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의사 송형석 "당신이 당신을 알아야 하는 이유"
『나라는 이상한 나라』 펴낸 송형석 의사 인터뷰
자기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는 법 자체에만 집중해보고 싶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자기 상태를 정확하게 알고, 자기 내면을 상상해내고, 더 큰 가능성을 그려낼 수 있는 순서를 하나하나 얘기하고 싶었죠. 아주 만족스럽진 않아도. (2018. 11. 23)
9년 전, MBC <무한도전>에 긴 머리 휘날리며 등장했던 괴짜 정신과 의사 송형석.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멤버들의 성격과 행동을 귀신같이 예측하며, 단숨에 <무한도전> 레전드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된 그가 오랜만에 책으로 돌아왔다. 경험에 바탕을 둔 날카로운 직관력은 여전하다. 여기에 이번에는 많은 공부를 통해 얻은 학문적 깊이까지 더했다. 제목부터 눈길을 끄는 책 『나라는 이상한 나라』 로 돌아온 그를 만나보자.
반갑습니다. 박사님 얼굴을 처음 본 게 예전에 MBC <무한도전> 정신감정편에서였는데요. 거기서 멤버들 행동을 보고 성격이나 심리를 귀신같이 맞히셨던 게 기억에 남아요. 그런데 이번 책에서는 남이 아니라 나의 심리를 파헤치는 법을 알려주신다고요?
사실 『위험한 심리학』 을 쓰던 그때도 나는 어떤 생각을 하는가, 어떤 사람인가를 아는 것이 진짜 목표였어요. 이제 9년밖에 안 지났지만 <무한도전>이 방영될 때만 해도 정신과, 심리학은 대중적이지 못했고, 연예인들의 성격이나 행동 패턴을 파악하는 것에 이제 막 호기심이 생긴 상태였습니다. 그 상황에서는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의 연장선에서 얘기를 했어야 했죠. 지금은 사람들이 정보도 많이 쌓이고 아는 것도 많아져서 자신을 들여다보는 방식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금 늦은 감도 있죠.
사람들 간의 갈등이라는 것이 알고 보면 나의 인격과 타인의 인격과의 상호작용에서 나온다는 것은 제가 정신과 의사를 하면서 가장 절감하는 부분입니다. 지금 사회의 계층 갈등도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사회 안에서 어떤 맥락으로 읽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점점 더 심해진다고 봅니다.
심리학 서적들은 사실 다 공통적으로 남을 보고 자기를 들여다보기를 권유합니다. 다만, 책 같은 매체의 한계라고 볼 수 있는데, 독자가 그것을 자기 것으로 해석해내지 않으면 그저 글귀로만 남게 되죠. 성경이나 불경이 그렇게 많이 발행되고 비슷비슷한 해석서가 그렇게 많지만, 그 진의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그 의미를 얻게 되듯이 말입니다(그래서 의원이나 상담소가 존재하는 것이겠습니다만).
그래서 저는 자기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는 법 자체에만 집중해보고 싶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자기 상태를 정확하게 알고, 자기 내면을 상상해내고, 더 큰 가능성을 그려낼 수 있는 순서를 하나하나 얘기하고 싶었죠. 아주 만족스럽진 않아도.
새로 펴내신 책 제목이 『나라는 이상한 나라』 입니다. 제목이 특이합니다. 장난스럽기도 하고요. 무슨 의미인가요?
제목은 사실, 우연히 말장난을 하다가 생각난 게 맞습니다. ‘나’를 넣어서 흥미로운 제목을 지어야 하는데, 그리 마땅한 게 없더라고요. 약간 장난스럽고 판타지 소설 느낌도 들 것 같아서, 끝까지 다른 제목들과 경쟁하다가 선택한 제목입니다.
보통, 사람의 마음을 읽는 영화나 소설을 보면, 그 사람이 말로 꺼내놓는 생각들과 의식 세계를 읽는 내용이 중심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사람의 마음을 읽게 되면, 그런 것은 아주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네!”라고 했다고 해서 “네!”가 아니고, 식사하고 싶다고 해서 식사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더 많은 생각과 선호도, 욕구 등이 엮여 있고, 그중 아주 일부만이 머릿속에서 인지될 뿐입니다. 그런 진짜 사고는 사람마다 다 달라서 어떤 사람은 정확하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이중적이고, 어떤 사람은 내용이 너무 없거나 억압되어 있죠.
이런 내면을 처음으로 접하면 나란 사람이 약간 두렵게 느껴집니다. 아주 이상하게 보여요. 이 이상함을 견디고 들어가면 자신의 내면을 조금씩 볼 수 있는데, 저는 이게 꼭 어느 동네나 풍경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요. 진짜 내가 살고 있는 건물, 저 멀리 보이는 산, 들판, 자질구레 난립된 집들, 사람들…. 이런 장면들을 비유로 들자면, ‘나라’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왜 꼭 나를 알아야 하는 걸까요?
사실 몰라도 돼요. 몰라도 잘 살아온 사람은 잘 살겠죠^^ 현실적으로도 그런 거 관심 없이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이게 말하자면, 내 성향도 모르면서 소문 따라 주식이나 투자를 해서 성공하는 것과 같거든요. 예를 들어, “역사를 알자”, “우리 문화를 알자”, “다른 나라는 어떻게 사는지 알자”라는 구호들도, 다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혹은 위기가 왔을 때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잖아요. 자기 자신을 아는 것도 비슷합니다. 자기 성향이나 모습을 모르면서 사는 것은 아슬아슬한 일이죠.
지금은 전환기라고 볼 수 있는데, 사는 것이 그다지 내가 원하는 것과 같지 않다고 느끼면 그때는 자기가 사는 방식,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해집니다. 다만, 평소 이를 알고 살던 사람은 어떤 상황에도 정신적 평정을 더 잘 유지하겠지만, 갑작스럽게 하면 쉽진 않겠죠. 앞으로 미래를 살아갈 자신의 가치관, 시점, 삶의 목표 등을 재점검하지 않으면, 열심히 노력하는데도 자기 기대와는 다른 결과를 접하기 쉬울 겁니다.
최근 심리서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요. 『나라는 이상한 나라』 만의 차별성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심리서들은 주로 인간의 심리를 가르쳐주려 합니다. 요즘은 나란 사람이 어떤 상태다, 어떻게 작동한다, 라고 정의 내리는 책이 많이 출간됐고요. 이에 반해, 제 책은 자기 내면을 그려나가는 매뉴얼에 가깝습니다. 세탁기로 치자면, 사용법 매뉴얼 quick start! 같은 개념이죠. 책은 전적으로 제 평소 말투에 가까운데(더 부드럽게 쓰긴 했습니다만), 제 조언대로 따라오다 보면 자신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도록 의도했습니다.
사실 제 책을 읽은 정신과 의사나 심리학자들은 아마도 “이건 뻔한 이야기잖아” 하다가도 “도대체 이건 어디서 들은 이야기지?”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기본적으로는 정론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지만, 자기 내면을 파악하는 기법들이나, 대인관계 방식에 대한 논의들은 제 방식대로의 해석이나 새로 만든 개념들이거든요. 자기 내면을 그려내는 방식도 어디까지나 저만의 방식입니다. 저는 전문가들이 자기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는 데 좀 박하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왜 그런 사고와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를 유추해나가는 과정을 그려낸 것이 제가 책의 차별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격 기제’라는 개념을 새롭게 만드셨던데, 무척 흥미로운 부분이었어요. 내용을 좀 소개해주시고, 이 개념을 만드시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도 함께 말씀 부탁드립니다.
공격기제를 처음 생각한 것은 “거식증 환자들이 자기 마음대로 자기 육체를 다룰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이 식욕이다”라는 말을 듣고 나서입니다. 자신이나 타인을 공격할 때의 파괴 욕구가 과연 근본적인 것인지 항상 의문이었는데, 이를 들은 후 생각한 것은 인간이 자기 의도대로 자신의 육체나 타 개체를 조종하고 싶은 욕구가 우선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되질 않기 때문에, 설득, 기만, 더 나아가 폭력, 자해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생각했더니, 쉽게 풀리는 개념이 많았습니다. 자기 의도나 기대를 바꿔버리면 공격성도 없어질 수 있는 것이었고, 남이 나를 공격하더라도 상대의 욕구를 이해하면 역으로 그를 다룰 수도 있습니다. 이는 육체적?물리적 공격이 아닙니다. 정신적으로 어떻게 상대의 감정을 조종하고, 자신을 방어하는가에 대한 개념이죠.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 중에 거짓말, 사기, 왕따, 혐오 감정 들은 명백하게 타인을 공격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 피해자 입장에선 굉장히 괴롭잖아요? 이런 미묘한 공격 방식은 아직 사회에서 제대로 이해되고 있지 못해요. 그래서 자꾸 기존의 폭력, 가해, 피해의 개념으로 이를 이해하려고 하는데 오히려 부작용만 생기죠. 그러나 공격의 다양한 방식들을 이해하게 되면 왜 사람들이 끊임없이 속이고 따돌리고 고집부리는가에 대한 맥락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개인적인 대처법도 생각해볼 수 있어요.
책 제목과 중간에 나오는 ‘나만의 신화’ 부분이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요. 사실, 일반적인 글쓰기 방법은 아니어서 좀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어요. 그런 스토리텔링 방식을 사용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나를 파악하는 이야기를 쓰려고 생각한 건 『위험한 심리학』 때부터였어요. 그런데 막상 쓰려고 보니까 이게 무척 어려웠습니다. 인간은 어떠한 존재다, 어떻게 작동한다, 하는 내용은 책이나 논문을 읽어서 쓰면 되는데, 자기 자신을 추리하고 파악해나가는 방식은 결국 내가 직접 먼저 해야만 하는 거잖아요? 막상 해보니, 제 경험을 언어로 표현하는 게 막막하더라고요. 그래서 차일피일 미룬 것이 9년이나…….
‘내 내면을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제시하는 것이 진짜 내면을 보여주는 것’이란 아이디어는 책을 중반 정도 썼을 때 떠올랐습니다. 이걸 다 이론으로 제시하려면 책이 한 권은 더 늘어나겠고, 이야기로 하면 쉽게 끝낼 수 있겠구나 했던 거죠. 나만의 신화 파트는 평소 제가 그리던 풍경을 죽 나열하면 되는 거였기 때문에 가장 편하게 쓴 부분입니다. 왜 이리 아귀가 잘 맞는 건지 신기해하면서 썼을 정도니까요. 다만, 역으로 이 주관적인 해석이 왜 진짜 내 모습인가를 설명하기 위해, 뇌가 우리 내면을 인지하는 방식, 내면의 다양한 나에 대한 이론들이 설명되어야 했죠. 이런 아이디어들이 유기적으로 얽혀서 나온 부분입니다.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보시면 우주가 계속 나오다가 말미에 혼란스런 노이즈 같은 화면이 계속되죠. 그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물론 잤지만ㅎㅎ). 그런 배치나 리듬을 좋아해요. 아주 일상적이고 이론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잠이 들어서 꿈이라는 내면적 현실을 마주해버리는. 그러다가 다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오고. 우리가 사는 모습도 이와 비슷할 거라 생각합니다.
정말 오랜만에 단독 저서를 출간하셨잖아요. 거의 5년 만이죠? 혹시 다음 책은 언제쯤 기대해볼 수 있을까요?
이번 책은 쓰느라 너무 힘들어서 출판사에는 3년 뒤에나 봅시다, 그래놨거든요. 책이라고 하면 지긋지긋해서ㅎㅎ 정말 못 쓸 것 같았는데 안타깝게도 쉬고 있노라니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납니다. SNS에서 어떤 분이 “생각하게 하는 거 말고 아무 생각 없이 읽을 수 있는 편한 책도 써주세요” 하시던데, 다음엔 정말 편하게 쓰고 싶어요. 『나라는 이상한 나라』 에서 잠깐 언급한 신화에 관련된 것인데, 어릴 때 읽었던 우화나 이야기의 한 토막(선불교 만화의 대사라든가), 만화의 한 장면(네로와 파트라슈의 죽음이라든가)들 중 지금도 계속 머리에 맴돌면서 저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것들을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습니다. 재밌기도 할 것 같고요.
나라는 이상한 나라송형석 저 | 알에이치코리아(RHK)
나의 부족한 부분과 극복해야 할 부분을 보완해 더 넓은 마음의 영토를 가지게 된다는 것. ‘자기 이해’가 ‘자기 사랑’으로, 나아가 ‘타인에 대한 관용’으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관련태그: 나라는 이상한 나라, 송형석 의사, 심리서, 공격 기제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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