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희 "격변의 시대, 세 명의 여자"
장편소설 『세 여자』를 발표한 조선희 작가 ‘세 여자’와 ‘우리 역사’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다
이 소설의 세 여자가 살았던 때는 역사의 가장 음침한 골짜기, 비유나 풍자가 아니라 말 그대로 ‘헬조선’, 조선이라는 이름의 지옥이었다. 하지만 세 여자의 인생도 그저 지옥은 아니었다. 여자들은 씩씩했고 운명에 도전했고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다. (2017.08.03)
조선희가 책을 냈다. 그것도 장장 두 권이나 되는 장편소설이다. 언론인이나 공직자로서의 조선희는 두말할 필요 없지만, 작가로 따지면 무명이나 다름없기에 까다로운 독자라면 읽기 전부터 소설의 완성도를 의심해볼 터. 그런데 출간 직후부터 이 소설에 대한 반응이 심상치 않다. ‘시대의 역작’부터 ‘그녀는 미쳤다’까지. 조선희 작가의 첫 장편소설 『세 여자』는 출간한 지 겨우 한 달이 조금 지난 지금, 벌써 3쇄 준비에 돌입해 있다.
7월 26일 홍대입구에 위치한 ‘동교동 청년문화공간 JU 씨어터’에서 『세 여자』 북토크가 열렸다. 북토크는 일종의 좌담회 형식이었는데, 조선희 작가를 비롯해 유정아 아나운서,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이준식 근현대사 기념관장 총 네 명의 인원이 참석했다. 유정아 아나운서가 사회자, 서명숙 이사장과 이준식 근현대사 기념관장이 패널을 맡았다.
10년 동안 끌어안고 쓴 작품이에요
유정아: 사실 조선희 작가께서는 작가라는 이름은 아직은 조금 어색하실 텐데요. 전직 언론인이시기도 했고, 서울문화재단 같이 여러 공직을 나기도 하셨죠. 『세 여자』 출간 이후에 지금 반응이 너무나 뜨겁잖아요. 지금 어떤 기분이신가요?
조선희: “그녀는 미쳤다.” 이런 막말들을 하시던데(웃음). 어쨌든 저로서는 이 작품이 10년 동안 혼자 끌어안고 쓴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사람들하고 얘기를 같이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즐겁고요. 예전에 사람들이 소설 쓰고 있다고 그러면 뭐에 대해 쓰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러면 “세 여잔데, 허정숙하고 조세죽 이런 사람에 관한 얘기야.”라고 대답하고요. 그런데 그 얘기를 듣고 난 후 대체로 허정숙을 허영숙으로 착각해요.
유정아: 이광수씨 부인이시죠.
조선희: 그런 반응이 나왔으니. 저 혼자 굉장히 쓸쓸해하고 그랬죠. 그런데 책이 출간된 이후엔 사람들이 세 여자의 얘기를 거의 뭐 동창들 얘기하듯이 하더라고요. “조세죽이가 그 때 말이야” 하면서요. 그런 말들을 들으면, 저로서는 말하자면 벙어리 냉가슴 앓다가 말문이 트였다고 할까요. 그런 즐거움이 있죠.
『세 여자』, 다들 어떻게 읽으셨어요?
유정아: 서명숙 선생님은 고대 76학번이시고, 조선희 작가님보다 2년 선배입니다. 얼마 전에 『영초언니』라는 제목의 자전적 에세이를 출간하기도 하셨죠. 70년대에 학생운동을 하던 여성들의 따뜻한 우애와 굳은 의지를 읽어보실 수 있는 글을 쓰셨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떠셨어요? 『영초언니』가 출간되고, 한두 달 간격으로 『세 여자』가 나왔죠?
서명숙: 제가 굉장히 격한 어조의 추천문을 썼어요. 책을 읽고 나서 너무 잘 써서 꽤 놀랐어요. 기자 출신이고, 중편소설도 냈었고 그래서 어느 정도 쓰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조선희 씨에 대한 우리 서클에서의 평가는 정경부인이거든요. 별명이 그랬어요. 그래서 ‘소설가가 되기에는 너무 점잖은 거 아니야?’ 그런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죠. 소설을 써도 아주 지독하게 즐기는 소설은 못 쓸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번 글 보고 “미안하다 얘야.”(웃음)라고 하게 된 거예요. 너무 몰입도 높은 소설을 썼어요.
제가 쓴 『영초언니』는 소설이라고 할 수 없는 게, 그건 내가 직접 겪었고 만났고 체험했던 시절의 이야기예요. 그런데 이 친구는 몇 십 년 전 식민지 시대라는 본인이 겪어보지 못한 시절의 이야기를 쓴 거예요. 소설의 공간적 배경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크질오르다까지 여러 지역을 넘나들었거든요. 주세죽이 크질오르다에서 유형생활을 하는 장면에서는 굉장히 감정이입을 하면서 읽었어요. 그걸 보고 조선희 씨에게 진짜로 작가라는 칭호를, 그것도 굉장한 작가라는 칭호를 붙여줘도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유정아: 이준식 선생님은 어떻게 보셨어요? 역사학자로서 시대소설을 읽으신 소감이 어떻게 되세요? 굉장히 궁금합니다.
이준식: 일단 굉장히 놀라웠습니다. 저는 이른바 운동사를 전공했는데, 운동사를 전공하면서 만나보고 싶었던 분들이 많거든요. 이 소설에는 그런 분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상상했던 모습과 백 퍼센트 똑같은 건 아닌데, 그래도 팔십에서 구십 퍼센트 정도 비슷해서 거기에 놀랐습니다. 언제 이렇게 일일이 자료를 찾고, 또 그걸 소설에 담아냈을까 감탄했죠. 역사 공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1945년 8월 15일 이전과 이후를 구분하고 서로 건드리질 않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이전 공부하는 사람들은 1945년 8월 15일 이후를, 1945년 8월 15일 이후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1945년 8월 15일 이전을 건드리지 않는 것을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1945년 8월 15일을 넘나들 뿐만 아니라 공간까지도 넘나듭니다. 역사학자들이 논문이나 저서를 통해서 할 수 없는 일들을 이렇게 문학이 할 수도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세 여자』가 소설로 엮이기까지
유정아: 『세 여자』 표지에 한 장의 사진이 담겨 있는데요. <신여성> 1925년 10월호에 실린 사진이죠. 가운데가 주세죽, 오른쪽이 허정숙, 왼쪽이 고명자입니다. 작가는 이 사진에서 소설이 시작되었다고 적고 있는데요. 이 사진을 언제, 어떻게 보시게 되셨고, 여기서 어떻게 영감을 얻으셨는지 궁금해요.
조선희: 이 사진은 주세죽의 딸인 비비안나가 챙긴 주세죽의 유품 가운데 하나에요. 1991년에 한소수교가 되면서 비비안나가 처음으로 한국을 오게 되고, 당시에 이복동생인 원경스님한테 전달한 사진이죠. 이후 학계에 쫙 퍼져서 주세죽 관련 자료나 박헌영 관련 자료에 자주 등장하는 사진이에요. 사진 속 세 여자의 이미지가 저한테는 영감을 불러일으켰어요. 1920년대 당시는 식민시대여서 아주 암울한 분위기였는데 이 사진의 여성들은 뜻밖에도 굉장히 산뜻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어요. 그래서 아 이 지옥 같은 시절이 이 사람들에겐 인생의 전환점, 일종의 봄날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거기에서부터 소설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유정아: 중간 중간 자료를 찾으면서 난관에 봉착하셨을 때도 있었을 것 같아요.
조선희: 네. 제가 기자 출신이다 보니까요. 일단 취재를 열심히 하거든요. 그리고 자료도 열심히 모아요. 그래서 지금 생각해보면 자료들을 연대순으로 쭉 늘어놓은 것이 초고였어요. 그걸 용감하게도 제 남편한테도 보여주고 선배한테도 보여줬는데 다들 암울한 표정을 지었죠. “이게 소설이냐.” 그랬는데. 그때부터 한 6년에 걸쳐서 글을 여덟 번쯤 다시 썼어요. 공간이 들어가고, 인물들의 숨결이 들어갔죠. 여덟 번쯤 다시 썼을 때야 사람이 좀 사람 같아지고요.
유정아: 암울했던 표정들도 조금씩 밝아지던가요? (웃음)
조선희: 마지막 원고를 그분들에게 보여드렸는데, 그제야 이제는 책으로 내도 괜찮지 않을까 하시더라고요.
유정아: 책의 구성을 고민하는 데도 시간이 꽤 걸리지 않았을까 싶어요. 1920년 상해에서 스무 살 무렵의 유학생들이 만나는 시절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장은 1956년 평양에서 끝이 나죠. 에필로그에서는 91년 평양까지를 다루지만, 본격적인 이야기의 끝은 56년 평양인데 그 시기와 공간은 어떤 방식으로 구성하셨나요?
조선희: 자료를 소설로 구성하고자 했을 때 주인공들의 행동반경, 인생행로를 다 담아야 하니까 이야기가 점점 방대해지더라고요. 일단 1920년 무렵에 이 사람들이 막 공산주의 활동을 시작을 했기 때문에 그 시기를 시작점으로 삼았어요. 50년대에서 이야기를 마무리한 것은 단순히 주인공 세 사람 중에 두 사람이 그 무렵 세상을 떠났기 때문은 아니에요. 사실 이야기를 쓰다가 세 사람의 인생행로와 함께 한국 공산주의의 흥망성쇄를 다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1955년에 김일성이 주체사상이라는 말을 꺼냈고, 56년에 연안파가 숙청당하거든요. 그 이후 한국의 공산주의는 종료됐다고 봐서 56년 무렵에서 이 소설을 끝냈죠. 그렇게 끝내고 나니까 상쾌한 기분이 들었어요.
역사적 사실에 상상이 더해지다
유정아: “작가가 허정숙에게 가장 감정이입을 하고 있다.”라는 말이 있었는데요.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허정숙이 가장 자료가 많이 남아있는 인물이고 또 오래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또 어쩌면 작가께서 “다들 날 정경부인이라고 그랬지 내가 아닌 걸 보여줄 테야.”라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고요(웃음). 사실 저는 주세죽과 허정숙에 비해서 한 일이 없다고 평가되기도 하는 고명자도 작가가 굉장히 친근함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세 명의 여인 중에 가장 감정이입 한 인물은 누구인가요?
조선희: 저는 사고를 치면 수습하기가 좀 귀찮아서 사고를 안 치고 살아가는 편이에요. 그래서 이번 소설에서 세 명의 여성에 대해서 쓸 때 상당부분 대리만족을 했던 것 같아요. 이 분들은 정말 호쾌하거든요. 자기가 뜻하는 대로 사신 분들이고요. 물론 운명에 휘둘리기도 했지만요. 그래서 글을 쓸 때 굉장히 짜릿짜릿해 하면서 썼어요. 세 여자 중에 저와 백 퍼센트 맞는 인물은 없었던 것 같아요. 허정숙이 중심인물이 된 건 가장 길게 살았고, 자료가 가장 많은 분이기 때문이에요. 또 허헌을 비롯해서 허정숙 주변에 작품의 줄기를 이룰 수 있는 인물들이 많았죠. 그렇지만 허정숙은 너무나 센 여자에요. 정말 요즘 사회에도 그렇게 센 여자는 정말 드물어요.
유정아 : 세 번까지는 봤어요. 그런데 다섯 번은 정말 이 시대에도 드문 일이 아닌가 해요(웃음).
조선희: 그렇죠. 다섯 번 결혼을 했죠. 그래서 허정숙에게는 다가갈 수 없는 벽이 있었고, 비판적 지지를 하기도 했어요. “주세죽에게 가장 감정이입이 잘 됐다.” 이런 얘기도 많이 들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조세죽이 가장 극명하게 비극적인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잖아요. 그것도 요즘 사회에선 있을 수도 없는, 상식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은 비극적인 인생을 산 사람이죠.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든 감정이입을 해서 주세죽의 인생행로, 감정을 리얼하게 표현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어요. 그런데 저는 주세죽에게 도무지 다가갈 수 없는 벽을 느꼈어요. 절세미인이잖아요. 그런데 그런 인물들을 보면 뜻밖에 자기 인생을 주체적으로 개척하지 못해요. 왜냐하면 개척하기 전에 남자들이 찍거든요. 조세죽은 박헌영 김단야의 부인이 되어서 그 두 사람에게 휘둘리는 인생을 살았고, 그 결과 굉장히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어요. 제가 소설 말미에 ‘간택하는 여자와 간택 당하는 여자’라는 표현을 썼지만 너무 절세미인이다 보니까 그 주세죽도 자기 인생을 살기가 참 어려웠던 거예요.
유정아: 글의 구성이 인물이 어떤 역에 도달하고, 그리고 난 다음에는 그 시대에 대한 저자의 통찰 같은 것들이 적혀있고, 다음에는 자유로운 대화체의 이야기들이 등장하죠. 어떻게 이렇게 내밀하고 즐거운 대화가 나올 수 있었는가 궁금했고, 대사를 쓸 때는 작가 본인도 얼마나 쾌감이 있었을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동시에 대화도 픽션인지, 사실과 상상의 조합이 어느 정도의 비율인지 궁금했어요.
조선희: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은 세 여자이지만 동시에 역사다’ 또 ‘소설이 역사를 배반하지 않도록 노력했다.’라는 내용을 썼어요. 드러나 있는 역사적인 기록 바깥으로 상상력이 오지랖을 부리지 않도록 자제했는데, 그 중에서도 대화는 90퍼센트가 픽션이죠. 역사기록에 대체로 중요한 사건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만 사적인 대화들은 안 남아있거든요. 사실 그런 대화를 쓸 때가 작가로선 제일 재밌죠. 그러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발언은 기록이 남아있어요. 예를 들면 소설 속에 여운형이 반탁운동이 막 한반도를 휩쓸 때, 모스크바 3상회의 결과를 이렇게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면 한반도가 분할돼서 60년 갈지도 모른다는 말을 한 대목이 있어요. 이기형 선생 같은 분들이 여운형 선생 옆에 있다가 기록한 부분이에요.
그런 기록들은 제가 대화로 가지고 왔는데 그 외는 다 제가 지어낸 거예요. 역사소설이 재미있는 게, 우리는 후에 그 사람들이 어떻게 됐는지를 그야말로 전지적 시점에서 다 알고 있잖아요. 그러나 소설에 등장하는 당대의 사람들은 모르는 거죠. 이를테면 연안파 사람들이 모여서 “김정일 쟤 까불까불해가지고 나중에 인간구실 하겠어? 개인숭배, 가족숭배 하다가 나중에 진짜 정일이 쟤한테 권력 물려주자고 하는 거 아니야?” 이런 얘기를 하고. 우리는 김정일이 권력을 물려받고 3대까지 내려왔다는 결과를 다 알잖아요. 그런 결과를 전제하기 때문에 대화 가지고 얼마든지 재미난 부분을 만들 수 있었어요. 당시 사람들의 착각, 당시 사람들의 잘못된 예측 이런 것들을 쓸 때 제가 어떤 신적인 존재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그래서 짜릿짜릿했죠.
『세 여자』, 여성을 말하다
이준식: 제가 조선희 작가님께 좀 도발적인 질문을 하나 드릴까요. 책에 ‘간택’이라는 표현을 썼고, 혁명의 시대에 세 명의 뛰어난 여성이 남성들에 의해서 운명이 막 휘둘리는 것처럼 말씀을 하셨어요. 그런데 저는 정말 그랬을까 생각합니다. 주세죽은 3일 만세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본인의 의지로 상해를 갔어요. 상해를 가겠다는 건 결국 사상범이 되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진데, 가겠다는 결정 자체가 본인의 적극적인 선택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상해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박헌영이라는 남성을 만나서 사랑에 빠졌고 그 때문에 혁명가가 된 게 아니라, 간 것 자체가 해방을 위해 투신하고자 하는 조세죽의 적극적인 선택이 아니었을까요? 시대가 조세죽을 허락했다면 조세죽이 훨씬 더 큰 역할을 부여 받았을 텐데, 당시 시대가 조세죽에게 큰 역할을 부여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마치 조세죽의 운명이 박헌영과 김단야에 의해 결정된 것처럼 보였던 것은 아닐까요?
유정아: 아주 중요한 얘기를 해주셨고요. 잠깐 사회자가 개입하자면 놀러 간 걸로는 안 나오죠. 음악공부 하러 갔죠. 이것도 놀러 간 건가요? 역사공부를 하러 간 게 아니면 놀러 간걸로 칩시다(웃음). 절세미인에 대해 본인의 편견이 있지 않았나 답변 하실 수 있는 기회입니다.
조선희: 조세죽은 그야말로 자신의 도움으로 꽃을 피울 수 있다면 자신은 역할을 다 한 거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의 소유자였어요. 그러니까 조세죽은 자기 남편을 보필하는 걸 자신의 혁명이라고 받아들였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조세죽이 처음 상해를 갔을 때는 독립운동 하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음악선생이 되겠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이후에 박헌영과 허정숙을 만나면서 인생이 바뀌었는데 사실 바뀐다는 것도 여러 가지 옵션 중에서 자신이 그걸 선택한 거죠. 박헌영이라는 남자를 선택하고 사상모임을 선택하고 아지트 키퍼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선택했어요. 그렇지만 허정숙하고 비교하면, 허정숙은 남이 시키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거든요.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죠. 두 사람의 다른 캐릭터가 두 사람의 인생을 달라지게 했다는 걸 ‘간택한 사람과 간택당한 사람의 차이 아니겠는가.’라고 간명하게 요약해봤어요.
유정아: 소설 속에 여성주의 시각이 기본적으로 깔려있기 때문에 말씀을 드립니다만, 제목 자체가 『세 여자』이고요. 이 소설은 남성 독립운동가 그리고 그 주변부로서의 여성을 그린 것이 아니라 세 여자를 소설 전면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를 통해 이 책의 기본적인 시각을 알 수 있죠. 주세죽과 허정숙의 대화였다고 기억하는데 밥하고 빨래하는 것을 하려고 우리가 혁명을 하느냐는 이야기가 나오죠. ‘남자들은 자본론이 아니라 사서삼경을 읽고 혁명을 하는 것 같다’는 대목도 나오고요.
조선희: 사실 이 소설을 쓰면서 답답했던 부분이 있어요. 세 여자는 당시로 보면 정말 혁명적인 캐릭터들이죠. 부모 말도 안 듣고, 유학 가는 건 자기 멋대로 선택하고, 가부장제 사회를 거부하려 하고. 그런데 지금 우리 기준으로 보면 그 세 여자 중에서 요즘 기준으로 페미니스트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허정숙 정도인 것 같아요. 나머지 여자들의 인생은 어쨌든 그 시대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 거 같고요. 그래서 소설에 대해 설명할 때는 여성 혁명가들의 이야기라고 말하지만, 그런 면에선 참 마음이 아프죠. 여성 혁명가이지만 삶의 주체성을 충분히 회복하지는 못했다는 한계에서 딜레마를 느꼈어요. 그런 답답함이 허정숙의 대사를 통해서 많이 드러났던 거죠.
서명숙: 그렇지만 『세 여자』는 그 자체로 분명히 의미 있어요. 시대별로 남녀의 차별을 극복해내려고 하고, 그런 사회를 바꾸려 하는 여성들이 존재했어요. 그 과정을 통해 현 시대에 여성이 겪는 불합리한 상황은 좀 더 나아졌죠. 그러나 진전된 듯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들이 있어요. 현 시대 여성들은 여혐에 노출되고, 지하철에서 나오다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죽기도 하죠. 그런 세상이기 때문에 여성들에게 세 여자처럼, 이전 시대에 존재했던 용감한 여성들의 족보를 가르쳐주고, 현 상황이 잘못되었다는 걸 자각하게 하고, 또 시대를 넘어 여성들이 연대하는 행동들이 필요한 것 같아요.
『세 여자』, 역사를 말하다
유정아: 저는 사람의 역사 인식이라는 게 어떻게 형성되는지 궁금할 때가 많아요. 그 동기가 사람의 성장환경에 있는지, 또 누군가와의 만남에 있는지 여쭤보고 싶네요.
조선희: 글쎄요. 제가 78년에 대학에 입학했거든요. 그러니까 7말 8초에 입학을 한 세대인데 그때는 학교에서 정말 역사책 많이 읽었어요. 고등학교 다닐 때 태정태세문단세 이러다가 대학 와서 역사책들을 접하면서 역사적인 사실 자체 때문에 굉장히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저희 세대는 기본적으로 역사적인 문제의식과 발언하고자 하는 욕구를 공유하는 세대인 것 같아요. 그에 반해, 제 딸들은 역사를 선택과목으로 했던 세대에요. 교육제도의 희생양들인데 본인이 희생자라는 걸 모르더라고요. 역사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서 아무런 결핍감을 느끼지 않아요. 그래서 아직도 제 딸은 제 책을 안 읽고 있어요(웃음). 또 제가 어느 날 EBS 프로를 보고 있는데 MC가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1930년대, 그러니까 조선시대죠?” 이렇게 얘기하는데 제가 너무 깜짝 놀랐어요. 저희 세대는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갖고 있는 상태에서 의견들을 달리하지만 이 세대는 아예 기본적인 정보조차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죠. 이런 세대에게 어떻게 역사책을 읽힐 것인가 고민해보자면, 제 책 같은 것도 하나의 교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쉽게 썼으니까. 좀 더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요. 한번 기대해봅니다.
작가 조선희, 『세 여자』를 통해 말하다
유정아: 조선희 작가께서는 이 책을 통해서 독자들이 결국엔 어떤 생각에 이르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나요?
조선희: 일단 다른 시대를 살았던 인생에 대해서 깊게 이해해주길 바랐어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어요. 학교 다닐 때 1945년 이후 해방공간과 한국 전쟁을 이렇게 배웠어요. “우리나라가 분단된 것은 약소국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강대국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분단된 거다.” 그러나 제 소설을 읽으신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나중에 미국과 소련이 분단을 해소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제시했을 때 그걸 받아들이지 않은 건 한국의 정치가들이거든요. 지금도 대중들이 그런 패러다임들을 받아들이긴 하죠. “우리는 약소국이고 강대국이 우리를 이리저리 몰고 갔어.”라고 말이에요. 그렇게 패배주의, 피해의식을 가지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래서는 우리의 역사가 불안한 역사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해방공간과 분단의 결과들이 매일매일 그대로 악몽으로 돌아오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잖아요. 패배주의나 피해의식을 버리고 좀 더 객관적으로 역사를 대하려 할 때 배울 부분이 있지 않을까요.
좌담이 끝난 뒤, 독자들이 책에 대해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다. 『세 여자』 집필 의도를 궁금해 하는 질문이 다수였고, 그에 대한 조선희 작가의 개인적인 견해를 들을 수 있었다. 간혹 책에 등장했던 역사적 사실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독자도 있었다.
조선희 선생님께는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쭤보고 싶고요. 이준식 선생님께는 이루크츠크파하고 상해공산당, 둘의 이름이 붙여진 배경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주장하는 바에 있어 다른 점이 무엇이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조선희: 질문 감사합니다. 사실 저는 역사 전문가가 아닙니다. 상식과 소설을 쓰면서 스스로 공부한 것에 입각해서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만월에 초심을 안다는 말을 해요. 19세기 말부터 일제가 우리나라에 와서 철도도 놓고 고속도로도 놓으면서 한국사회가 근대화되는 명시적인 기점이 되기는 했는데, 3-40년 후를 보면 그들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다 드러나거든요. 저는 일본이 한반도에서 군국주의화 단계를 밟아가는 과정을 굉장히 열심히 쓴 편입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1909년 이전에 이미 설계한 아시아 전략에 입각해서 조선 반도를 어떤 식으로 군사기지화 했는지 또 사람들을 어떻게 동원했는지 비교적 상세하게 썼죠. 그래서 누군가 문제제기를 한다면 저는 “작품으로 말한다.”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이준식: 1919년 이전에 러시아에서 한인사회당이라는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이 출범하는데요. 그 한인 사회당이 여러 갈래로 나뉘게 됩니다. 그 중 두 개의 당이 있는데 똑같이 고려공산당이라는 이름을 썼습니다. 하나는 러시아 땅인 이루크츠크에서 설립이 되었기 때문에 이루크츠크파 공산당이라고 하고요. 또 다른 하나는 상해에서 출범했기 때문에 상해파 고려공산당이라고 불렀죠. 이루크츠크파는 러시아를 본거지로 하기 때문에 당원 중 러시아에 이미 이주한 지 오래된 사람이 많았고, 따라서 그들은 러시아인의 정체성을 상대적으로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원 이름을 보면 조선식 이름보다는 러시아식 이름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상해파에 비해 공산주의 이론적 영향을 강하게 받아서 공산주의 이론대로 계급해방을 우선시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반면 상해파는 강제병합을 전후로 해서 해외로 망명한 정치적 망명자들을 중심으로 출범했습니다. 따라서 이루크츠크파 보다는 민족해방을 더 중시했고요. 조선의 사회주의자들에게 1차적인 과제는 계급혁명이 아니라 민족혁명과 독립 운동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루크츠크파는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출범을 거부하고, 상해파는 임시정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입장을 택했습니다.
『세 여자』 속 그들의 얘기가 우리 시대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명쾌하게 밝히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왜 지금 이 시점에 공산주의 혁명에 나섰던 여성의 이야기를 하신 건가요?
조선희: 왜 이 시점에 이 소설인가. 첫 번째 답변을 얘기하자면, 우리는 분단의 악몽이 일상 속에 수시로 틈입하는 그런 삶을 살고 있어요. 따라서 우리는 이 시대의 정체를 더 알아야 할 필요가 있고, 그를 위해선 역사를 알아야 하죠. 특히 해방공간, 6.25라는 근 과거의 역사를 알아야 해요.
그리고 두 번째로는 왜 이 시점에 공산주의를 다뤘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인데요. 우리 세대의 정신의 뿌리를 명쾌히 밝혀보자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서명숙 씨가 쓴 『영초언니』는 민주화 운동 얘기잖아요. 70년대의 화두는 민주화였는데 거기에도 마르크시즘 같은 것들이 막 섞여 있었거든요. 90년대 즈음 되면 공산국가 다 무너진 다음인데도 구호나 조직 활동 속에 그런 성향이 있었어요. 우리 세대가 전부 사회적인 좌표와 대안운동의 좌표가 두루뭉술한 시대를 살았던 거 같아요. 그냥 민주화 운동은 조금 나이브한 거고, 체제변혁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으면 조금 더 진보적이고 공부를 더 많이 한 것으로 평가받는 경향이 있었단 말이죠. 우리시대의 정신적인 트라우마이기도 한데, 그것의 뿌리를 명확하게 밝히고 싶었어요. 공산주의가 어떻게 되었는지 그 경위를 다 쓰고 싶어서 작가의 말에 ‘전 지구적인 규모의 이데올로기 투쟁으로서 공산주의라는 것은 20세기에 종료가 됐다. 그리고 21세기에는 그것이 하나의 가치관이나 태도 철학 정책으로 남아있다.’라고 썼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종북, 좌빨, 빨갱이 라고 지칭을 하고 배척을 하고 또 응징의 대상으로 삼는 행위가 시대착오적인 태도라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우리가 『공산당선언』을 교과서 안에 인용하고 그걸 읽으면서 공산주의의 장단점이나 노동조합의 뿌리를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 비로소 우리사회가 트라우마를 졸업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세 여자 1 조선희 저 | 한겨레출판
작가는 지금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그 딜레마가 근본적으로 분단과 전쟁에서 시작되었고 지금도 해방공간의 연장선 위에 있다고 바라본다.
문장, 그 이상을 전달하고 싶다. 이를테면 타인의 표정 같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