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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심원들> 낮은 데로 임하소서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함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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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사람, 8번 배심원 남우(박형식)는 생각이 다르다. 피고인이 의수를 꼈다고 해도 무거운 망치를 휘둘러 노모의 머리를 정확히 가격한다는 게 이치에 맞지 않아 보여서다. (2019. 05.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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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배심원들>의 한 장면

 

 

<배심원들>은 2008년의 대한민국 첫 국민참여재판(무작위로 선정된 배심원들이 형사 재판에 참여하여 유무죄 평결을 내리는 제도)을 배경으로 한다. 아들이 노모를 살해한 사건의 양형만 남은 상태에서 8명의 보통 사람들이 배심원단(법률 전문가가 아닌 일반 국민 가운데 선출되어 심리나 재판에 참여하고 사실인정에 대하여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으로 지목된다. 영화는 배심원들이 판사의 판결에 단순히 거수기 역할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좀 더 공정한 판결을 위해 어떻게 유무죄를 다투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발단은 죄를 인정했던 피고인이 양형 판결을 앞두고 죄가 없다며 혐의를 부인하면서부터다. 재판장 준겸(문소리)이 이끄는 재판단과 변호인은 굳이 혐의를 다툴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고, 반강제적으로 끌려온(?) 배심원들도 자기 일이 있는 마당에 주어진 시간을 넘기면서까지 배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픈 생각이 없다. 

 

단 한 사람, 8번 배심원 남우(박형식)는 생각이 다르다. 피고인이 의수를 꼈다고 해도 무거운 망치를 휘둘러 노모의 머리를 정확히 가격한다는 게 이치에 맞지 않아 보여서다. 이에 남우가 모의실험을 제안하자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넘쳐난다.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모의실험 결과, 배심원들 사이에서는 기존의 유죄 판결에 관한 의심이 피어난다. 남우 왈, “다들 유죄라고 확신할 수 있어요? 난 모르겠어요.”

 

남우는 손대는 사업마다 실패하여 회생이 절실한 청년 사업가다. 계급 피라미드의 낮은 자리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평범한 인물이란 얘기다. 남우의 제안에 시큰둥하다가 모의실험 결과 후 피고인에게 적용된 혐의에 문제가 있을 거라 합리적 의심을 하는 이들도 모두 남우와 같은 계급의 이들이다. 공대 졸업 후 삼수 끝에 법대에 들어간 윤그림(백수장), 10년간 남편을 보살펴온 요양보호사 양춘옥(김미경), 취업준비 중인 대학생 오수정(조수향)이다.

 

그에 반해 “심판을 도와야지, 왜 범인을 잡으려 들어요.” 높으신 판사의 판결에 왜 문제를 제기하냐며 불만을 드러내는 이는 대기업 회장님을 모시는 비서실장 최영재(조한철)와 그런 영재를 선망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중학생 딸이 기다리는 집으로 빠른 귀가를 바라는 강남엄마 변상미(서정연)이다. 배심원단 간의 계급 차이를 두고 전선이 형성된 배경으로 보건대 <배심원단>의 의도는 한마디로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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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배심원들>의 한 장면

 

 

준겸은 국민참여재판 배심원으로 선정된 이들에게 재판 참여 전 중요한 질문들을 던진다. 질문 하나, ‘“피고인이 유죄일 가능성 반, 무죄일 가능성 반” 유죄입니까? 무죄입니까?’, 질문 둘, ‘“열 명의 범인을 풀어주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면 안 된다” 찬성합니까? 반대합니까?’ 이 글을 읽는 <채널예스> 독자의 답변은 무엇인가요? 그렇다, 답 하나, 유무죄 반반일 때 무죄의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답 둘 어떻게 해서든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게 법의 원리고 원칙이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에는 돈이 있으면 무죄로 풀려나고 돈이 없을 경우 유죄로 처벌받는 ‘유전무죄 무전유죄 有錢無罪 無錢有罪’의 말이 있을 정도로 정의의 여신 디케의 저울 추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남자와 여자 등등의 계급과 성별과 강자와 약자의 균형 사이에서 기울기가 심하게 한쪽으로 치우칠 정도로 불신을 받고 있다. <배심원들>은 그런 불평등한 배경하에서 법 원리의 균형추를 가운데로 맞추는 이들과 그 배경에 주목한다.

 

<배심원들>의 홍승완 감독 얘기다.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함을 그렸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인생과 경험이 훌륭한 것이라고 위로받고 뿌듯해 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감독의 변이 상징적으로 반영된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한다. 디케상을 올려다보던 카메라가 시선을 낮춰 그 아래를 지나가던 청소 노동자(혹은 진짜 정의의 신!)를 비춘다. 낮은 데를 굽어보는 태도야말로 우리 법정에, 더 넓게는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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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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