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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경 칼럼] 일요일의 서점

왜 서점 일을 하게 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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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중 가장 바쁜 때는 언제인가요. 대답에 조금이라도 어려운 단어가 섞이면 울상을 짓고 말아 나는 되도록 쉬운 표현을 고르려고 노력한다. (2019. 0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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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태풍이 찾아왔다. 어찌나 거세던지 창밖을 건너다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움직이던 것들은 고요해지고 가만한 것들은 살아 움직이는 역설의 시간이 지나고 일요일. 서점 앞이 수북하다. 누가 일부러 모아놓은 듯 쌓여 있는 플라타너스 잎들. 쉬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는데, 저들을 쓸어야겠다는 생각에 하루치 의욕이 차오른다. 태풍이 지나간 일요일 정오 거리의 한적함을 쓸어 담는 비질. 일요일의 서점을 시작하는 일이다.

 

전등을 밝히고 블라인드를 올리고 커피를 내리기. 음악을 켜두고 입간판을 꺼내 세워두기. 매일매일 빠짐없이 반복되는 이런 일들이 일요일에는 다르게 느껴진다. 느리고 느긋하게. 방학 첫날 아침잠 같은 감각으로. 다짐했던 대로 서점 앞을 쓸기 시작한다. 종잇장 같은 잎들이 가벼운 소리를 낸다. 아직 떨어질 때가 아닌 잎들에서 초록색 냄새가 난다. 그럼에도 가을을 생각한다. 곧 낙엽들이 쏟아질 테고 이러한 비질도 일상이 되어 싱거워질 테지만 당장은 내 안의 것들마저 말끔해지는 것만 같다.

 

인근 고등학교 학생 둘이 찾아왔다. 여기에 와서 시를 읽게 되고 쓰게 된 이들이다. 그중 한 학생은 교내 백일장인가 하는 대회에서 상을 받은 모양으로, 그 때문인지 최근 문학 열병을 앓고 있다. 또다른 학생은 시가 연애라는 비밀에 돌입할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의 열쇠라 믿는 것이 분명하다. 썼다며 보여주는 시마다 어쩜 그리 사랑의 언어들로 가득한지. 그나저나 오늘은 어쩐 일이냐 물었더니 공부를 하고 가겠다 한다. 나도 모르게 공부? 하고 되물었다가 그들이 꺼내는 문제집에 머쓱해지고 말았다. 그렇지. 어린 시인들은 확률과 통계를 미적분과 세계사를 공부해야 하는 거니까. 그래서 일요일 오후의 첫머리는 문제집을 풀고 있는 고등학생들의 뒷모습이 되었다.

 

이번에는 초등학생 하나가 씩씩하게 들어와 손에 쥔 종이를 읽는다. 안녕하세요. 저는 H 초등학교 3학년 아무개입니다. 인터뷰를 하고 싶습니다. 응해주시겠어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지만, 서점에는 책과 관련된 모든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 더구나 일요일이라면.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한다. 다시 또박또박 읽어 내려간다. 바쁜 시간에 인터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웃는다. 그건 맨 마지막 대사잖아. 하지만 말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의 질문을 듣는다. 꽤 심오하다. 왜 서점 일을 하게 되었나요. 서점 일을 잘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요. 하루 중 가장 바쁜 때는 언제인가요. 대답에 조금이라도 어려운 단어가 섞이면 울상을 짓고 말아 나는 되도록 쉬운 표현을 고르려고 노력한다. 진지한 표정의 아이는 하나하나 받아 적고, 곁에 앉은 나는 틀린 맞춤법을 하나하나 알려주고. 그렇게 일요일의 오후는 비뚜름하고 귀엽게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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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별난 일은 그것으로 그만인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지만, 조용히 반복되는 중에도 서점의 매일은, 하루는, 미묘하게 다른 일들로 부산하다. 어쩌면 당연하다. 수백 년 전에 쓰인 책과 바로 어제 출간된 책이 나란히 놓여 있다. 유통기한 제로. 그것 스스로 소멸되지 않는 한, 제아무리 철 지난 사유일지라도 책은 썩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러니 그것을 찾는 사람들도 각양각색이다. 유모차를 끌고 온 부부는 아이에게 읽어줄 그림책을 사서 나선다. 만삭의 아내와 그의 곁을 떠나지 않는 남편은 태교에 쓰일 것이 분명한 동시집을 찾는다. 그들이 사는 책은 저자도 내용도 출판사도 모양도 다르지만 사실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연극배우처럼 보이는 근사한 이가 집어든 셰익스피어 희곡집과 대학생처럼 보이는 이가 찾아 달라 하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집이 어찌 같다 할 수 있겠는지. 그렇다고 다르다 여길 수 있겠는가. 유독 다른 사람들이 모이는 일요일 서점 안에서 나의 상념은 밑도 끝도 없어져서 아까의 고등학생들과 아까의 초등학생을 연결하며 결국은 나에게도 닿는다 예까지 오는 것이다.

 

일요일은 평소보다 일찍 문을 닫는다. 간판 불을 끄고 블라인드를 내리고 있는데, 빼꼼 문이 열리더니 중년 여성의 얼굴이 나타난다. 그녀는 닫았어요? 하고 묻는다. 그만 지쳐 돌아가고 싶으나, 야멸차게 안 된다 할 수는 없어서 잠시 시간을 내어준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하는 그녀는 아이의 숙제가 담겨 있을 문제집을 서둘러 골라오다가 새로 나온 소설책 앞에서 잠시 망설인다. 오늘이 일요일이 아니었다면, 지금이 저녁이 아니었다면 그는 그 소설책을 사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두 권의 다른, 다르지 않은 책의 바코드를 찍으며 생각한다.

 

문을 걸어 잠그고 돌아서니 거리엔 아직 빛이 남아 있다. 가위 바위 보를 하며 깡총깡총 뛰어가는 엄마와 딸이 보인다. 노부부가 다정히 팔짱을 끼고 걸어가고 있다. 저녁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성당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검은 등도 보이고 크게 웃으며 남자의 등을 때리는 여자도 있다. 뜬금없이, 오늘도 서점 문 열길 잘했다는 생각을 해본다. “언제가 가장 힘이 드세요?” 아까 아이의 질문 중 하나. 당황해서 글쎄... 하고 말꼬리를 흐리고 말았었다. 사실 별로 힘들지 않아. 힘들기에 이 일은 꽤나 멋지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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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유희경(시인)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예술대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했다. 2007년 신작희곡페스티벌에 「별을 가두다」가,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가 당선되며 극작가와 시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시집으로 『오늘 아침 단어』,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이 있으며 현재 시집 서점 위트 앤 시니컬을 운영하고 있다. 시 동인 ‘작란’의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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