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28,000원’짜리 책
『불멸의 서 77』 편집 후기
그래도 출간 결정! 출판인으로서 그 놀라운 책들을 국내에 소개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덧붙여, 독자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하자고) 결론을 내렸다. (2019. 01. 29)
편집자로서 느낀 것은 아무리 좋은 책도 독자가 찾지 않으면 허탈하다. 편집자로서 시대적 사명을 다했다고? 그러나 이 자본의 시대에 자부심만 먹으며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진정으로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그 책이 가능한 한 많은 독자들의 손에 닿을 수 있도록 무슨 노력이라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불멸의 서 77』 은 영국의 그 유명한 DK사의 『Books that Changed History』 를 번역한 책이다. DK가 출간한 책들의 비주얼은 출판계에서 일하는 사람, 나아가 책 좀 읽는 독자라면 다 알 것이다. 그 명성에 준하는 판매가 이루어질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서 우리도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 당연히 이 책이 속한 시리즈의 국내 출간, 판매 현황을 확인하였다. 역시 멋진 책이기에 많은 책이 국내에서 번역, 출간되었지만 판매는 부진한 듯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내부에서 회의를 거듭한 결과, 아무리 봐도 포기할 수 없을 만큼 탁월한 책이었다. 책에 관한 책! 게다가 일반인, 아니 출판사 편집자조차 한 번도 못 본 놀라운 책들의 비주얼이라니! 책과 담쌓고 사는 특이한 분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책을 보고는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나 역시 ‘높은 제작비’와 ‘한글과 어울리지 않는 본문 편집 디자인’, ‘전작들의 판매 부진’이 발목을 계속 잡았다.
그래도 출간 결정! 출판인으로서 그 놀라운 책들을 국내에 소개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덧붙여, 독자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하자고) 결론을 내렸다.
이제 작업은 힘차게 나아간다. 번역-제작비 절감을 위한 DK 본사의 설득-그리고 탁월한 볼품을 제공하는 원서의 체제를 살리는 디자인. 다행히 모든 일이 원활하게 진행되는 듯 했으나, 마지막 디자인 작업에서 제동이 걸렸다.
원서의 본문 서체는 가는 ‘고딕 계통’의 서체였으니 우리나라 책의 본문에는 절대 쓰지 못할 형태였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 시리즈의 전작 번역물들 역시 본문에 명조 계열 서체를 사용했다. 그러나 명조 계열 서체를 사용해 디자인 시안을 확인해 본 결과 텍스트와 사진 자료들이 일체화 되지 않는 모습이 선명했다. 가독성도 중요하다지만, 이렇게 그림과 글씨가 따로 놀아서야 독자에게 수용될 수 있을까?
결국 디자이너와의 오랜 토론을 거쳐 원서처럼 그림과 글씨가 일체화된 본문 디자인을 추구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본문 서체를 기존의 시각에서 과감히 탈피할 필요가 있으리라.
찾자, 찾아! 그런 서체를 찾기 시작해, 드디어 ‘산돌네오고딕 1번’이라는, 그 어떤 책에서도 본문에 사용한 적 없을 것 같은 서체를 찾았다. 그 서체로 본문 디자인을 해 보니, 마치 새하얀 케이크에 박힌 빨간 딸기처럼 참으로 잘 어울렸다.
시대가 변하면 디자인 개념도 변해야 한다. 시대가 변하면 책의 물성(物性)도 변해야 한다. 책을 본 독자들 모두 일단 비주얼에 눈이 휘둥그레지고, 살까말까 고민하려 할 때 28,000원이라는 가격에 또 한 번 놀라는 『불멸의 서 77』 은 그렇게 탄생했다. 오직 독자 곁에 머물고 싶다는 의지를 원동력으로.
불멸의 서 77마이클 콜린스, 알렉산드라 블랙, 토머스 커산즈, 존 판던, 필립 파커 공저 외 2명 | 도서출판그림씨
화려한 이미지와 ‘세부내용’은 책의 특징을 재미있게 보여주며, 이에 따른 자세한 내용은 그 책과 책을 제작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해 준다.
<제임스 노티>,<알렉산드라 블랙>,<토머스 커산즈>,<존 판던>,<필립 파커> 공저25,200원(10% + 5%)
기원전 3000년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바꾼 책을 보여주는 독특한 백과사전. 사람들의 삶을 바꾸고 인류의 정체성을 일깨운 작품 77을 선정하여 수록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희귀하며 독창적인 책과 필사본 77점을 그 목적, 특징 및 창작자에 대한 설명과 함께 아름다운 삽화를 곁들인 안내서다. 인류가 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