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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연의 눈빛 : 세상의 모든 장도그래들에게
살아남기 위해 간절한 눈으로 자신을 증명해 온 이들에게
간절한 눈빛으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2018년 한 해 내내 발버둥친 장도연에게, 2019년은 조금 더 너그러운 한 해가 되길 바란다. 더할 나위 없으셨어요. 장도연씨, 그리고 세상 모든 장도그래 여러분. (2018. 12. 24)
“2천만원을 찾아갈 주인공은, 장도연씨 축하드립니다.” 유재석의 입에서 나온 이름 앞에서 SBS <미추리 8-1000> 멤버들은 모두 할 말을 잃고 얼음이 됐다. 마을 곳곳에 숨겨진 단서를 조합해 천만원을 찾아가는 사람이 승자가 되는 추리게임의 최종 승자가 장도연일 거라고는 아무도 의심한 적 없었으니까. “다 나를 바보로 알고. 봐봐, 나 파리만 꼬이고 사람들 아무도 나한테 공조하자고 안 하잖아.” 아무도 그에게 단서를 공유하자고 손을 내밀거나 의견을 묻지 않았던 두번째 날 밤, 장도연의 자존심은 바닥까지 떨어졌다. 게임도 못 하고 추리도 못 하는 전형적인 예능 담당 멤버 취급을 당하는 동안, 장도연은 떨어진 자존심을 품에 안고 눈빛을 번뜩이며 추리를 성공시켰다. 절친 양세형조차 그를 의심하지 않는 완벽한 외면 속에서, 장도연은 조용히 제 진가를 증명하기 위해 발버둥쳤다.
돌아보면 장도연의 모든 커리어가 그랬다. 누구와 붙여 놓아도 늘 제 몫을 해내는 코미디언임에도, 그는 언제나 자신이 주목을 받기보다는 옆에 있는 이들을 빛나게 해주는 이로 평가받았다. 함께 분장쇼를 하고 활력 댄스를 춰도 스포트라이트는 박나래의 것이었고, 절친인 양세형 양세찬과 함께 코너를 짜도 절친들이 자신보다 반 발쯤 앞서 나가는 걸 봐야 했다. 예능은 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인턴 막내로 합류한 Olive <밥 블레스 유>의 2018 FW 시즌, 막내도 고민이 있으면 말해보라던 언니들의 말에 장도연은 묵직한 고민을 토로했다. “예능 프로그램을 한지는 끽 해야 3년이 안 돼요. 요즘은 단발성인 프로그램이 너무 많은 거예요. 6회차, 8회차, 아니면 하다가 느닷없이 하차. 약간 마음의 상처를 받았어요. 이게 일인데, 나 혼자 마음을 주는 게 제가 좀 촌스러운 것 같은 거예요.”
세상 속에서 제 자리를 잡지 못해 헤매는 사회 초년생이라면 그게 무슨 마음인지 안다. 사람들은 날 인정해주지 않고, 동기들은 나보다 앞서 나가는 것 같고, 누구보다 일을 사랑하고 아끼고 싶은데 정작 그 사랑의 대상이 날 자꾸 밀어내는 순간의 막막함. 그래서 <미생>의 장그래에 빗댄 ‘장도그래’라는 별명을 얻은 <밥 블레스 유>에서, 장도연은 더 열심히 언니들과 어울리고 몸이 부서져라 달렸다. 첫 녹화에서 선보일 BTS의 ‘FIRE’ 안무를 수십 수백 번 연습하고, 언니들을 대접해 보겠다고 한번도 안 해본 요리를 한다며 혼자 주방에서 고군분투했던 건 그런 마음 때문이었으리라. 세상에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자신을 증명해 보일 기회를 갈구하는, 세상 모든 신입들의 마음.
장도연의 발 밑은 전보다 더 단단해졌을까. 함부로 짐작하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몇 가지 변한 것들은 눈에 보인다. <미추리 8-1000>은 다음 시즌을 예고했고 <밥 블레스 유> 또한 2019년 첫 방송 예고가 나갔으니, 큰 일이 없다면 장도연이 마음을 주고 자신을 증명할 무대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간절한 눈빛으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2018년 한 해 내내 발버둥친 장도연에게, 2019년은 조금 더 너그러운 한 해가 되길 바란다. 더할 나위 없으셨어요. 장도연씨, 그리고 세상 모든 장도그래 여러분.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