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김나희의 음악적으로
음악으로 너에게 가닿을 수 있기를
그곳에서는 서로가 듣고 있는 음악이 전해질 거야
내가 여기서 쇼스타코비치를 연주하는 동안 너를 생각할게. 너도 진은숙의 <그래피티>를 듣는 동안 나를 생각해줘. (2019. 07. 24)
만나야 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나는 법이죠
인생에 있어서 어떤 만남은 무척 강렬한 파장을 만들어 내고 끝없이 삶에 울림을 준다. J를 처음 만난 2012년 5월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편집장은 J와의 인터뷰를 꼭 성사시켰으면 좋겠다고 했다. 파리 연주를 앞두고 있는 그는 이미 여러 음반상을 휩쓴 연주자였다. 학기 마무리와 여러 시험을 앞두고 마음이 조급한 시기였다. 그가 바쁘다며 인터뷰를 거절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몇 번의 이메일이 오가고, 그의 매니저가 놀랍게도 공연 당일 토요일 아침 9시를 제안했다. 밤을 새우고 그가 머무는 아파트로 향했다. 몽롱한 상태로 메트로에서 내려 길을 찾지 못해 헤매다가 이미 5분을 넘게 허비했고, 간신히 도착한 그의 아파트에서는 엉뚱한 집의 벨을 울렸다. 중간에서 연락을 맡은 매니저가 층을 잘못 알려준 탓이었다.
“여기 그런 사람 없는데,” 잠옷 가운 차림의 노인은 황당한 표정이었다. 천천히 그의 이름을 발음했다. “저는 인터뷰어예요. 이 인터뷰를 꼭 해야 하고요. 혹시 이웃 중에 J라는 사람은 없나요?” 이러다 인터뷰를 못하고 돌아가야 하나,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까,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내가 주소를 잘못 보았나? 초조함이 밀려왔다. 그때 한 층 위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찾고 있군요. 여기예요. 한 층 더 올라오세요.” 갑자기 끼어든 그 목소리에 놀라 순간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폭이 좁고 어두운 계단을 천천히 올랐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계단으로 내려와 팔을 성큼 내밀었다. “당신은 에스코트가 필요하군요.” 그가 내민 팔에 의지해 계단을 올라 반쯤 열어둔 현관을 지나 집 안에 들어섰다. 모든 상황이 낯설고 어색해 자꾸 헛웃음이 나왔다. 그도 나를 보며 잠시 웃었다. 우리는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게 J와의 첫만남이었다. 약속 시간이 지나도록 내가 오지 않는 게 이상해 매니저가 전달한 이메일을 뒤늦게 살펴보다가 메일 속에서 층이 잘못되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단다.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어 나에게 다시 연락해야 한다고 말하려 했지만, 토요일 아침 9시에 전화를 받을 파리지엔은 없다. 혹시나 싶어 마중을 나갈까 하며 문을 열어보니, 마침 아래층에서 그의 이름을 발음하는 내 목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내가 꺼낸 질문지를 힐끗 본 J가 환한 얼굴로 말했다. “당신이 이렇게 열심히 준비했는데 내가 문 밖으로 나가지 않고, 나를 찾는 당신 목소리를 듣지 못했더라면 우리는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만나야 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나는 법이죠. 우리는 지금 이렇게 마주보고 있으니까.”
음악에 대한 취향이 정체성의 표식이 될 수 있다면
세 번째 질문을 지날 즈음, 우리는 어느덧 단순한 질문과 답변이 아닌 대화를 하고 있었다. 거의 완벽하게 같은 음악적 취향을 가졌기 때문에 서로 믿을 수 없어서 “나도 그렇다.”라는 말을 연발했다. 처음 만난 사람과 이런 밀도의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가 뉴욕에서 공부하던 시절의 경험을 말하며, 나에게 번스타인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집에 불이 나면 번스타인의 음반을 챙길 생각이라고 하자 그가 소리 내 웃었다. “뉴욕 유학 중에 탱글우드 마스터 클래스에서 직접 번스타인에게 배울 수 있었어요. 정말 큰 행운이었죠. 얼마나 열정적인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뜨겁고 벅차게 음악을 사랑했는지, 직접 듣지 않으면 가늠할 수 없을 거예요.” 그는 더욱 열정적인 목소리로 말하며 눈을 반짝였다. 큰 손과 긴 팔, 어깨를 움직이며 제스처를 취했다. 마치 번스타인에 빙의한 듯 J는 뉴욕에서의 추억을 꺼내놓았다. “번스타인 특유의 열정은 마법처럼 듣는 이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요.” J의 목소리에도 어느새 알 수 없는 에너지가 서려 있었다.
“세상 모든 음악 중에서 단 하나의 협주곡을 들어야 한다면 어떤 곡을 듣겠습니까?”
“첼로가 아닌 다른 악기도 가능한가요?”
“어떤 악기든 좋습니다. 첼로 협주곡이 얼마 없잖아요.”
“베토벤 피아노…”
“…4번.”
“4번이 가장 아름답고 혁신적이에요. 우리를 놀라게 하는 새로움이 있어요.”
“내 심장에 가장 가까이 있는 곡이에요. 시처럼 아름답죠.”
마치 한 사람이 말하듯 문장이 이어졌다. 나도 모르게 손을 왼쪽 가슴에 갖다 대며 답했다. 손을 다시 내려놓으려는 찰나, J가 말없이 내 손을 잡았다. 허공에서 손을 잡고 눈이 마주친 채로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그가 덧붙였다. “음악에 대한 취향이 여권처럼 정체성의 표식이 될 수 있다면 우리는 아마 같은 여권을 가졌을 거예요.”
무수한 음표들이 이어지다 쉼표가 등장해 음악 사이 침묵이 놓인다.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는 도중 우리는 중간중간 말을 멈추었다. 말이 끊길 때에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침묵 덕분에 잠깐씩 서로의 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눈빛이 마주칠 때마다 더 깊고 밀도 높은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대화 자체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스스로를 확장해갔다. 처음 만난 그와 마치 영원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녹음기를 집어드는데 J가 내 수첩과 만년필을 가져갔다. “음악 이야기를 이렇게 깊게 해본 적이 언제였는지 모르겠어요. 내 연락처예요. 우리 더 이야기해요. 당신 연락처는요?”
그에게 테이블에 있던 내 휴대폰을 내밀자 그가 바로 자신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이제 우리는 언제든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그날 이후 파리에서 일상을 지내다 보면 종종 그의 메시지가 도착하고는 했다.
“암스테르담 첼로 비엔날레에 가는 길이야. 바로크 첼로로 비발디를 연주해.”
나도 J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내일 하이팅크를 들으러 가. 모차르트와 슈베르트. 마리아-호앙 피레스의 모차르트 23번이야.”
“불레즈의 메사제스키스 연주를 마쳤어. 모레는 베토벤 첼로 소나타야.”
J가 보내는 그 메시지들은 모두 ‘음악’을 소재로 삼았고, 때때로 음악을 벗어나 책과 작가, 인상 깊은 영화나 전시를 말하기도 했다.
우리가 마음을 다해서 듣는다면
파리 살 플레옐에서 하이팅크, 아바도, 불레즈, 얀손스, 정명훈… 그들의 지휘로 음악에 완전히 압도당하는 경험을 하고 나면, 심장이 오랫동안 두근거렸다. 말러, 쇼스타코비치, 부르크너, 슈베르트, 브람스, 베토벤…. 교향곡을 듣는 행위는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채 먼 곳으로 정신의 여행을 떠나는 것과도 같다. 새로운 소리, 놀라운 질감과 색채로 구성된 그 세계에는 눈부시다 못해 눈앞이 아찔해지는 찬란함이 있었다. 그곳에 머무르다 보면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황홀함이 몸의 기억으로 남았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며 온몸의 세포가 하나하나 일깨워졌다. 현실로 돌아오고 나서도 새벽까지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꼼짝없이 깨어 있으면 먼 곳으로 연주 여행을 떠나 다른 시간대에 가 있는 J의 메시지가 때맞춰 도착하고는 했다. 그런 새벽이면 우리의 대화는 쉬이 끝나지 않았다. 환청과 환각에 시달렸던 슈만이 인생 마지막에 그렸다는, 추상화와 악보 중간쯤 어딘가에 있는 듯한 이미지와 베토벤 특유의 필치가 살아 있는 원본 악보, 프랑스 뮈지크나 라디오 클래식에서 인용된 작곡가의 편지나 일상 속 문장을 주고받기도 했다.
J가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 리허설이야.” 라고 하면 나는 “Dsch, Dsch, Dsch, DSCH….D!S!C!H!”라고 답했다. 첼로 협주곡 1번 1악장이 시작할 때 D(레)S(미 플랫)C(도)H(시)음을 연주하며 시작한다. Dsch -디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약자-를 나타내는 음들이었다. 이 모티브가 몇 번 반복되고 나면 호른이 첼로의 Dsch를 받아 응답하듯 연주한다. 쇼스타코비치 특유의 장난기와 유머가 돋보이는 이 모티브는 알고 들으면 작곡가가 숨겨둔 수수께끼를 푸는 듯한 쾌감을 준다. 아는 사람들끼리는 작곡가의 인장을 찾아내는 재미있는 놀이 같았다. 이런 유쾌하고 재치 넘치는 메시지들은 우리 사이에 놓인 수백 킬로미터, 혹은 수천 킬로미터의 거리는 아무것도 아닌 듯 가로질렀다.
어느 초여름, J에게 쾰른에 와 있다고, 곧 진은숙의 <그래피티>를 유럽 초연으로 듣는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의 답장이 바로 날아왔다.
“중국에서 막 서울에 도착했어.”
“서울이라니! 나의 도시에 와 있네. 부럽다.”
“나는 <그래피티>를 듣고 진은숙을 만나고 있는 네가 더 부러운걸. 초연이잖아. 그건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는 것과 같은 경이롭고도 위대한 탄생의 순간이야. 할 수만 있다면 순간이동을 해서라도 듣고 싶어.”
“이렇게 세상이 좋아졌는데, 테크놀로지가 우리를 도울 수는 없네. 시차는 그대로니까. 라디오 방송에서 따로 녹음하고 방송도 한다는데, 파일을 구해볼까?”
“아니, 괜찮아. 나에게 좋은 생각이 있어.”
“좋은 생각이라니?”
“내가 여기서 쇼스타코비치를 연주하는 동안 너를 생각할게. 너도 진은숙의 <그래피티>를 듣는 동안 나를 생각해줘. 우리의 몸은 서울과 쾰른에 떨어져 있고, 우리가 지나가는 시간은 저녁과 낮으로 서로 다르지만 우리의 영혼만큼은 이 거리와 시차를 뛰어넘을 수 있어. 귀를 기울인다는 건, 우리 마음을 다해서 듣는 행위니까. 거기에는 영혼이 담겨 있는 거잖아. 시차도 거리도 존재하지 않는 차원에서 우리가 귀 기울이며 서로를 생각한다면, 그 생각이 맞닿겠지. 그 맞닿은 생각과 생각이 이어져 새로운 공간이 생겨나고, 그 공간에서는 서로가 듣고 있는 음악이 전해질 거야. 진은숙의 환상적인 음악 안에서 나를 떠올려줘. 나도 네 생각을 할게. 나는 네가 듣고 있는 것을 듣고 너는 내가 연주하는 것을 들을 수 있을 거야. 음악은 우리 사이에 놓인 거리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생각해.”
메시지를 받고 쉽사리 답장을 하지 못한 채로, 스마트폰의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무언가를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결국 짧은 답을 썼다.
“그래. 그렇게 할게.”
마무리 말로 늘 쓰던 ‘진심으로 너에게’(sincerement a toi)를 쓰다가 다시 지웠다. 한 번도 쓰지 않았던 단어가 떠올랐다. 사전에는 없는 표현이지만 그래도 꼭 이렇게 보내야 할 것 같았다. ‘음악적으로, 너에게’(Musicalement a toi)를 마지막에 덧붙여 메시지를 보냈다.
음악적으로, 음악으로 너에게 가닿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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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피아노와 법학을 공부했다. 새롭고 아름다운 것을 접하고 글로 남긴다. 바흐와 말러, 바그너, 피나 바우슈를 위해 지구 어디든 갈 수 있다. 인터뷰집 <예술이라는 은하에서>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