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음악 > 주목, 이주의 앨범
이달의 소녀가 비상을 위한 날갯짓을 시작했다. 「Hi high」에서 ‘밀당’을 이야기하던 철없는 10대 소녀들이 다양성, 인종, 여성을 주제로 입을 모아 함께 날아갈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여러 모습의 여성들이 다양한 장소에서 장벽을 부수고 춤을 추며 날아오르는 「Butterfly」의 뮤직비디오는 이달의 소녀를 형성하는 거대한 세계관을 담아냈다. 너, 나, 우리. 12명의 아이들은 경계를 넘어 세상의 모든 소녀에게 말을 걸고 있던 것이다.
정규 1집 <[X X]> 타이틀 곡 「Butterfly」는 ‘이달의 소녀’라는 존재에 대한 명분을 제공해준다. 우리를 담기에는 너무나 작은 이 세계에서 ‘더 멀리까지’ 날아가기 위한 준비를 마친 12명은 다 같이 손을 맞잡은 앨범의 아트워크처럼 소녀들의 힘과 연대를 대변한다. 데뷔 앨범 <[++]>와 유닛별 앨범이 각 멤버의 콘셉트와 색을 조율하는 과도기적 작품이었다면 <[X X]>는 지상계(이달의 소녀 1/3), 천상계(이달의 소녀 yyxy), 중간계(오드아이써클)라는 유닛의 경계를 초월해 하나의 메시지를 전하는 집합체 ‘이달의 소녀’를 정의하는 셈이다.
<[+ + ]>의 인트로 곡이었던 「++」는 각 유닛이 발표한 EP의 인트로를 단순히 합친 것에 불과했지만 본 앨범의 포문을 여는 「XX」는 이달의 소녀가 맞이한 새로운 국면을 관통하는 하나의 사운드를 담았다. 힙합 비트를 기반으로 신시사이저의 비중이 클 것을 암시하고, 보컬 샘플을 통해 멤버들의 목소리가 악기처럼 변용되리라고 넌지시 알려주는 청사진 역할을 수행한다.
앨범의 핵심이자 주제인 「Butterfly」는 딥 하우스 장르의 베이스와 1990년대를 휩쓴 뉴 잭 스윙의 킥 드럼 비트를 바탕으로, 이달의 소녀 yyxy의 「Love4eva」에서도 합을 맞췄던 그라임스의 「Flesh without blood」나 에프케이에이 트위그스(FKA Twigs)의 최신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를 구현했으며 고음의 ‘Fly like a butterfly’ 보컬 파트를 전작의 「Stylish」처럼 반주의 한 요소로 사용했다. 클라이맥스(후렴)를 가사가 없는 드롭으로 대체하는 EDM 형식은 아이돌 그룹에 있어 다소 도전적일 수 있었으나 M83의 공간감을 이어받은 여성 솔로 아티스트 뫼(M?) 스타일의 대중적인 멜로디 덕분에 감상에 무리가 없는 좋은 음악이 탄생했다.
심장 박동처럼 들리는 킥 드럼은 앨범 전반을 지배하며 트랙 간 유기성을 견고히 하고 작품에 안정감을 부여한다. 국내 알앤비, 힙합 신에서 활약하고 있는 크러쉬와 헤이즈 스타일의 감성 힙합과도 결을 같이하는 「Colors」, 퓨쳐베이스 트랙 「위성(Satellite)」, 비트가 전면으로 드러난 「Curiosity」는 주 멜로디 없이 점차 소리의 층을 쌓아가는 반주와 멤버들의 화음에 의존적인 트랙들이다. 따라서 적절한 강세의 비트가 앨범 전체의 중심을 잡아주며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흩날리는 신시사이저 사운드를 붙잡아 놓는다.
이달의 소녀의 음악은 그간 우주를 넘나드는 거대한 규모의 기획에 비해 완성도가 떨어지곤 했다. ‘콩팥까지 두근대 아픈 것 같애’와 같은 일본식 표현을 차용한 시부야케이 스타일의 노래를 선보이며 서브 컬쳐 팬들을 집결시켰으나 한물간 사운드와 사소하고 유치한 가사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제 이달의 소녀는 비로소 확장된 세계관에 걸맞은 보편적 이야기를 전한다. 한 편의 캠페인으로 탄생한 여성 서사의 뮤직비디오와 날개를 달아주는 <[X X]>의 임파워링(Empowering)적 메시지는 이달의 소녀가 성장했음을 나타내는 지표다. 갈팡질팡하던 과거를 뒤로하고, 이달의 소녀가 마침내 제 색을 찾았다.
관련태그: 이달의 소녀, XX, Hi high, Butterfly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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