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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인 “‘살렸다’와 ‘죽이지 않았다’는 달라요”

『지독한 하루』 응급의학과 의사의 어떤 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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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안온한 하루는 곧 누군가의 지독한 하루이기도 하다, 이런 것 같아요. 그냥 이런 환경, 이런 곳에서 지독한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2017.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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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산 하나를 지나듯 간신히 넘어갔다. 아침까지는 아무도 죽지 않았다. 나는 칼을 맞았던 그가 살아 있음을 컴퓨터로 확인했다. 그는 이 밤을 한때 지나간 나쁜 기억으로 반추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잊을 수 없었다. 보상받지 못할 상처를 끌어안고, 어떠한 환자에게도 빚을 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서야, 지옥 같았던 그날의 일을 마치고 간신히 퇴근할 수 있었다.(48쪽)

 

어떤 사람의 지독한 하루를 상상한다. 그곳에는 피가 있을 수 있다. 범죄가 있을 수도 있다. 터무니없음과 불합리가 만연할 것이다. 이곳이 응급실이라면 더욱 높은 확률로, 더욱더 지독한 ‘지독한 하루’가 될 것이다.


응급의학과 의사 남궁인은 첫 책 『만약은 없다』에서 삶보다 더 많은 죽음 가운데에서 그럼에도 삶을 읽어내고 처절하게 삶이란 무엇인지 사유했다. ‘의사가 반쯤 환자다’라는 반응을 얻었을 정도로 잔인하리만치 똑바로 응급실을 직시하고, 꼼꼼하게 응급실 현장을 기록했다. 그리고, 자신이 남기고자 하는 것은 한 권의 책이라는 공간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고 말하는 듯 또 한 권의 책 『지독한 하루』를 펴냈다.


남궁인은 『만약은 없다』에서 다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담아낸다. 시스템으로 사람이 죽는 일을 비판하고, 생명을 살리기 위해 땀 흘리는 사람들을 조명한다.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은 힘들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충청남도소방본부에서 3년 동안 공중보건의 생활을 하고 다시 지난 5월부터 이대목동병원 임상조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벌써 할 이야기가 많이 쌓였다고 했다. 그만 써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했던 게 무색할 정도였다. 현장의 기록, 의사의 기록은 그 자체로도 의미를 갖는다. 어쩌면 앞으로도 그는 이야기를 하는 의사로 남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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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요


전작 『만약은 없다』와 긴밀하게 연결된 책입니다. 1년 만에 신작인데요. 전작과의 연관성이 엿보이기도 해요. 어떤가요?

 

『만약은 없다』의 원고를 확정한 후에도 아직 할 이야기가 많이 남았다고 느꼈어요. 『만약은 없다』가 개인의 불행에 치중했다면 이제는 좀 더 사회적인 면이나 정말로 잔혹한 광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첫 책 원고를 마감한 뒤부터 이미 두 번째 책의 원고 작업을 했어요.

 

그것은 저자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지독한 하루』에 더 많이 담겼다는 의미일까요?


실은 첫 번째 책이 저를 맨 처음 세상에 보여주는 책이잖아요. 그동안 의사가 쓴 글들은 많았지만 의사가 우울한 글은 없었어요. 환자가 우울한 글은 많아도 의사가 같이 우울한 글은 없었죠. 어떤 독자들은 『만약은 없다』를 보시고 ‘환자를 보고 있는 의사가 반쯤 환자다’(웃음)라고 하시더라고요. 첫 책에서는 그런 정체성을 갖고 저를 알리려고 했어요. 한편 『지독한 하루』에서는 제가 이런 글을 쓴다는 사실을 독자가 알았으니 거기서 약간 더 나아간 세심한 자아, 더 말할 수 있는 사회적 문제 등을 쓰려고 했어요. 가령 아동학대라든지 소방관 처우 문제, 중증 외상 환자 치료 센터 이야기를 하면서 시선을 확장하고 제 자아도 확장하는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저를 처음 세상에 알린 것이 첫 번째 책이고, 거기서 뻗어나간 이야기가 두 번째 책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을 거예요.

 

무엇보다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척 많았다는 느낌인데요. 책을 끝낸 지금도 여전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이 있나요?


스스로 병원 이야기를 많이 쓰면서 진짜 지치기도 했거든요. 경험한 일들을 되돌려서 감정을 담아 쓰다보니까 너무나 힘이 든 거예요. 겪을 당시 저는 의사기 때문에 직업적으로 훈련이 되어 있어서 그리 힘들지 않아요. 하지만 의사로서는 힘들지 않은데 작가로서는 상당히 힘들어요. 그래서 이것을 과연 더 써야 하느냐, 이런 고민이 있긴 해요. 어쨌든 저는 쓰는 사람이고, 쓰는 게 습관이 들어서 이제 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요. 지난 5월부터 다시 병원에 나가고 있는데요. 병원, 환자 얘기를 이제 좀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이 조금 있었거든요. 그런데 벌써 할 이야기가 쌓였어요. 결국은 또 다시 쓰고 있죠. 제가 겪은 일들을 잊지 않도록 메모 중이고요. 전처럼 완성된 글로 쓰지 않더라도 써놓고 있고, 또 써야 할 글은 쓰고 있어요. 이렇게 점차 쓰다보면 또 다른 책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다음에 나올 세 번째 책은 병원 이야기는 아니에요.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써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의사 이미지가 실은 안 좋죠. 의사가 하는 일이 생명을 다루는 일임에도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고민하는지, 이들이 어떤 현장에 놓였는지 사람들은 알지 못해요. 흥미로운 소재로써 병원이라는 공간이 문학 등에 엄청 많이 나오지만요. 실제로 의사가 작가가 되어서 치열하게 기록한 글은 별로 없었죠. 그런 역할을 제가 했다고 생각해요. 이 이야기를 쓰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여전히 몰랐을 거예요. 실은 책을 내기 전에도 응급실 이야기를 친구들한테 자주 했거든요. 그런데 말로 할 때와 글로 썼을 때가 다르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제가 쓰는 행위의 가치가 있는 것 같아요. 있는 일이잖아요. 있지만 모르는 일을 알렸다는 게 의미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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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은 없다

 

‘어쨌든 하루를 끝내야 했다. 그래야 내일을 맞을 테니까’라는 문장이 있어요. 제목과도 맞물리는 글인데요. 여기서 체념과 긍정의 정서가 같이 느껴졌어요. 이것의 정체가 뭘까요? 저자가 말하는 이 문장의 의미를 들어보고 싶어요. 


수록된 글 중에는 언론에 발표한 글도 있지만 표제작 ‘지독한 하루’는 일부러 아꼈어요. 아무 데도 발표하지 않았거든요. 이 글은 정말 제가 하루 동안 겪은 일을 쓴 거예요. 정말 지독한 하루였는데요. 고뇌하고, 실수하는 하루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실은 그런 하루를 끝내면 영원히 도망가버리고 싶어져요. 일을 끝내고 퇴근하면 점심때 쯤이 되는데요. 몸이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피로하죠. 길거리에 사람들이 활기차게 지나가는 것만 봐도 화가 날 정도예요. 저렇게 활발하게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게 화가 나더라고요. 그 정도의 감각인데 바로 다음 날 새벽에 또 일을 해야 해요. 그러니까 간신히 목숨을 지탱할 정도의 쉼뿐인 거예요. 꼼짝없이 쉬어야만 또 지독한 하루를 보낼 수가 있어요. 오늘을 끝내고 쉬지 않으면 내일이 없어요. 그런 의미였어요. 이것은 희망은 아니에요. 긍정이 아니고요. 그저 죽지 못해 하루를 끝내는, 그런 감정이에요.

 

도무지 견디기 어려운 시간들인데요. 지독한 하루를 보내고 또 다음을 맞을 때, 다시 힘을 내는 동력이 있나요? 


그 시간들을 견디게 하는 원동력 같은 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도망치면 안 된다, 나는 4년 수련을 다 마치겠다, 는 마음이었어요.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만나는 환자들한테는 최선을 다 하겠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 외에 힘을 내게 하는 원동력이라든지, 현실적으로 환자가 회복되는 걸 보는 희망이라든지 하는 건 특별히 없었어요. 물론 환자가 회복되면 기뻐요. 그런데 응급실에 있다 보면 알게 되는데요. 내가 잘해서 이 사람을 살렸다, 그것이 뿌듯하고 나에게 희망을 준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없어요. 어떤 사람이 살아난 건 그의 운명이에요. 내가 더 잘해서가 아니라요.

 

다만 최선을 다할 뿐. 이것이 ‘만약은 없다’의 핵심이죠.


‘만약은 없다’라는 글은 전작 『만약은 없다』에 수록이 안 되고 이번 책에 실렸는데요. 사람이 죽지 않으면 옳았는지, 100% 최선의 처치를 했는지 어떤지 생각할 이유가 없겠죠. 그런데 사람이 죽으면 ‘그걸 바꿨다면 이 사람이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이런 생각을 계속하다가 결국 이 ‘만약’까지 다 없어야 하는구나, 생각했던 거예요. 사람이 죽더라도 내가 한 모든 조치를 떠올렸을 때 ‘나의 신념과 의학 지식에 의해 아무것도 지체한 게 없다’라고까지 나올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만약은 없다’고 쓴 거예요.

 

간밤에 할머니가 집에 간다고 하지 않았더라면, 통증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시거나 그 와중에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잠시 접어두셨더라면, 내가 끝까지 붙들었다면, 애초에 밤이 아니라 낮이어서 집에 갈 필요가 없었거나 어떤 이유로든 집에 갈 상황이 아니었더라면,(중략) 나는 생각한다. ‘만약’은 없다. ‘만약’이 없을 수 있게, 도저히 생각조차 나지 않아 내가 내뱉을 말에 어떠한 가책도 느끼지 않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 일이다.(233-234쪽)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저자의 태도로 들리기도 하네요.


그것은 비단 응급의학과 의사뿐만 아니라 모든 의사들이 가진 태도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아는 의학 지식 내에서 하는 처치 가운데에는 하지 않았을 때 환자에게 해가 되는 범위가 있거든요. 최소한 그것만은 막아야 해요. 가령 환자가 상처가 나서 왔어요. 보통은 상처를 빨리 꿰매야 한다고 생각하겠죠. 그런데 학문상으로는 12시간 이내에만 봉합하면 큰 차이가 없어요. 환자가 12시간 이내에 왔다면 당연히 봉합하면 돼요. 그런데 의사가 이 상처를 봉합하지 않고 12시간을 둔다면, 그것은 환자에게 해가 되죠. 그것은 막아야죠. 아주 사소하고 직관적인 예에요. 의사는 이 모든 경우의 수를 막아야 해요.

 

많이 질문 받았을 텐데요. 왜 응급의학과를 택한 걸까요? 너무 힘들잖아요. 상대적으로 좀 덜 힘든 과도 있고요.


많이 받은 질문인데요. 응급의학과가 정말 힘든 과인 건 맞거든요.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24시간의 ‘지독한 하루’가 있으면 나머지 24시간의 ‘안온한 하루’가 주어져요. 다른 의사들에게도 지독한 하루가 많죠. 외과 의사라고 해볼게요. 환자를 수술해요. 의사는 수술을 했다고 해서 집에 가서 쉬는 게 아니에요. 그 환자가 안 좋아진다고 전화가 오면 집에 있다가도 다시 가야 해요. 집에서 쉬고 있지만 계속 대기 상태(on call)인 거죠. 내과 의사도 마찬가지예요. 환자가 자기 이름으로 있으면 퇴원할 때까지는 책임을 져야 해요. 그런데 응급의학과 의사는 그렇지 않아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그 일을 하죠. 24시간 지독한 하루 후에는 아무에게도 전화 오지 않고, 시간이 있는 과이기도 해요. 일할 때는 죽을 만큼 치열하게, 쉴 때는 아예 내 시간이 있는, 그런 생활이 좋기도 했어요.

 

또 다른 이유도 있나요?

 
인턴 때 응급실을 많이 돌았어요. 응급실에는 다양한 환자들이 오잖아요. 그런데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진짜 모르는 게 없더라고요. (웃음) 물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모르는 게 있을 수도 있겠죠. 응급의학과 의사가 되어보니 알겠어요. 그런데 당시에는 진짜 못 꿰매는 상처가 없고, 못 하는 대처도 없는 것 같았어요. 가령 피부에 박힌 낚싯바늘을 빼낸다든지, 액체 세제를 잘못 마신 환자의 치료법을 알려준다든지, 이런 것들이 만능으로 보였어요. 게다가 응급실은 사회 바깥과 밀접하게 연결된 곳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날것의 환자들이 처음 오는 곳이기도 하고요. 그런 것들이 흥미가 있었어요. 여러 이유가 있었죠. 

 

이후 이 이야기를 글로 쓰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된 건가요?

 
고등학교 때부터 글을 쓰고 싶었어요.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요. 어쩌다가 의대에 갔죠. 그냥 글 쓰는 사람이 되려고 했지 환자 이야기를 쓸 생각은 없었어요. 내 생활을 가질 수 있어서 응급의학과를 선택했는데 막상 일을 하고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이면이 극적이고, 많은 이야기가 있는 거예요. 그것을 쓰다 보니 글 쓰는 사람의 꿈도 이루게 되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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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렸다’와 ‘죽이지 않았다’

 

글을 읽으면서 응급의학과라는 곳이 ‘살려내기 위한’보다는 ‘죽이지 않기 위한’ 쪽에 방점을 둔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둘은 분명 다르잖아요.


둘은 확실히 다르죠. 최근 쓴 글의 내용인데요. 우리는 죽을 사람이 오면 죽었다고 하기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죽을 사람을 살리지 못하기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라는 거였어요. 그런 것 같아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생존율이라도 누군가는 거기에 도전하고, 피를 뒤집어쓰는 일을 해야 하죠.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예외 없이 죽으니까요. 그러니까 죽을 사람을 보고 ‘죽었다’고 하면 안 돼요. ‘살리지 못했다’고 해야죠. 그렇게 말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 지점에서 의사로서도 철학적인 고민이 들지 않나요?


철학적으로는 물론이고 직관적으로도 ‘살렸다’와 ‘죽이지 않았다’는 다르거든요. ‘내가 살렸다!’가 아니에요. ‘적어도 죽이면 안 된다’죠. 적어도 죽는 상태는 막아내야 한다, 이런 느낌이거든요. 그런 느낌으로 접근하는 것 같아요.

 

실제로 일종의 갈등도 읽히죠. 의학적인 조치와 인도적인 조치 사이에서 말이에요. 죽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을 것 같은 환자도 많이 만나고요. 이 갈등은 어떻게 해결하고 있나요?


실은 그 갈등은 다분히 작가적인 고민이에요. 의사로서는 그런 고민이 없어요. JTBC <말하는대로>에 나가서 강연한 적이 있는데요. 병원은 다른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 곳이에요. 가운을 입고 그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의 가치는 딱 하나예요. 어떻게 해서라도 환자를 살리는 것. 그뿐이에요. 화재로 몸이 불타서 살더라도 온갖 합병증으로 고생할 게 훤하더라도 실은 그 환자 앞에서 의사가 생각할 건 아무것도 없어요. 무조건 살리려는 최선의 방식으로 노력을 하면 돼요. 그 사람은 물론 살아 있으면 고통을 겪겠죠. 하지만 고통을 겪는다고 그런 식의 가치 판단을 하면 안 돼요. 가치 판단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요.

 

의사와 작가, 두 가지 정체성을 모두 갖고 있고요. ‘작가적인 고민’이라는 표현을 하셨는데 그만큼 서로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아서 궁금했어요.


작가로도 활동을 하지만 저는 스무 살 때부터 의대에 입학해 이쪽에서만 계속 있던 사람이에요. 가운을 입고 의료 현장에서 그런 상황을 마주한다면 생각은 할 수 있겠지만 그쪽으로 몸이 움직인다든지 말을 한다든지 하는 건 전혀 없어요. 그렇게 되진 않아요. 다만 그 상황에서 벗어나 작가적인, 인간적인 생각을 할 수는 있겠죠. 가령 몸이 다 타버린 환자를 간신히 목숨을 붙여놓았는데 그가 죽어가요. 심폐소생술을 해야죠. 의사로서는 당연한 거거든요. 그런데 작가로서는 ‘우리는 그를 살려내고 있는 것인지 그가 스스로 죽어가고 있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라고 표현할 수는 있죠. 실제로 분간할 수 없는 장면이기도 하고요.

 

끔찍한 장면들이 많아요. 그 안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죽음을 목격했는데요. 그 중 어떤 죽음은 더 오래 남기도 하겠죠?


『만약은 없다』에 쓴 장면인데요. 죽음에 무뎌졌다고 생각하던 즈음이었어요. 루게릭 환자 분이 계셨어요. 완전히 뼈만 남고, 호흡이 계속 멎어서 또 호흡이 멎으면 아무런 처치를 하지 않겠다고 DNR(Do Not Resuscitate, 심폐소생거부)을 쓰셨던 상태였어요. 그런데 딸이 간호사라 계속 살려내는 거예요. 그리고는 병원에 왔는데요. 병원에서 호흡이 또 멎었어요. 급한 대로 산소 호흡기를 댄 다음 가족들을 불렀어요. 환자 분이 곧 돌아가실 거다, 호흡기를 떼면 더 이상 우연은 없다, 그러니까 남은 10분 동안 하고 싶은 말을 해라, 이렇게 했어요. 저는 곁에 서 있고요. 두 딸과 남편, 동생이 와서 각자 인사를 하는데요. 그 말을 듣고 있을 수가 없더라고요. 너무 슬펐어요. 말하자면 내 어머니가 10분 후에 돌아가실 걸 알고 건네는 말이잖아요. 그게 어떤 감정이겠어요? 간신히 사망선고를 하고 뒤에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게 아직도 생각이 나요.

 

그런 장면을 안고 사는 삶이 어떨지 짐작하기 힘이 드네요.


잘 조절하는 편인데요. 아직도 예상치 못한 슬픔들이 있긴 하죠. 예를 들어 80대 후반 노인이 죽는다면 비교적 평범한 죽음이죠. 하루에 두세 명은 꼬박꼬박 죽으니까요. 그런데 사망선고를 하자 가족들이 너무 슬프게 우는 거예요. 너무 슬프면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눈물만 콸콸 쏟아지는 게 있거든요. 그럴 때 갑자기 일격을 받아요. 예기치 못한 감정의 습격이라고 할까요. 그런 것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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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관한 질문들


앞서 이번 책에서 사회적인 이야기를 좀 더 해보고 싶다고 했는데요. 소방공무원 처우 개선 문제나 중증 외상 환자 치료 시스템 등 실제로 여러 장면을 전하고 있거든요. 특히 피부로 느끼는, 많이 고민하는 문제는 뭔가요?


응급실 내 폭력, 소방공무원이 처한 현실, 아동학대의 현실 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썼지만 실은, 제가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사람이에요. 현장에 있으니까요. 응급의학과 임상 조교수로 있으니까요. 그것들에 대한 개선 방안을 찾아서 의견을 내고, 점진적으로 해결하는 사람인 거죠. 언급한 문제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점차 나아지고 있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해결하고 있고요. 다만 그런 문제를 고쳐나갈 때 사회적인 인식이 있으면 훨씬 적절하고 알맞은 방향으로 개선될 수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런 글을 쓰는 거예요. 지금도 십 년 전에 비하면 아주 많이 변했죠. 말도 안 되는 폭력도 너무 많았거든요. 어쨌든 점진적으로 나아지는 게 눈에 보여요. 내부에서 꾸준히 개선 노력을 하고 있으니까요. 

 

폭력을 언급하셨는데요. 그런 장면을 목격할 때는 어떤 기분인가요? 인간 본성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 같거든요. 선한 인간과 악한 인간, 둘 중 어느 쪽을 믿나요? 요즘의 화두이기도 해서 질문 해봐요.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고 늘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렇지만 아프면 어쩔 수 없구나, 생각하죠. 나름대로 뭔가 사정이 있었겠지, 하는 식으로 늘 이해하려는 편인데요. 그렇게 이해하려고 노력해야만 이해된다는 게, 글쎄요. 응급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선하다고 주장하기 어려울 때가 있지만요. 그저 선하다고 이해해야 한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요.

 

책에서 중요한 질문을 하나 얻었어요. ‘죽음은 과연 공평한가’라는 것이죠. 에필로그에서도 동료의 죽음을 기록했잖아요. 이를 통해 어떤 말을 건네고 싶었나요?


의사였던 사람이죠. 위암이었는데요. 동료들은 알아요. 일정 확률로 그렇게 안 좋은 사람이 있고, 그들은 결국 죽는다는 걸요. 그걸 늘 봐온 사람들이니까 의학적, 과학적으로는 이해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하필 내 동료, 친구였던 거죠. 감정적으로 이해가 되겠어요? 죽음은 평등하다는 문제에서 어떤 사람을 보며 저 사람이 언제든 내 친구, 가족 혹은 내가 될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죠. 에필로그에 쓴 제 동료는 끝까지 환자를 돌보다가 죽었어요. 그걸 보면서 주어진 삶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기리고 싶더라고요. 이런 죽음에 관한 질문들 사이에서 말이에요.

 

이 책을 한 마디로 설명한다면 어떨까요? 저자가 전한 많은 이야기를 관통하는 저자의 메시지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누군가의 안온한 하루는 곧 누군가의 지독한 하루이기도 하다, 이런 것 같아요. 그냥 이런 환경, 이런 곳에서 지독한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이 책으로 사람들에게 삶과 죽음을 생각해라, 사회에 대해 생각해라, 이렇게 어쭙잖게 말할 건 아닌 것 같아요. 다만 이렇게 어딘가에서 치열한 현장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까지가 제가 할 수 있는 말이에요. 제일 처음에 기대한 메시지도 이것이고요.

 

또 다른 책으로 만날까요?


세 번째 책은 ‘독서일기’가 될 거예요. 원고는 거의 썼고요. 조만간 나올 것 같아요.(웃음) 지금은 제가 후반 작업 중이니까요. 올해 안에는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독한 하루 남궁인 저 | 문학동네
그의 하루는 지독하다. 매일같이 찾아오는 죽음의 공포가 지독하며, 죽음의 문턱까지 간 환자를 다시 삶의 영역으로 돌이켜야 하는 긴박한 과제가 지독하며, 어쩔 수 없이 이 세상을 떠나버린 환자와 이별하고 또 이별해야만 하는 일이 지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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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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