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엄마는 이 책을 너무 싫어하세요 (G. 김혼비 작가)
김하나의 측면돌파 (85회) 『아무튼, 술』
마침 5월 8일에 2쇄를 찍었어요(웃음). 그래서 좋은 어버이날 선물이 되지 않을까 해서 전화로 말씀드렸는데, 그때 엄마가 솔직한 심정을 고백하시는 거예요. ‘네가 그러고 사는 걸 세상 사람들한테 다 알릴 필요가 있냐’고 하시면서(웃음). (2019. 05. 30)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좋아하는 소리는 소주병을 따고 첫 잔을 따를 때 나는 소리다. 똘똘똘똘과 꼴꼴꼴꼴 사이 어디쯤에 있는, 초미니 서브 우퍼로 약간의 울림을 더한 것 같은 이 청아한 소리는 들을 때마다 마음까지 맑아진다. 오직 새로운 병의 첫 잔을 따를 때만 나는 소리라는 점에서 애달픈 구석도 있다. 다음 소리를 들으려면 소주 한 병, 그러니까 소주 일곱 잔을 비워야 하는데, 여러 명이서야 금방이지만 둘이서 마실 때는 지나치게 오래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나는 술을 매우 천천히 마시는 편이다). 게다가 퇴근 후 두 명이서 만나 잠깐 마셔봐야 세 번이나 들을 수 있을까? (나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평일에는 일찍 술자리를 파한다. 특별한 일이 지나치게 자주 생기기는 하지만...)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김혼비 작가의 에세이 『아무튼, 술』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인터뷰 - 김혼비 작가 편>
오늘 모신 분은 책읽아웃 청취자들의 마음에 우아한 ‘로빙슛’을 꽂아 넣으셨던 분입니다. 이번에는 술술 넘어가는 술 이야기로 저희를 취하게 만드실 생각이신 것 같은데요. 기절할 만큼 축구를 좋아해서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를 쓰셨고, 말도 안 되게 술을 좋아해서 『아무튼, 술』 을 쓰셨습니다. 김혼비 작가님입니다.
김하나 : 음주방송은 <김하나의 측면돌파>에서 두 번째이기는 한데요. 오늘은 최초로 소주가 등장했네요. 김혼비 작가님이 좋아하시는 빨간 라벨. 왜 빨간 라벨 소주를 좋아하시나요?
김혼비 : 제일 술 다워서...? (웃음) 요새 소주 도수가 점점 낮아지면서 순해지는데, 그 와중에서 조금 독보적으로 아직도 소주답게...
김하나 : 야성미가 있군요. 빨간 라벨은 몇 도인가요?
김혼비 : 20.1도예요.
김하나 : 와, 20도가 넘는 술이네요. 일단, 『아무튼, 술』 을 읽으신 분들에게는 ‘그 소리를 다시 들어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일어날 것 같은데요. ‘그 소리’라 함은, 김혼비 작가님이 너무 찰지게 묘사하신 ‘똘똘똘똘 또는 꼴꼴꼴꼴’의 소리가 나는 것인데요. 무슨 소리죠, 그게?
김혼비 : 소주 첫 잔 따를 때 나는 소리입니다(웃음).
김하나 : 저는 첫 잔에서만 그런 소리가 난다는 걸 인식 못 하고 있었어요. 그 부분을 읽고 난 뒤에 제가 처음으로 소주를 만난 것인데, 그 소리를 한 번 여러분께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똘똘똘똘과 꼴꼴꼴꼴 사이 어디쯤에 있는, 초미니 서브 우퍼로 약간의 울림을 더한 것 같은 청아한 소리))
김하나 : 아, 그러네요! 똘똘똘똘인지 꼴꼴꼴꼴인지 모를 이 소리가 첫 잔에서만 난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김혼비 작가님이 책에서 밝히신 노하우가 있었죠. 이 소리를 즐기기 위한 방법!
김혼비 : 네, 한 병을 더 시켜서 따라낸 병에 소주를 다시 채워 넣은 다음에 다시 따른다(웃음).
김하나 : 맛에는 영향이 없지만 그 소리를 듣기 위해서.
김혼비 : 네(웃음).
김하나 : 이런 소리들이 은연중에 술자리의 오감을 만족시켜주는 것 같아요. 술맛을 더 돋우면서.
김혼비 : 네. 약간 ASMR 같지 않아요?
김하나 : 그렇죠.
김하나 : 이 책에 보면 수능 백일주부터 여러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일기 같은 걸 쓰시나요? 음주일기라든가(웃음).
김혼비 : 그러면 매년 일기장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요(웃음).
김하나 : 잊을 수 없는 사건들로 책을 쓰신 거군요. 그러면 글을 쓰실 때 잊고 있던 음주에 관련된 기억들이 생각나는 것들이 있었겠어요.
김혼비 : 네.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책이 350~380매 정도 되는데, 처음에는 충분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분량이 충분하지 않더라고요.
김하나 : 그러시면 책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쓰고 싶었던 에피소드 중에 들려주실 수 있는 건 있을까요?
김혼비 : 실제로 썼다가 넣지 않은 에피소드가 두 개 있어요. 하나는 출판사 대표님과 상의를 해서, 분량 걱정 말고 넣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결국 들어갔어요. 그게 와인 이야기인데, 원래는 뒷부분들을 안 넣으려고 했었어요. 그러다가 대표님의 판단 하에 넣었고요. 끝까지 안 넣은 게 하나 있는데, 그건 분량 때문은 아니고, 이야기에 나오는 분한테 조금 실례인 것 같아서(웃음). 방송에서는 뼈대만 이야기하면 되니까 차라리 괜찮은데, 책은 세밀하게 묘사해야 해서 쓰다가 너무 실례인 것 같아서 뺐는데요.
김하나 : 그러면 말로 한 번 풀어놔 보시죠(웃음).
김혼비 : 예전에, 사귄 건 아니지만 요즘 말로 하면 ‘썸’이었던 분이 있었는데, 되게 좋은 분이셨고 술도 꽤 즐기셔서 퇴근하고 같이 저녁 먹으면서 반주하고 했었거든요. 어느 날 그 분이 오더니 어머님이 한약을 지어 오셔서 3개월 동안 술을 못 마신다고 하신 거예요. 그래서 술 없이 만났죠. 저는 앞에서 누가 술을 안 마시는데 혼자 술을 마시는 타입은 아니거든요. 같이 나눠 마셔야 재밌는데. 계속 만남을 가졌는데 점점 재미가 없어지고 뭔가 허전하고 점점 호감도 줄고... 그렇게 됐어요. 조금 썸이 길어져서 결정을 해야 될 타이밍에 그 분이 사귀자고 이야기를 했을 때...
김하나 : 3개월의 와중에요?
김혼비 : 네, 3개월은 아직 안 됐고 한 달 반 정도 지났어요.
김하나 : 아, 타이밍 선정이 너무 잘못된 거 아닐까요.
김혼비 : 네. 그래서 사귀자고 이야기를 했는데 제가 죄송한데 저희는 안 맞는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그 분이 우셨어요. 저는 막 따라 울고... 그 분이 잠긴 목소리로 ‘제가 마음에 안 든 이유를 이야기해주실 수 있느냐’고 하시는데... 다 울고, 이 자리에 온갖 비극이란 다 있고, 애틋하고, 애절한데 ‘한약을 드셔서 그랬다’라고 말할 수가 없는 거예요. 이 슬픈 이별의 이유가 ‘한약 복용’으로 귀결되는 게 너무 싫은 거예요. (웃음) 그래서 말을 못했던 적이 있었는데요. 그런데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고, 그 분이 또 한약이 되게 잘 받는 타입이셨던 거예요. 그래서 제 눈에도 그 분의 혈색이 좋아지는 게 막 보였어요. 그래서 제가 한 번 슬쩍 물어봤어요. 그렇게 한약의 효과를 잘 보시는 분들이 3개월에서 그치지 않고 계속 드시거든요. 그래서 제가 ‘혹시 장복하실 계획인지’ 물어봤어요. 장복의 기미가 보여서. 그랬더니, 그럴지도 모른다고 하셔서 ‘이건 아닌 것 같다’고 생각을 했어요. 어쨌든 그 분이 막 울고 그러는데, 좋아진 혈색으로 우시니까 너무 마음이 복잡하고(웃음). 그 에피소드를 썼다가 ‘이걸 글로 쓰는 건 아닌 것 같다’ 싶었는데, 제가 붙였던 제목이 ‘한약 아니면 사약’이었어요. 그 분의 건강은 한약이 지켜줬으나 우리의 관계에는 사약 같은 존재였던 건데, 이건 3일 동안 썼다가 실례인 것 같아서 뺐어요.
김하나 : 그런데 너무 재밌네요(웃음).
김하나 : 책의 첫 부분에 ‘주류 작가가 되고 말겠다’는 열망을 품게 된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내가 술에 대해서 쓰면 주류(酒類) 작가가 될 수 있겠구나, 메이저가 아니더라도 주류(酒類), 커피나 사이다 같은 비주류가 아니라 주류 작가가 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을 하셨었는데, 거기에 어머님의 영향이 있었잖아요. 어머님이 주류 작가가 되기를 원하셨나요?
김혼비 : 네, 어렸을 때부터 뭔가 주류로 살았으면 하셨어요. 그런데 저는 항상 어머님의 기대에 어긋나는 딸이어서, 그런데 책(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도 마이너하니까, 주류가 되길 바라셨어요.
김하나 : 주류로 산다는 건 어머니께는 어떤 의미였을까요?
김혼비 : 그냥 그게 편안한 삶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어쨌든 모든 시스템이 대다수에게 편리한 방향으로 흘러가니까 대다수에 속해 있으면 부딪힐 일이 많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제가 조금 편안한 삶을 살기를 바라시는 마음에서 그러셨던 것 같아요.
김하나 : 그랬더니 온 몸으로 부딪히며 여자 축구를 하지 않나, <책읽아웃>에서 소주를 마시며 녹음을 하지 않나, 이렇게 당당히 주류 작가가 되시고 말았는데요. 어머님은 책을 보시고 뭐라고 하시던가요?
김혼비 : 결론부터 말하면, 엄마는 이 책을 너무 싫어하세요.
김하나 : 정말요? 어머니 주량은 어떻게 되시나요?
김혼비 : 어머니는 소주 한 잔이요.
김하나 : ‘꼴꼴꼴꼴 첫 잔’이군요.
김혼비 : 네. 이번 책이 마침 5월 8일에 2쇄를 찍었어요(웃음). 그래서 좋은 어버이날 선물이 되지 않을까 해서 전화로 말씀드렸는데, 그때 엄마가 솔직한 심정을 고백하시는 거예요. ‘나는 내 친구들이 이 책의 존재를 제발 모르고 지나갔으면 좋겠고, 세상에 한 사람이라도 이 책을 덜 읽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네가 그러고 사는 걸 세상 사람들한테 다 알릴 필요가 있냐’고 하시면서 너무 싫어하시고요. 아마 저희 엄마는 돈이 진짜 많으셨으면 전국 서점을 돌아다니면서 책들을 다 사셨을 것 같아요.
김하나 : 사서 다 불태우시고(웃음).
김혼비 : 네. 그랬으면 20쇄까지 갔겠네요. (일동 폭소) 책은 20쇄까지 갔는데 읽은 사람은 거의 없는(웃음).
김하나 : 되게 컬트적인 책이 될 수 있었겠네요(웃음).
김혼비 : 네, 그랬을 것 같아요.
김하나 : 어머니, 그런데 저는 이 책을 보고 너무너무 반가웠습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이 또 있구나’ 싶어서요(웃음).
*오디오클립 바로듣기 //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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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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