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네버랜드> 논란을 딛고 치룬 마이클 잭슨 10주기 추모식
해바라기로 애도를 표하다
이날 팬들은 가슴에 묻은 마이클 잭슨을 꺼내 일 년을 기다린 보람을 최대한 만끽했다. (2019. 07. 12)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하늘로 떠난 6월 25일을 3일 앞두고, 그의 영원하고도 긴 여행을 기리기 위해 2019년 6월 22일 합정동 한 공연장에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팬들이 모였다. 후덥지근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입구에는 추모용 꽃을 든 사람들이 줄을 지었다. 이들은 기대에 가득 찬 눈빛으로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작년과 같이 행사장의 초입에는 각종 굿즈에서 온화한 미소로 사람들을 맞이하는 마이클 잭슨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공연장 한쪽은 사전에 받은 엠제이(MJ, Michael Jackson)의 폴라로이드 사진과 해바라기를 통해 그에게 보내는 공간으로 꾸며졌다. 팬들은 폴라로이드 사진에 개인의 추억과 하고 싶은 말을 쓰고, '기다림'의 꽃말을 가진 해바라기로 애도를 표하며 식에 앞서 각자의 회포를 풀었다. 송이송이 꽃 쌓인 테이블에 겹겹이 붙은 마이클 잭슨의 모습을 보니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믿기지 않는 사실이 확실히 느껴졌다.
막이 오르자 장내에는 어둠이 깔렸다. 1부 오프닝 영상회의 첫 순서로 그의 과거 아동 성추행에 대한 반박 다큐멘터리가 나왔다. 1995년 9집 <HIStory : Past, Present and Future, Book 1>에서 따온 포스터가 말해주듯 올해 행사는 무엇보다 그의 스토리에 집중했다. 올해 초 선댄스 영화제에 나온 <리빙 네버랜드>가 그 원인이었다. 진위를 가리기도 전 수면 위로 올라온 이 스캔들 때문에 마이클 잭슨 뮤지컬, 트리뷰트 공연, 이 추모 행사를 포함한 세계 곳곳의 이벤트가 멈추거나 차질을 빚었다. 심하게는 마이클 잭슨의 음악을 듣지 말자는 불청 운동까지 벌어졌다. 기념비적인 10주기를 위해 약 일주일의 일정을 기획한 주최 측은 계획을 변경해 이틀로 줄일 수밖에 없었다.
처음 영상이 끝나자 논쟁에 대처하는 팬 연합만의 방식이 화면으로 쏟아졌다. 1993년 첫 성추행 논란 이후 엠제이는 비상식적인 언론과 비즈니스 업계에 일갈을 가하는 아홉 번째 앨범을 발매한 바 있다. 연합회는 여기서 'D.S.', 'Money', 'Tabloid Junkie' 같은 비판적인 곡과 자신의 아픈 어린 시절을 밝히는 'Childhood' 등에 무게를 실어 그의 영상과 뮤비들을 엮었다. 팬들은 노래를 따라 부르고, 조용히 집중하기도 하며, 장장 2시간에 걸친 영상회 자리를 꿋꿋이 지켰다.
2부 추모 공연에 앞서 팬들은 짧은 플래시몹으로 '#MJINNOCENT'라는 문구의 카드를 입에 대고 '엠제이 이노센트'를 외치며 그의 결백을 응원했다. 공연 예정은 5팀이었으나 러뷰마이클의 건강상의 문제로 라인업에는 남성 보컬 듀오 지어반, 안무가 황재경, 트리뷰트 댄서 부 잭슨, 밴드 잼 온 더 문까지 총 4팀이 올랐다. 모든 아티스트가 이 추모 행사에 혹은 마이클 잭슨에게 사연과 사랑을 담아 다른 매력으로 뽐냈다.
'네버랜드엔터테인먼트'라는 소속사가 말해주듯 엠제이의 보살핌 속에 활동을 시작한 지어반은 'Ben'-'Billie Jean'-'We are the world' 등으로 이어진 6곡의 메들리로 공연의 첫 스타트를 끊었다. 고음의 가성부터 깔끔한 화음까지 선보인 듀오는 재즈풍으로 편곡한 'Thriller'와 'Rock with you'-'Beat it' 메들리로 주옥같은 명곡 타임을 선사했다. 지어반의 멤버 라경원은 마이클 잭슨 음악으로 입시를 봤고, 지금도 마이클 잭슨의 음악을 음악 제자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소속사부터 이 추모장까지 이어진 그와 엠제이의 인연은 운명이 아니었을까.
남성 듀오 지어반의 추모 공연
두 번째는 절도 넘치는 창작 댄스로 실내 온도를 높인 황재경의 무대였다. 'Stranger in Moscow', 'In the closet'을 위시한 곡에서 영감을 받아 움직이는 그의 몸놀림 예사롭지 않았다. 의도치 않았던 다음 차례로 진정한 팬이 아니라면 볼 수 없는 장면이 나왔다. 갑작스러운 러뷰마이클의 공연 취소 때문에 급하게 만들어진 인터뷰 시간, 엠제이의 트레이드마크인 검은 페도라와 손가락 테이핑을 한 중학생 소녀가 무대로 중앙으로 올라왔다.
이 소녀팬은 방탄소년단의 'Fake love' 라이브를 보던 중 '마이클 잭슨 같다'라는 아버지의 말에 함께 'Billie jean' 영상을 감상했고, 그 계기로 엠제이에게 빠지게 되었다. 또 다른 트레이드마크인 흰 완장의 검은 재킷을 건네며 사회자가 돌발적인 무대 제안을 하자, 그는 망설임 없이 'Billie jean' 안무를 머릿속으로 되새김질하며 공연을 펼쳤다. 팬에 의한, 팬을 위한 행사를 열정 넘치는 소녀팬이 실현했다.
마이클 잭슨의 춤을 따라 멋진 무대를 선보인 소녀팬
작년 10인조 라이브 밴드 & 댄서로 한국을 찾았던 일본의 MJ 밴드는 아쉽게도 리더 부 잭슨만 내한했으나, 여느 팀보다 그 무대는 뜨거웠다. 1996년 마이클 잭슨의 실제 내한 공연의 인트로 영상부터 첫 곡인 'Scream'(마이클 잭슨의 심정을 생각해 이 곡을 골랐다고 한다)에 의상까지 엠제이로 완벽하게 빙의한 그의 퍼포먼스는 많은 팬에게 영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엠제이의 우주 제복을 따라 하기 위해 직접 동대문에서 재료를 구해 옷을 만들었다는 그는 삼겹살의 맛을 언급했다. 마이클 잭슨 덕분에 겉과 속을 한국 사랑으로 채웠다.
후끈후끈했던 시간의 끝을 장식하기 위해 인원이 제일 많았던 5인조 잼 온 더 문이 악기를 들고 위치에 섰다. 마이클 잭슨의 추모장에서 인연을 만나 결혼까지 앞둔 마이클 잭슨의 큰 수혜자 보컬 허윤경은 발목 부상에도 불구하고 'Man in the mirror'와 'Rockin' Robin'등 넘치는 리듬감에 시원한 고음을 더해 흥을 돋우며 2부의 막을 내렸다.짧은 인터미션을 가진 뒤 이날 가장 무겁고 먹먹했던 추도사 낭독 시간이 찾아왔다. 한 팬은 故 마이클 잭슨에게 부치는 편지를 담담하고 슬픈 어조로 한 자 한 자 읽어내려갔다. 그 어느 때보다 장내는 숙연했고, 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사람들은 '우상'을 잃은 아픔을 함께 나눴다.
5인조 밴드 잼 온 더 문의 공연
MJ 밴드의 리더, 부 잭슨
어느 때보다 성대했어야 할 2019년 6월 22일 마이클 잭슨 10주기 행사는 피치 못할 문제로 간소하게 치러졌다. 다음 날인 23일에는 팬이 직접 참여하는 콘텐츠와 대중음악 평론가 임진모의 강의가 마련되었다. 이 추모제와 동시에 치러지진 못했으나 12~16일에는 TV에도 출연한 연필 화가 송백일 작가의 <MICHAEL, LOVE&PEACE> 전시회가 사전 행사격으로 한전아트센터에서 무료로 열렸다.
이날 팬들은 가슴에 묻은 마이클 잭슨을 꺼내 일 년을 기다린 보람을 최대한 만끽했다. 진위를 떠나서 사회적 논란 속에도 꿋꿋히 그를 믿기에 현장을 찾았던 사람들은 이를 기회로 더욱 단단히 뭉쳤고, 이번 플래시몹을 포함해 <리빙 네버랜드> 국내 방영 반대 운동 등을 펼치며 슬픔과 기쁨이 동시에 공존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지상에서 그는 팝의 황제(King of pop)였지만, 하늘로 떠난 지 10년이 된 지금 마이클 잭슨은 '팝의 신(God of pop)'에 가까웠다. 적어도 이날 우리에게는.
마이클 잭슨 추모 행사 인터뷰 - (연정아, 마이클 잭슨 팬 연합 대표)
마이클 잭슨을 떠나보낸 지 올해로 10주기를 맞이해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행사를 진행해 온 지도 10년이 지났다. 10년 전 행사에 참여했던 어린 친구들이 성인이 되는 과정을 봐왔고, 행사를 함께 만들어온 동료들과는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마이클 잭슨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친구가 됐다.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이 남는다. 마이클은 떠났지만 팬들이 외롭지 않게 음악 친구를 남겨준 것 같다.
마이클 잭슨의 곡 중 가장 사랑하는 3곡이 있다면?
<Thriller> 앨범 1번 트랙에 있는 'Wanna be startin' somethin''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 가장 먼저 산 앨범이라 그런지 들을 때면 가슴이 뛴다. 'Human nature', 'Scream'도 애정하고 보통 리드미컬한 곡을 좋아하는 편이다. 마이클한테 기대하는 게 노멀한 알앤비는 아니지 않은가.
리빙 네버랜드 논란이 여론을 뜨겁게 달궜다. 팬의 입장으로 안타까운 일 아닌가.
사실 작년에 10주기를 맞이한다는 생각에 팬들이 굉장히 큰 기대를 했다. 전 세계적인 열풍이 불고 마이클의 인기가 재입증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리빙 네버랜드> 논란이 뜨거워지면서 오히려 그 열기가 줄었다. 국가별로 동상을 없앴으며, 마이클의 음악을 듣지 않는 보이콧이 생겼다. 이번 행사도 원래는 일주일 동안 행사를 열 계획이었으나 취소가 돼서 아쉬움이 상당히 크다.
추모 공연에 섭외하는 아티스트의 기준이 궁금하다.
처음엔 노래를 잘하는 팬들이 공연에 참여하는 방식이었다. 그중 실질적으로 끼가 있는 가수 지망생들도 많았다. 그들을 시작으로 그들 주변에 프로로 활동하는 팀들도 자연스럽게 함께하게 됐다. 별도의 섭외 없이 팬들의 열정만으로 만들어낸 공연이다.
추모 행사를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항상 몇 명이 참여할지가 가장 걱정이다. 아무리 잘해도 팬 없는 행사는 행사가 아니지 않은가.
기획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대중에게 마이클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리고 싶고, 팬들에게는 공감대를 얻는 행사, 참여자에게도 추억이 남는 행사가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노력하고 있고... 특히나 참여자들의 보람을 위해 작은 일까지도 분업을 하는 편이다.
어느덧 추모 10주기다. 가장 기억에 남는 행사를 꼽아달라.
2010년 1주기 때 플래시몹을 했었다. 200~300명이 참여를 했고 모두가 흥분해서 춤추는 걸 보면서 큰 보람을 느꼈다. 그런 면에서 누구든지 아이디어를 내면 그냥 넘기지 않고 무조건 수용하는 쪽으로 하고 있다. 또, <마이클 잭슨의 디스 이즈 잇>이라는 다큐멘터리에 오역이 있었다. 그걸 바로잡기 위해 서명운동을 하고, 미국에 편지도 보내서 이를 바로잡았을 때 큰 성취감을 느꼈다.
취재 = 임동엽
인터뷰 = 조지현
촬영 협조 = 마이클 잭슨 한국 팬 연합
관련태그: 마이클잭스, 추모 10주년, 리빙 네버랜드, 해바라기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