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특집] 소설가, 만화가, 출판인이 꼽은 '최고의 그림책'
<월간 채널예스> 2019년 5월호
작가, 만화가, 출판인 8인이 꼽은 내 생애 최고의 그림책. (2019. 05. 17)
거짓말 같은 이야기 / 강경수
좋은 그림책은 볼 때마다 색이 달라지거나 혹은 진해진다. 나에게 『거짓말 같은 이야기』 는 채도 99% 같은 책이다. 평범한 꼬마 솔이는 가혹하게 살아가는 지구촌 친구들을 만나면서 놀라고 슬픈 나머지 묻는다. 거짓말이지? 책을 보는 사람들도 바란다. 차라리 거짓말이길.. 세상에 벌어지는 반목과 갈등의 끔찍함을 순수한 아이들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준 이 책은 라가치상 수상작이니 작가에게 특별하겠지만, 그림책을 만드는 내게도 아이들을 위해 정녕 더 나은 가치를 그림책에 담아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준 고마운 책이다. 끝으로 5월은 우리 모두 거짓말처럼 행복하기를. 채도 100%로 소망한다. (출판인 민찬기)
에이프릴의 고양이 / 클레어 터레이 뉴베리
내 인생은 BC와 AC, 두 시기로 나뉜다. 고양이 이전과 이후다. 10여년 전 이른 봄날 여의도 공원에서 떨고 있던 아기 고양이가 나를 선택해서 “냐아앙!” 하고 지목한 뒤로 삶은 전과 같지 않다. 온 세상의 작고 연약하고 보드라운 생명들을 애틋이 여기게 되었으며, 느리고 무용하고 헐렁한 시간을 아끼는 법을 배웠다. 보송한 털과 옹송그린 앞발 같은 묘사가 탁월한 그림책인 『에이프릴의 고양이』 는 반려동물을 받아들이며 생활의 영역과 마음의 크기를 더 확장하게 되는 가족의 이야기다. 정신을 차려 보니 나도 그렇게 되었다. 고양이는 네 마리로 늘어났고, 함께 똥을 치우며 같은 성분의 털을 옷에 묻히고 다니는 동거인도 한 사람 생겼으니까. (작가 황선우)
나의 엉뚱한 머리카락 연구 / 이고은
이 책은 머리카락을 보면서 생각할 수 있는 갖가지 것들에 대한 관찰 보고서입니다. 작가 자신의 머리카락에서 시작된 시선은 가족의 머리카락을 거쳐 동네 사람들의 머리카락으로 뻗어 나갑니다.
침대에 누워 머리카락 장난을 치다가 몸을 일으켜 앉아 가족들의 머리카락을 관찰하고 급기야 밖으로 뛰어나가는 작가의 모습을 상상하게 됩니다. 저는 ‘좋은 그림책은 어린이에게 교훈을 주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의 저주에 씌어있는 사람입니다. 이 저주가 너무 강한지 도저히 그렇지 않은 그림책을 상상해 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자유로운 그림책을 만드는 작가를 보면 무척 부러우면서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지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꼭!’ 하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최근 작가는 [책상, 잘 쓰는 법]이라는 만만치 않게 흥미로운 책을 펴냈습니다. 모두가 사용하는 작은 책상 위에서 작가는 또 얼마나 넓은 세상을 발견하고 연구했을까요? (만화가 수신지)
지각대장 존 / 존 버닝햄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학교에 가려고 집에 나섰습니다" 로 시작되는 이 그림책은 등교길에서 악어와 사자와 거대한 파도를 만나지만 선생님은 아이의 말을 믿지 않고 반성문을 쓰게 하는 내용이다. 이 책은 동일한 이름과 패턴의 반복을 특징으로 한다. 이 때문에 나는 집중력 향상을 주제로 하는 강연에서 이 책을 어른들에게 큰 소리로 읽어주고, 옆 사람과 들은 내용을 서로 이야기 해보라고 하는데, 놀랍게도 저마다 다른 내용을 말하고 주인공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의 순간 집중력이 얼마나 약한지를 스스로 자각하는 순간이고, 이 책을 읽어주는 나의 노림수다. 주위가 산만한 아이에게 엄마가 활용해도 좋을 방법이다. (작가 윤용인)
꽃들에게 희망을
거대한 애벌레 기둥. 그것이 내가 이 책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이미지다. 꽤 많은 사람들의 추억 속에 자리잡고 있을 『꽃들에게 희망을』 이야기다. 고전이라면 고전일 이 그림책은 호랑 애벌레와 노랑 애벌레의 삶으로 인간의 삶을 은유하는 책이다. 맹목적으로 살아가는 다른 애벌레들을 보며 ‘틀림없이 그 이상의 것이 있을 거야.’라고 말하는 두 애벌레는 결국 아름다운 나비가 된다. 이 책을 처음 읽었던 초등학생 시절 나는 나비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겠지만, 지금 우리는 나비가 존재한다는 희망마저 잃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조금 슬퍼진다. 그 무수한 기둥들조차 증발되어가는 듯한 시대에 그들이 날아오르는 모습은 왠지 뭉클하고, 씁쓸하다. (작가, 북튜버 김겨울)
프레드릭 / 레오 리오니
‘우리에겐 낭만이 필요하다' 내가 자주 이야기하는 문장이다. 프레드릭은 왜 우리에게 낭만이 필요한지에 대해 담백한 콜라주 기법으로 깊이 있게 담아낸 그림책이다. 이 책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너무도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려준다. 추운 겨울을 잘 지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식량이기보다 낭만이라고. 겨우내 따스한 햇볕과 봄의 소망을 잊지 않는 것이라고. 나는 오히려 시린 날들이 많아 낭만주의자가 되었다. 그래서 이 짧은 그림책이 그리도 마음에 닿았나. 오늘도 다짐한다. 삶에 무게에 여유가 없을 우리들을 위해 프레드릭이 되겠노라고. (작가 최혜지)
푸른 알약 / 프레데렉 페테르스
사랑에 대한, 사랑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주는 책을 꼽으라고 하면 언제나 가장 먼저 떠오르는 책이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만화가 프레데릭은 한 파티에서 우연히 카티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관계가 진전되기 시작할 무렵, 프레데렉은 그녀의 충격적인 고백에 맞닥뜨리게 되는데, 바로 싱글맘인 그녀와 그녀의 아들이 모두 HIV보균자라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러거나 말거나 그들은 지극히 보편적인 연애를 이어나간다. 질병 앞에서, 크고 작은 고난 앞에서 번번이 좌절하면서도 금세 털고 일어나 담담히 현실을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어쩌면 한없이 일상에 가까운 어떤 온도를. (소설가 박상영)
프레드릭 / 레오 리오니
다시 꺼내본 책은 많이 낯설었다. 오래 전, 큰아이(아마 두세 살쯤이었나)를 앞에 두고 아이가 잠들기를 간절히 바라며 읽어준 『프레드릭』 의 주인공은 이름 귀여운 새앙쥐가 아니라 그저 들쥐였다. "프레드릭, 너는 시인이야!" "나도 알아." 이렇게 딱 두 문장만 떠올랐는데, ‘햇살’과 ‘색깔’과 ‘이야기’를 모은 프레드릭 주위에는, 그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는 동료 들쥐 네 마리가 늘 함께 있었다. 그들은 땀 흘려 모은 먹이를 내남없이 나누어 먹고, '햇살'과 '색깔'과 '이야기'를 내남없이 나누어 가졌으리라. 문득, 시인과 멋진 친구들처럼, 내 아이가 멋진 시인이 되어도 좋고, 시인의 다정한 친구가 되어도 좋겠다 싶었다. (출판인 박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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