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이승한의 얼굴을 보라
김신영의 정색 : 열정은 왜 꼭 늘 저런 모습이어야만 하는 걸까?
카메라 앞에서 불필요한 군기를 흉내내는 어떤 시대착오
하지만 불행히도 카메라는 제 시야 안에서 일어난 김신영의 정색만 담아내지, 김신영이 카메라의 사각에서는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따위는 담아내지 못한다. (2018. 10. 15)
“걸그룹이 장난이에요? 우리 걸그룹 데뷔조야. 우리는 1등 찍고 내려와야 해. 우리는 철저하게 데뷔조, 그 느낌으로 가야 해. 그래야 걸그룹이 되는 거예요.” 신곡 무대를 더 내실 있게 준비하자는 이유로 ‘합숙’이라는 초강경책을 준비한 김신영은, 이미 올 초에 데뷔한 셀럽파이브 팀에게 ‘걸그룹 데뷔조 느낌’으로 훈련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굳이 휴대폰을 걷고 식단을 조절하고 매일 체중을 재는 일 같은 게 없어도 셀럽파이브는 이미 걸그룹이었다. 각종 K-POP 페스티벌과 행사에서 셀럽파이브를 찾은 건 그들이 선보이는 무대의 완성도가 경탄을 불러 일으킬 만큼 압도적이어서였지, 결코 이들이 코미디언이기 때문만은 아니었으니까. TDC의 무대를 완벽하게 커버하기 위해 3개월간 하루 8시간 연습을 주도하고, 한번 배웠으면 끝을 봐야 한다며 멤버들을 들들 볶았던 김신영의 완벽주의는 셀럽파이브를 명실공히 2018년 가장 중요한 신인 걸그룹의 자리에 올렸다.
캐리어 속에 챙겨 온 간식과 맥주를 압수당한 멤버들이 ‘그럼 우린 뭘 먹을 수 있느냐’고 묻자, 김신영은 정색하고 답한다. “샐러드, 단백질. 걸그룹의 답은 얼굴이랑 몸매야.”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실소를 터뜨린다. 평균 연령 38.6세, 바비 인형 같은 몸매나 조각 같은 외모는 애초에 해당사항이 없어서 오로지 퍼포먼스의 힘 하나로 여기까지 올라온 셀럽파이브였다. 사람들이 셀럽파이브에게 보낸 환호 중 많은 부분은, 열정과 실력만 있다면 나이나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는 메시지였다. 그러나 김신영은 정말로 진지하게 삶은 달걀과 고구마로만 준비된 아침 식단을 제공하고, 스케줄이 없을 때는 숙소에서 무단외출을 금하며, 휴대폰을 꺼내기 위해 자물쇠 번호키를 돌려본 안영미의 목젖에 딱밤을 놓는다. 걸그룹 합숙생활을 흉내 내며 ‘걸그룹은 반드시 이렇게까지 비인간적으로 훈련해야 하는가’를 풍자하려는 의도인가 싶다가도, 자기들은 그런 것 없었다고 말하는 레드벨벳 예리의 말 앞에서 이전까지의 설정은 다소 무색해진다. 아니, 그럼 저 많은 불필요한 군기는 대체 무엇을 위한 거지?
안다. 주장을 맡아 팀을 이끌고 있는 김신영은 사실 멤버들 중 제일 막내이며, 카메라가 꺼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송은이에게 깍듯이 예를 갖추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고, 과거 대학 시절 선배들이 시켜서 학과 후배들에게 불필요한 체벌을 내렸다가 후배 중 한 명이었던 김영희가 자퇴하는 일을 겪은 후 그 충격으로 군기 문화를 자기 대에서 끝낸 경험을 지닌 사람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카메라는 제 시야 안에서 일어난 김신영의 정색만 담아내지, 김신영이 카메라의 사각에서는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따위는 담아내지 못한다. 앞 시즌에서 멤버들을 응원하며 환호했던 수많은 팬들이, 본격적인 숙소생활이 담긴 본격적인 숙소생활이 담긴 VIVO TV <판벌려2> 2회 방송 밑에 이건 아니라는 댓글을 빼곡하게 올린 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셀파는 셀파 방식대로 먹고 싶은 대로 거하게 먹고 자유분방하게 살고 누가 뭐라고 하든지 말든지 아무 거리낌 없이 무대에서 불사르는 그런 모습이 좋은 거거든요.” 나 또한 이 댓글에 동의한다. 압도적인 끼와 열정으로 당대 최고의 자리에 오른 김신영에게, 보폭을 시대정신과 맞추라는 숙제가 주어졌다.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