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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5화 : 주인은 점원 일을 보는 조선 청년을 불렀다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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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만이 주인을 따라 용산에 갔을 때였다. 멀리 무지개 모양의 쇳덩이가 강 위에 걸린 게 보였다. 주인이 입을 벌리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백만에게 말해주었다. (2019. 0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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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주인은 점원 일을 보는 조선 청년을 불러 아버지에게 말했다. 얘가 당신 아들인가. 아이가 똑똑하니 내가 맡아서 잔심부름을 시키면 어떻겠는가. 돈은 많이 줄 수 없고 지금 닷 냥 주고 나중에 집으로 보낼 때 다시 닷 냥을 주겠다. 그리고 옷 입히고 밥 세 끼 먹여 주겠는데 어떠한가. 아버지는 그러잖아도 아이가 넷이나 되는 터에 머리가 다 큰 열 살 박이요 밥 식구 하나 줄이는 게 어디냐는 생각이 들었다. 천만이 백만이 십만이 아들 삼형제에 막내딸 막음이 하나를 두었는데 그가 차남이었던 것이다. 십 원도 큰돈이라는데 아들의 이름을 그렇게 지으면 어디선가 재부가 뚝딱 들어올 줄 알았던 모양이다. 장남 천만이는 벌써 열네 살이라 조금 있으면 장정 한몫을 할 만 했고, 십만이는 아직 일곱 살이었으니 더 먹여줘야 할 판이었지만 열 살짜리 차남 백만이가 세상 경험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그의 아버지는 생각했다. 더구나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이미 조선은 망하고 일본의 천하가 되어버리지 않았던가. 아버지는 차남 이백만의 머리를 한번 쓸어주고는 어려운 세상에 태어났으니 부지런해야 밥술이라도 먹게 된다고 한마디 해주고는 닷 냥을 받아 챙겨가지고 마포를 떠났다.


이백만은 그날부터 머리에 하찌마키를 두르고 상점 이름이 박힌 조끼를 입고 심부름을 했다. 배달도 다니고 물건을 나르고 청소하고 가게 문을 열고 차츰 물정을 알아가면서 점원의 조수로 손님도 상대하게 되었다. 간단한 일본말에서부터 일본 글을 읽기까지에 이르렀다. 일 년여가 지난 뒤에 이백만은 식구들과 집 생각이 나서 차츰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몇 달에 한 번씩 마포에 들렀는데 이듬해 봄에 그는 용기를 내어 집에 가고 싶다고 말을 꺼냈더니 아버지는 간단히 대답했다. 그래 고깃배나 타러 가자꾸나. 지산리로 돌아오니 생활고는 여전했고 지루하기는 마포 대처를 겪기 전보다 더욱 심해졌다. 겨우 한 해를 넘기고 그는 다시 바람난 촌색시처럼 인천 대처를 동경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고깃배가 인천항을 멀리 지날 때마다 어둠 속에 빛나는 불빛들을 바라보노라면 문득 바다로 뛰어들어 헤엄이라도 쳐서 건너가고 싶었다. 


 “내가 개화 세상엔 별의별 물건이 참 많다는 걸 알게 된 건 무엇보다도 그 기차 때문이다.” 


 “기차를 언제 첨 보셨는데요?”


 “마포 있을 때 첨 봤지.”


이백만이 주인을 따라 용산에 갔을 때였다. 멀리 무지개 모양의 쇳덩이가 강 위에 걸린 게 보였다. 주인이 입을 벌리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백만에게 말해주었다. 


 “저게 한강 철교다. 대단하지?”


일본은 서양처럼 문물이 발전한 나라라고 주인이 자랑하면서 저 다리가 칠년 전에 놓였고 재작년에는 부산에서 경성까지 오는 철도가 개통되었다고도 말했다. 그들은 삼개나루에서 배를 타고 돌아오기로 했는데, 그들이 나룻배에 올랐을 때에 엄청난 기적 소리를 내지르며 검은 쇳덩어리의 기관차가 다리 위를 지나갔다. 멀리서도 철로에 걸리는 바퀴 소리와 철교가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그게 말이야, 거시기니 쇳덩이가 바람처럼 가볍게 달려가다니! 말도 자전거도 인력거는 더욱이나 상대도 안 될 꺼다. 어찌나 빠르던지 고개를 숙였다가 들어보니 순식간에 지나가선 다리가 텅 비어 있더란 말이지.”


인천은 경성에서 출발한 기차가 닿는 종점이었다. 바다가 없었다면 기차는 더욱 앞으로 달려나갔을 터였다. 이백만이 인천에 와서 두어 달 동안 일본 여관에서 밥 붙이로 일하면서 별 재미를 못 보고 지내더니 하루는 부두에 나갔다. 고깃배가 들어와서 시끌벅적한 가운데 지나던 일본 사람이 뭐라고 뱃사람들에게 소리 지르고 있었다. 저 자식이 뭐라고 그러는 거냐면서 어부들은 조선말로 욕지거리를 내뱉는데 지나던 이백만이 말해 주었다.


 “그 고기 팔 거냐고 묻잖아요?” 


 “이거 상자떼기로 파는 거다. 한두 마리는 어물전 가서 사라구 해라.”


이백만이 일본인에게 그대로 얘기해 주었더니 그는 반기면서 두 상자를 사겠다고 말했다. 그가 가만히 넘겨다보니 이맘때면 임진강에 올라오는 황복이었다. 자기네 동네에서도 철이 되면 달곶이와 유도까지 올라가 황복을 잡으러 갔다. 한 철에만 있는 고기라 값이 비싸서 어부들은 한 마리만 회를 떠도 발발 떨며 먹었다. 이걸 팔면 돈이 얼만데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일본 사람이 즉석에서 현금을 주고 두 상자를 샀고 이백만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생선 상자를 어깨에 짊어졌다. 그는 이때에 일본인들이 특히 복어라면 환장한다는 걸 알았다. 열세 살 소년이 생선 상자를 포개어 메고 약간 비칠거리자 그는 고개를 흔들더니 한 상자를 자기가 옆구리에 끼고는 간단히 말했다. 


 “수고비는 줄 터이니 날 따라오너라.”


이백만은 그의 뒤를 따라갔고 부두에서 얼마 멀지 않은 뒷길에 있는 정미소에 이르렀다. 그가 도착하자 일본인 직원들과 공원들이 몰려나와서 상자를 들춰보며 환성을 질렀다. 


 “오늘 술 한 잔 거하게 먹겠네.” 

 

 “이게 그 바다 돼지고기라는 귀물이로구나.”


주인이 상자를 날라다 준 이백만을 손짓해 부르더니 동전 몇 개를 꺼냈다. 호떡을 다섯 개쯤 사 먹을 만한 돈이었지만 소년은 고개를 흔들며 받지 않았다. 일본사람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중얼거렸다.


 “머야 더 달라는 겐가?”


 이백만이 말했다.


 “아닙니다. 저는 여기서 일하고 싶어요.” 


 주인이 그의 아래위를 새삼 훑어보았다.


 “어째서 여기 취직하겠다는 거냐?”


 이백만은 잠깐 생각해 보고 나서 말했다.


 “음, 기술을 배우고자 합니다.” 


 주인은 싱긋 웃더니 말했다.


 “그러면 몇 년은 견습을 해야겠는데, 그 대신 일을 다 배울 때까지 급료는 없다.”


 “예 좋습니다. 잘 가르쳐 주십시오.” 


 “나는 야마자키다. 넌 이름이 뭐냐?”


이백만이 싹싹하게 대답했다. 


 “이백만이라구 합니다.”


그는 다시 일본어로 니햐쿠만이라고 말했더니 주위의 직원들이 모두들 크게 웃었다.


그가 강화도에서 왔다는 것과 이전에 경성 마포의 일본 상점에서 점원 보조로 견습 생활 한 일도 얘기했다. 그렇게 이백만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야마자키 정미소에 일자리를 얻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야말로 여러 기능공의 보조 일꾼으로 연장통 관리라든가 기름 치고 조이고 닦는 막일이나 정미 과정에서 일손이 바삐 필요한 지점을 돕는다든가 하는 일들이었다. 그는 공장에서 먹고 자며 생활했고 몇 달이 안 가서 모두들 그를 찾게 되었다. 누구든 그가 없으면 불평을 했고 왜 바쁠 때에 심부름을 보냈느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야마자키 정미소에는 기계 제작과 기술반이 따로 있어서 마모된 부속품을 깎아 만든다든가 피댓줄이며 여러 대의 발동기 들을 수시로 점검하고 손을 보았다. 모든 공정마다 기계장치가 조금씩 달라서 제분공장보다는 아직 규모가 작았지만 보통의 방앗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근대적 설비의 공장이었다. 인천항에 모여드는 쌀은 모두 이곳에 모인 십여 개의 정미소에서 도정했다. 야마자키 정미소는 이중에 셋 손가락에 드는 큰 공장이었다. 여기서 삼 년 동안에 이백만은 선반을 배웠다. 그의 손재주가 남달라서 섬세하고 정교한 부속품들을 깎고 다듬었다. 어느 날 그의 기술 스승이나 다름없던 요시다 상이 정미 공장을 떠나면서 그에게 중국집에 가서 우동이나 먹자고 그랬다. 마주 앉은 이백만에게 요시다가 말을 꺼냈다. 


 “내가 이번에 경인철도 선반부로 이직하게 되었는데 너 정도 솜씨라면 일본 애들도 드문 기술을 갖췄다. 나를 따라가지 않을 테냐?”


이백만은 예전부터 기차에 첫눈에 반했던 사람이라서 두말없이 야마자키 사장에게 찾아가 이직하겠음을 실토했고, 사장은 그를 아쉬워하면서도 내지에 기술 유학이라도 시켜줄 마음이었다면서 그에게 전별금까지 내주었다. 이백만은 정식직원은 아니고 아직은 예비 고원에 불과했지만 옛날 선비들이 과거 시험에 붙은 것처럼 의기양양했다. 무엇보다도 기관차의 구조와 엔진의 원리를 터득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는 퇴근 시간이 지나도록 거처로 돌아가지 않고 정비나 수리받으러 공작창에 들어온 기관차로 달려가 이곳저곳을 만지고 더듬으며 눈과 손으로 익혔다. 요시다 상은 대부분의 기관차가 미국에서 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본 공장에서는 기관차의 정비와 수리는 경험 많고 교육받은 기술자들이 맡고 우리는 차량 제작과 생산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백만은 열여덟 살 되던 해에 주안 염전에 다니던 인부의 딸에게 장가들었다. 그녀에게서는 늘 갯벌 냄새가 감돌았다. 몸집이 크고 목소리도 우람했던 그녀는 한쇠를 낳고 연이어 두 살 아래인 두쇠를 낳았고 아들을 잘 키웠다. 이백만이 철도국의 정식 고원이 된 것은 예비로 들어간 지 오년 뒤였고 그 즈음에 영등포 공작창에 자리를 잡았다. 이백만의 아내 주안댁은 첫 아이를 낳을 무렵부터 살집이 오르기 시작했다. 이백만이 정식 고원이 된 뒤에 철도관사 부근에 살던 때였는데 아내는 어쩐지 무엇을 먹어도 헛헛하다고 그가 공장에 출근한 뒤에 점심을 두 번씩이나 지어 먹곤 했다. 남편이 야근하는 날 저녁에 고구마 한 자루를 다 삶아서 뜨거울 때 몇 개씩 먹고는 다시 심야에 잠이 깨어 식은 고구마를 이십여 개나 먹고 나서 목 마친다고 가슴을 두드리며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뒤로 넘어갔다. 이백만이 돌아왔을 때 주안댁은 입을 벌린 채로 문지방에 다리를 얹고 큰댓자로 뻗어 있었다. 아이들은 졸지에 어미를 잃었다. 그렇듯 늘 굶주려 하는 병은 어디서 연유 되었는지 모르나 아마도 이백만이 살갑게 아내를 사랑해주지 않아서 외로움 때문에 그랬을 거라고 나중에 외동 누이 막음이가 말해 주었다. 이백만은 도무지 그 말이 무슨 소린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막음은 처음에 방직공장에 들어가겠다고 영등포 둘째 오빠네로 왔지만 시집도 안 가고 십년 동안 한쇠와 두쇠를 키우고 뒷바라지했다. 이막음은 나이 들어서 샛말로 이사 갔을 때 목수와 혼인했다. 이백만이 소소한 쇠붙이 공예에 취미를 붙이게 되었던 것도 아내를 일찍 여윈데 그 원인이 있을지도 모른다.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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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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