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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을 어떻게 쟁취하는가

영화 <더 페이버릿:여왕의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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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삼각형은 욕망에 따라 격렬하게 움직인다. 각자 좋아하는 것을 얻었다 한들, 서로 다른 욕망이 날뛰는 한 인간 존재의 슬픔은 조금도 작아지지 않는다. (2019. 03.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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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더 페이버릿>의 한 장면
 

밖은 똥 밭이고 안은 요란하다. 18세기 영국 스튜어트 왕조의 마지막 여왕의 궁은 그랬다. 21세기 서울도 마찬가지다. 밖은 미세먼지고 안은 여러 번민 거리로 시끄럽다. 영화 <더 페이버릿>은 시대극보다는 흥미로운 인간 탐구극이다. 궁중 의상도 고증을 통한 재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실내의 넘치는 치장과 화려함의 극치인 천장부터 카메라 앵글은 낮게 훑으며 사람을 짓누르는 프레임으로 ‘삶을 버거워하는 인간의 존재감’을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듯 왜소하게 그려냈다.
 
세 여성, 여왕 ‘앤’과 그의 조언자이자 사랑인 귀족 ‘사라’와 신분 상승을 노리는 몰락한 귀족 ‘애비게일’은 권력을 향한 욕망과 두뇌 게임에서 한시도 지치지 않는다. 권력을 유지하고 쟁취하는 담대함이 있는가 하면 잃을까봐 초조하고 절절매는 마음이 함께한다. 전략적으로 싸우고 물어뜯고 울고 웃고 난장판인 영국 궁정의 드라마는 잘 짜여진 각본과 이미지, 무엇보다 강한 여성 캐릭터로 흡인한다.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여왕 역의 올리비아 콜먼은 압도적이다. 통풍과 눈병에 시달리고 외로움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며 변덕과 신경질을 부리는 몸집 큰 어른아이 같은 여왕은 그러나 자신을 향한 두 여성의 파워 게임을 즐기는 전략가로서도 능숙하다. 개인의 양면성을 탁월하게 연기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전작과 달리 어떠한 난해함도 느껴지지 않는 영화를 만들었다. 그의 전작 <킬링 디어>를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글을 읽으며 다시 재구성해본다.
 
“<킬링 디어>가 엄밀한 의미에서 ‘비극’인 것은 이 인간 조건의 비극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특정한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바로 결함이라는 것. 그러므로 인간이 배울 만한 가장 소중한 것과 인간이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은 정확히 같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슬픔이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실수로 아버지를 죽인 의사에게 똑같은 아픔을 재현하려는 청년의 집요한 복수극과 초자연적인 현상을 보여준 <킬링 디어>가 묻는 인간다움과 권력을 둘러싼 현실적인 투쟁과 배신을 통해 확인하는 <더 페이버릿>의 인간다움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절망적 세계관과 닿아 있다. 마지막 장면, 앤 여왕의 권태로운 표정을 보라. 사랑을 잃었고, 새로운 사랑은 없다. 자신에게 아부하는 여성의 머리칼을 움켜잡으며 희망 없는 눈동자를 그저 뜬 채로 서 있을 뿐이다.
 
울트라 와이드 렌즈, 어안 렌즈로 궁의 실내며 야외를 가리지 않고 담아내는 빠른 속도의 영상은 과감하다. 광활한 궁을 꽉 채운 책들과 넘쳐나는 음식들, 소문으로만 들리는 전쟁의 긴박함과 상관없이 댄스나 오리경주 대회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귀족들의 행태는 우스꽝스럽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어떤 성찰과 자아 반성 없는 군상 속에서 각자 ‘좋아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은 또 얼마나 치열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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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더 페이버릿>의 한 장면


 

인간은 탐구할수록 기이하고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인간 자체가 결함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알 수 없는 도덕적 판단과 유리되어 살아가기 쉬운 존재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 것인지 욕망하고 그것을 요란하게 좇는 인간들. 감독은 그런 인간을 들여다본다.
 
여왕의 여자는 사라였다가 애비게일이었다가 아무도 아니게 된다. 사랑하는 순간과 아픔을 위로하는 순간의 진실만 있을 뿐이다. 각각 진실의 틈바구니에서 누군가는 좋아하는 것을 얻고 누군가는 빼앗겼다. 완전한 획득도 보장할 수 없는 세계 속에서 욕망만이 살아 있다.
 
영화는 8장으로 구성되었는데 각각의 제목이 감각적이다. 영화의 대사를 제목으로 끌어들였다. 2장 “헷갈려서 사고칠까봐 걱정이야”는 사라의 엄포이고, 7장 “그건 놔둬, 예쁘네”는 애비게일의 승리에 찬 표현이다. 마지막 장의 제목 “당신의 눈을 찌르는 꿈을 꿨어”는 버림받은 사라의 절규다.
 
관계의 삼각형은 욕망에 따라 격렬하게 움직인다. 각자 좋아하는 것을 얻었다 한들, 서로 다른 욕망이 날뛰는 한 인간 존재의 슬픔은 조금도 작아지지 않는다. <더 페이버릿>은 눈은 즐겁지만 마음이 몹시 슬픈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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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은숙(마음산책 대표)

<마음산책> 대표. 출판 편집자로 살 수밖에 없다고, 그런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일주일에 두세 번 영화관에서 마음을 세탁한다. 사소한 일에 감탄사 연발하여 ‘감동천하’란 별명을 얻었다. 몇 차례 예외를 빼고는 홀로 극장을 찾는다. 책 만들고 읽고 어루만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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