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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심장을 나란히 세상의 끝에

영화 <콜드 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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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고백했다. “영화의 모습을 그리고 나면 영화가 모든 것을 결정짓기 시작했다”고. “모든 결정은 자연스럽고 필연적이었다”라고. 두 개의 심장은 필연적으로 그렇게 나란히 세상의 끝에 걸렸다. (2019. 0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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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콜드 워> 포스터


 

정사각형에 가까운 4:3 비율의 흑백 영상은 컷마다 작품이다. 명암이 독특하고 피사체가 풍경 어딘가에 놓일지를 정교하게 계산한 컷들이 사진집을 넘기는 기분마저 안겼다. 칸느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콜드 워>는 파벨 파블리코브스키 감독의 전작인 <이다>에 이어 자신만의 스타일을 굳힌 듯하다.
 
<콜드 워>는 1949년 폴란드에서 시작하여 베를린-파리-유고슬라비아-다시 1964년 폴란드로 귀환, 냉전 시대 사랑의 운명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야기를 요약하려 하면 그 의미는 납작해지고 매혹은 푸석거린다. 폴란드의 민속 음악과 파리의 재즈 음악의 강렬함, 캐릭터의 미세한 감정 변화를 어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여주인공 ‘줄라’ 역의 배우 요안나 쿨릭이 직접 부르는 <심장>을 들으면 진짜 심장이 뛴다. “두 개의 심장 네 개의 눈이 오요요~ 낮에도 밤에도 눈물을 흘리네 오요요~ 검은 눈동자들이 눈물을 흘리네 두 사람이 함께할 수 없으니까.”
 
냉전 시대, 폴란드 예술가들은 전통음악단 <마주르카>를 구성하고 단원을 모집한다. 성폭행하려는 아버지를 찔러 집행유예 상태였지만 줄라는 음악적 재능으로 단연 주목받는다. 악단을 지도하는 선생 ‘빅토르’는 예술적 가치를 구현하려 하나 사무국장 ‘카치마레크’는 국가의 선전도구로 쓰이길 원한다. 이데올로기를 예술이 이길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단원들은 도시를 떠돌며 스탈린의 초상화가 걸린 무대에서 공연한다. 지극히 예술가적인 면모의 빅토르가 망명하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사실 빅토르와 줄라는 오디션 때부터 사랑의 감정에 휩싸였다. 줄라를 뽑은 빅토르는 첫눈에 반한 상태다. 그러나 줄라는 보호 관찰 기간 중 악단에 들어오는 조건으로 빅토르의 정보를 상부에 보고해야만 했다.
 
베를린 공연 기간 함께 도망치기로 했으나 줄라는 약속을 어기고, 망명한 빅토르는 파리에서 재즈 공연을 하며 살아간다. 그러다가 각자 애인이 있는 상태에서 재회하고 다른 사랑이 서로를 대체할 수 없음을 확인한다. 그러나 함께할 수 없는 운명이다. 만났다 헤어지고 다시 만났다 또 헤어지는 두 개의 심장과 네 개의 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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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콜드 워>의 한 장면
 

1955년 빅토르는 줄라의 유고슬라비아 공연 관람 중 쫒겨난다. 그리고 마침내 이탈리아 사람과 정략 결혼한 줄라가 폴란드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된 1957년 파리에서 함께한다. 줄라는 클럽에서 <심장>을 부르기도 하고 프랑스어로 녹음한 음반 <너와 멀리 떨어져>도 발표한다. 자유롭고 화려한 파리의 밤들은 질투와 반역의 시간이었다. 함께하여 좋았으나 함께하여 격정적인 날들. 파리의 압력을 견딜 수 없는 줄라는 떠나버린다. 자유분방하고 예술적인 기질이 다분한 두 사람의 평온한 일상이란 시대와 불화한다.
 
빅토르는 결국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 죄’, 불법 출국과 영국 스파이 혐의로 체포당해 15년형을 살게 된다. 줄라는 빅토르를 감옥에서 풀려나게 하려고 <마주르카> 사무국장과 결혼한다. 빅토르는 자유인이 되었지만 이미 손가락이 잘려 음악을 연주할 수는 없다. 사랑과 음악이 전부였던 두 사람에게는 이제 사랑만이 남았다.
 
1964년 줄라와 빅토르는 마주르카 악단이 처음 세워지던 곳, 그 시골 교회에서 두 사람만의 혼인 서약을 한다. 그리고 영원히 서로에게 속하기 위해서 약을 나눠 먹는다. “이제 난 당신 거야, 영원히 언제까지나.”
 
뛰는 심장을 포갤 수는 없지만, 두 개의 심장 나란히 네 개의 눈은 영원을 향했다. ‘이 세상을 초월한 사랑은 가능한가?’라는 의문에 강력한 답으로 남았다.
 
감독은 고백했다. “영화의 모습을 그리고 나면 영화가 모든 것을 결정짓기 시작했다”고. “모든 결정은 자연스럽고 필연적이었다”라고. 두 개의 심장은 필연적으로 그렇게 나란히 세상의 끝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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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은숙(마음산책 대표)

<마음산책> 대표. 출판 편집자로 살 수밖에 없다고, 그런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일주일에 두세 번 영화관에서 마음을 세탁한다. 사소한 일에 감탄사 연발하여 ‘감동천하’란 별명을 얻었다. 몇 차례 예외를 빼고는 홀로 극장을 찾는다. 책 만들고 읽고 어루만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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