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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7화 : 갑자기 불어 닥친 철도 건설 바람을 타고
『마터 2-10』 연재
언제부터인가 철도 공사판에서 죽은 것들이 모여들어 그 마을을 차지하고 머물러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2019. 05. 01)
초기에는 경부철도주식회사와 청부 계약을 맺은 한국의 토목건축회사들이 노동 인력을 조달했다. 갑자기 불어 닥친 철도 건설 바람을 타고 십여 개의 토건회사들이 설립되었다. 이들 대개가 대한제국 정부의 고위직 벼슬아치들을 중역으로 내세웠다. 철도건설 공사에 필요한 노동 인력뿐만 아니라 목재 석재 석탄 노동도구에서부터 인부들의 일상에 필요한 연초나 쌀 반찬 등에 이르기까지 공사장에서 필요한 모든 물품을 공급했다. 토건회사는 본사에 총무와 사무원들을 두고 그 아래 현장총무, 패장, 십장, 역부를 두었고 분사무소 지부는 도사무와 사원들 그리고 위와 같은 현장의 노동 관리자들을 두었다. 일본회사들은 처음에 한국회사들과 동업하는 형태를 취했으나 러시아와 전쟁 중에 경부 경의 철도의 속성을 재촉하면서 기술과 경험이 부족한 한국회사들을 제치고 대부분 지역의 공사를 주도하게 되었다. 한국 측 토건회사들은 모두 몰락하고 노동자 관리 조직만이 일본 회사에 흡수되어 노동자를 모집하고 감독하는 역할만 담당하게 되었다. 초기의 공사에서는 그래도 먹고 살려고 자발적으로 참여한 인부들이 대부분이어서 충돌이 발생한댔자 저임금이 원인이었다. 그러나 공사가 중반기로 넘어가면서 인력 조달이 강제동원으로 바뀌자 상황이 달라졌다.
“내가 아전 중에 잘 아는 이가 있어서 통사정을 했지. 징발된 논 값을 시세의 삼분지 일 값으로 쳐서 보상을 받았어. 절반은 그 자에게 교섭비용으로 들어갔네. 그러니 어쩌겠냐구. 돌아가는 시국이 농사로 먹고살기는 이미 틀려버린 세상이라 밭뙈기마저 팔아버렸어. 다행이 철도변에서 멀리 떨어진 비탈에 있던 것이라 제값을 받은 셈이여. 전국에서 가산을 탈취당하고 거리에 나앉은 이가 숱했지만 우리는 그래두 운이 좋았다네. 공사장 분소에 찾아가 패장에게 닭 네 마리를 주고 십장 자리를 얻었다네. 그리고 이윤을 반분키로 하고 밥 달구지를 들이기로 했네. 초반에는 일꾼 역부가 거의 조선 사람들이라 밥 국에 김치면 되어서 마누라도 신이 나서 일을 해냈지. 하청 맡은 조선회사들이 직접 지정한 사람들이 음식과 물건을 댔는데 말하자면 나두 패장의 뒷배가 있었으니 그 중 하나인 셈이었지. 게다가 나는 십장 중에 그래도 문자 속을 알 만한 사람이거든. 일본 말이야 못한다손 치더라도 한자는 읽으니 문서를 읽을 수 있었단 말이지. 패장까지는 못 올라갔어도 십장 중에서는 오십 부장 정도는 되는 셈이었네. 논을 헐값에 빼앗겼지만 일거릴 잡았으니 그나마 덜 분했지. 헌데 분소에서 우리 사람이 하나 둘씩 자취를 감추더니 모두 일본 놈으로 바뀌데. 분소장에서 패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일본 놈들로 바뀐 거야. 니미럴 나도 나이가 많다구 그만두라구 그래. 한두 달 사이에 일본 인부들이 많이 들어왔네. 뭐 지들 나라에서 철도 공사가 거지반 끝나갖구 구미 전체가 이동해 왔다구 그러데. 하루아침에 물 좋던 시절이 끝나버렸지.”
민 십장은 농사를 때려 치웠고 땅뙈기도 남은 게 없으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게 되었다. 부부가 아이들을 데리고 시흥 장터로 나가 판자로 가건물을 짓고 포장 치고 국밥 장수로 나섰다. 길바닥에 나앉으니 전국의 소문이 흉흉하게 들려왔다. 일본 측은 철도 공사장을 벌인 고장마다 관아에 찾아가 거의 망해버린 대한제국 관리를 겁박하여 침목과 석재의 조달을 요청했고 조선인 노동력의 울력 동원을 각 지역 군현에 요구했다. 소와 말을 수송에 쓴다고 징발했고 닭과 돼지와 양곡을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탈취했다. 경부 경의 철도가 지나는 연변의 고장들뿐 아니라 거기서 수백리 떨어진 곳까지 찾아가 장정들을 인부로 데려갔다. 다리나 터널을 짓는 공사장 부근에선 백여 명에서 수천 명에 이르기까지 동원 되었고 기한은 육 개월 이상이 보통이었다. 조선인의 노력 동원에는 명절 제사도 가리지 않았으며 농번기라고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수확기에 힘을 쓸 만한 마을 장정들을 모두 데려가는 바람에 곳곳마다 폐농지가 되었다.
철도공사의 대부분이 전쟁 중에 일본정부가 하루라도 빨리 완공하려고 서두르는 가운데 진행되었기 때문에 일본인 감독자들의 독촉과 성화가 불 같았다. 차츰 난폭해진 그들은 칼과 총으로 무장하고 조선인 노동자를 소나 개처럼 부렸다. 인부들의 동작이 조금만 느려져도 그들은 사정없이 곤봉으로 때리고 쓰러지면 발길질을 했다. 동원된 조선 양민들은 공사장마다 일본군 일개소대의 감시 아래 밤낮으로 일했다. 여러 고장에서 충돌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군인들은 물론이고 민간인인 일본 공원이나 인부들도 함부로 조선인들을 살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칼이나 총은 고사하고 작업도구로 조선인 인부들을 때려죽이기도 했다. 작업 중에 시도 때도 없이 연초를 피우며 작업에 태만하다는 구실로 함께 있던 인부들을 총살한 곳도 있었다.
공사장 인근에 귀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민씨도 직접 본적이 있었다. 들판을 가로지르고 지나가는 나지막한 구릉지 아래로 터널 공사를 하던 때였다. 야간 조가 굴착을 하러 들어갔다가 남포를 터뜨린다고 모두 몰려나왔다. 이제 점화기를 누르기만 하면 천동 치듯 하는 폭파 소리가 들리고 굴혈 입구에서 돌과 먼지가 튀어 나오고 할 차례였다. 맨 끝에서 달려 나오던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잠깐 잠깐만, 안에 누가 있어요.”
기사는 피곤한 표정으로 일본어로 되물었다. 통역이 안에 누가 있다고 알려 주었다.
“어떤 바보가 일을 방해하는 거냐?”
기사가 화를 내며 일어나서 인부들에게로 쫓아갔고 통역도 그 뒤를 얼른 따라갔다.
“안에서 누가 살려달라 소리를 질렀다구.”
하면서 그는 나란히 섰던 동료에게 물었다.
“자네두 들었지?”
“어머니 하는 것 같든데.”
통역이 전달하자 일본인 기사가 화를 냈다.
“오모니라고 불렀다면 일하기 싫은 놈이 저 안에 있는 거다.”
그가 십장들에게 가서 당장 잡아내 오라고 일렀다. 민씨가 다른 십장 두엇을 데리고 터널 안으로 들어갔다. 솜뭉치에 석유 묻힌 횃불을 쳐들고 들어가는데 거친 흙벽과 군데군데 바위가 튀어나와 있어서 조심해서 걸어가야 했다. 마지막으로 앞이 딱 막힌 공사 지점에 이르렀지만 사람 비슷한 자취도 눈에 띄지 않았다.
“뭐야 아무것두 없잖아.”
“배고파서 헛소리를 들은 게지.”
그들은 맥이 풀려서 돌아서는데 민 십장이 무슨 소리인가를 들었다. 분명히 바로 뒷전에서 살려주우, 좀 살려주우, 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그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에는 다른 이들도 그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민씨가 돌아서며 외쳤다.
“누구냐?”
횃불을 치켜들고 이리저리 비추어 보았지만 여전히 가로막고 있는 흙벽뿐이다. 그런데 그 흙벽 쪽에서 흐느끼는 사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먼저 뛰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세 사람은 넘어지고 고꾸라지며 간신히 굴을 빠져 나왔다. 그날 밤 공사는 물론 중단 되었다.
민씨의 아내 안양댁도 겪었던 일이다. 그녀는 공사판에 밥 달구지를 끌고 더운 날 추운 날 맑은 날 비오는 날도 가리지 않고 쫒아 다녔다. 일단 공사판이 정해지면 인근 마을로 가서 제철 푸성귀를 구입하여 김치도 담고 취사를 해서는 짝패가 된 쇠달구지 끄는 노인과 들길을 가곤 했다. 저녁참이 늦어진 어느 늦가을 녘에 해는 이미 지고 어둑어둑한데 진눈깨비까지 내렸다. 이런 날은 추위와 한기가 옷 속으로 스며들기 마련이었다. 노인은 앞에서 가볍게 혀를 차며 소를 재촉했고 안양댁은 밥찬을 싣고 달구지 뒤편에 다리를 늘어뜨리고 앉았다. 먼데서 누군가 달구지를 따라 걸어오는 게 보였다. 치마저고리에 머릿수건을 눌러쓴 모양이 보였다. 아따, 저 여편네 걸음이 무지 빠르기도 해라. 그렇게 생각하는데 어느 틈에 슬슬 다가와 달구지 옆으로 휘익 지나치는 게 아닌가. 그리고 힐끗 안양댁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아이구우 저게 뭣이야?”
소스라치게 놀라서 상반신을 내밀고 고개를 젖혀 달구지 앞을 보니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그리곤 돌아앉았는데 저 뒤에 다시 그 여편네가 걸어오고 있었다. 안양댁은 너무도 놀라서 노인을 불러 달구지를 멈추게 했고, 사정 얘기도 못한 채 옆에 자리를 좀 내주면 여기 앉아 가도 되느냐고 물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밥 달구지가 현장에 도착하자 인부들이 일렬로 모여들었고 국밥과 찬을 내기 시작했다. 밥 달구지는 열 대가 넘게 모여 있어서 배식은 한 시간 만에 뚝딱 끝이 났다. 남아있는 밥과 국과 찬을 정리 중인데 누군가 불쑥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밥 좀 주우.”
안양댁이 고개를 들어 보니 아까 그 여편네가 댓 발짝 앞에 서있었다. 때 묻은 무명 치마저고리에 흰 머릿수건을 쓴 바로 그 모습이었다. 안양댁은 외마디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그냥 주저앉고 말았다. 한참이나 지나서 정신이 돌아 일어나 앉으니 헛것은 온데간데없었다.
어느 마을은 칠백여 호나 사는 큰 동네였는데 일본 군대가 노력 동원을 하러 나가서 강간하고 살인을 저질러 주민들이 모두 달아난 뒤에 무인지경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철도 공사판에서 죽은 것들이 모여들어 그 마을을 차지하고 머물러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밤길이라도 걷다가 보면 집집마다 불이 켜져 있고 사람들이 두런대고 왁자하게 웃는 소리도 들리고 연기인지 안개인지 모를 허엽스레한 것이 초가지붕 위에 떠 있더라고 했다. 철도가 개통된 이후에도 그 마을은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고 어차피 인근 토지는 모두 징발되어 못 쓸 땅이 되어 버렸다. 그곳에는 몇 년 안 가서 간이역이 생기고 저탄소가 세워졌다.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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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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