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노명우의 니은서점 이야기
책을 사면 왜 좋을까?
책에 능동적 사유의 흔적을 남기는 첫 번째 걸음 작가는 이슬을 먹고 살지 않는다
책은 구입해야만 나의 것이 된다. 나의 것이 되었으니, 그 책에는 나만의 능동적 독서의 흔적을 마음껏 남겨도 된다. 구입한 이후에 그 책에 능동적 사유의 흔적을 남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2018. 10. 12)
책은 소위 경험재이다. 어느 정도 책 내용을 들춰본 후에야 구매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상품이라는 뜻이다. 물론 저자가 유명인이라면 좀 다르다. 이름만으로도 경험을 거치지 않고 팔리는 저자는 있다. 유명세만으로도 책을 팔 수 있는 저자는 한 손에 꼽을 정도이다. 몇몇의 예외적인 저자를 제외한 나머지 대다수의 저자의 마지막 남은 희망은 누군가에 의해 경험이라는 시험 관문을 통과하고 선택되어 구매되기를 기대하는 것뿐이다.
우리가 책을 경험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가 도서관과 서점인데, 책을 경험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도서관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도서관의 숫자는 많이 늘었고 접근성도 개선되었다. 게다가 도서관은 무료로 책을 빌리는 곳이다. 도서관이 무료라는 점을 생각하면 서점은 경제적인 낭비를 유발하는 불필요한 시설처럼 보일 수도 있다. 또한 장서 수만 비교해보아도 도서관에는 서점보다 책이 많다. 서점은 장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시대에 뒤떨어진 잉여의 공간이 되어 가는 것일까?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은 나의 것이 아니다. 대출받은 책을 내 물건처럼 다루면 안 된다. 대출받은 책에 밑줄을 긋고 혹은 무엇인가 메모를 끄적인다면 그건 용서받지 못할 반공공적 행동이다. 부끄러운 짓인 줄 알면서도 왜 사람들은 대출받은 책에 형광펜 흔적을 남기고 코멘트까지 남기는 것일까? 독서라는 행위의 독특한 특성 때문이다. 책은 읽는 사람의 능동적인 지적 활동을 요구하는 미디어이다. 독자가 능동적으로 사고하지 않으면 책은 그저 종이 위에 쓰인 텍스트 뭉치에 불과하다. 밑줄을 긋고 메모를 남기는 행동은 능동적 사고를 꾀했다는 흔적이다. 능동적 사고를 했다는 사실은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공공의 재산인 도서관의 책에 그 흔적을 남기는 행동은 충분히 야만적이다.
문명인답게 책에 능동적 사유의 흔적을 남기는 첫 번째 걸음은 책 구입이다. 책은 구입해야만 나의 것이 된다. 나의 것이 되었으니, 그 책에는 나만의 능동적 독서의 흔적을 마음껏 남겨도 된다. 구입한 이후에 그 책에 능동적 사유의 흔적을 남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읽으면서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나 나중에 참고할 부분엔 각양각색의 포스트 잇을 여기저기 부착해 대량생산품인 책을 나만의 맞춤상품으로 변모시킬 수 있다. 내 책에 밑줄을 쫙 긋는 쾌감도 대단하다.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연필로 무엇인가 메모를 남겨도 행복하고, 쓰윽 퍼져나가는 잉크의 느낌을 즐기면서 고전적으로 만년필로 책 위에 메모를 남겨도 기분 좋다. 모두 책을 구입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이다.
책을 구입하면 저자에게 사인을 받을 수 있다. 좋아하는 저자에게 사인을 받아본 사람은 그 기쁨을 안다. 도서관에서 아무리 그 작가의 책을 여러 번 대출했다고 해도, 대출한 책을 작가에게 내밀며 사인을 부탁할 수는 없다. 나의 전자책도 좋지만 나만의 종이책은 더 좋다. 종이책이 내 책이라면 모래가 묻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해변에 들고 갈 수 있다. 커피를 쏟아도 되고 깔고 앉아도 된다. 콘센트를 찾는 수고도 안 해도 된다. 심지어 친구에게 책을 빌려줄 수도 있다. 아니 더 내친김에 내가 좋아하는 책을 친구에게 선물할 수도 있다. 내 책이 우정을 돈독하게 해주는 도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책을 샀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호사이다.
책을 구입해야 할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아직 남아있다. 책을 사는 것은 독서의 첫걸음이자 책을 쓰는 사람을 후원하는 행위이다. 독자가 구매하지 않는 한, 책을 쓰는 사람의 호구지책은 막막하기만 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떤 문학상도, 훈장도, 호의적인 서평도 제 책을 자기 돈 들여 사주는 독자에 비하면 실질적인 의미는 없다.”
너무나 지당한 말이다. 작가는 이슬을 먹고 살지 않는다. 그들도 우리처럼 집값을 걱정하고 물가상승을 두려워하는 생활인이다. 인세는 작가가 책으로 돈을 버는 유일한 수입의 원천인데, 인세는 책이 팔려야만 생기는 수입이다. 만약 당신이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응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작가의 책을 사는 것이다. 작가를 확실히 응원하고 싶다면 이미 소장하고 있다고 해도 또 한권을 사서 친구에게 선물하면 된다. 그래봐야 친구 만나서 밥과 커피를 마시는데 필요한 돈 정도면 충분하다. 그래서 서점은 세상에 있다. 서점에서 당신은 나만의 행복을 보장하는 상품이면서 때로 우정의 매개체이기도 한 놀라운 상품인 책을 살 수 있다. 이제 가까운 서점에 갈 시간이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윤옥 역 | 현대문학
‘사회적으로 무책임’ ‘제국주의적’ 등 강도 높은 비난 속에서도 침묵으로 일관해왔던 그가 1979년 등단 이후 최초로 자신의 작가론적, 문단론적, 문예론적 견해를 청중에게 말을 건네는 듯한 소박한 형식으로 풀어놓았다.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아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이론이 이론을 낳고 이론에 대한 해석에 또 다른 해석이 덧칠되면서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가는 폐쇄적인 학문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서 연구 동기를 찾는 사회학을 지향한다. 『세상물정의 사회학』, 『인생극장』 등을 썼다.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윤옥> 역15,120원(10% + 5%)
누구를 위해서 쓰는가, 어떻게 쓰는가, 그리고 왜 소설을 지속적으로 써내는가, 소설을 쓰기 위한 강한 마음이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로 살아온 삼십오 년의 작가론적 문단론적 문예론적 인생론적 집대성 무라카미 하루키는 21세기 소설을 발명했다. 《뉴욕 타임스 북 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