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귀찮고 번거로운 일들을 매일 해낸다
일러스트레이터 박정은 아기 고양이를 통해 완전히 바뀐 생활
하루하루 우리가 나누는 경험을 일기에 적고 보니 그 안에는 먼지와 내가 있고, 우리가 겪은 성장과 변화의 과정이 담겼다. 그 글과 기록은 내 개인의 기록에서 벗어나 『내 고양이 박먼지』라는 책으로 다시 또 변화했다. (2018. 06. 20)
추운 겨울밤이었다. 집 밖에서 길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보니 검은 아기 고양이가 있었다. 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언젠가의 이별이 무서웠고, 책임감은 무거웠다. 그런 나에게 남편은 말했다.
"일찍 떠나보내는 것은 슬프지만 함께 살며 나누는 행복이 얼마나 커요. 언젠가 이별이 두려워서 시작도 하지 않는다면 아쉽지 않겠어요?”
고민 끝에 우리는 고양이의 가족이 되어주기로 결심했다. 까맣고 부숭부숭한 털이 먼지뭉치를 닮아서 이름은 ‘박먼지’가 되었다.
생애 처음으로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된 나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불안했다. 영양부족으로 작고 연약한 먼지가 혹여 나의 실수로 잘못될까 겁이 났다. 다른 고양이에 비해 경계심이 많은 먼지는 하루 종일 책장 구석에 숨어 나오지 않았다. 위험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믿음이 생길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 마음을 알아주었는지 먼지도 조금씩 다가왔다. 용기를 내어 무릎 위로 뛰어오르거나, 골골거리며 내 다리에 머리를 비볐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물론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새벽 내내 심하게 울고, 피가 날 때까지 나를 물고 할퀴곤 했다. 혼을 내면 오히려 화를 내며 숨어버렸다. 그런 날은 이불에 오줌을 쌌다. 선반 위 물건들을 하루가 멀다 하고 아래로 떨어뜨리기 일쑤였고, 화분과 그릇은 남아나지를 않았다. 얄미운 마음에 소리를 치다가도, 어딘가 아프기라도 하면 걱정과 죄책감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고양이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다. 매일 사료와 간식을 챙기고, 화장실은 물론 방바닥도 치워야 한다. 즐거운 놀이를 개발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야 하니, 미리미리 돈도 모아둬야 한다.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 캣스크래처(cat scratcher)와 캣그라스(Cat Grass) 준비도 잊으면 안 된다. 오랜 시간 집을 비우면 매우 신경 쓰이고 걱정 된다.
아기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된 것뿐인데 나의 생활은 고양이를 중심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하지만 이 귀찮고 번거로운 일들을 매일 해낸다. 그것도 매우 기쁜 마음으로. 이상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변화는 이것만이 아니다. 먼지와 살면서부터 세상의 온갖 고양이들이 눈에 밟힌다. 집에 찾아오는 길고양이들은 먼지의 친구이거나 가족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밥과 물을 챙기고, 상자 집을 만들어주는 건 내 일이 되었다. 유기 동물들의 실상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동물의 권리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고양이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동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기 고양이가 내 삶에 들어왔을 뿐인데, 작은 변화로부터 큰 변화가 시작되었다.
먼지는 나의 첫 고양이다. 먼지에게 나는 처음 만난 사람이다. 우리는 닮기도 했지만, 대체로 많이 다르다. 서로 다른 생명끼리 관계를 맺고 서로에게 맞추는 과정이 어디 쉬운 일인가. 나는 먼지와 처음 만난 이후 그와 함께 나누는 경험이 소중했다. 우리 사이에 쌓이는 시간을 잊지 않기 위해 매일 그림일기를 쓰고 그렸다. 하루하루 우리가 나누는 경험을 일기에 적고 보니 그 안에는 먼지와 내가 있고, 우리가 겪은 성장과 변화의 과정이 담겼다. 그 글과 기록은 내 개인의 기록에서 벗어나 『내 고양이 박먼지』 라는 책으로 다시 또 변화했다. 우리의 성장과 변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먼지와 나의 그림일기도 현재진행형이다.
내 고양이 박먼지박정은 저 | 혜화1117
일상을 통해 이질적인 생명의 만남은 키우고 키워주는, 일방적인 보호와 피보호의 관계가 아닌 서로의 존재와 특성을 존중하고, 함께 살아가는 관계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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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 『내 고양이 박먼지』저자
<박정은> 저14,850원(10% + 5%)
“2014년 늦가을, 검은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내게로 왔다. 그는 나에게로 와서 ‘박먼지’가 되었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하루 한 장 꼬박꼬박 그려나간 고양이 그림 일기 『내 고양이 박먼지』는 기억을 그리는 작가로 널리 알려진 일러스트레이터 박정은 작가가 2014년 가을 아기 길고양이를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