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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글에 빠져들면 실수하는 거예요 (G. 김정선 작가)

오은의 옹기종기 (84회) “김정선에게 가장 완벽한 오후 네 시의 풍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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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 옆에 “‘교정의 숙수’, ‘문장 수리공’” 김정선 작가님 나오셨습니다. (2019. 0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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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더 나빠지면 이 일도 더는 못하겠지만, 이하와 기형도를 떠올리니 늙는 것이 서럽지만은 않다. 다정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다만 누군가와 함께 늙어가면서 유정한 사람으로 기억되기만을 바랄 뿐. 그러고 보면 하늘의 이치를 모르고 늙어가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김정선 작가님의 에세이  『오후 네 시의 풍경』  중 한 구절을 읽어드렸습니다. 무정과 유정, 젊어서 죽은 시인들과 자신의 늙음을 살피는 글인데요. 교정 교열 전문가이자 단정하고 섬세한 문장을 쓰시는 김정선 작가님만이 할 수 있는 놀랍고, 감동적인 사유가 아닌가 생각했어요. 참 좋죠? 오늘 ‘책읽아웃’ <오은의 옹기종기>는요. 김정선 작가님과 함께 언어의 즐거움과 언어가 확장시키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 거예요. 세상을 깊게 바라보는 김정선 작가님의 이야기, 기대해주세요!

 

<인터뷰 - 김정선 편>

 

오은 : 먼저 김정선 작가님께 드리는 ‘deep & slow’는 이것입니다. "김정선에게 가장 완벽한 오후 네 시의 풍경은?" 교정자 너머에 있는 작가 김정선이라는 사람을 좀 더 알고 싶은 마음에서 드리는 질문입니다.

 

김정선 : 네.


오은 : 그럼 이제 김정선 작가님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편안하게 들어주세요. “작가. 전문 교정자. 의외로 지독한 덤벙이. 딱히 기억나는 별명이 없을 정도로 무섭도록 평범한 학생이었다. 모든 새로운 것들에 시큰둥해하는 성격이었으며 멍한 채로 지내기 일쑤여서 이것저것 잃어버리곤 했다. 양복 재단사였던 아버지가 양복값 대신 받아온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을 반복해 읽으며 놀았다. 대학 졸업 후에는 한 해를 일없이 놀다가 잡지 <한국인> 편집부에 입사했다. 그때가 1993년. 이후로 교정지와의 질긴 인연이 시작되었다. 출퇴근길 전철 안에서 주로 소설책을 읽었고, 토요일 퇴근길엔 점심 대신에 노점에서 도넛과 캔커피를 사서 신촌에 있는 단골 비디오방에 가 혼자 영화를 보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2년 가까이 아무 돈벌이 없이 두 편의 장편소설과 10여 편의 단편소설을 쓴 적도 있다. 결과는 신통치 않았고, 미련 없이 접었다. 유일한 장점은 내 한계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것이라 생각한다.


2000년부터는 외주 교정자로 문학과지성사, 생각의나무, 한겨레출판, 현암사, 시사인북 등에서 교정 교열 일을 했다. 교정은 평균 독자의 목소리를 내는 ‘게이트 키퍼’ 역할인데 존재하면서도 존재감이 없어야 하는 그 일이 김정선에게는 맞춤했다. 누군가의 기쁨과 슬픔, 피와 땀, 눈물이 고스란히 담긴 원고를 최소한 세 번 이상, 그것도 연이어 꼼꼼히 봐야 하는 직업 덕분에 덤벙대던 성격마저 바뀌었다.


그러다 어느 날 눈이 너무 아파 교정지를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교정 일을 쉬었는데 때마침 책 제안을 받았다. ‘동사’ 이야기를 써보면 어떻겠냐는 거였다. 그렇게 2015년 자신의 이름을 새긴 첫 책 『동사의 맛』  을 출간했다. 하지만 진짜 그의 첫 책은 따로 있다. 수년간 ‘오후 네 시의 풍경’이라고 이름 붙인 인터넷서점 블로그에 ‘후와’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했는데 그때 적은 글들을 추려 ‘임호부’라는 필명으로 『이모부의 서재』라는 책을 낸 적이 있다. 2013년의 일이다. 우울감에 심하게 빠졌을 때 영어를 배운 적이 있다. 아이처럼 말하고 돌아오면 우울감이 가셨다. 낯선 언어가 주는 자유와 평화가 좋아 아주 오래 영어학원에 다녔다.


누군가의 문장을 읽고 다시 써보는 취미가 있다. 김훈 소설을 읽을 때면 공연하게 접속 부사를 확인하게 된다. 여럿이 함께 있을 때면 혼자라고 느끼고, 마침내 혼자가 되면 비로소 혼자에서 벗어났다고 느낀다. SNS는 하지 않는다. 카톡 계정도 없다.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아직은 혼자 있을 때 마음이 편하다. 다시 태어난다면 책이나 문장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 저희가 지금까지 소개한 글 중에 가장 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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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선 : 정말 애쓰셨겠네요. 저 같은 사람을 이렇게까지 조사할 필요는 없었을 것 같은데 말이에요.(웃음)


오은 : 일단은 토요일 출근을 하셨던 세대라는 거죠?(웃음)


김정선 : 네, 특별히 할 일도 없었는데 출근을 하게 했는데요. 당시 국장님이 꼭 짜장면을 먹고 퇴근하게 하곤 했었어요. 처음엔 좀 따라 가다가 나중에는 약속 있다고 해서 나왔죠. 도넛과 캔커피를 사 들고 서강대 근처에 있는 비디오방에서 이런 저런 영화를 보고 집에 갔어요. 그게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오은 : 작가님의 전작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동사의 맛』  등을 읽으면서도 느낀 건데요. 문장이 정말 좋았어요. 김정선이라는 사람을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 사람이 다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라 좋아했거든요. 소설을 쓰신 적이 있다고 하는데 다시 써볼 생각은 없으신가요?

 

김정선 :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없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계획은 없습니다.


오은 : 편집자과 교정교열자가 별개로 존재한다고 느끼지 못했는데요. 이 둘의 차이가 어떤 것인지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김정선 : 예전에는 편집자 책상에 컴퓨터도 없었고요. 손으로 풀칠하고, 칼질해서 인화지를 가지고 책을 만들었어요. 아무래도 시간도, 품도 많이 들었겠죠. 그때 편집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그렇게 책 만들고, 그 과정에서 교정교열을 잘 보는 것이었을 텐데요. 수작업에서 해방된 후에 ‘에디터’가 생겨날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을 해요. 책을 만들기 위해 들이던 시간을 기획이나 저자 관리에 쓸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그 시간을 지나면서 교정교열에만 매달려 있어서는 편집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렸죠. 그때부터 교정교열을 외주로 돌리는 경향이 점점 생기게 된 것 같아요. 그래도 편집자라면 기본적인 교정교열 능력은 갖고 있어야겠지만요.


오은 : 눈이 나빠져서 잠시 쉬던 때에  『동사의 맛』을  쓰셨잖아요. 글 쓸 때도 눈이 피로할 텐데 그때는 좀 괜찮으셨어요?


김정선 : 처음부터 책을 써야지, 했던 게 아니라서요. 당시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도 있고 해서 도서관에 가면 가방을 두고는 주로 주변을 많이 걸어 다녔어요. 몇 주 그렇게 하며 마음을 다스렸죠. 책은 도서관에서 종이 위에 펜으로 쓴 것을 조금씩 집에 가져가서 컴퓨터로 옮기고 그랬는데요. 그렇게 쓴 건 눈에 큰 피로를 주진 않더라고요.


오은 : ‘임호부’라는 필명으로  『이모부의 서재』 라는 책을 내셨잖아요. 이 책 아직도 시중에 있는 거죠?


김정선 : 친구가 독립출판물 내듯 뚝딱뚝딱 만든 건데 출판등록을 하는 바람에 상업출판 쪽에서 팔리고 있는 것뿐이고요. 조악한 책이에요. 절판을 하라고 얘기를 해도 고집을 부리면서 계속 유지를 하고 있네요.


오은 : 이번 산문집 제목이  『오후 네 시의 풍경』 이잖아요. 작가님에게 오후 네 시가 어떤 시간인지 여쭤보고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김정선 : 이도 저도 아닌 시간. 어색한 시간이기도 하고요. 의외로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한테도 그 시간은 굉장히 고요한 시간이기도 하겠더라고요. 퇴근 후에는 그 이후의 일이 기다리고 있을 테고요. 출근해서 점심 먹고 일 처리를 할 때까지도 정신이 없는데 그 무렵이 가장 고요한 시간 같기도 해요. 개인적으로는 늘 어딘가 다른 삶으로 도망치고 싶은 욕구 같은 게 생기는 시간이 오후 네 시예요.


오은 : 이제는 저자 혹은 작가라는 호칭도 종종 들으실 것 같은데요. 교정교열을 하다가 내 이름으로 나오는 책을 갖게 되고, 행사도 하고 계시잖아요. 어떠세요?


김정선 : 아직도 어색해요. 이게 약속은 아닌데, 편집자들이 아무리 어려도 책을 낸 번역자나 저자는 ‘선생님’이라고 부르고요. 같이 일하는 사람, 저희 같은 사람은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그냥 ‘선배님’이나 ‘아무개 씨’라고 부르지 선생님이라고 부르진 않거든요. 선배님이나 이모부님으로 불리다가 갑자기 작가님, 선생님이라는 말을 들으니까 좀 어색해요. 물론 같은 사람에게 듣는 건 아니지만요. 아직도 저한테 맞는 호칭인 것 같지가 않고 그렇습니다.

 
오은 : 제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말놀이예요. 언어의 뉘앙스를 찾아내고 어떤 게 말맛이 더 있을까 고민하는 게 제 역할 중 하나거든요. 그래서 김정선 작가님의 글을 봤을 때 단어 하나도 허투루 보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사의 맛』  출간 이후에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 제의를 해왔을 것 같아요.


김정선 :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질문해주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제안을 받은 적이 없어요.(웃음) 그냥 유유 출판사 대표님이  『동사의 맛』  을 반응이 나쁘지 않으니까 명사도 쓰고, 부사도 써야 하지 않겠냐고 하신 적은 있고요.


오은 : 부사는 제가 쓸래요!(웃음)


김정선 : 그러니까요.(웃음) 제가 그렇게 말씀을 드렸어요. 교정교열자가 동사를 썼으면 시인이 ‘부사의 힘’을 쓸 수도 있는 거잖아요. 제가  『동사의 맛』  을 썼던 건 활용형 때문이었거든요. 동사와 형용사라는 용언은 기본형과 활용형을 갖고 있는데 이게 매번 알맞게 쓰기가 쉽지 않은 데다가 어디 물어보기도 그렇고 검색해도 잘 안 나오는 거라서요. 이걸 써놓으면 제가 일할 때도 필요하지만 이쪽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참고하실 수 있겠다 생각했던 거예요. 동사를 많이 알아서 쓴 건 아니니까 그 뒤에 제안이 왔어도 부사, 명사에 대해 쓸 계제는 아닌데요. 다행히 제안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


오은 : 『오후 네 시의 풍경』  의 교정교열은 직접 보지 않으셨죠?


김정선 : 네, 포도밭 출판사 대표님이 보시고 제가 교차 교정을 본 셈이에요.


오은 : 첫 글이 ‘탈장’ 이야기예요. 너무 센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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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선 : 이전까지 낸 책들은 제가 거의 편집을 해서 보냈어요. 제목도 정하고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냥 꼭지 별로 묶인 원고 뭉텅이를 편집자에게 드렸죠. 어떻게 편집을 해주실지 저도 궁금했고요. 순서는 어쨌든 편집자의 몫이니까요. 저도 나중에 확인을 했지만 실은 궁금했어요. 왜 탈장 원고가 제일 처음으로 갔을까, 하고요. 읽으시는 분들이 부담을 느끼실까 걱정은 했지만 저도 나쁘다고 생각은 안 했거든요. 초등학교 때부터 군대에서 마지막 수술을 받고 고칠 때까지 어쨌든 제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제 인격이 향상되는 전 기간을 같이 했던 증상이고요. 제가 제 삶을 돌아볼 때 가장 오랜 기간 저와 함께했던 병이기도 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만족스러웠어요.


오은 : 책에 수록된 에세이 가운데 특히 애정을 갖고 쓴 글이 있을까요?


김정선 : 짧은 글인데요. 「신발 한 짝」이라는 꼭지가 있어요. 워낙 어릴 때부터 뭘 잘 잃어버렸어요. 신발주머니, 장갑 같은 걸 잃어버려서 어머니께 걱정을 많이 끼쳤는데요. 그날도 학교를 파하고 집에 와서 혹시나 혼날까봐 다 점검을 했어요. 신발주머니도 있고, 다 있다, 하면서 안절부절 못하고 그랬겠죠.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수돗가에 있던 어머니가 저를 아래 위로 보시더니 “신발 한 짝 어디있냐?”고 묻는 거예요. 저는 그 신발 한 짝을 어디서 잃어버렸는지도 모른 채로 집에 올 정도로 좀 자기 몽상에 빠져있었다고 할까요? 책에도 썼지만 가슴 졸이면서 반복적으로 그런 일을 겪으니까 초등학교 3학년짜리가 세상에 내 것이라는 게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던 거예요.


오은 : 내 것이 있으면 또 챙겨야 하니까요.


김정선 : 그렇죠. 초등학교 3학년이면 한창 자기 것을 갖는 재미에 빠질 나이잖아요. 그런데 내 것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초등학교 3학년이라니, 그 인생은 어땠겠어요. 이제는 성인이 되고, 중년이 될 때까지 큰 무리 없이 살아왔지만요. 만약 그때의 저를 만나서 ‘그냥 너는 그대로 살아도 돼, 다 잃어버려도 돼. 심지어 집도 잃어버려도 되고, 가족도 잃어버려도 돼. 너만 안 잃어버린 채로 떠돌며 살아도 충분해.’라고 얘기해줄 수 있는 삶을 살아온 건 아니에요. 그래서 좀 민망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그렇죠. 왠지 치사한 삶을 산 어른 같달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늘 그때의 제가 떠오르곤 합니다.


오은 : 작가 김정선에게 교정교열자 김정선이 영향을 주나요? 방해를 할 때가 있을 것도 같거든요.


김정선 : 방해를 안 받을 수는 없겠죠. 직업 삼아 교정 일을 하기 전에도 끼적끼적 글을 써서인지 다행히 교정 보던 습관이 글을 쓸 때 매번 부딪치지는 않는데요. 아무래도 그걸 몰랐을 때와 다르긴 한 것 같아요. 초벌 개념이 없어졌어요. 한 문단을 쓰면 그걸 재교 정도 수준으로 완벽하게 해놓고 다음 문단을 쓰는데요. 다음 문단을 쓸 때 또 앞 문단까지 계속 반복해서 읽으니까요. 별로 길지 않은 원고를 쓰는데도 다 쓰고 나면 저는 거의 고칠 수가 없을 정도가 돼요. 완전히 눈에 익고 해서요. 이건 비효율적일 수도 있어요. 초벌 원고를 써두고 시간이 지난 뒤에 보면 새로운 게 보여서 고칠 수 있을 텐데 쓰는 동시에 이 작업을 병행해 하려고 하니까요. 글 쓰는 사람한테는 안 좋은 습관이긴 하겠네요.


오은 : 작가님의 <한겨레21> 인터뷰 중 아주 인상적인 이야기가 있었어요. “규칙을 잘 지키는 문장을 보면 진부하고 틀에 박힌 느낌도 든다. 규칙 안에 글을 가두면 나만의 문장이 안 나온다. 이게 딜레마다.”라고 하셨는데요.


김정선 : 글을 쓰면서 직면하는 딜레마는 나만의 기쁨, 나만의 슬픔, 나만의 아픔, 나만의 의견을 표현하는데 모두에게 통용되는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이미 번역이죠. 나의 아픔을 모두에게 통용되는 언어로 번역해내야 하니까요. 이럴 때 ‘나만의 세계가 세상에 어디 있어?’라면서 글을 쓰면 신문 사설 같은 글이 되겠죠. 거기엔 개인적인 얘기가 전혀 없으니까요. 반대로 ‘글이란 나를 표현하는 거니까 다른 사람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문장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표현하겠어.’라고 할 수도 있잖아요. 대개 학교 다니면서 밑줄을 긋거나 감동 받는 글은 문법에 딱 맞게 쓴 문장이라기보다 지금껏 못 봤던 표현들, 표현되고 나니까 가능하다는 걸 알게 하는 표현들인 경우에요. 기존의 규칙이나 문법 체계를 극한까지 밀고 가서 어떤 때는 좀 넘어서기도 한 표현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요. 규칙에만 신경 쓴다는 건 사실 글쓰기에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요.


오은 : 김정선 작가님이 생각하는 좋은 글이란 어떤 걸까요?


김정선 : 좋은 글, 나쁜 글을 딱히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요. 이 사람만 쓸 수 있는 글이겠다, 싶은 표현과 통찰을 갖고 있는 글이 좋은 글이 아닐까 싶어요. 그러나 교정 일이라는 게 어떤 딜레마가 있느냐면, 교정을 하면서 글이 재미있어서 빠져들면 제가 뭔가 실수를 하고 있다는 거거든요. 무슨 내용인지 빠져들지 않고 일을 하면 안심이 되죠. 그러다 나중에 책이 나와서 사람들에게 회자 되면 내가 봤던 책이 그런 내용이었구나, 하고 뒤늦게 알게 될 때도 있어요.


오은 : 김정선 작가님이 일상 속에서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이 언제인지 궁금해요.


김정선 : 얼마 전에 오랜만에 김치를 담갔어요. 오이소박이, 부추 김치, 깍두기를 담갔는데 마침 다 끝나니까 오후 네 시 무렵이더라고요. 정리를 하고, 오랜만에 사진도 찍어두고, 김치는 익히려고 밖에 둔 다음 방에 대자로 누웠는데 문득 ‘그렇지, 이런 게 행복이겠구나’ 싶었어요.


오은 : 마지막으로 deep & slow 질문, “김정선에게 가장 완벽한 오후 네 시의 풍경은?”에 대한 답을 들어볼게요.


김정선 : 오늘 녹음이 또 공교롭게 오후 네 시에 진행이 됐는데요. 하다 보니 오늘 오후 네 시가 저한테는 가장 완벽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삶으로 훌쩍, 도망가듯 가서 재미있게 놀고 다시 나의 원래 삶으로 돌아가는 느낌 때문에요. 제게 완벽한 오후 네 시를 선물해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오은 : 정말 감사해요. 마지막으로 저희 <책읽아웃> 청취자 분들께 인사 부탁드려요.


김정선 : 밖에서 보기에는 녹음 부스가 작아 보였는데 와서 보니 안 그래요. 마치 겉으로 보기에는 거대해 보이지 않아도 알고 보면 품이 넓은 사람처럼 그런 느낌이에요. 정말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디오클립 바로듣기 //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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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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