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김교석의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우리 집만의 시그니처를 만드는 방법
나만의 집 냄새를 위해 추천하는 아이템은 디퓨저
일상은 그저 반복되는 쳇바퀴가 아니라 애정을 갖고 가꿀수록 아름다워지는 정원과 같다. 그래서일까. 매일 매일이 파란만장했던 나폴레옹은 외출 때마다 콜론을 3~4병씩 들이부었다고 한다. (2018. 09. 04)
thefuturekept.com
가게든 사람이든 브랜드이든 자신만의 고유한 시그니처가 중요하다. 시그니처의 유무야 말로 아이코닉한 무엇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이다. 미국 애플사는 사과, 이를 만든 스티브 잡스의 이세이 미야케의 검정 터틀넥과 뉴발란스 992는 시그니처의 중요성을 극명히 드러내는 사례다.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의 높은 카라부터 유재석의 슬림 슈트, 주커버그의 후줄근한 후드, 김어준의 산발한 수염과 헤어스타일에 이르기까지 패션을 넘어 모두 시그니처라 부를 수 있다. 쉽게 말해 자기만의 색깔을 갖고 살자는 이야기다.
물론, 쉽지 않다. 이미지메이킹이 감각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시그니처룩은 단순한 코디나 랩머니의 산물이 아니라 자존감의 고취와 내면과 마주한 성찰과 더욱 관련이 깊다. 다른 사람에게 나만의 아이덴티티를 각인시킬 수 있으려면 이미 단단히 퇴적된 취향이 있거나, 그 어떤 유행과 주변의 수군거림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기중심이 묵직하게 서 있어야 한다. 의도할수록 더 멀어지는 게 진정한 멋의 본질인 것처럼 시그니처는 계산할수록 촌스럽거나 경박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시각에서 후각으로 눈금을 맞추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스타크 가문의 늑대, 라니스터가의 황금 사자, 타가리옌가의 드래곤, 툴리 가문의 잉어처럼 우리도 모든 집안마다 고유의 향을 갖고 있다. 흔히 말하는 집 냄새 말이다. 어린 시절 친구 집에 놀러가거나 부동산을 통해 집을 보러 다닐 때를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 한옥이든 주상복합이든 마찬가지이고 공기청정기의 유무와 상관없는 것을 보니 환기 및 주거 형태는 집 냄새와도 큰 상관이 없다. 그보다는 먹는 것, 위생의 기준, 세탁세제 등등 라이프스타일과 결부된 결과다. 그러니 집 냄새와 체취야말로 일상과 일생이 체화된 진정한 나만의 시그니처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부모의 품으로부터 진정한 독립은 전월세나 인테리어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공간에 자기만의 향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가능하면 향기를 풍기는 즐거움을 누리도록 하자. 아무리 어글리 패션의 시대라고 해도 담배 쩐내, 땀 냄새, 퀴퀴한 곰팡이 냄새, 오래 묵어 뒤섞인 화장품 냄새, 홀아비 냄새 등을 시그니처로 삼고 싶은 이는 없을 거다. 일상은 그저 반복되는 쳇바퀴가 아니라 애정을 갖고 가꿀수록 아름다워지는 정원과 같다. 그래서일까. 매일 매일이 파란만장했던 나폴레옹은 외출 때마다 콜론을 3~4병씩 들이부었다고 한다.
나만의 집 냄새를 위해 추천하는 아이템은 디퓨저다. 샤워 습관이나 빨래 주기까지 말하면 객쩍은 잔소리가 될 것 같아 생략한다. 최소한 현관, 화장실, 옷방(옷장)에는 꼭 디퓨저를 두길 추천한다. 악취에 가장 취약한 공간이자 향의 존재를 가장 드라마틱하게 누릴 수 있는 곳들이다. 뭐 결국 대부분의 공간에 놓자는 말인데, 신나는 건 집이 좁을수록 자신만의 향을 갖기가 훨씬 용이하다는 점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는 가볍고 달콤한 시트러스 계열의 향이 언제나 인기다. 나 또한 메종 프란시스 커정의 아쿠아 유니버셜을 메인 향수로 쓰기 때문에 집 안 방향제도 어느 정도 계열에 맞춰 편안하고 산뜻한 향을 골라 둔다. 향수와 디퓨저의 향을 동기화하면 재미는 좀 덜하겠지만 확실한 시그니처를 완성할 수 있다.
디퓨저는 액체향료(오일)가 담긴 용기에 나무로 만든 막대기(리드)를 꽂아 향을 발산하는 제품이다. 리드는, 자연산 등나무나 갈대로 만든 게 좋으며 수명은 보통 1개월이다. 디퓨저 용액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거나, 향이 희미해질 때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리드를 뒤집어 꽂거나 바꾸도록 한다. 디퓨저를 처음 사용할 경우 가능한 리드를 4개 이상 꽂지 않도록 한다. 과하면 역하다.
사실, 디퓨저 이야기만큼은 피하려고 했다. 왜냐면 수용 가능한 가격대도 천차만별이고, 수많은 소상공인이 뛰어드는 소규모 제조 유통 분야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원하는 제품을 만났다고 해도 수급상의 문제를 겪을 수도 있다. 게다가 다분히 취향의 영역이다. 그래서 내가 쓰지 않는다고 해서 양키캔들에 문제가 있다는 뜻은 아니라는 식의 부연이 필요하다.
그도 그럴 것이 디퓨저는 성수동이나 망원동의 공방 제품부터 명망 높은 니치 브랜드까지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이를 나름의 기준으로 분류하자면, 유럽에서 온 유서 깊은 조향회사 브랜드 제품과 일본, 포틀랜드, 호주, 샌프란시스코, 브루클린 등의 힙스터 동네에서 날아온 아날로그 감성의 공방형 제품들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이런 경향으로 인해 국내에도 천연, 수제를 내세운 방향 시장이 성장했다. 개인적인 추천 브랜드는 월리, 산타마리아노벨라, 라우라, 프라고나르, 리나리, 펜할리곤스, 크리드, 아포티케, P.F 캔들 등등인데, 이외에도 훌륭한 브랜드는 언제나 질 좋은 디퓨저를 생산한다.
이런 브랜드의 디퓨저에는 인공향료와 같은 석유화학 추출물이 적게 들어가지만 기본 베이스가 에탄올이란 점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러니 구매하기 전에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한 위해우려제품 안전기준’에 적합한 검사를 통과했는지 꼭 확인한다. 수제, 천연이란 말에 유혹 당하면 안 된다. 수제란 조잡하다는 단서일 수 있고, 굳건한 카르텔이 존재하는 조향업계에서 값싼 천연은 마케팅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느 날 아버지가 집에 들르신 적이 있었다. 아들 사는 집을 한 바퀴 둘러보시더니 다른 말씀 대신 집에서 웬 화학약품 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미간을 찡그리셨다. 디퓨져만큼은 소비자 가격을 고려하지 않고, 늘 신경 쓰고 살았음에도 이렇단 말이다. 뭐,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부모님의 집 냄새로부터 완벽한 독립을 확인 받은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향초나 향은 디퓨저의 좋은 대안이다. 다만, 불 관리를 잘 해야 한다는 제약이 있고, 특히 향초는 알려진 것보다 공간을 지배하는 방향 능력과 지속성이 떨어진다. 즉, 향초로 집 냄새를 구축하려면 돈이 좀 많이 든다. 반면, 향은 의외로 쓸모가 많다. 음식을 하거나 집 안이 눅눅할 때 피우면 도움이 되고, 옷방에서 주기적으로 향을 피우면 오래된 향수, 땀, 체취 등에서 우러나오는 일상의 잡내를 가려준다. 룸스프레이도 이런 역할을 한다. 옷장에 4~5회 칙칙 뿌리고 문을 닫아두길 반복하면 옷에 향이 밴다. 단, 실내 습도가 60% 이하인 건조한 날에만 그리 하도록 하자. 마음에 드는 향이 있다면 산타마리아노벨라의 왁스 태블렛도 훌륭한 선택이다. 디퓨저를 놓기 힘든 서랍장 같은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친구다.
푸른숲 출판사의 벤치워머. 어쩌다가 『아무튼, 계속』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