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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24화 : 파업을 일으켜야 할 이유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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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대중들은 그런 거 알 바 없어요. 자기의 생활현장에서 생존권을 걸고 싸울 뿐이죠. 어느 쪽이든 헌신하구 도움을 주려 하면 누구든 받아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2019. 07.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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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손영순은 일터와 기숙사 방으로 돌아오지 않고 그냥 아들과 엄마를 데리고 사라졌다. 그녀는 그 길로 뚝방동네 박선옥이네 떡집으로 갔고 퇴근한 선옥이 제 방에 묵도록 해주었다. 박선옥의 연락을 받은 신금이와 독서회의 같은 그룹이었던 조영춘이 달려왔다. 

 

 “어머님은 좀 어떠시우?”


조영춘이 묻자 손영순은 야무지게 말했다. 


 “공장을 뒤집어 놓을 거예요. 까짓거 짤리면 엄마 모시구 아들 데리구 고향으루 돌아갈라구요.” 


 “분명히 그냥 넘어갈 순 없지.”


조영춘의 말에 손영순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했다.


 “파업합시다. 내가 앞장설 거예요.” 


 “사람들을 모으려면 적어도 이삼일은 시간이 필요할 텐데.” 


 “우리 모임만 해두 열네 명이잖아요.”


박선옥이 말했고 신금이는 잠자코 있다가 한마디 했다. 


 “너는 당사자니까 가만 좀 있어 봐. 분김에 그만둔다는 소리는 하지 말구.”     

 
 “하여튼 파업위원회를 만듭시다. 내가 회원들에게 연락을 하겠소.”


그날 밤 늦게 이일철과 조영춘은 시장 사거리에서 만났다. 


 “파업을 하자는 건 누구 결정이오?”


이철의 질문에 조영춘은 우물쭈물했다. 


 “그야 머……손영순 조장이 앞장서겠다니까.” 


 “회원들과 할지 말지를 논의하고 결정해야 되잖아요?”


조영춘은 평소와는 달리 어딘가 좀 들뜬 표정으로 자신 있게 말했다.


 “그래서 내일 출근하자마자 공개모임을 갖자고 돌아다니며 연락을 해두었소.”


 “파업은 최후수단입니다. 희생자가 많이 나올지도 모르고. 이제 겨우 밥상을 차리는 참인데 갑자기 둘러엎는 거나 마찬가지요. 내일 공개모임을 하지 말고 저녁에 따로 모입시다. 준비하려면 적어도 이삼일은 여유가 있어야겠지요.”


이이철의 만류에 조영춘은 어이없다는 듯이 고개를 쳐들며 웃었다.


 “허어 참, 김을 빼자는 거요 뭐요. 오늘 일어난 일은 공분을 불러일으킬 사태지만 며칠 지나다보면 대수롭잖은 일이 되어버릴 거여.”


 “사나흘에 흐지부지될 일이라면 첨부터 안 하는 게 낫지요. 논의도 하고 부서를 정하여 일을 분담하고 문건도 만들고 파업위 쪽으로 사람을 많이 끌어 모으려면 사흘도 숨 가쁜 시간입니다.”


그때에 조영춘이 담배를 한 대 뽑아 물더니 연기와 함께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당장 행동개시를 해야 한다는 게 윗선의 생각인 모양이오.” 


 “윗선? 그런 게 어딨어요? 우리는 각자 생활 현장에서 노동대중의 조건에 따라 활동한다는 게 원칙이라구요.”


조영춘이 대꾸 없이 일어서자 이철은 그에게 다시 물었다. 


 “윗선이라구 했는데 요새 누구 만났어요?” 


 “자기두 연락하러 댕기면서 멀 그래?”


이철이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자 조영춘은 시장 사거리 건너편으로 발길을 돌리면서 말을 남겼다. 

 

 “방우창 씨를 좀 만나보쇼.”


이튿날 손영순은 보통 날처럼 출근을 했고 동료 여공들 사이에는 이미 소문이 퍼져서 그녀에게 힘내라며 말도 던져주고 센베이 과자나 왕사탕을 작업대 옆에 놓고 가는 조수들도 있었다. 공장 안에 무거운 침묵과 긴장이 흐르는 가운데 긴 하루가 지나갔고 독서회원들은 하나둘씩 박선옥이네 떡집으로 모여들었다. 그렇잖아도 비좁은 방에 손영순의 엄마와 제 아들까지 묵고 있어서 이들은 염치불고하고 박선옥의 부모가 쓰는 안방에 모여 앉았다. 회원 열네 명 중에서 열두 사람이 참석했다. 어제 벌어졌던 일은 직공들 모두가 알고 있어서 대뜸 본론으로 들어갔다. 먼저 파업을 할 것인가에 대하여 논의를 시작했다.


조영춘은 현재 파업을 일으켜야 할 이유에 대하여 그동안 공장 안에 적폐가 많아서 이번 기회에 개선해야 하고 어제와 같은 일도 고분고분 넘어가 버리면 더욱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게 될 거라고 말했다. 그는 작금에 조선 팔도에서 소작쟁의와 노동파업이 일어나는 것이 거의 하루가 멀게 일상이 되어버렸다고 말했다. 우리네뿐만 아니라 이미 영등포 철도공작창에서도 대대적인 파업이 있었고 이웃 제사공장과 문안의 방적 제사 공장들이며 견직공장 고무공장 등이 여러 차례의 파업을 겪었다고도 말했다.


이이철은 조영춘의 이야기가 사실이기는 하나, 아직 우리 공장이 다른 데 비하여 대우가 나쁜 편이 아닌데다 직공대중의 의식 수준도 곧바로 투쟁으로 돌입하기에는 아직 미흡한 데가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파업은 희생자를 낼 각오를 해야 하는데 그런 만큼 반드시 얻어낼 것을 획득하고 이겨야만 한다고 그는 말했다. 이철은 지는 싸움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좀 더 무르익은 다음에 이기는 싸움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어쨌든 파업 찬성과 반대를 거수로 결정하기로 하였다. 먼저 파업 찬성에 여덟 명이 손을 들었다. 나머지는 물어보나마나 네 사람이니 파업으로 결정이 난 셈이었다. 조영춘과 손영순은 물론이고 박선옥 신금이 등도 파업에 손을 들었다. 모두들 손영순과 가족이 겪은 일을 자기가 당한 것처럼 분개하고 있던 터여서 반대고 자시고 할 감정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머지 넷은 이이철과 그가 끌어들였던 두 번째 그룹의 회원들이었다. 그렇지만 결정이 나자 모두들 파업위원회의 성원이 되는 것에 찬성했다. 나중에 해고와 처벌이 확실하게 될 위원장을 먼저 선출하기로 하였는데 손영순이 제일 먼저 자기가 떠맡겠다고 나섰고, 신금이는 그를 말리며 자기가 맡겠다고 나섰다. 그들은 이이철 조영춘이 바깥 조직과 연계가 있는 것을 대개는 눈치채고 있어서 그들이 노출된 직임을 맡지 않기를 오히려 바라고 있었다. 손영순과 신금이가 서로 다투다가 회원들이 의견을 내었다. 손영순이 파업위원장을 맡고 신금이가 선전 부서에서 부위원장을 박선옥이 조직 부서를 나머지 파업위원회 위원들이 조사부와 연락부를 맡기로 하였다. 조영춘은 공장 내의 조직위 일을 돕고 이이철은 선전과 연락부서의 일을 돕기로 하였다.


논의를 끝내고 이이철은 어제 조씨가 방우창의 얘기를 하던 것이 마음에 걸려서 그를 찾아가볼 작정이었다. 신길리 안씨 모친의 밥집과 방우창의 일세방이 지척의 한 동네라 그는 먼저 밥집에 들러보기로 했다. 새로운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밥집에 들르니 저녁 시간도 모두 끝나고 안씨 모친은 휴식 중이었다. 그가 인사를 하고 넌지시 말했다.


 “몸이 안 좋아서 왔어요. 삼촌에게 연락해야 하는데요.”


모친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요즈음 환절기라 고뿔이 돈다네 조심해야지. 어디 한 바퀴 돌구 오지 그러나? 마침 그 양반이 마실을 나왔거든.”


 “예에? 언제요?”


 “아까 점심 때 여기서 밥 먹구 갔어. 근처에 볼 일이 있다구 하든데.” 


 “제가 두어 시간쯤 있다가 다시 오겠습니다.”


안씨 모친은 이철에게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그럴 거 없네. 마루보시 후문 앞 골목에 그때쯤 가 있게나.”


이철이 방우창의 일세방 집에 들르니 그가 먼저 보고 얼른 신을 꿰고 마당을 나섰다. 방마다 그리고 마당에도 일을 끝내고 돌아온 막일꾼들이 들락거렸고 쉰내 비슷한 땀내와 발 냄새가 지독했다. 말없이 걷는 방우창을 따라 걸으며 이철이 말했다. 


 “우린 파업하기로 결정했어요. 근데 조용춘을 잘 아시우?”


 “음 좀 알지. 근데 오해는 말게나.”


그들은 골목을 벗어나 자갈이 밟히는 철도가로 나왔다. 두 사람은 거기 쭈그리고 앉아 얘기했다. 


 “나는 큰집에서 국제당 연락선을 만났네. 상해에서 건너온 유학생인데 별일 없으면 두어 달 있다가 나처럼 나올 걸세. 그가 전해준 선이 있어서 내가 접촉을 했지. 영등포에는 여러 선이 들어와 있다네.” 


 “이쪽은 국내에서 적색노조를 기반으로 당을 재건하려는 쪽이잖아요?”


 “코민테른에서는 이미 수년 전 십이월 테제에서 조선의 당 건설 운동을 파벌과 종파로 규정했네. 해체 후 재건 지침이 내려졌다네.”


 “그건 나두 알구 있어요.”


 “무조건 통합하라는 게 목전의 과업이라네.”


 “어느 쪽이 파벌주의인지 모르잖아요?”

 

하고는 이철은 조금 열이 나서 말을 이었다.


 “노동자 대중들은 그런 거 알 바 없어요. 자기의 생활현장에서 생존권을 걸고 싸울 뿐이죠. 어느 쪽이든 헌신하구 도움을 주려 하면 누구든 받아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대중이야 그렇겠지. 그러나 우리는 전위 아닌가? 우리는 국제당의 지도를 무시할 수 없다네. 자네들 일은 우연이겠지만, 이번 영등포 일대의 파업도 그쪽에서 먼저 승낙하고 지도에 들어갔다네. 자네가 접촉하고 있는 그쪽 윗선에 알려서 국제선과의 회합을 추진하지.”


 “일단 연락은 해놓도록 하지요. 그렇지만 방형에게 말해두는데 서로 지킬 건 지켜야 할 겁니다.”


두 시간 지나서 이철은 마루보시 후문 골목에서 벙거지 사내를 만났다. 그곳은 사창가가 시작되는 장소여서 취객들도 많았고 창녀들은 격자 유리창문 안에 앉아있지 않고 거리로 나와서 적극적으로 사내들의 소매를 잡기도 했다. 이철이 불안하게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구겨진 양복 상의를 헐렁하게 걸친 사내가 다가와 그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호기 있게 말했다.


 “여어 어디 가서 한 잔 해야지이.”


그는 오늘은 벙거지를 쓰지 않았다. 그가 이철의 귀에 속삭였다. 


 “저기 쌍성루 보이지요? 그리루 들어갑시다.”

 

그들은 때 늦은 중국식당으로 들어가서 칸막이와 붉은 커튼이 쳐진 구석자리에 앉았다. 식사시간이 지나고 술손님도 끊겨 손님은 그들뿐이었다. 이철이 조금 전에 방우창을 만난 것과 파업 얘기와 방의 전언을 재빨리 이야기하는 동안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듣기만 했다.


 “류 동지는 늘 말했어요. 우리는 결코 해외에 나갈 수 없다고. 죽어도 조선에서 죽고 최후까지 국내에서 활동하리라고. 여기 이 땅에 우리 조선인민이 살아가고 있으니 그들의 삶이 바로 우리의 현장이요 현실이기 때문이오. 바깥의 누군가가 우리의 혁명을 대신 해주지 않습니다. 가난하고 초라하고 미흡하지만 우리는 조선 인민의 힘을 믿을 수밖에 없지요.”


모스크바 공산대학을 졸업한 이들의 친목회를 한다느니 각자 무슨 노선으로 모인다느니 했지만 대부분 국경을 넘자마자 또는 경성 거리에서 검거되고 말았다. 이들은 갑자기 나타나서 프로핀테른의 파견자니 코민테른 상해지부의 명을 받고 나왔다느니 하면서 제각기 국제선을 자칭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류 동지를 비롯한 국내 당 재건파에서는 한 번도 국제적 연대와 지도를 거부한 적이 없다고 이씨는 말했다. 그들이 거부했던 것은 코민테른의 기치를 내걸고 국제선의 권위를 빌려 군림하려는 권위주의적인 태도였다. 당재건운동 과정에서 나타났던 국제노선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과 교조적이고 경직된 이론에 대한 고수, 주체적으로 운동방침을 세우지 못하고 외부의 권위에 의존하려는 안이한 현실인식, 대중적 기반 없이 소수의 인텔리 운동자들로 조직을 결성하여 일거에 혁명을 달성하려는 관념적이고 급진적인 태도 등이었다.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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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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