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조영주의 적당히 산다
사람 부르면 다 돈이야. 혼자 고치면 천 원이야!
『안 부르고 혼자 고침』
당시의 내가 궁금해하던 모든 것이 적혀있었다. 간단하게는 전구를 가는 방법부터 시작해서, 현관문 도어락이 먹통이 되었을 때 대처법, 겨울철 세탁기 동파 예방 등등, 이 책 한 권만 있으면 뭔들 다 혼자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2019. 07. 31)
『안 부르고 혼자 고침』 작가 이보현은 혼자살기의 프로다. 전북 완주읍에 있는 아파트에서 ‘혼자’ 산다. 작가는 그곳에서 완주숙녀회라는 느슨한 모임에 속해 유유한 귀촌독립여성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작년 6월, 지금의 집으로 이사올 때부터 변기가 시원찮았다. 이게 무슨 강약약 중강약약도 아니고 몇 번은 잘 내려갔다가 또 몇 번은 안 내려갔다. 단번에 용변을 처리하는 법이 없어 물내림 버튼을 연거푸 눌러줘야 했다. 슬슬 부아가 치밀어 사람을 부를까 고민하던 무렵, 책 한 권을 떠올렸다.
2017년 10월, 당시 마흔이었던 나는 잠시 독립했었다. 갑작스런 질문 끝에 두려움이 일었다. 그 질문은 “이대로 가족과 함께 살다가 나 혼자 남으면, 예를 들어 나이 예순이 넘어 독립해도 괜찮을까?”였다. 지금이나 그때나 나는 연애는 물론이거니와 결혼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고 있다. 이렇게 어영부영 살다가 결국 혼자 늙어 죽으면 곤란하지 않을까 싶어 가족과 상의 끝에 시한부 독립생활을 시작했다.
집 근처에 원룸형 아파트를 구했다. 지은 지 40년 가까운 오래된 아파트다 보니 보수할 곳 투성이였다. 철로 된 현관문은 무슨 까닭인지 반쯤 박살이 난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고, 그 탓에 보조키가 수시로 고장 났다. 비가 오면 베란다 샷시를 중심으로 곰팡이가 폈고, 겨울이면 보일러가 말썽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뒹굴거리거나, 라면을 세끼 연속 먹는다거나, 밤에 잤다가 다음날 밤에 일어나도 타박하는 사람이 없는 건 난생처음이었다.
이런 내게 친구가 『안 부르고 혼자 고침』 을 선물했다. 처음엔 무슨 제목이 이래, 했다가 책을 펴자마자 “고마워!”를 말해버렸다. 당시의 내가 궁금해하던 모든 것이 적혀있었다. 간단하게는 전구를 가는 방법부터 시작해서, 현관문 도어락이 먹통이 되었을 때 대처법, 겨울철 세탁기 동파 예방 등등, 이 책 한 권만 있으면 뭔들 다 혼자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2년이 지난 지금, 나는 변기 문제로 골머리를 앓다가 이 책을 떠올렸던 것이다. 일단 거실 서재로 돌아갔다. 책장 한 켠에 잘 꽂혀있던 문제의 책을 손에 들었다. 차례를 훑어 변기 부분을 찾아 펼쳤다. 안타깝게도 우리 집 변기의 문제는 책에 적혀있지 않았다. 대신 마법의 주문은 발견할 수 있었다.
작업비용
부르면 40,000원
혼자고침 1,000원
그래, 사람 부르면 다 돈이야. 혼자 고치면 천 원이야! 나는 이 주문을 중얼거리며 다시 변기와 씨름을 계속했다. 이후 한 달이 지나도록 해결책은 찾지 못했다. 수압 탓도, 수조 통 안의 검은 고무마개가 헐거운 탓도, 버튼에 딸린 연결 줄의 길이가 어중간한 탓도 아니었다. 울컥해서 몇 번이고 주변에 SOS를 청하려고 하다가도 마법의 주문 “사람 부르면 4만 원, 혼자 고치면 천 원”을 떠올리면 불편함을 버틸 수 있었다.
이 책의 또다른 저자 완주숙녀회는 2016년 전기와 수도배관원리, 공구 사용법을 배우는<여성을 위한 생활기술워크숍>을 개최한 바 있다.
가까스로 변기의 문제를 해결한 건 이 글을 송고하기 전날 자정 무렵이었다. 초고를 쓴 후 다시 한 번 변기를 살피러 화장실에 갔다. 그런데 오늘따라 변기 안쪽이 아니라 변기 외부, 정확히 말하자면 물내림 버튼에 시선이 갔다.
음, 뭔가 헐거워 보여. 잠깐, 설마 저것 때문에?
미심쩍은 마음으로 물내림 버튼을 잡았다. 헐거운 나사를 꽉 조였더니 물이 새지 않았다. 시험 삼아 버튼을 눌러보니 물도 단번에 콸콸 잘 내려갔다. 고민은 한 달이 넘었지만 고치는 건 3초면 충분했다. 일단 안 부르고 혼자 고치기는 성공했다. 사람 부르면 4만원, 혼자 고치니 0원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자꾸 억울한 기분이 든다. 왜지. 안 부르고 혼자 고쳤는데 왜 이렇게 억울하지?
안 부르고 혼자 고침완주숙녀회, 이보현 저/안홍준 그림 | 휴머니스트
못 박기, 형광등은 기본! 막힌 싱크대에서 세면대까지. 누굴 부르기도 그렇고 직접 손대기는 막막한 문제들, 직접 해결해보세요. 망치질조차 제대로 안 해본 초보자도 할 수 있는 생활기술 31가지를 골라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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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은 성덕(성공한 덕후). 소설가보다 만화가 딸내미로 산 세월이 더 길다.
<완주숙녀회>,<이보현> 저/<안홍준> 그림10,350원(10% + 5%)
‘혼자서 집 고치기 어렵지 않아요’ 자립인간을 위한 생활기술 큐레이션. 못 박기, 형광등은 기본! 막힌 싱크대에서 세면대까지. 누굴 부르기도 그렇고 직접 손대기는 막막한 문제들, 직접 해결해보세요. 망치질조차 제대로 안 해본 초보자도 할 수 있는 생활기술 31가지를 골라 담았습니다. 설비업체를 안 부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