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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38화 : 국제선의 합리적인 결정입니까?
『마터 2-10』 연재
운동이란 어떤 경우에도 문제가 벌어지고 있는 생활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레닌이 독일에서 러시아 혁명을 지도했다고 하여 똑같은 방법을 가져올 수는 없습니다. (2019. 08. 19)
이이철은 활동가 노릇을 하면서 영등포 공장지대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독서회에 이끌어 들이고 가까운 관계가 되도록 애쓰는 동안에 붙임성 있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의 성격이 원래 낙천적이고 외향적인 탓도 있었다.
“저는 성이 이씨입니다. 이동무라구 불러주세요.”
여자는 잠깐 망설였다가 선선히 말했다.
“한이에요.”
그들은 대개 운동 선상에서 만나는 노동자나 대중들에게는 가명을 쓰게 되어 있었다. 이이철은 두어 개의 가명을 가지고 있었고 박철 또는 김영 등이었다. 또한 활동가끼리 현장에서 만날 때에도 통성명은 금지되어 있는 것이 원칙이었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서로에게 부담이기 때문이다. 그들 중 누가 언제 먼저 잡혀가서 모진 고문 끝에 다른 이의 이름을 불게 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주 가까운 동지끼리는 서로의 신념을 믿고 그가 체포 고문을 당하여도 절대로 입을 열지 않으리라는 믿음으로 본명을 말했다. 그런 사이란 같은 조직에서 동일한 임무를 맡게 된 사이를 의미했다. 이이철이 자신의 성을 말하고 여자가 자기 성을 가르쳐 주었다는 것은 이제 같은 일을 수행한다는 아주 작은 신뢰 관계가 싹텄다는 상징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혜화동 전찻길로 나가기 전 길가에서 조금 들어간 골목에 있는 설렁탕집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으며 이철이 말했다.
“이거 머 여성이 오시기엔 좀 그렇습니다.”
한 동무는 말없이 웃기만 했다. 저녁을 먹으면서 이철은 그녀에게 물었다.
“원래 고향이 서울입니까?”
“아뇨, 저 아래 남쪽이예요.”
“그런데 한 동무 말투가 어느 지방인지 통 모르겠네요.”
그녀는 또 배시시 웃고는 말했다.
“사방으로 떠돌아다니며 살아서 그래요. 이동무는 고향이 어딘데요?”
“저는 영등포에서 태어나 한 번도 다른 데로 가본 적이 없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그들은 전차 정류장 앞에서 헤어졌다. 이철은 전차의 차창 앞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걸어가는 한이 안보이게 될 때까지 돌아보았다. 지난번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헤어졌는데 오늘은 왠지 그녀가 아무 일 없이 귀가할 수 있을까 염려하는 마음이 들었다.
소나무 숲 속으로 들어간 김형신과 류재익은 잠깐 침묵하고 주위에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기다렸다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두 사람은 소나무 숲 속 바위에 올라앉아 두 번째의 회합을 시작했다.
“지난번에 류 동무가 국제노선에 따르겠다고 하여 얼마나 마음이 놓였는지 모르겠소.”
김형신이 자못 느긋하게 입을 열고는 다시 부드럽지만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동무에 대한 결정이 내려졌소. 이곳을 떠나 함흥에 가서 활동해 주시오.”
류재익은 지난번과는 좀 더 냉정한 태도로 그에게 되물었다.
“그것이 국제선의 합리적인 결정입니까? 함흥에 가는 것도 좋지만 새로이 거처를 옮기면 경찰에서 주목할 우려가 있습니다. 저는 그쪽의 사정을 잘 알지도 못합니다. 그곳은 공업화가 일찍 진행되어 원산총파업 이후 사상적으로나 조직적으로 매우 진보된 곳입니다. 태평양노동조합의 기관지는 경성까지 반입되어 노동자들에게 큰 격려를 주고 있습니다. 그런 훌륭한 일꾼들이 많은 곳이니 그쪽의 노선도 이미 정해져 있을 것이고 제가 갈 필요도 없겠지요.”
“함남 지방의 지도부가 대거 검거되어 장기형을 받았으니 공백이 생겼어요. 이 동무가 파견 된다면 큰 도움이 될 거요.”
류재익은 물러서지 않고 말했다.
“제가 만일 꼭 가야만 한다면 지침을 주시지요.”
“지침? 무슨 지침이오?”
“국제당으로서 현실적인 지침을 가지고 갈 필요가 있겠지요. 확실한 방향의 노선이 정립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그들을 지도할 수 있습니까?”
국제선의 권위를 통해 동지를 획득해 왔던 김형신으로서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주체적인 운동 방침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그는 결국 해외의 권위를 빌릴 수밖에 없었으므로 이렇게 말했다.
“상해 국제당의 조선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신문이 있습니다. 이 신문을 배포하여 독자를 모으고 이 독자반을 그루빠로 묶어세워 운동을 해야 합니다.”
김형신이 말하는 신문이란 박헌영 김단야 등이 상해에서 발간한 ‘코뮤니스트’를 비롯한 팸플릿과 격문 삐라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류재익은 다시 그에게 물었다.
“이 신문은 정치신문인가요, 이론적인 잡지인가요?”
“정치적이고 이론적인 신문이오.”
“어느 쪽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결함을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정치신문이라면 조선 국내 대중의 정치적 요구를 시시각각으로 다루어야 하는데요. 상해에서 발행된다면 이중삼중의 감시망을 뚫고 들어온다 하여도 이삼 개월이 걸려 조선에 도착할 때는 이미 구문이 되고 말겠지요. 또한 이론적인 잡지라면 이를 중심으로 하여 만든 독자 그룹이 혁명적인 당의 기초로 될 수밖에 없으므로, 그것은 상해에서 발행하는 출판물에 의하여 조선독자와 활동가를 모집한다는 비현실적인 방침입니다.”
류재익은 김형신을 공격하지 않고 침착하게 설득했다.
“따라서 이것만을 가지고 운동방침이라고 하여 저에게 활동 지역을 바꾸라는 국제선의 지시를 저는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예컨대 각 파벌이면 파벌에 대한 방침이라든가, 조직문제라든가, 기술 선택의 문제라든가, 중심적인 정치적 방침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십시오.”
이 질문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당 재건운동에서 흔히 나타나고 있는 해외 중심주의와 국제노선에 대한 무비판적이고 맹목적인 추종, 자주적인 운동 방침이 없이 국제선의 권위를 빌려 활동가들 앞에 군림하려는 태도, 대중적인 기반 없이 소수의 운동자들에 의해 위로부터 조직을 결성하려는 방식 등에 대한 반성과 비판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대답이 궁색해진 김형신은 우물쭈물 자신의 제안을 정리했다.
“어찌됐든 이 문제는 나중에 기관지 출판물이 나온 뒤에 다시 토론하기로 합시다.”
류재익도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해두기 위하여 말했다.
“그런 이유만으로 이곳의 동지들을 두고 함남으로 가는 것을 급히 서두를 필요는 없겠습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에 설령 함남 지역으로 간다 하더라도 국제선의 지령이 아니라, 운동의 요구와 필요에 따라 갈 것임을 양해하여 주십시오.”
그들의 세 번째 만남은 그 다음 달인 칠월 초순에 이루어졌다. 몇 번의 과정을 통하여 보안이 담보 되었으므로 이번 약속 장소는 파고다 공원 부근이었다. 물론 이때에 레포는 가지 않기로 했다. 만나기로 한 날짜만 정해두었다가 연락 레포가 당일 전에 먼저 만나 정확한 시간과 장소를 서로 확인했던 것이다.
이철과 한여옥은 연락의 시초가 되었던 영등포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이철이 방우창을 통하여 통보했고 곧 그녀가 오겠다는 소식이 왔다. 그들은 방하곶 아래편 귀신바위 부근 초입에서 만나기로 했다. 거기서 샛강을 사이에 두고 왼편은 제방이 시작되는 곳이고 오른쪽 비탈을 내려가면 여의도의 미루나무 숲이었다. 이철이 먼저 와 있었는데 아마도 그녀는 노량진 전차 종점에서 내려 걸어올 것이다. 그는 길 옆 바위에 앉아 언덕 아래 대방동 방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행인이 두엇 보였는데 그들 뒤로 여성이 보였다. 멀리서 보기에도 그녀가 분명했다. 오늘은 몽당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은 평범한 서민 아낙의 차림새였다.
그는 일부러 그녀가 보이도록 길 가운데 잠시 섰다가 가까운 거리에 이르자 앞서서 비탈길을 내려갔다. 힐끗 돌아보니 그녀도 비탈길을 내려왔다. 그는 징검다리를 건너 미루나무 숲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제 그곳에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그녀는 걸어오느라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손수건으로 얼굴과 목을 훔치면서 한여옥이 가까이 왔다. 그들은 제법 시원하게 불어오는 강바람을 맞으며 숲 사이의 모래땅 오솔길을 걸었다.
“날짜는 내일로 두 분이 약속했구요. 장소 시간은 파고다공원 십층 탑 부근 저녁 일곱시입니다.”
이철이 가장 중요한 것부터 말했고 한은 되풀이 확인했다.
“네, 내일 저녁 일곱 시에 파고다공원 십층 탑 부근에서.”
하고는 한이 이철에게 물었다.
“그 분은 정말 분파주의자인가요?”
이철이 걸음을 멈추었다.
“아, 그런 말을 들으셨어요?”
“제가 알고 있는 사람들 몇이 그러더군요.”
이철은 대강 짐작은 하고 있었다. 진작부터 국제선과 연결하여 활동한다는 이들을 공장의 현장 연락 중에 만났던 적이 있었고, 작년 파업 시즌 동안에는 경성 어느 현장에서 파업을 논의하는 노동자들을 앞에 두고 양측이 논쟁을 벌인 적도 있었던 것이다.
“국제당의 지도를 받겠다고 이미 우리 의견을 밝혔습니다. 그렇지만 운동이란 어떤 경우에도 문제가 벌어지고 있는 생활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레닌이 독일에서 러시아 혁명을 지도했다고 하여 똑같은 방법을 가져올 수는 없습니다. 국제당의 지침은 큰 선에서 이를테면 아래로부터 대중을 조직하여 투쟁을 통해서 올라온 이들이 당을 조직해야 한다거나 그런 원칙을 제시해 주면 됩니다.”
“그렇게 실천하고 있습니까?”
한이 다시 물었고 이철은 확신을 가지고 대답했다.
“우리는 어느 그룹이든 함께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가장 시급한 당면 목표이기도 하구요.”
한이 어쩐지 망설이는듯하다가 말했다.
“저두 참여시켜 주세요.”
“예?”
“저는 공장에 들어갔다가 몇 달 전에 나왔습니다. 저는 처음 독서회에서 시작했다가 취업을 했는데요, 날마다 문건을 배포하는 일만 하러 다녔습니다. 그런데 문건자체도 어쩐지 수준이……”
“수준이라뇨?”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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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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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100년의 역사를 꿰뚫는 방대하고 강렬한 서사의 힘 지금의 우리는, 끊임없이 싸워온 우리들의 결과다 어쨌든 세상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아져간다 세계적인 거장 황석영이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로 한반도 백년의 역사를 꿰뚫는다. 철도원 가족을 둘러싼 방대한 서사를 통해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전후 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