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익 “쓰면서 제 안의 아이가 뛰어 노는 걸 느꼈어요”
『도깨비폰을 개통하시겠습니까?』 제22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고학년 부문 대상 수상작
김지은 평론가의 『거짓말하는 어른』 서문에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아이는 어른이 보지 않을 때 잘한다고요. 서문이 정말 아름다운데요. 삼촌이 여자친구와 통화하러 나갔을 때, 엄마가 시장 보러 갔을 때 그때, 어른이 보지 않았을 때 아이들은 잘한다는 거예요. (2018. 04. 13)
5학년 지우는 우연히 학교 도서관에서 스마트폰을 발견한다. 사용 흔적도 없는 새것, 주인이 없는 듯한 스마트폰을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주머니에 찔러 넣은 지우는 불안과 매력을 동시에 느끼며 정신없이 빠져든다. 게임도 하고, 동영상도 보며 스마트폰을 만끽하던 중 걸려온 전화의 주인공은 바로 도깨비친구. 그들의 초대를 받아 도깨비 세상에 발을 들이게 된 지우는 허깨비 놀이도 하고, 꼭두각시 반려견 코리도 만나고, ‘술술술’앱으로 쌓인 숙제도 말끔하게 처리한다. 매일 신나는 나날을 보내던 지우는 그러나 도깨비폰의 해로움을 점차 깨닫게 된다. 어떻게 하나? 과연 지우는 도깨비폰의 엄청난 유혹을 이길 수 있을까?
2008년 「화면 저편의 인간」으로 등단해 장편 『종료되었습니다』 , 『선암여고 탐정단』 등 탁월한 흡인력의 추리소설을 써온 박하익 작가의 첫 번째 동화 『도깨비폰을 개통하시겠습니까?』 는 늘 스마트폰을 사달라고 조르는 자녀에게서 시작된 이야기다. 이 매력적인 물건을 어떻게 하면 좀 더 주도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 고민한 작가는 주인공 지우가 도깨비폰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들려주며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란 무엇인지 찾는다. 경계하는 마음, 온전한 자신으로 돌아오도록 하는 고요한 시간은 어린이에게도, 성인에게도 꼭 필요하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동화를 쓸 때 너무 행복했어요
얼마 전에 볼로냐도서전 다녀오셨죠? 창비 ‘좋은 어린이책’고학년 부문 대상 수상 축하드립니다. 소식 듣고 기분 좋으셨을 것 같아요. 어떠셨어요?
네, 잘 다녀왔어요. 재미있었습니다.(웃음) 축하 감사드려요. 수상 소식을 듣고서는 기분도 좋았고요.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작년에 여러 가지로 마음고생을 좀 했거든요. 제 소설이 영화로 개봉이 되어서 그런 걱정도 있었고, 신작을 써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는데요. 수상으로 인해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어요. 위로가 됐었어요.
신작 부담이 있으셨군요.
둘째 아이를 낳고 거의 2년 정도 신작이 나오지 않았었거든요. 그러는 동안 영화가 개봉됐는데요. 영화 <희생부활자>의 원작 『종료되었습니다』 는 제가 거의 7-8년 전에 썼던 작품이고요. 그걸 이제 와서 재평가 받는다는 게 상당히 부담이 됐어요. 더구나 그 작품은 첫째를 가졌을 때 막달 한 달 동안 썼던 작품이에요. 제 경우 대중에게 알려진 이미지가 없는 상태인데 다시 그것으로만 알려지는 것에 대해 걱정을 했었죠. 그러다가 마침 이 상을 받게 되어서 또 다른 이미지를 보여드릴 수 있다는 게 저한테 기쁨이었어요. 무엇보다 위로였고요.
첫 어린이문학 작품이에요. 추리소설을 써오시다 새로운 도전을 하신 건데요. 어떤 이유였나요?
두 가지예요. 첫째는 내적 요인인데요. 저는 추리소설에 대해 굉장히 큰 의미를 갖고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겪어온 기독교적 분위기, 죄와 벌, 정의에 관한 의문과도 닿아 있어서요. 추리소설은 매우 사랑하는 분야거든요. 하지만 하필이면 아이 낳는 동시에 추리소설 작가로 경력을 시작하다보니 어려운 점이 많았죠. 자료 읽는 게 힘들어요. 충격이 심했어요. 육아 부담이 커서 다른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순수한 아이들과 잔혹한 범죄 사례들을 병행해서 본다는 건 너무 힘든 일이더라고요. 아이를 처음 낳은 엄마는 어린이 학대 뉴스를 보는 것이 고통스러워요. 그런데 그 경험이 5년 반복되니까 내면이 너무 많이 상했어요. 트라우마를 겪었죠. 통계적으로는 그렇지 않겠지만 저한테는 사건 하나하나가 너무 강하게 느껴져서 저희 아이가 놀이터에서 30초만 안 보여도 비명을 지르듯 찾고 그랬어요. 이런 불완전한 세상에서 살 아이들에 대한 걱정, 공포가 컸어요.
너무 어려운 일이었을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그걸 치유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어요. 어떤 면에서는 치유, 어떤 면에서는 도피였을지 모르겠는데요. 그래서 동화를 쓸 때 너무 행복했어요. 굉장한 위로를 받았고요. 두 번째 이유는 환경적인 한계점이었어요. 육아를 하면서 1,300매 이상이 되는 분량을 쓰기 힘들었어요. 집중하는 시간이 길어야 하는데 아이는 깨잖아요. 집중하려고 하면 깨요.(웃음) 5-6년을 반복했어요. 무기력이 찾아와요. 굉장히 우울증이 심하게 왔고요. 그러다가 마침 첫째가 초등학교에, 둘째가 어린이집에 가게 됐고, 비교적 시간 여유가 생겼죠. 뭘 써보고 싶은데 완성될 수 있는 분량, 형식을 찾다보니 아동문학으로 와 있더라고요. 또 저희 아이가 항상 “엄마, 핸드폰 좀 사줘.”라고 했거든요. 그렇게 쓰게 된 거예요.
친구들에게 핸드폰이 많이 있죠?
초등학교에 가면서 비율이 많이 늘더라고요. 또한 저학년 때까지는 어떻게든 ‘키즈폰’으로 버텨보지만 고학년이 될수록 스마트폰이 많아져요. 또래집단에서 관계형성을 하다보면 메신저의 역할이 커져서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으로 가게 되거든요. 아이들은 거의 스마트폰으로 세상을 알아가잖아요. 그런데 이 이야기를 아무도 안 쓰셨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이 소재로 이야기를 쓰게 됐습니다.
자녀분은 이 이야기에 대해 뭐라고 하던가요?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웃음) 되게 행복해하고 있어요. 이렇게까지 좋아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이 이야기를 쓰는 데 자기가 크게 공헌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자기가 제 창작세계에 참여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얘기를 해주기도 해요. 이런 이야기를 써라, 빨리 써라, 이러면서요.
동화작가로서 도깨비를 현대적으로 해석한다면
무엇보다 도깨비 설화의 현대적 해석이 굉장히 재미있어요. 이런 해석을 어린이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신 거겠죠?
도깨비는 『서유기』 의 ‘사오정’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해요. ‘손오공’이나 ‘저팔계’는 새로 쓰여도 캐릭터에 큰 차이가 없어요. 손오공은 유능하고, 모험적이고요. 저팔계는 비굴하고 먹을 걸 밝히죠. 하지만 사오정은 작가의 해석에 따라 굉장히 달라져요. 도깨비도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도깨비는 아직 문화적인 맥락 속에서 구체적인 형태를 갖진 못했죠. 이제는 도깨비에게 구체화된 형상을 부여해줄 때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요. 드라마 <도깨비>에서는 도깨비의 신적인 면을 강조했잖아요. 책에 참고문헌을 적었는데 도깨비 연구하신 김종대 분이 고대의 도깨비는 신이었을 것이라고 연구하셨더라고요. 한편 저는 동화작가로서 도깨비를 현대적으로 해석한다면 뿔을 달고 있지 않은, 그러면서도 동시대와 호흡할 수 있는 모습으로 그려보고 싶었고요. 마침 과학기술이 마술처럼 발달하고, 그것이 하나의 도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자연스럽게 연결하게 된 것 같아요.
꼭두각시라든지 ‘날대야’라든지 추석에 보름달이 더 밝은 이유 같은 것들이 정말 좋았거든요. 특별히 작가님 마음에 들었던 이야깃거리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더라고요.
굉장히 많은데요. 꼭두각시도 그래요. 희한하게도 도깨비 속 세상, 설화 부분과 현재의 과학기술 부분이 맞닿는 부분이 굉장히 많았어요. 우연이었던 것 같아요. 워낙 설화에 잠재된 이야기가 많았던 것 같고요. 마침 투명망토가 개발되고 있었는데 그게 도깨비감투와 같고요. 날대야도 드론과 닿아 있었어요. 날대야는 도깨비 설화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건 아니지만 『조선왕조실록』에 UFO와 관련된 서술이 있는데 날대야 모양이었다고 하거든요. 여러 가지 시의적으로 맞았던 것을 운 좋게 집어 썼다고는 생각이 들어요. 조금 빨리 쓸 수 있었던 게 행운이죠.
“도깨비 세계에도 택배가 있어?”
“응, 날대야들이 물건을 배달해 줘.”
“날대야가 뭐야?”
“물건을 운반하는 대야지! 날아다니는 대야!”(중략)
“사실 인간들이 목격하는 유에프오는 거의 우리 날대야인 걸. 도깨비들은 쇼핑을 진짜 좋아하거든.”(87-88쪽)
주인공 ‘지우’가 초등학교 5학년인 이유도 분명히 있을 것 같아요. 그 시기이기 때문에 따라오는 이야기들도 있었고요. 학업 스트레스, 부모와의 관계 등이 그렇죠.
우선 앞으로 서술하게 될 과학기술에 관한 것을 주인공이 설명할 필요가 있었고요. 6학년이 되면 또 너무 이야기가 커져서 읽는 데 부담을 갖게 될 것 같았어요. 5학년은 한창 호기심도 왕성하고, 저학년들에 비해서는 과학기술에 대해 좀 더 명확한 용어를 써서 이야기해줄 수 있기 때문에 선택된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하면 지우의 연령은 3학년 정도로 잡고 있는데요. 서술 상으로는 12살이 좋았던 거죠. 가상 독자로는 3학년 정도를 생각했었어요.
지우는 어떤 어린이를 상상했을까요? 특정 인물이라기보다 성격이나 장점 등과 관련해 어떤 인물을 떠올리면서 쓰셨는지 듣고 싶어요.
사실 저희 동네에 사는 지우라는 아이의 이름을 딴 거예요. 전적으로 그 아이의 인격을 상상한 것은 아니지만요. 저는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을 조금 어색해 하거든요. 그런데 지우라는 아이가 굉장히 밝고 배려도 잘하고 두루두루 잘 지내더라고요. 항상 눈여겨보고 있었죠. 만약 이 책을 내면 그 아이한테 제일 먼저 선물해주고 싶었어요. 이름은 꼭 지우라고 짓겠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선물해줬는데요. 저는 정말 재미있게 썼다고 생각하고 책을 받으면 몇 초 만에 읽겠지 생각했거든요.(웃음) 하지만 확실히 아이들은 바빠요. 세상에 재미있는 게 많아서 책 읽는 데에는 며칠 걸리더라고요. 아직 읽고 있다는데 그래도 기뻐요. 걔한테 줄 수 있었다는 게 너무 기뻐요.
지우라는 친구는 정말 좋겠는데요.
성은 조금 다르게 했어요. 너무 부담을 느낄까봐서요.(웃음) 근데 정말 기뻐요. 걔는 모르겠지만 누군가한테 그렇게 줄 수 있다는 게 정말 기뻤어요.
네가 온전한 너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흥미로웠던 게 지우가 도깨비폰을 발견할 때 ‘불안과 매력을’ 동시에 느꼈다는 점이에요.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감정이란 생각을 했어요.
아이들이 어떤 것에 대해 즐거움과 불안을 느끼는 건 성숙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놀이가 100% 깔끔한 만족감만을 줄 수는 없어요. 자신의 과업, 해야 할 일에 대해서 항상 반성하는 자아는 가지고 있어야 하고요. 이 이야기가 말하는 것도 그거예요. 반성적 자아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는 거거든요. 만약 어떤 놀이를 하고 난 후 죄책감이 남는다면 그 놀이에는 뭔가 나 자신을 불안하게 하는 요소가 잠재되어 있는 거죠. 이미 마음을 빼앗긴 상태이기 때문에 네가 온전한 너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그걸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고 싶어요. 불안과 즐거움은 항상 같이 가는 것이고, 또한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해요.
후반부에 들려주는 이야기도 그거예요. 생각하라는 것, 고요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기독교 분위기의 집에서 자랐는데요. 신앙 여부와 상관없이 신기하다고 생각한 것이 있어요. 하나님의 상(像)이 인류 역사에서 보편적으로 오랫동안 강력하게 영향을 끼쳤잖아요. 만약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그것은 인간이 가장 강력하게 매력을 느끼는 인간의 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인간이 외부에 만들어놓은 초월적 자아가 자기에게 끊임없이 거룩하라는 것을 강조하는 거잖아요. 왜 인간이 향상된 자아로 가기 위해 거룩성을 염두에 두게 만들었을까, 이런 생각을 했는데요. 그러다보니 거룩한 상태, 자기 마음이 혼자 존재할 수 있는, 게임이나 연애, 돈 등에 지배당하지 않고 나의 초월적 자아, 외면적 자아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태를 인간 스스로가 생존에 있어 가장 강력한 상태라고 무의식중에 깨닫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런 생각이 이야기에 담긴 것 같아요.
당연한 얘기지만 이것은 작가님이 어린이들, 특히 자녀분들에게도 가르치고 싶은 생각이겠죠?
그렇죠. 왜냐하면 저는 굉장히 산만한 아이였고요. 저희 아이도 슬슬 조짐이 보여요.(웃음) 그런데 항상 그런 것들을 할 때 경계하는 마음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인 거예요. 이미 답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기회의 책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주도권을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지우의 결핍에 대해서도 조금 더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요. 지우가 도깨비 친구들이 너무 좋아질 때 그 이유를 솔직함, 뒤끝 없음이라고 해요. 지우는 그런 관계가 목말랐던 거죠. 부모님과의 대화조차도 생각할 게 너무 많고요.
어떤 연구 결과를 읽었는데요. 인간이 인간관계를 만드는 데 투자해야 할 에너지가 굉장히 크대요. 그래서 어떤 집중의 과업을 크게 해야 하는 사람들은 인간관계 부분을 많이 놓치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요즘 아이들이 그런 면에서 딜레마에 빠진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아이들에게는 숙련되어야 할 지식이 너무 많아요. 숙련되지 않는 노동자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고 무섭게 말하기도 하잖아요. 단순 노동을 로봇이 대체하는 무서운 세상이 되어버린 거죠. 그러다보니까 아이들은 끊임없이 배워야 하고, 복잡한 사람의 내면과 감정을 다뤄야 할 자리를 학업에 의해 많이 손상당한 거예요. 그런 아이들한테는 보다 자신의 수준에 맞는 단순한 관계부터 필요하고, 부드럽게 말해줄 사람이 필요하죠. 요즘 아이들이 은유나 은근한 암시를 어려워하는 게 대중매체에도 많이 나오잖아요. 인간관계는 어렵거든요.
도깨비들이 바로 그 부분을 채워주고요.
도깨비들은 단순하고요. 사람을 너무 사랑해요. 도깨비는 요즘 친구들에게 참 좋은 친구가 되어줄 수 있는 설화적인 환경이라고 생각했고요. 우리 도깨비들이 요즘 아이들에게 이야기되고 아이들에게 말 걸어줄 수 있는 좋은 요인이 있다면 그것은 도깨비들의 단순함과 장난스러움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지금은 특히 세계적으로도 신화, 설화가 많이 발굴되는 상태잖아요.
어린이들이 관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실제로도 많이 느끼세요?
네, 저는 저희 아이를 보고 어린 시절의 저를 용서했어요. 저는 사람들과 노는 것보다 그들이 노는 걸 보는 것을 더 좋아했어요. 아이들과 노는 것도 때로는 좋았지만 소모되는 느낌이 많았고요.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보다는 떨어져서 관찰하는 게 정말로 행복했어요. 그런데 저희 아이도 무리 지어서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는 걸 굉장히 부담스러워하는 거예요. 그걸 보고 깨달은 게 나의 어떤 결여된 면이 우리 아이에게 있구나, 이런 고민을 하는 아이들이 있구나, 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더 공감이 갔는지도 몰라요. 게다가 요즘 아이들은 아무래도 형제도 더 적고요. 관계를 지속적으로 맺을 기회를 너무 많이 잃어버렸거든요.
주인공 지우가 친구들과 시간을 정해서 놀이터에서 만나기로 하죠. 이런 장면을 보면서 깜짝 놀랐어요.
그럴 수밖에 없어요. 너무 불쌍해요. 더구나 미세먼지가 강력한 장애물이에요. 현재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들은 지금부터 평생 맺을 대인관계 기술을 습득해야 하는 시기거든요. 그런데 이 아이들이 안 그래도 해야 할 과업이 많고요. 학교나 학원 안에서만 대인관계를 형성해야 했었는데 심지어 미세먼지로 인해 자율적인 관계 맺음의 기회가 굉장히 많이 박탈됐어요. 특히 3세 미만의 영유아 경우 폐 자체가 여물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거든요. 당연히 자율적인, 스스로 용기를 내서 맺는 관계가 아니라 보호자들이 만들어놓은 한계와 통제 속에서만 관계를 맺어야 하잖아요. 앞으로 십 년 뒤가 저는 너무 걱정 돼요. 지금은 놀이터에서 놀지를 않거든요. 너무 무서운 일이에요.
그러니까 스마트폰에 열광하지 않을 수 없는 거죠. 온라인 놀이터, 온라인 광장인 거잖아요.
그렇죠. 정말 불행한 일이에요.
유쾌한 동화를 쓰고 싶어요
앞으로도 동화, 어린이의 이야기를 계속 쓰고 싶은 생각이 있으신 건가요?
아이들은 세상을 더듬더듬 알아나가는데요. 아이들에게는 순수한 기쁨이라는 게 있어서 이 소설을 그저 이야기로 받아들여주더라고요. 이야기의 구조나 캐릭터성, 이런 것 없이 말이죠. 그런 것을 보면서 제가 처음에 글을 썼을 때의 즐거움을 되살리게 됐어요. 글을 쓰면서 겪은 어려운 일들을 동화를 쓰면서, 아이들과 호흡하면서 많이 잊어버리게 됐거든요. 소생되는 걸 느꼈죠. 그래서 이왕이면 조금 더 쓰고 싶어요. 떠오르게 된 이야기가 몇 개 있어서요. 몇 가지 생각해놓은 것까지는 쓰고 싶어요.
더 쓰셔야죠.(웃음)
저도 이렇게까지 아동문학을 생각하게 될 줄 몰랐어요. 한국 아동문학에 대해서 잘 몰랐고, 공부를 특별히 한 것도 아니었어요. 국어교육을 전공하긴 했지만 그것은 중고등학생에 관한 일이었고요. 그런데 일단 이 작품을 쓰는 게 저한테 큰 위로가 됐어요. 추리소설 쓸 때와는 다르게 제 안의 아이가 뛰어 노는 걸 느꼈고요. 또한 아이를 키우면서 동화를 많이 읽게 되는데요. 그러면서 다시 읽게 된 동화가 로알드 달의 『내 친구 꼬마 거인』 이었어요. 특히 좋았던 건 이야기가 로알드 달 자신의 이야기 같았기 때문이에요. 거인과 소피의 관계가 작가와 로알드 달 자신과의 관계와도 같다고 느껴졌거든요. 상처 받은 거인이 소피와의 관계를 통해 회복되면서 건강하게 자신의 장애물을 물리치는데요. 제가 동화를 쓰면서 그런 걸 느낀 거죠. 더 쓰고 싶어요. 쓰면서 정말 행복했어요. 즐거운 동화를 많이 쓰고 싶어요.
즐거운 동화요.
저는 유쾌한 동화를 쓰고 싶어요. 슬픔을 강요하지 않고, 사회적인 문제를 너무 강요하지 않고 아이가 아이됨으로써의 기쁨을 마음껏 영위할 수 있는 작품을 쓰고 싶어요. 저는 좋은 부모란 천진함을 맛볼 수 있게 해주는 부모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시기의 천진함을 놓치지 않게 하는 것이 부모란 생각을 했는데요. 계속 동화를 쓴다면 그런 동화작가가 되고 싶기도 하고요. 또 한 가지는 제 목표인데요. 정말 재미있게 써서 아무리 두꺼워도 두려움 없이 독파하게끔 하는 책을 만들고 싶다는 거예요. 재미있는데 두꺼운(웃음) 책을 쓰고 싶어요. 아이들이 인생에서 제일 두꺼운 책을 열두 살 미만의 시기에 만나게 됐으면 좋겠고요. 그게 제 책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욕심이 있어요.
윤 진사가 처음부터 훈수를 두거나 하지 않잖아요. 질문을 해올 때에만 약간의 힌트를 주고요. 어른의 역할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시행착오를 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화두도 주고, 그렇게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충분히 자기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어른 같아요. 김지은 평론가의 『거짓말하는 어른』 서문에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아이는 어른이 보지 않을 때 자란다고요. 서문이 정말 아름다운데요. 삼촌이 여자친구와 통화하러 나갔을 때, 엄마가 시장 보러 갔을 때 그때, 어른이 보지 않았을 때 아이들은 자란다는 거예요. 직접 경험을 통해서 자라게 되는 거죠. 정말 공감했어요.
이 책을 꼭 추천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일까요? 성인이어도 좋을 것 같고요.
스마트폰으로 뭔가 죄책감을 느끼는 아이들(웃음)이요. 저는 아이들이 자기 가능성을 너무 폄하하지 않았으면 좋겠거든요. 도깨비 설화 중에 참 재미있었던 게 도깨비들이 신기하게도 잠재력을 가진 어린 아이나 사람을 알아본다는 거예요. 그래서 공부하러 가는 데 꽃가마를 보내주고, 그 사람이 지나갈 때 “정승 지나가신다!”라고 한다는 내용이 있어요. 너무 신기하죠? 그래서 저는 사실 아이들은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귀한 존재라는 걸 조금 더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도깨비폰을 개통하시겠습니까?박하익 글/손지희 그림 | 창비
최첨단 과학 기술과 도깨비가 살아가는 환상 공간을 연결한 기발한 판타지 동화로, 평범한 일상을 뒤흔드는 신기한 일이 벌어지길 바라는 어린이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작품이다.
관련태그: 도깨비폰을 개통하시겠습니까, 스마트폰, 박하익 작가, 판타지 동화
읽고 씁니다.
<박하익> 글/<손지희> 그림10,8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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