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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온기 – 기타리스트 함춘호

기타리스트 함춘호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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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춘호의 연주를 들을 때 우리는 그 정밀함이나 기교 때문만으로 감동하는 것은 아니다. 함춘호의 연주에는 절제가 있다. (2018. 0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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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1월, 하덕규(시인과 촌장)와 최성원(들국화)은 대구로 향하고 있었다. 하덕규는 새 음반에 들어갈 곡들을 써놓고서 함께할 멤버를 찾던 중이었다. 최성원은 노래도 하고 기타도 잘 치는 후배 함춘호를 적극 추천했다. “요즘 반짝이 입고 나이트클럽에서 기타 친다”는 정보도 곁들여서.

 

당시 함춘호는 이십 대 중반이었고 그 나이대의 청년들이 그렇듯 현실에 대한 불만족과 불안 속에 객지를 떠돌고 있었다. 울산에서 부산으로, 다시 대구로 클럽을 옮겨 다니며 연주했다. 그 시절은 후에 다양한 음악을 할 수 있는 양분이 되었지만, 그때는 어떻게 음악을 해나가야 할지 몰라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저 연습과 밤무대를 병행하며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서울에 있을 때 가깝게 지냈던 전인권 선배와 허성욱이 함께 음반을 발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들국화’라고 적힌 음반을 대구의 레코드점에서 구입해 들었던 날의 충격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했다. 혁신적이었던 ‘들국화’의 음악과 그들의 엄청난 성공이 방황하던 그에게 희망의 메시지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두 사람은 대구의 한 호텔 방에서 만났다. 통기타 하나에 실려 들려오는 하덕규의 새로운 노래들을 듣는 순간, 함춘호의 머릿속엔 편곡에 대한 그림이 자연스레 펼쳐졌다. 그 길로 서울에 올라왔고 하덕규, 함춘호 체제의 ‘시인과 촌장’이 〈푸른 돛〉(2집 수록곡)을 올렸다. 이 음반은 포크가 더 이상 ‘젊은 음악’이 아닌 시대에 신선한 멜로디, 철학적이고 감각적인 가사, 그리고 함춘호의 세련된 연주로 포크 음악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 익숙하지만 낯선 이들의 음악에 젊은 세대는 열렬한 지지를 보냈고, 수십만 장의 음반이 팔려 나갔다. 그렇게 ‘시인과 촌장’의 음악은 대중에 깊이 각인되었다. 이것은 〈가시나무〉가 실린 3집의 대성공으로 이어진다(함춘호는 시인과 촌장 2집까지만 활동한다).

 

함춘호는 이 음반에서 전혀 신인 같지 않은 연주를 들려준다. 그는 스무 살이었던 1980년 무렵부터 동료들을 도와 녹음을 하고, 포크 그룹 ‘따로 또 같이’ 이후 공백이 있던 전인권과 듀오로 1년 정도 활동한 경험이 있었지만, 아직 ‘프로 뮤지션’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이 음반이 그의 실질적인 데뷔였던 셈이다. 그럼에도 그가 들려준 건 ‘완성된 연주’였다. ‘완벽한 연주’를 했다는 게 아니라 프로 세션 주자로서의 역량을 보여줬다는 얘기다. 이 음반에서 그는 자신의 미래를 예견하듯 블루스, 포크, 팝, 록 등 다양한 장르의 연주를 매끄럽게 소화해낸다. 견고하고 절제된 연주는 곡의 정서를 살리고 색깔을 입히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의 연주로 음반은 진부하지 않은, 고급스러운 포크 음악으로 완성됐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느냐고 묻자 그는 ‘아마도 연습 스타일 때문이지 않을까’ 하고 대답했다.

 

“내 성격이 기타 연주나 노래 하나를 연습하면 그걸 완벽하게 하려고 하거든. 완벽하지 않으면 처음부터 다시 하고, 또다시 하고. 그런 게 내가 음악을 하는 데, 나중에는 세션이라는 직업을 갖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아. 물론 처음에는 완벽하게 한다는 게 시간도 걸리고 훨씬 힘든 일인데 그게 습관이 되니까 그 다음부턴 다른 곡을 하더라도 금방 습득이 되더라고. 그만큼 실력도 는 거지.”

 

이런 엄격함이 그가 최고의 연주자가 되는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함춘호의 연주를 들을 때 우리는 그 정밀함이나 기교 때문만으로 감동하는 것은 아니다. 이 음반에서 가장 놀라운 건 그가 절제된 연주를 들려준다는 점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그의 감성에 더 편안하게 몰입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모두가 알고 있지만 특별히 언급하지 않는 그의 연주의 가장 큰 장점은 어떤 세련된 화성이나 기교도 그의 감성을 빌려 전해진다는 점이다. 그것이 톤이건, 주법이건, 정밀함이건 음악의 감성을 앞서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기술적인 요소들이 모여 음악의 정서를 돋보이게 한다. 그렇게 전해지는 따스한 온기야말로 그의 음악의 본질일 것이다. 그는 젊은 시절, 무교동 카페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하며 동료들과 교류하던 시절이 그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누가 곡을 써 오면 같이 연주하고 부르고. 그러면서 좋은지 어떤지 상대에 대한 음악적인 평가도 하고. 그 시대는 그런 낭만이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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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맨이 처음 나왔던 시대, 레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 70년대 미국의 록밴드로 남부 지방의 블루스, 컨트리 등이 혼합된 록음악을 선보였다)의 음악을 내내 듣던 가을날의 기억, 그 기타 톤은 ‘시인과 촌장’의 음반에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전인권은 스무 살 무렵의 그에게 음악은 기술이 아니라 감성의 문제라는 것을, 이론이 아니라 그림처럼 그려지게 해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줬다.

 

“지금도 연주를 할 때면 그림을 그린다고 그럴까, 테크닉으로 하는 게 아니라 집을 지을 때 인테리어를 하는 것처럼 상황을 떠올리는 거야. 계단을 어떻게 놓고 창문은 어디에 만들고, 이런 식으로. 지금은 몸에 배어서 음악을 딱 들으면 몸으로 바로 나오지만, 그렇게 분위기를 만들면서 연주를 하는 거지.”

 

기타라는 악기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확실히 함춘호의 연주는 따듯한 어쿠스틱 사운드, 그만의 톤과 주법에서 전해지는 인간적인 감성 덕분에 더욱 깊이 각인된다. 낭만적이었던 시대, 그 시절 동료들과의 교류와 긴 방황까지도 그의 연주에 녹아 들어 어떤 온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선배들이 강압적이 아니라 음악을 이해할 수 있게, 계속 도전할 수 있게 자극을 줬거든. 그게 나한테는 굉장히 컸던 것 같아. 나도 제자들이 그렇게 이해할 수 있게 하려고 하는데 지금의 내가 그때 선배들처럼 좋은 선배일까 그런 생각도 들고. 그만큼 당시 선배들이 너무 좋았어. 음악적인 열정이 있었고. 같이 공유하던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있었어.”

 

그가 기타를 연주한 지 30년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의 연주는 여전히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이처럼 오래도록 빛바래지 않을 수 있는 건 그의 음악이 영원히 변하지 않을 인간의 본질, 마음의 울림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일 것이다.

 

 

함춘호(기타리스트)

1986년, ‘시인과 촌장’ 2집으로 데뷔한 이후 본격적인 세션 뮤지션 활동을 시작했고,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 대표 세션 뮤지션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세션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부족했던 시절에 연주자의 위상을 높여준 인물로 평가받는다. 시대를 선도한 그의 연주는 이제 대중음악 기타 연주의 표준으로 연구되고 있으며 그만의 기타 톤과 어쿠스틱한 감성은 지금까지도 대체불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최근에는 단독 콘서트나 여러 장르의 뮤지션과 협업하며 솔로 아티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함춘호’라는 이름만으로 대중에 음악적 신뢰감을 주는 한국 대중음악의 독보적인 연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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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현성(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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