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뱁새의 행복

황새 따라 갈 필요 없는 삶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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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며 지금의 내가 인정되지 않는 불행한 사태를 겪고 싶지 않아졌다. (2018. 05.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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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내리쬐는 햇볕, 탁 트인 시야, 아늑한 썬베드와 옆에 놓인 칵테일. 지상 낙원이 따로 없을 이 그림이 몇 주 뒤 펼쳐질 내 휴가일 거라고 믿으며, 손 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이 그림에는 전제가 있다. 예쁜 수영복을 입고 매끈한 몸매의 나의 모습이어야, 비로소 완벽한 그림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는 것. 아쉽게도, 이 전제는 성립이 되지 않았다. 내가 상상하던 완벽한 휴가는 그림으로만 존재할는지도 모른다.

 

새 옷을 차려 입고 거울 앞에 섰는데 어색하기가 짝이 없구나
그토록 탐을 냈던 값비싼 외투인데 이건 내게 어울리지 않아 / 이건 내게 어울리지가 않아
나도 쟤처럼 멋들어지게 차려 입으면 훨훨 날아갈 줄 알았어

점점 걔 같은 옷들로만 가득 찬 나의 인생을 보며 쓴웃음만 이걸 다 갖다 버릴 수도 없고 해서 입고 나왔는데 쥐구멍 찾아 숨고 싶구나
그들에겐 꼭 맞는 어여쁜 외투인데 나한테만 어울리지 않아 / 나만 엄청 어울리지 않아

나도 쟤처럼 멋들어지게 차려 입으면 훨훨 날아갈 줄 알았어
점점 걔 같은 옷들로만 가득한 나의 인생을 보며 스쳐가는 생각들 내게도 그런 날이 올까..

나난나나 나도 좀 날아보자 나도 새다 / 같이 좀 날아가자 넌 너무 빨라
- 선우정아, 노래 <뱁새> 中, 2집 『It’s Okay Dear』

 

날씨가 조금만 더워져도 다이어트 광고들이 쏟아져 나온다. 겨울 동안 더 부어버린 나의 몸을 부여잡고 거울 앞에 서서 지난 몇 달을 반성하는 일은 매년 반복되는 레퍼토리다. SNS를 들여다 보아도, TV를 켜 보아도, 심지어 홍대 거리를 다닐 때에도 나는 사람들, 그리고 내 안의 내가 원하는 몸이 되지 못한 나 자신을 질타한다. ‘나도 쟤처럼 멋들어지게 차려 입으면 훨훨 날아갈 줄 알았어’라는 노래를 남몰래 읊조리면서. 혹여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밖으로 드러날까 적당히 나 자신을 포장해가면서.

 

뱁새 같은 나의 모습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나를 나대로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상적인 모습의 나를 끊임 없이 꿈꾸게 만드는 것. 나도 언젠가는 날아보자고, 지금의 나의 모습은 부정하게 되거나 온전치 못한 모습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수없이 많은 순간들에서 자존감을 잃어가고 있는 이 불행한 사태를 비단 나뿐만이 겪는 것은 아닐 테다.

 

나는 태어나 지금까지 통통하지 않았던 때가 없었다. 그런 나는 여태껏 웃을 때 눈이 작아지고, 볼살이 오동통하게 올라오는 웃는 내 모습이 싫어 사진을 찍을 때면 활짝 웃지 못했다. 엄마가 프로필 사진으로 내가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을 해 둘 때면 “왜 이렇게 못생긴 걸 골랐어”라고 핀잔을 주기 십상이었고, 스스로도 활짝 웃지 않아 그나마 볼살이 덜 보이는 사진을 고르곤 했다.

 

최근 누군가가 찍어 준 나의 사진을 보는데 문득 나 스스로 ‘지금 이대로도 나를 사랑할 만한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며 지금의 내가 인정되지 않는 사태를 겪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나를 바꾸어야 내가 행복해지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그 대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냥 현재 행복해하는, 자신을 더 보듬어주는 내 모습이 고파질 뿐.

 

나는 나를 싫어한다. 아니, 이 사회 전체가 내가 나를 싫어할 것이 틀림 없다고 말하고 있으니 내 생각에 적어도 내가 이것만큼은 제대로 해내고 있는 것 같다. 아니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나는 내 몸을 싫어한다고. (중략)

내 몸을 내 사이즈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수많은 여성을 실망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싫다. 하지만 나는 나를 좋아하기도 한다. 나의 인격, 나의 특이한 유머 감각, 거칠면서도 낭만적인 구석이 있는 내가 좋다. 내가 사랑하는 방식과 내가 글 쓰는 방식이 좋고, 친절함과 까칠함이 공존하는 내 성격과 말투가 좋다. 이제 40대가 되어서야 나는 나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인정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아직도 그래서는 안 된다는 의심이 날 괴롭히기도 한다. (중략)

마치 뚱뚱한 몸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당연히 자기혐오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듯한 세상이 지긋지긋해졌다 그보다는 모든 불쾌한 소음을 차단하려고 노력 하는 편이, 고등학교 때와 대학교 때와 20대 내내 저질렀던 실수를 용서 하기로 노력하는 편이, 그 실수를 저지른 나에게 동정심을 갖는 편이 훨씬 더 쉽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나 자신을 바꾸고 싶지 않다.
- 록산 게이,  『헝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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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하지만 나를 사랑하는 내 모습이 고프다고 해서 바로 나를 사랑할 수 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끊임 없이 사랑할만한 가치가 있는 모습인지 스스로를 검열하고, 남들에게 보여질 나의 모습을 더욱 신경 쓰게 된다. 여전히 화장을 하지 않은 날에는 왜인지 예의를 덜 차린 것만 같다. 날씬하지만은 않은 나의 모습을 거울로 바라보며 이상적인 몸으로 생각해왔던 누군가의 몸을 자꾸만 떠올린다.

 

어제 지하철에서 내게 벌어진 성추행을 두고서도 나는 스스로 내가 성추행을 당한 것이 맞는지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의 나는 화장기 없는 얼굴에, 헐렁한 바지를 입었던 누가 봐도 매력적이지 않을 모습이라고 스스로를 재단했기 때문이다. 분명 내가 당한 것은 성추행이 맞는데도, 나는 그런 추행일랑 나보다 조금 더 매력적일 누군가에게 벌어질 일 일거라고 성추행 앞에서도 나를 검열했다. 분명한 성추행 앞에서 ‘내게 성추행을 벌인 게 맞을까?’하고 고민하는 사이, 가해자는 그렇게 또 조용히 묻혀졌다. 어떠한 대가도 치르지 않은 채로. 그는 또 다시 나처럼 고민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추행을 할 테다.

 

우리 몸이 무엇을 하는지 생각하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몸을 온전히 느끼기 위한 첫걸음이다. 몸이 하는 일은 단순히 운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리고 신체적 능력에 감사하기 위해 완벽하게 튼튼한 몸을 가질 필요는 없다. 마라톤을 뛰거나 크로스핏 을 해낼 필요도 없다. 신체적 기능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몸은 당신이 살아오면서 개발해온 모든 능력의 고향이다. 얼굴의 움직임은 마음속 깊은 감정을 표현해준다. 몸은 음식에서 영양분을 섭취하여 전 세계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도록 힘을 북돋아 준다.

- 러네이 엥겔른,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中

 

요즘 들어 운동에 취미를 붙인 나는 운동을 하면서 예전보다 더 많이 움직이려 하고 먹는 것에도 신경을 쓰는 편인데, 왜 사이즈가 줄어들지 않을까를 늘 고민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운동이란 것이 오로지 몸을 만들기 위함으로 연결되어서, 운동을 할 때마다 이건 얼마나 살이 빠질 운동인가를 고민하면서 하게 되었다. 그렇게 운동하는 나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예전보다 조금 더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큰 변화가 없는 내 몸을 보면서 ‘그냥 좀 더 건강하기나 하면 좋겠다’며 몸을 만드는 것에 대한 욕심을 버려봤다. 그랬더니 운동을 하는 것, 샐러드를 챙겨먹는 것이 나를 챙기는 행동처럼 여겨졌고, 그것들을 하고 나면 왠지 모를 성취감에 행복해지기까지 했다. 10km 달리기를 해내는 내가 대견해졌고, 근육통이 온 몸을 부여잡고 다시 운동을 가는 내가 사랑스러웠다. 물론 아직까지 나는 날씬한 몸을 가지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건강하게 먹기 위해 요리를 하고, 귀찮아도 몸을 움직이려 노력한다.

 

뱁새 같던 나는, 이제 더 이상 황새를 따라가지 않아도 되는 삶을 꿈꾼다. 자기혐오인지도 몰랐던 나에 대한 부정을 어떤 방식으로든 긍정으로 바꾸고 싶다. 하지만 언제고 나는 다시 또 이런 자존감을 가져도 되는가에 대한 의심을 품을지도 모른다. 그 의심으로 부디 지금의 나를 불행하게 만들지 않기를, 의심이 확신으로 바뀔 수 있기를. 스스로를 뱁새라고 생각하는 것도 언젠가는 멈출 수 있기를 기원하며 여행에서 입을 수영복을 골라본다. 자신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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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나영(도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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