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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25화 : 나도 대표요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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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서 일본인 간부가 교부 한 사람을 대동하고 나타난 것은 점심때가 지나서였다. 일하지 않으면 모두 해고하겠다고 경고했지만 누구도 일을 다시 시작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2019. 07.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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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이이철은 방우창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그에게 전했고 자신의 독서회 성원이던 조 아무개라는 직공이 그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도 말했다. 이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코민테른을 비롯한 국제 혁명조직은 식민지 조선의 운동에 대한 체계적이고 일관된 방침을 효과적으로 제시하지 못했어요. 코민테른 극동부에서 파견 되었다는 인사, 상해에서 중국공산당의 지도를 받았다는 인사, 프로핀테른 극동부에서 파견 나왔으며 국제당의 레포 회의에 참가했다는 인사, 국제공산청년동맹 동양부니 중국공산당 만주성회니 태평양노동조합의 파견원이니, 그리고 모스크바 공산대학 출신이라는 무수한 인사들이 있었지요. 이들은 일제의 압박 속에서 꿈틀거리며 살아가려고 일어서는 조선의 근로대중을 놓고 서로 자기 조직이라면서 운동선을 중복시키고 주도권 다툼을 해왔지요. 이런 사람들이 밖에서 배웠던 조선에 대한 지식은 국내에 들어와 운동하는데 현실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어떡하시겠습니까? 회합을 추진하자는 데요.”


 이철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하긴 하지만 회합해야겠지요. 아니면 우리가 종파로 몰릴 거요. 그 동무들은 이번에 우리의 실력을 시험해 보려는 것 같소. 내 생각으로는 이번 파업을 이길 수는 없을 겁니다. 지난 몇 달 동안 경성과 인천 여러 곳에서 파업이 연달아 일어나 일제 당국은 모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거요.”


 “이미 다수결로 파업 결정이 났습니다. 철회하기는 어려워졌거든요.”


 “물론 현장의 분위기가 그렇다면 해야지요. 줄건 주고, 받을 건 받아냅시다. 우리는 방씨를 통해서 회합을 추진할 테니 현장에서는 계획된 대로 하세요.”


그는 왜 영등포에 활동가들의 여러 선이 들어오게 되었는지 이이철에게 말해주었다.


이 지역에는 각종 공장이 삼십여 개나 밀집해 있으며 노동자도 일만여 명이고 자유노동자까지 합치면 이만 명에 가까운 산업지대였다. 노동자들은 거의 토착 원주민이 드물고 거의가 전국 각지에서 일을 찾아 온 사람들이었다. 공장의 기숙사에 수용된 소수의 일부 노동자들을 제외하고는 일반 민가에 방을 얻어 거주하거나 또는 함바나 토막 같은 가가에 거주했다. 따라서 주거의 영속성이 드물었고 직장의 이동 또한 빈번하여 경찰의 추적이나 감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영등포는 서울에서 운동의 중심지이자 지하조직의 근거지였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활동가들에게 좋은 도피처가 되기도 하였다. 또한 철도를 따라 이어진 서해안의 가장 큰 항구 인천은 불과 한나절 안에 내왕할 수 있었고 그곳 역시 부두 하역장과 공장이 밀집해 있어서 노동자가 수만 명이었다. 영등포는 사실 인천을 배후 기지로 두고 경성을 앞에 둔 전선이었다. 이씨는 말했다.


 “영등포에서는 파업을 활동 실적으로 내세울 필요도 없을지 모르오. 여기에 굳건한 적색노조 동무들이 공장마다 조직되어 있다면 운동은 일상화 될 수 있을 거요.”


이이철은 그날 밤에 돌아가 문건을 만들었고 이를 복사지에 필사하여 열부쯤 만들었다. 기숙사의 여공들 기상 시각이 여섯 시였고 일곱 시에 작업 개시 기간이었다. 파업위원회에 든 독서회 그룹은 모두 열 네 명이었고 이들은 각자의 맡은 임무대로 여섯 시에 공장으로 가서 공장 여러 곳에 벽보를 붙였다. 그리고 여공과 조수 조수보조 용인인부 등에게 공장 마당에 모일 것을 알렸다. 여섯 시 반에서 일곱 시 사이에 삼백 오십여 명의 노동자들이 마당에 모여들었고 위원장을 맡은 손영순이 성명서를 읽기 위하여 단상에 올라섰다. 그녀는 문건을 읽기 전에 먼저 자신이 겪은 이틀 전의 사건을 말했다. 


 “여러분 저의 친정어머니가 머나먼 충청도에서 오랜 시간 기차를 타고 여기까지 저를 만나러 오셨습니다. 저에게는 친정에 맡기고 온 네 살짜리 아들이 있어요. 어머니께서 손자가 날마다 제 어미에게 가자고 울며 보채어서 무작정 들쳐 업고 고향집을 나섰던 것이지요. 설마 여기 오면 딸을 만날 수 있겠거니 하며 오셨던 거예요. 그런데 우리 공장 규칙이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공일날을 제외하곤 면회와 외출이 엄금되어 있습니다. 제가 어머니와 내 새끼를 만나겠다구 잠시 일터를 벗어나 정문 앞으로 갔건만, 나카가와 감독은 저희 식구를 못 만나게 하려고 쫒아 나와 저의 머리끄덩이를 잡아채고 제 어머니의 뺨을 수차례 때렸습니다. 노인네는 코피가 터질 정도로 얻어맞았어요. 우리가 아무리 나라 없는 백성이지만 이렇게 서러운 처우를 받아야만 합니까? 우리는 나카가와 같은 감독 밑에서는 일할 수 없으니 그를 즉시 해고해야 마땅합니다. 현재의 작업시간 열세 시간은 원칙적으로 계약 위반입니다. 아침 일곱 시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의 열 시간 노동도 일본 내지에 비하면 과한 터에 야간 연장근무까지 세 시간을 아무런 수당 없이 공짜로 일해주고 있습니다.”


그녀가 성명서를 읽고 구호를 외치기 시작하자 직공들은 목청을 합쳐 따라 외쳤다. 일, 나카가와 감독 아래에서 일할 수 없으니 즉시 해고하라! 이, 노동시간 열세 시간을 열 시간으로 줄이고 연근할 경우에는 수당을 지급하라! 삼, 일본인과 조선인 여공의 식사차별을 철폐하라! 사, 기숙사의 면회와 외출을 금지하는 회사 내규를 개정하라! 이상 우리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무기한 파업을 선언한다.


그들은 각자의 작업장으로 삼삼오오 흩어져 돌아갔지만 기계는 돌아가지 않았고 조장 반장들 누구도 일하라고 독촉할 사람이 없었다. 파업 주동자들은 이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제각기 뛰어다니며 연판장을 돌렸다. 이름을 쓰고 이름 끝에 자기 지장을 찍도록 했다. 직공들은 누구든 망설이지 않고 지장을 찍었다. 조수 조수보조는 물론이고 일반용인 인부들도 모두들 일손을 놓고 앉아 있었다. 장본인 나카가와 감독은 사무실로 불려 올라갔고 일본인 교부 아줌마들도 현장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사무실에서 일본인 간부가 교부 한 사람을 대동하고 나타난 것은 점심때가 지나서였다. 일하지 않으면 모두 해고하겠다고 경고했지만 누구도 일을 다시 시작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여기 누가 대표자인가?”


 간부가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손영순이 나섰다. 

 

 “나요.”


 신금이가 그녀를 따라서 앞으로 나섰다.


 “나도 대표요.”


 하자마자 박선옥이 나서면서 말했다.


 “나도 대표요.” 


 일본인 간부는 화가 나서 중얼거렸다.


 “바카, 전부 대표인가?”


 공장 안에 있던 여공들이 제각기 떠들었다. 


 “우리 문제니까 우리 모두가 대표요.”

 

 “뒤에서 숙덕거리지 말구 직원들 앞에서 새로운 방침을 발표해요.”


결국 하루 종일 이렇다 할 타협도 없이 퇴근시간이 되었고 이튿날부터는 아예 출근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직공들은 제각기 기숙사와 집으로 돌아갔다. 신금이는 그때의 일을 이야기 했다. 


 “손영순이는 자식과 어머니 때문에 곧장 숙소로 돌아가 버렸고, 박선옥이도 자기네 집에 그 식구들이 묵으니 돌봐줘야 한다며 퇴근해 버렸지. 그러니 이철 씨나 조 씨는 남자라 기숙사 근처에 범접도 못해. 다만 공장 뒤뜰에 몇 사람이 화톳불 피워 놓고 밤새우며 우리와의 연락을 기다리는 형편이었다구. 기숙사에 돌아가니 그래두 독서회원들이 여섯 명이 있어서 각자 방으로 돌아다니며 내일도 모레도 우리 요구사항이 이루어질 때까지 일하면 안 된다고 다짐을 받았어. 기숙사 사감과 교부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한 년두 보이지 않더라. 파업한지 사흘 지나서야 회사 측에서 전 직원을 강당에 모아 놓고 타협안을 내놓았는데, 네 가지 사항 중에 식사 차별문제와 기숙사의 면회 외출 문제를 들어주겠다고 하더구먼. 그렇지만 우리는 네 가지를 모두 해결하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겠다고 그랬지. 타협이 깨진 이튿날인가 아침에 일어나 세면하고 식당으로 내려갔더니 입구에 순사와 사복형사 두 사람이 사감과 함께 지켜 서 있다가 나를 제일 먼저 불러 세웠어. 왜 그러냐니까 임의동행이라든가 머라든가. 그들은 내 옆에서 벽보도 붙이고 내 방에서 함께 잔 조수보조 아이를 불러서 공장 밖으로 나갔지. 역전의 본정통 경찰서로 끌려갔더니 손영순과 박선옥이도 먼저 끌려와 있었어. 다행이 이이철씨와 조영춘씨는 파악을 못했던가 봐.”


 

영등포 경찰서 고등계의 조정으로 타협이 이루어졌다고 신문에 발표가 되었다. 나카가와 감독은 직원과 그 가족을 폭행하고 직공들의 불신임을 받는 처지이니 견책 사표를 내도록 하고, 노동시간과 임금문제는 연장근무 시 미리 통보하고 연근한 달의 임금을 일당으로 쳐서 조정하도록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초여름부터 늦가을에 이르기까지 경성 권역의 업종도 각기 다른 공장들에서 파업과 소요가 빈번히 일어나 일제의 치안당국은 긴장하고 있었다. 주의자들의 선동에 의한 것이 아닌가, 치밀한 내사를 요한다는 지침이 내려왔을 정도였다.


경찰은 감독의 사표 수리를 권고한 대신 회사 측의 의견을 받아들여 파업의 위원장을 맡은 손영순을 해고하도록 하였는데 핑계는 다른 공장으로 이직을 하도록 해준다는 것이었다. 그 대신 기한은 육 개월 휴직 뒤에 가능하다고 했다. 이에 덧붙여 같은 조건을 부위원장을 맡았던 신금이에게도 내놓았다. 신금이는 만약 손과 자신 두 사람만 해고하겠다면 받아들이겠다고 응답했다. 아무튼 그렇게 밀고 당기는 열흘 동안 손영순과 신금이는 유치장에 갇혀 지냈다. 이이철과 조영춘 박선옥 등은 이제 투쟁 경험을 갖게 된 노동자들의 조직 속에 있는 기본 세포로서 당분간 소리 없이 처박혀 있을 작정이었다.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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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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