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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텍스트에 직면하는 일

<월간 채널예스>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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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력은 ‘아주 조금씩의 전진’ 속에서 다져집니다. (2019. 07.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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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일은 끊임없이 텍스트에 직면하는 것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수현,


우리는 지금, 자본가의 자본과 저자의 텍스트와 독자의 삶, 그 사이 어딘가에서 생존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기획은 자본의 투자를 받아 텍스트를 발굴해내는 일이고, 편집은 적확한 판단을 거쳐 그 텍스트를 책이라는 상품으로 가공해내는 일이며, 마케팅은 그 책을 독자의 삶 속에 자리 잡도록 만드는 일입니다. 기획, 편집, 마케팅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어느 하나를 분리한 채 논의할 수 없습니다. 텍스트를 발굴해내지 못한다면, 책으로 가공해내지 못한다면,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획득해내지 못한다면, 그중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한다면 우리의 생존 확률은 점점 더 희박해지겠지요.

 

책의 가치는 독자의 삶 속에서 발견되어야 합니다(이는 우리가 전에 논의한 대로, 출판의 채산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말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이는 기획과 편집과 마케팅이 삶의 자리에서 시작되고 귀결되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저는 텍스트를 발견해내는 시선, 텍스트를 오롯한 책으로 만들어내는 가공 능력, 독자를 설득해내는 논리와 전략을 ‘편집력’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곤 합니다. 편집력을 그렇게 정의하곤 하지만, 편집력을 어떻게 갖출 수 있냐는 질문에는 잠시 궁색해지곤 합니다. 다소 뻔한 이야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운 좋게’ 출판학교를 거쳐 출판계에 입문하거나, ‘운 좋게’ 시스템을 잘 갖춘 출판사에서 일하게 되거나, ‘운 좋게’ 실력과 인품을 갖춘 선배 편집자를 만날 수 있다면, 조금 더 나을까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운이 좋다면’ 말입니다(그러고 보니 수현은, 당신의 말대로라면, 이러한 ‘운’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군요. 그러나 이 길고 지루한 편지가, 수현의 깊고 처연한 고민에서부터 출발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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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게 요약하면, 편집력은 읽고 쓰는 삶에서 비롯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편집력을 지식과 기술의 차원으로만 인지할 때, 우리는 온갖 ‘운’에도 불구하고 실패할 것입니다. 물론 지식과 기술이 필요합니다. 편집자를 양성하는 출판학교나 훌륭한 선배님들이 쓰신 편집론 교과서들을 통해, 우리는 편집의 지식과 기술을 부단히 습득하고 연습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본입니다. 편집자로 일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지, 편집자로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출판산업의 비관적 전망을 뚫고 우리의 길을 내는 건, 보다 근본적인 편집자적 삶을 요청합니다.

 

텍스트를 읽고, 쓰고, 삶에서 좌절하는 것. 다시, 텍스트를 읽고, 쓰고, 삶에서 실현하는 것. 다시, 텍스트를 읽고, 쓰고, 삶에서 좌절하는 것. 이를 무수히 반복함으로써 아주 조금씩 전진하는 것. 편집력은 ‘아주 조금씩의 전진’ 속에서 다져집니다. 역설적으로 텍스트에 ‘갇힌’ 편집자는 버텨내기 어렵습니다. 언어는 사람의 모든 존재 양태를 구현해낸 것입니다. 타자와 삶의 자리에 충분히 다가서지 못한 채로, 언어를 제대로 구현해낼 수 있을까요. 타자를 세심하게 헤아릴 수 있는 이들이 텍스트를 제대로 다룰 수 있으며, 편집자로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편집자는 저자가 마주하는 최초의 독자이며, 완벽한 독자가 되어야 합니다. 저자의 텍스트는 완벽한 독자를 통과한 후에야 책으로 발돋움할 수 있습니다. 거듭 말합니다. 편집자는 우선 독자가 되어야 합니다. 편집자는 독자의 욕망과 결여를 탐사해야 하며, 독자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공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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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좌절하는 것. 다시, 읽고 쓰고 실현하는 것. 이를 무수히 반복함으로써 아주 조금씩 전진하는 것. 

 

 

편집자의 일은 끊임없이 텍스트에 직면하는 것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교정은 단지 텍스트를 ‘표준’에 준해 다듬는 과정이 아닙니다. ‘한글 맞춤법’은 어문 규정의 최소 원칙일 뿐, 그마저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언어는 본질적으로 ‘표준’에 가둘 수 없으니까요. 문장을 다듬는 과정에서 쉼표나 접속사를 배치하거나 배제하는 것, 조사 하나를 바꾸는 것에 있어서도, 편집자는 관습적 결정을 배제한 채 분명한 논의에 의해 판단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편집자는 텍스트를 가공할 뿐만 아니라 온갖 텍스트를 생산해냅니다. 저자를 설득하기 위해 편지를 쓰고, 자본가를 설득하기 위해 기획안을 쓰고, 독자를 설득하기 위해 표지에 앉힐 문안을 쓰고, 기자와 서점을 설득하기 위해 보도자료를 씁니다. 편지, 기획안, 표지 문안, 보도자료는 각기 다른 논리와 문체로 작성됩니다. 편집자는 다양한 문장을 한껏 구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언제든지 마음껏 변주해내지 못한다면, 그가 아직 글 쓰는 삶을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일 거라고 저는 의심합니다.

 

거칠게 요약하면, 편집력은 읽고 쓰는 삶에서 비롯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연한 듯하지만, 그것이 결코 당연하지 않은 이유는, 쉬이 다다를 수 없는 삶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시와 소설과 에세이를 쓰는 철학자이자 자본주의로부터 독립된 농부의 삶을 살고 있는 웬델 베리의 책 『삶은 기적이다』 (녹색평론사, 2006)를 수현과 함께 읽고 싶습니다. 그는 이 작은 책에서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자주 인용합니다.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웬델 베리가 열망하는 것은 삶의 신비입니다. 그는 “삶을 기계적이고 예측 가능한 것으로, 또 알 수 있는 것으로 다루는 것은 결국 삶을 축소시키고 환원시키는 일”이라고 비판하며, “우리는 신비 안에서, 기적에 의해 살아 있다”고 말합니다. 편집자적 삶은 모래 한 알 속에 담긴 세계를, 들꽃 한 송이 속에 숨겨진 천국을 발견해냅니다. 편집자적 삶을 살아내면, 편집자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다만, 우리 삶의 신비와 기적을 위해 기도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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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진형(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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