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 특집] 구석구석 팟캐스트 지형도
<월간 채널예스> 3월호 특집
알고 싶고 누리고 싶고 공유하고 싶은 거의 모든 것의 ‘입’들이 팟캐스트를 통해 송출되고 있다. 귀로 듣는 세상을 채우고 있는 팟캐스트 지형도를 살펴봤다. (2018. 03. 07)
2011년 <나는 꼼수다>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환호했다.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정치이야기에 숨 죽이며 깔깔거렸고, 진행자 4명은 대한민국의 스러진 정의를 견인하는 영웅이 되었다. 당시 <나는 꼼수다>는 애플의 아이튠즈로만 서비스 되었는데,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이 많았던 시기에 엄청난 반응의 콘텐츠를 실어 나를 로컬 서비스가 필요했다. 바로 지금의 팟캐스트 플랫폼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팥빵’의 시작이었다. 한때 ‘팟캐스트’는 애플의 ‘아이팟(iPod)’과 ‘방송(Broadcasting)’이 결합된 단어로 인식되었으나 지금은 인터넷으로 들을 수 있는 ‘개인주문방송(Personal On Demand Broadcasting)’의 약자로 이해하는 편이 적절하다. 정치, 경제, 과학, 의학, 인문, 사회 등 하고 싶은 이야기만 있다면 그 누구나, 어떤 이야기라도 팟캐스트로 만들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지난해 팟빵에서 서비스된 콘텐츠만 해도 1만개를 넘어 섰다.
팟캐스트의 르네상스라고 부를 수 있는 지금의 현상은 음성 콘텐츠 시장에도 불을 지폈는데, 인공지능(AI) 스피커의 열풍도 함께 불면서 양적 질적 성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새로운 플랫폼도 늘어나는 추세다. 벅스뮤직은 팟캐스트 큐레이션 플랫폼 ‘팟티’를 오픈했고, 미디어자몽 역시 팟캐스트플랫폼 ‘몽팟’을 운영하고 있다. 네이버는 오디오 콘텐츠 시장에 200억 원을 투자해 웹과 앱을 통해 ‘오디오클립’을 열었는데, 반응이 뜨겁다. 외국과 달리 무료 콘텐츠 중심이고, 아직 독립미디어의 성격이 강한 한국 팟캐스트의 배는 어디로 흘러갈까? 그 기항지가 어디든 당분간 사람들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팟캐스트로 하루를 시작하며, 집안일을 하고, 출퇴근길을 견디며, 혼술과 혼밥을 나눌 것이다. 2018년의 개인, 방에서 방으로 이동하는 우리들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 있을 것이다.
촛불 일으킨 정치
<김어준의 뉴스공장> <김용민브리핑> <새가 날아든다>
<나는 꼼수다>로 시작된 열풍 때문일까? 팟캐스트 순위의 앞자리는 대개 시사, 정치 분야의 방송들이 차지하고 있다. 김어준(<김어준의 뉴스공장>), 김용민(<김용민 브리핑>), 정봉주(<정봉주의 정치쇼>) 등 인기 진행자의 뿌리도 ‘나꼼수’를 벗어나지 않고 있으며 정치적 성향 역시 비슷하다. 그동안 ‘정의당 입덕 방송’이기도 했던 <노유진의 정치카페>, 우리에게 진짜 역사의 상식을 선물한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 시사뉴스를 이끌고 만들었던 <파파이스> 등등. 어떤 방송은 종영의 아쉬움을 주었지만 <새가 날아든다>, <그것은 알기 싫다> 등은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며 개성 넘치는 대안 언론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어찌 됐든 정치 이야기를 하는 팟캐스트의 목표는 하나다. 미디어의 일방적 정치 뉴스를 해석하는 힘을 기르고, 이면의 진실을 알려주고, 타인이 아닌 바로 ‘나’가 개입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바탕을 만드는 것! 덕분에 지난 몇 년 간 팟캐스트와 함께 한 시민들은 더 이상 주류 언론이 주입하는 정치 이슈에 만족하지 않게 되었고, 좌지우지되지도 않는다. 촛불도 이 불씨를 원동력 삼았다.
일단 웃자!
<비밀보장> <불금쇼> <수다맨>
웃는 일 부족한 세상에 사람들은 듣는 방송에서도 웃음을 추구한다. 시사, 정치 분야와 함께 코미디 분야의 팟캐스트가 순위권을 장악하는 이유다. 분야가 분야이다 보니 코미디 부문의 주요 순위는 개그맨들의 입담이 장악하고 있다. 1위를 차지한 송은이와 김숙의 <비밀보장>을 필두로 김영희와 홍현희의 <육성사이다>, 안영미와 김지양의 <귀르가즘>, 최은경과 안선영의 <미시코리아>, 김인석?김영삼?윤성호의 <저지방 시즌2> 등이 이름을 올렸다. 재밌는 것은 ‘배꼽 잡는 썰전’ 위에 정치 이슈를 양념처럼 버무린 팟캐스트들도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 루저들을 위한 19금 토크쇼를 지향하며 골수 팬 층을 확보한 정영진과 최욱의 <불금쇼>, 유료 콘텐츠로 전환하고도 여전히 건재한 <수다맨들>, 여장한 김용민 보는 맛에 감동적인 이야기까지 더해진 <맘마미스> 등이 있다.
인문과 철학의 시간
<지대넓얕> <두남자의 철학수다> <정지우의 인문학적 순간>
분야로 따지면 취미부문 1위지만,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은 엄연히 인문학과 철학을 아우르는 ‘지식의 향연’을 선사한다. 진행자 4명의 조곤조곤한 수다 덕분에 우리의 인문학적 지평이 조금은 넓어진 것도 사실, 종영의 아쉬움은 있으나 베스트셀러 작가 채사장은 여전히 책을 쓰고 있고, 김도인은 강남 모처에서 명상 수업을 진행하고, 깡샘은 또 다른 팟캐스트(<입시왕>)에서 자신의 장기를 마음껏 발휘하고 있으니 팬들 입장에선 부여잡을 끈이라도 있는 셈이다. 인문학과 관련해선 작가 정지우가 진행하는 <정지우의 인문학적 순간>이 인기를 끌고 있고, 철학 관련 팟캐스트로는 철학의 말들을 쏟아내며 열렬히 청취자의 사랑을 흡수하고 있는 팟캐스트 <두남자의 철학수다>의 철학을 거울 삼아 나의 현재를 톺아보게 하는 철학 이야기가 귀를 붙잡는다.
경제를 보는 눈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 <시황맨의 주식이야기> <여의도 찌라시>
기본적인 경제 상식을 알려주고 이왕이면 증시의 흐름까지 분석해주며, 다홍치마로 여의도에 굴러다니는 찌라시까지 내 것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면에서 MBC의 인기 라디오 방송을 팟캐스트로도 들을 수 있는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는 발 빠른 최신 경제 뉴스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방송이다. <시황맨의 주식 이야기>는 국내외 증시의 현황을 쉽게 분석해 줘 실제 주식투자에 도움을 주고 있으며, <여의도 찌라시>는 증권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현직 기자들이 여의도 증권가의 동향, 떠돌아다니는 정보들의 정체를 속시원히 밝혀준다. 돈과 경제의 흐름을 긁어주는 방송으로는 이 밖에도 <발칙한 경제> <경제브리핑 불편한 진실> <돈다방 미스리> <나는 꼽 사리다 시즌3> 등이 있다.
책을 듣는다
<예스책방 책읽아웃> <빨간책방> <책, 이게 뭐라고>
도서 부문 팟캐스트는 <김영하의 책읽는 시간>을 시작으로 출발을 알렸고, 지금은 출판사 혹은 출판계에서 콘텐츠 생산을 담당하는 추세다. 작가 김영하의 방송이 방송 <알쓸신잡>과 ‘기분 좋은 수면용(?) 중저음’으로 화제와 인기를 모았지만 불규칙적이고 뜸한 업로드로 가끔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는 하는데, 책 방송의 절대 강자는 아무래도 위즈덤하우스에서 만드는 <빨간책방>이다. 영화평론가 이동진과 소설가 김중혁의 케미가 돋보이는 진행으로 소개되는 책들은 방송 후 ‘1~2쇄를 더 찍는다’라는 말이 돌 정도로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출판사 북이십일에서 만들고 있는 <책 이게 뭐라고> 역시 책 좋아하는 이라면 챙겨 듣는 방송, 가수 요조와 소설가 장강명의 잔잔한 호흡이 돋보인다. 휴머니스트 출판사의 <독자적인 책수다>는 저자가 직접 참여해 한 권의 책을 깊이 있게 음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조금 성격이 다른 책 방송을 지향하고 있으며, 조금 늦게 출발했지만 재치 있는 말발, 글발로 청취자를 사로잡고 있는 <예스책방 책읽아웃>은 예스24에서 만든 팟캐스트로 ‘김하나의 측면돌파’와 ‘김동영의 읽는인간’이라는 이름을 걸고 두 진행자가 격주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탁PD의 여행수다> <김태훈의 책보다여행>
귀로 듣는 여행은 언젠가 발로 뛰는 여행의 순간을 선물할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여행을 귀로 듣는 재미만으로도 제 몫을 다하는 팟캐스트들이 있다. 시즌2까지 이어지며 여행 분야의 팟캐스트를 이끌고 있는 <탁PD의 여행수다>는 국내와 국외를 넘나드는 여행에 대한 ‘간증집회’로 여행지의 매력과 다양한 순간들을 밀도 있게 들려준다. 또 다른 여행수다는 <김태훈의 책보다 여행>으로 만날 수 있는데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이 진행을 맡았으며 쇼팽, 프로이트, 헤세 등 거장이 살았던 시공간을 책과 함께 만날 수 있다.
어학이 필요해
<일빵빵 기초영어> <일빵빵 영어회화>
필요는 공급을 낳는다. 귀에 꽂고 버튼만 누르면 북적이는 지하철 안에서도, 비 오는 거리에서도 마음껏 들을 수 있는 팟캐스트만큼 어학에 목숨(?) 걸어야 하는 한국인들의 필요에 최적화된 매체는 없을 것이다. 어학분야의 1,2위를 휩쓸고 있는 ‘일빵빵시리즈’는 어학교재에 CD로 팔던 아이템을 팟캐스트로 무료로 배포해 역으로 책을 구입하게 만드는 시스템으로 성공했으며, <김영철 타일러의 진짜 미국식 영어>는 라디오 방송의 코너를 팟캐스트로 만들어 인기를 끌고 있다. 여기에 원어민 99%가 매일 쓰는 회화 표현을 알려주는 <사용빈도 1억 마유영어쇼>, 입문?초급자를 위한 회화 중심의 스페인어 학습 팟캐스트 <실비아의 스페인어 멘토링>도 인기를 얻고 있다.
어떻게 배울까
<서울대는 어떻게 공부하는가> <입시왕> <왕쌤의 교육이야기>
문제는 공부의 방법, ‘어떻게 배우고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이다. ‘잘 하는 공부의 비법’을 알려주는 교육분야 팟캐스트의 인기 방송에는 『혼자하는 공부의 정석』을 쓴 한재우가 진행해 365일 공부 캘린더로 활용할 만 <서울대는 어떻게 공부하는가>, 수험생과 학부모를 위한 맞춤 토크를 들려주는 <입시왕>, 청소년의 진로와 진학에 대해 고민해주고 교육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왕쌤의 교육이야기> 등이 있다. 이 밖에도 꾸준히 질 좋은 공부비법을 알려주는 <인생공부>도 취준생들에게 인기다.
몸건강 마음 건강
<뇌부자들> <오케바디>
의학분야의 팟캐스트는 몸건강을 위한 다양한 상식과 정보들을 알려주고 동시에 마음건강까지 챙기는 콘텐츠들로 풍성하다. 자신만의 정신분석 툴을 통해 사례별 심리처방을 내려주는 <황상민의 심리상담소>는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으며 6명의 정신과 의사들이 들려주는 진짜 정신과 이야기 <뇌부자들>, 아이 기르는 부모들이 부딪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알기 쉽게 풀어주고 해결책도 고민해주는 <조선미의 우리가족 심리상담소> 등이 마음건강 분야를 장식하고 있으며 독감, 수면장애, 디스크, 내시경, 진통제 등 알아두면 좋을 건강 상식을 풀어주는 <나는 의사다>, 개그계의 입담꾼 장도연과 양세찬이 게스트와 함께 풀어내는 유쾌한 건강 수다 <오케바디> 등이 몸 건강에 필요한 정보들을 들려준다.
분야별 히든 팟캐스트, 코미디, 음악, 역사, 스포츠
<요즘은 팟캐스트 시대> <전문사> <싸움의 기술>
각 분야의 히든 팟캐스트 중에서도 골라봤다. 래퍼 UMC와 밴드 보드카 레인의 안승준이 진행하는 <요즘은 팟캐스트 시대>는 사연 읽어주는 팟캐스트로서 꽤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진행자 특유의 재기 넘치는 입담과 남다른 해석을 듣는 재미가 쏠쏠하며 외로운 현대인들을 위한 친구를 자처한다. (UMC는 정치분야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의 진행자이기도 하다) 음원의 저작권 문제로 클래식, 영화 음악 위주로 진행되는 음악 분야의 팟캐스트 중 새로 오픈한 <죽은 작곡가 소셜클럽>은 고전음악 애호가들을 위한 사이트로 유명한 ‘고클래식’의 편집장이 진행하며 음악사와 오페라, 음악영화 이야기를 넘나들며 작곡가들의 생애를 들려준다. 개그맨 장웅과 허석사가 함께하는 <전쟁사 문명사 세계사>는 역사 부문의 주요 팟캐스트로 고대사를 중심으로 서양사와 동양사의 다양한 역사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모 시상식에서의 재치 있는 멘트와 목소리 때문에 허석사의 정체가 <김어준의 뉴스공장>의 PD로 드러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오픈 한지 두 달 만에 스포츠 분야 1위 팟캐스트로 올라선 <싸움의 기술>은 축구도, 농구도, 야구도 아닌 격투기를 소재로 한 방송, 개그맨 윤형빈과 미키광수, 격투기 감독 이재선이 격투기는 물론 눈싸움, 기싸움, 부부싸움 등 '세상의 모든 싸움'에 관해 이야기 한다.
분야별 히든 팟캐스트, 음악, 미술, 디자인, 영화, 해외
<미술뒷담> <디자인테이블> <필름클럽> <프랑스 사는 두 여자>
<미술뒷담>은 미술계에 종사(?)하는 진행자들이 다양한 미술계의 이슈, 작품 들에 대한 거침없는 뒷담화를 펼치는 방송, 모르기도 하고 멀기도 했던 미술계의 이야기가 오히려 흥미진진하게 다가온다. <디자인테이블>은 ‘사용자 위주의 인터페이스’를 의미하는 UX디자이너들의 솔직한 디자인 이야기만으로도 흥미로운 디자인 전문 팟캐스트, 프랑스 씨네21의 영화전문 기자이자 미문의 작가로도 유명한 김혜리의 <필름클럽>은 영화를 보는 오감을 자극해주는 방송,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도 직접 출연해 자신의 영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밖에도 <프랑스에 사는 두 여자>는 제목처럼 프랑스에 살고 있는 두 여자의 잔잔하면서도 소소한 일상을 들려주는 방송, 프랑스를 다녀왔거나 가보고 싶은 이들에게 소란스럽지 않은 기억과 로망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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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스 에디터. 결혼과 함께 귀농 했다가 다시 서울로 상경해 빡세게 적응 중이다. 지은 책으로 <서른, 우리가 앉았던 의자들>, <시골은 좀 다를 것 같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