되어 본다.


“우리가 가장 헷갈리는 것 중 하나가, 시라는 건 나 자신이 쓰는 거고 화자가 나라는 생각인데요. 작가와 화자는 매우 붙어있지만, 글을 쓸 때의 나와 생활할 때 내가 완전히 같을 순 없죠. 글 쓴다는 게 정치와는 다르거든요. 말을 바꿀 수 있어요. (웃음) 문학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번복이에요. 하나를 묘사하더라도 우리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묘사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문학에서 말을 계속 번복하고, 그 말을 전달하는 사람도 계속해서 달라져요. 지금 누가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질문하는 것만으로도 시가 한결 쉬워져요. 하고 싶은 말이 더 앞서고, 누가 말하는지 계속 잊어버릴 때 현학적이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되기 쉬워요. 그러니 언제나 내가 누구로서 말하고 있는지 연습해보는 거죠.”


일례로 김승일 작가의 수업에서는 실제 이름 대신 ‘드미트리 씨’나 ‘도스토옙스키 씨’ 등의 호칭을 쓰면서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사는 것처럼 수업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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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작은 사람이 되어보기


다음으로 김승일 작가는 김행숙 시인의 「더 작은 사람」 「유리창에의 매혹」 「미완성 교향곡」을 예로 들며 시를 읽고 감상하는 방법에 관해 말했다.


“시를 읽으면서 가장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게 무슨 의미고 어떤 상징인지를 처음부터 파헤치려는 읽기예요. 작가가 주려는 체험을 어떻게 겪을까 생각하면서 읽는 게 먼저거든요. 겪는다는 건 느낌을 겪는 게 아니에요. 「더 작은 사람」에서는, 작가가 말한 대로 작아져 봤더니 기분이 어땠다고 말하는 거예요. 이 시를 읽는 방법은 작아지는 겁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작아지는 체험도 하지만 사라지는 체험도 해요. 마치 죽음을 체험하는 것과 같죠. 나는 점점 더 작아지고 있어요. 그리고 점점 사라지고 있고요. 아이들이 사라지는 놀이를 하는 걸 보면서 나는 끝까지 다 듣지 못하죠.”

 

작아지기 시작할 때까지만 작아지려고 해요. 나는 작은 사람, 더 작은 사람, 개, 고양이, 한 개의 손가락, 성냥개비,

 

나는 한 방향을 고집스럽게 바라봤어요. 찡그린 표정은 내 모든 주름에 스며 있어요. 인상적인 것, 빛, 고통,

 

처음으로 숨을 쉰 이후로 계속해서 숨을 쉬게 됐어요. 점점 빠르게. 더욱 거칠게. 시작은 그런 것이죠. 엄마, 하고 첫 발음으로 불러 봤댔자 소용없어요. 아버지라면 오 마이 갓!

 

작아지기 시작하면 시작된 거죠. 나는 더 작은 사람, 더 작은 개, 더 작은 도마뱀, 작은 목소리, 파동의 간섭, 만져지지 않는 하늘,

 

그리고 파동의 굴절, 만져지는 빗방울, 빗방울, 더 굵은 빗방울, 나는 돌풍과 함께 지나가는 소나기예요. 세계처럼 우산이 뒤집어진 작은 사람들, 유리창에 잠시 달라붙어서 나는 더 작은 동그라미들,

 

유리창 안쪽에서는 세 명의 아이들이 가위, 바위, 보, 가위, 바위……. 규칙과 역할을 정하고 있어요. 한 아이는 손바닥을 쫙 펼치고 사라진 동전에 대해 신비로운 거짓말을 늘어놓고
나는 끝까지 다 듣지 못했


- 「더 작은 사람」, 김행숙

 

“2016년에는 ‘무섭게 하기’라는 수업을 했어요. 짝을 지어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시로 무섭게 하는 거예요. 하지만 이 수업도 실패했어요. 글로 사람을 무섭게 하기가 정말 힘들거든요.”


이 방법을 쓴 이유는 시를 낯설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단순히 낯설게 보여주려고 하면 가르치는 느낌이 든다.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사실은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있고 어느 날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는 방법으로 옆 사람을 으스스하게 만든다면, 그 시도 하나의 성공이 될 수 있다.

 

 

독자의 물음에 답하다


번역을 위해 영어 공부를 따로 하셨나요?


좋은 질문이에요. 저는 영어를 못 하는 대신 한국어를 잘해요. 번역은 모국어를 더 잘해야 하는 것 같아요. 처음 번역을 의뢰 받았을 때는 책이 두껍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시가 50여 편이 넘게 수록되어 있더라고요. 나중에는 시를 번역하는 게 쓰는 것과 비슷한 에너지를 소모해서, 이 책이 제 마지막 번역서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처음에 왜 시를 쓰게 되셨고, 누구에게 처음으로 보여주셨나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짝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시집을 만들어 줬어요. 사실 시를 쓸 때마다 처음 쓰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쓰거든요. 언제나 어렵고 재밌고 지루한데, 그런 게 좋아요. 처음 시를 쓰려고 했던 이유는 아마도 주위에서 글을 잘 쓴다고 칭찬했기 때문일 거예요. 고등학교를 문예창작과로 갔는데, 학교에서 시를 배웠다기보다  『오늘부터, 詩作』  을 읽으면서 시 연습을 많이 했었어요.


최근 한국 시인의 시는 이미지가 너무 커서 읽어도 세세하게 상황이 느껴지는 게 아니라, 무슨 이야기인지 하나도 모르는 단어의 조합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요즘 시를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예전과 같은 이야기를 하지만, 방식이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같은 이야기를 해도 이 말만 하면 됐는데, 지금은 너무 많은 말이 있어서 말이 더 많이 필요해지다 보니까 시가 자꾸 길어지고 이미지도 많이 나오고요. 영화의 영향도 있는 것 같아요. 문학이 영화를 따라 하면서 이미지를 많이 가져가는 영향이 있어요. 하지만 최근 10년 동안의 시를 보면 그렇게 이미지가 많진 않아요. 이제는 이미지를 통해서 이야기하기보다는 그냥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그냥 하고, 사람들이 겪을 수 없는 체험은 전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이미지가 축소된 경향이 있어요.


시를 쓰고 퇴고를 많이 하시는 편인가요?


예전에는 정말 많이 했어요.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는 압박감이 있었거든요. 지금은 그렇게 많이 하지 않습니다. 계속 퇴고하면 어느 순간 글이 검은색과 흰색으로밖에 보이지 않아요. 거기 갇혀서 제 생각이 경험의 전부가 되는 순간 시가 전달되지 않고 안으로 갇히는 것 같아요. 지금 퇴고를 많이 안 하는 이유는, 저는 이제 관객을 위해 시를 쓰지 않고 친구에게 주려고 시를 쓰고 있기 때문이에요. 만약 퇴고한다면, 무대 위에서 글을 쓰고 있다고 상상하면 좋을 것 같아요. 관객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어딘가 고치고 상상으로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보는 거예요. 못 알아듣는 관객이 많아 보이면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거죠.


 

 

오늘부터, 詩作테드 휴즈 저/김승일 역 | 비아북
평생을 시인으로 살아오면서 터득한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그가 느낀 글쓰기의 본질에 대해 털어 놓고 있다. 테드 휴즈는 시와 친해지고 싶은 모두에게 유쾌하고 진솔하며 실용적인 격려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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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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