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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증을 치료하는 음악

글렌 굴드, <바흐 : 골드베르크 변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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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잘 몰라도, 곡 속의 수학적 논리를 찾을 수 없어도 괜찮다. 무더위에 잠 못 이르는 요즘, 이 앨범을 곁에 두고 자장가 삼아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2018. 08. 17)

출처_게티이미지.jpg

           게티이미지

 

 

간혹 잠이 안 올 때면 정해놓고 트는 곡들이 있다. 존경하는 두 거장, 류이치 사카모토와 막스 리히터의 몇몇 곡, 그리고 오늘 소개할 글렌 굴드 버전의 <바흐 : 골드베르그 변주곡>이다. 이들 곡 모두는 음반을 끝까지 집중해서 들어본 적이 손에 꼽힐 정도로 (적어도 나의) 불면증에 효과가 있었다. 어쩌면 작곡 배경을 듣고 난 이후라 왠지 더 그렇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의 피아노 소품집 <지극히 사적인>도 불면증 치료에 적극 추천하지만….

 

아직도 논란과 의심의 여지는 남아 있지만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은 한 백작의 불면증을 치료하기 위해 작곡되었다는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가진 곡으로 유명하다. 독일 드레스덴 주재의 러시아 대사였던 헤르만 카를 폰 카이저링크 백작은 바흐의 음악 인생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음악 애호가이자 심한 불면증으로 고생하던 백작이 수면제를 대신할 수 있는 음악을 바흐에게 의뢰했고, 바흐는 그간 많은 도움을 준 백작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이 곡을 작곡해 보냈다고 한다.

 

내 경우는 정신과 의사인 친구에게 이 곡을 처음 추천 받았는데, 실제로 꽤 많은 사람이 이런 작곡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고 난 후 음악을 들었을 때 불면증이 개선되었다는 후기를 들려주었다고 했다. 그 후 내 주변에도 중요한 일을 앞두고 이 곡을 찾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플라시보 효과인지, 정말 치료의 효과가 있는 음악인지 여전히 누구도 확실히 답할 수 없지만, 그 옛날 백작과 현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이에게 안정을 주었던 음악임에는 분명하다.

 

사실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은 이런 가벼운 내용으로만 설명하기엔 굉장히 거대하고 동시에 학문적인 곡이다. 피아노 솔로만으로 무려 50분, 바흐가 자신의 모든 작곡 기교와 지식을 쏟아부은 곡이기도 하다. 「골드베르그 변주곡」은 마치 퍼즐 내지는 퀴즈 같기도 한데, 곡 속에 숨겨진 수학적?음악적인 논리를 분석하는 재미가 있는 곡이다. 첫 곡과 마지막 곡의 수미쌍관에서부터 3의 배수 번호가 붙은 변주곡에서는 음정이 1도씩 증가하는 등의 규칙들 속에 치밀하게 나열되어 있는 것이 이 곡을 더욱 중독성 있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글렌 굴드의 연주를 빼고 논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글렌 굴드의 연주는 너무나 독창적이고 동시에 유려하다. 마치 컨트롤러로 볼륨을 조절하고 있는 듯이 세심하고 정확한 표현력과 뛰어난 속주 테크닉은 이성적인 논리 속에 50분 동안 이어지는 이 변주곡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었다. 글렌 굴드는 강박증, 결벽증 등을 포함 여러 가지 정신적인 질환을 가지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극도로 세심했던 성격 때문인지 연주자와 관련된 기이한 에피소드도 참 많다. 혹여 손에 상처가 날까 봐 악수를 거부했던 것은 물론이고, 파티장에서도 장갑을 끼고, 특수 제작한 낮은 의자에 않아 건반이 코에 닿을 듯 말 듯한 자세로 피아노 연주를 했다는 그.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데뷔작으로 내놓은 이 음반은 1956년 발매된 이후 단 한 번도 절판된 적 없이, 여전히 인지도 1위를 굳건히 지키는 압도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이 음반을 처음 듣는 사람이라면 어디선가 들리는 아주 희미한 허밍 음과 (요즘의 기술력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자연적인 음질에 놀랄 수도 있다. 연주를 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그의 버릇 때문인데, 많은 기술자가 그의 허밍을 지우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쏟는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바로 굴드의 앨범이 매력적이고 특별한 이유이기도 하다. 나를 재즈의 세계로 인도해준 피아니스트 키스 자렛의 쾰른 콘서트 앨범에도 그의 콧노래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 그것이 마치 음악을 너무나 사랑하는 순수하고 자유로운 영혼의 소리처럼 느껴져 더욱 마음에 와 닿았던 기억이 있다. 글렌 굴드의 연주 역시 그렇기에 더욱 자유롭고 독창적이며, 동시에 살아 있다.

 

음악을 잘 몰라도, 곡 속의 수학적 논리를 찾을 수 없어도 괜찮다. 무더위에 잠 못 이르는 요즘, 이 앨범을 곁에 두고 자장가 삼아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Glenn Gould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Johann Sebastian Bach 작곡/Glenn Gould 연주 | Sony Classical / Sony Classical
그의 피아노 소리는 언제나 선명하고 굴드가 연주 중에 내는 소음도 자연스럽게 음악의 일부가 되었다. 우리는 그 어떤 이견도 없는 이곳에서 다시 조화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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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한(피아니스트, 작곡가)

피아니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 美버클리음악대학 영화음악작곡학 학사. 상명대학교 대학원 뉴미디어음악학 박사. 現 경희대학교 포스트모던음악학과 전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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