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 아니면 어디든 괜찮다고 여겼다
대만, 가오슝
혹시라도 한국을 떠나야 한다면 낯설지 않은 이 땅에 새롭게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거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2018. 05. 17)
‘형제상호’ 간판에 쓰인 글자처럼 잃어버린 너를 만난 기분이었다
이민을 생각했다
한때 그 여자와 나는 진지하게 대만 정착을 고민했다.
흐릿했던 그 생각은 한 달, 두 달을 살아보는 동안 뚜렷이 다가왔다. 중국과 일본 가운데 있는 듯한 그들의 문화와 환경이 적당히 신선했다. 외관에 크게 신경 쓰지 않은 듯 지어 올린 건물들은 실용과 실리를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대륙과 비슷해 보이지만 그 안에 세심하고 고풍스럽게 꾸며놓은 집 내부를 보면 디테일에 목숨 거는 섬나라의 그것 같아 보였다.
먹는 것이 낯설면 마음 주기가 쉽지 않은데 대만 음식은 육식을 좋아하는 우리의 취향까지 들어 맞았다. 고기를 함빡 넣어 국물을 우려낸 우육면은 얼큰한 사골국 같았고, 만두피 안에 육즙을 담뿍 품고 있는 샤오롱빠오는 흡사 탕 속에서 막 건져낸 유부주머니를 닮았다. 여기 사람들이 먹는 중화 요리는 그동안 한국에서 배달로 시켜 먹던 그런 맛이 아니었다.
대만인들은 한국 사람과 우리 문화에 우호적이다. 티브이를 틀면 한국 드라마가 나오고, 길거리를 거닐면 여지없이 K-POP이 들렸다. 지나치게 이국적인 곳이라면 버티기 버거울 텐데 대만은 유년을 함께 보내다 헤어진 형제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혹시라도 한국을 떠나야 한다면 낯설지 않은 이 땅에 새롭게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거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문화와 기술이 모여 있는 타이베이에서도, 대만의 전통을 간직하고 사는 타이난에서도, 일찍이 공업지대에서 문화예술특구로 변화해 가는 가오슝에서도 한 달씩 머무르며 살만한 장소를 물색했다. 하지만 그 의지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고개를 꺾어야만 했다.
가오슝에 한 달을 머무는 동안 14층 아파트의 가장 높은 층에 머물렀다. 주변에 고층 건물 이라고는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도심 한가운데 빌딩뿐이다. 그때만 해도 탁 트인 시야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잠자리에 들려고 불을 끈 순간 지진이 찾아왔다. 아파트는 좌우 앞뒤로 흔들거렸다. 철골 구조가 움직이며 내는 불쾌한 삐 끄덕 소리가 멈추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 때 우리는 누군가의 장난감 상자 안에 든, 흔들면 흔드는 대로 던지면 던지는 대로 그에게 운명을 내맡겨야 할 만큼 초라하고 작은 존재였다.
타이베이, 타이난, 가오슝에서 한 달 살기를 할 때마다 우리는 바다 건너 한국에서도 대서특필할 만한 큰 지진 가운데 있었다. 건물이 무너지고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자연의 힘 앞에서 어쩌지 못하고 떨어지는 낙엽처럼 목숨을 잃어야 했다. 평생 땅이 흔들리는 위험을 모르고 살았던 우리였기에 더욱 큰 공포로 다가왔다. 내 땅을 벗어남에 있어 새로운 장벽이 세워진 것이다.
이민을 접었다
높은 건물이 많이 없는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네
한 때는 서울이 아니면 어디든 괜찮다고 여겼다. 전 세계 40여 개 도시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면서 부동산 가격, 생활비, 이민정책을 주의 깊게 살펴봤다. 어느 나라든 외국인을 받아들이는 진입 장벽이 낮을 순 없다. 어려운 문턱을 넘어선다고 해도 살면서 겪게 되는 그 나라의 기후나 지형적 특색을 마주하고는 후회가 찾아올 때도 있다. 그래서 이민 선배들은 적어도 일 년 정도는 그 나라에 머물면서 사계절을 경험해 보라는 충고를 건넨다.
대만이 좋다가도 이민은 힘들겠지 싶다. 낯선 곳에 정착을 한다는 건 내 마음가짐 하나로 극복할 성질이 아니다. 익숙지 않은 자연재해를 받아들이는 자세는 현지인들조차도 오랜 시간의 수련이 필요한 문제이다. 확률 100% 지진을 겪고 나니 어느 순간 서울의 미세먼지와 혹한은 기꺼이 참을 수 있는 것이 되었다. 대만 사람들이 한겨울 한국에 방문해서도 같은 생각을 품지 않을까? ‘이 곳은 정착할 만한 곳이 못돼. 차라리 지진을 견디는 편이 낫겠어’라는 식으로.
며칠 전 만난 지인은 진지하게 이민을 생각하고 있었다. 추천해 줄 만한 도시가 있냐고 물었다. 이미 나라쯤은 정해 놓았을 텐데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래도 많은 곳을 보고 다녀온 사람이 추천해 준 나라니까 고려해 보겠다는 건지 그도 아니면 자신이 마음을 정한 도시와 겹쳐지기라도 해서 확증을 받고 싶은 건지 말이다. 가까이에는 대만 조금 거리가 있는 스페인,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야 하는 아르헨티나까지 마음을 품은 곳은 사실 여럿 있다. 그래도 가장 유력시됐던 대만을 포기하고 나니 이민 생각이 멀찌감치 달아났다.
이민을 접고 그럼 서울살이가 꽤 나쁘지 않다는 내 나름의 확증을 받아야 했다. 어디에서 살고 싶은지 물었던 지인의 질문처럼 나도 서울이 좋은 이유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국뽕이라고 폄하해도 어쩔 수 없다. 나를 설득하기 위한 객관적인 리스트 정도 하나쯤은 필요하니까.
‘밤 열 시 이후에 모든 시민들은 외출을 삼가합시다’ 라는 문구가 낯설게 느껴진다면 서울은 안전한 도시라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은 아닐까? 살인이나 강간 등의 강력범죄가 일상적으로 퍼져 있는 몇몇 나라에 비해 우리는 야간 산책이 자유로운 편이고 나 홀로 귀가에 ‘비교적’ 안전하다. 24시간 술과 담배 그리고 위급상황에서 약을 구할 수 있는 ‘편의점’의 존재도 새삼 고맙다. 일본과 동남아 몇 개국을 제외하면 서울은 각종 카드 할인과 신용카드의 소액 결제가 자유롭다. 이란, 네팔, 볼리비아. 이 세 나라 중 어디 한 군데를 가 봤다면 한국이 ‘인터넷’ 환경만큼은 세계 최강이라는 사실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극단적으로 느린 이 나라들을 제하고라도 비용과 속도 면에서 최강 수준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 밖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공화장실, 새벽까지 배달이 가능한 야식 문화도 빼놓을 수 없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서울은 소비에 최적화된 도시, 편리에만 몰입된 도시일 뿐이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빠르고 편리하다고 해서 반드시 사람이 살기 좋은, 삶의 질과 연결된 것은 아니니까. 그럼 이민보다 서울을 택한 딱 한 가지의 이유로써 이건 어떨까? 뭐니 뭐니 해도 말이 통한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고 하니, 우리 모두가 목격한 역사적인 사건도 있지 않은가. 북쪽의 불친절 했던 이웃과 통역이 필요 없이도 말과 말이 마음으로 이어졌던 산책 말이다.
그동안 ‘남녀, 여행사정’을 사랑해주신 <채널예스> 독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늘 함께 하는 부부작가이다. 파리, 뉴욕, 런던, 도쿄, 타이베이 등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도시를 찾아다니며 한 달씩 머무는 삶을 살고 있고 여행자인 듯, 생활자인 듯한 이야기를 담아 『한 달에 한 도시』 시리즈를 썼다. 끊임없이 글을 쓰면서 일상을 여행하듯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