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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이발관, 우리는 여전히 외롭다
언니네 이발관 〈홀로 있는 사람들〉
이번 앨범이 밴드의 마지막이라는 사실은 아쉽다. 어떤 방식으로든 언니네 이발관의 음악을 앞으로도 만날 것이라 믿고 희망한다. (2017.06.21)
언니네 이발관의 신보를 기다리던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신보가 별로 좋지 않으면 어떡하나’하는 우려 섞인 궁금증을 가졌을 것이다. 이 꺼림칙한 궁금증의 원인을 되짚어보자면 일단 작업 기간이 기약 없이 길어지고 있다는 점이 있었고 (밴드의 작업 스타일을 생각해보면 새삼스럽긴 해도), 무엇보다 <가장 보통의 존재>라는 앨범 자체가 부담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는 점이 있다. 그만큼 <가장 보통의 존재>는 좋은 앨범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석원의 사적이면서도 커다란 깨달음이 그대로 녹아있으며, 대중과 뮤지션들 사이에서 꾸준히 회자되고 노출되어 온 앨범이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지금 언니네 이발관의 팬들 중에는 <가장 보통의 존재>를 통해 이들의 음악에 입문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이유와 듀엣을 한 「누구나 아는 비밀」은 <가장 보통의 존재>가 씨앗을 뿌린 노래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가장 보통의 존재」를 부르던 아이유는 <가장 보통의 존재>가 추동한 다소 젊은 언니네 이발관 지지자들의 단면인 것이다. 이처럼 전작은 밴드 개인의 통찰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현대 청춘들의 깨달음이었고, 이러한 전작의 영향력은 현재 언니네 이발관을 지지하는 한 축이 되었다. 그러므로, <홀로 있는 사람들>의 독해는 <가장 보통의 존재>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전작과의 유사성 및 차별점은 독해에 있어서 중요한 키워드이다.
일 년 전에 발표한 선공개 싱글은 일종의 단초였는데 팬들로 하여금 신보의 방향성이 <가장 보통의 존재>로부터 그다지 멀리 떨어져있지 않음을 예상하게 했고, 오히려 한 층 더 날카로워진 면모도 보여주었다. ‘날씨가 좋구나 너를 잊으러 가야지/하고 너를 추억하러 가는 길이 슬퍼’라는 「애도」의 가사에서 보듯이 상황 설정과 감정 묘사가 훨씬 구체적이고 직접적이며, 「혼자 추는 춤」의 가사는 어떤 통찰의 결과물로 보이기까지 한다. 차분히 느린 진행을 따라가다가 후반부에 폭발하는 「애도」의 구성과, 댄서블함과 애처로움을 동시에 묘사하는 「혼자 추는 춤」의 멜로디 역시 수준급이라 싱글은 성공적인 예고편으로 막을 내릴 수 있었다.
앨범을 시작하자마자 흘러나오는 「너의 몸을 흔들어 너의 마음을 움직여」 또한 비슷한데 빠른 템포에도 신파를 우겨넣는 밴드 특유의 작법이나 자기연민과 자조로 짜인 가사도 <가장 보통의 존재>의 그것과 닯았기에 전작의 지지자들에게 기대감을 높인다. 특히나 이 곡이 앨범의 시작을 열도록 의도적으로 설계되었다는 점에서 볼 때 전작과의 유사성에 대한 기대는 그 타당성을 얻는다.
역시나 수록곡들은 예상 가능한 범위에서 진행한다. 독한 말투로 쏘아붙이는 「나쁜 꿈」도, 「100년 동안의 진심」을 떠올리는 「영원히 그립지 않을 시간」도 전작들을 의식하고 있다면 그다지 새롭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언니네 이발관 버전 ‘보헤미안 랩소디’같은 「창밖엔 태양이 빛나고」도 아이유를 대동한 「누구나 아는 비밀」도 새로운 시도이지만 낯선 노래는 아니다.
가장 이질적인 순간은 의외로 타이틀 곡 「홀로 있는 사람들」에서 나타난다. 언니네 이발관과는 거리가 먼 통통거리는 신스팝 사운드부터 마치 다른 앨범을 듣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인상적이게도 가사 역시 체념과 수긍의 모습을 비추면서 여타 수록곡과는 전혀 다른 온도를 내뿜는다. 이러한 순간은 앨범의 유기성과 극적인 효과를 중요시하는 이석원의 의도로 보이는데 앨범의 대부분을 이끌어온 흔들리는 자아에 대해 일종의 아름다운 타협 혹은 성찰의 징표를 내보이는 것이다. 타이틀 곡으로 설정한 만큼 색다른 스타일을 선보였다는 사실 외에도 곡 자체를 앨범에서 눈에 띄도록 만든 티가 난다.
역설적으로 앨범의 아쉬운 점이 두드러지는 순간도 이 때인데, <홀로 있는 사람들>이 언니네 이발관의 빛났던 과거들에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신보에는 <후일담> 시절의 담담한 서술도 <꿈의 팝송>의 대중적 터치도 <가장 보통의 존재>의 처절함도 모두 담겨 있지만 결과적으로 새로움을 창출하지는 못했고, 이 이면에는 팬과 밴드 모두 어느 정도 과거에 박제되어 있기 바라는 마음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차라리 「창밖엔 태양이 빛나고」나 「누구나 아는 비밀」처럼 곡 구성을 다단하게 쪼개는 식으로 신선함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홀로 있는 사람들」처럼 확연하게 다른 스타일들로 앨범을 채웠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신보는 충분히 성공적이다. 이는 언니네 이발관이 <가장 보통의 존재>를 통해 쌓아올린 공적인데, 순간의 상황이나 감정에만 초점을 맞추어 통속적인 소통에 그친 것이 아니라 인간 혹은 청춘 본연의 외로움을 포착한 뒤 그 시선을 자기 자신에게 돌림으로써 끊임없이 외롭고 발전해야 하는 개인을 묘사한 것은 분명 밴드가 독자적으로 이룬 문학적 성취이다. <홀로 있는 사람들>은 이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음악적 완성도를 더해 그 메시지가 빛을 발하도록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언니네 이발관의 음악을 들었던 이유는 비단 이석원이라는 자아가 표상한 ‘외로운 자아’에 관련된 독하고 날카로운 포착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가 이 밴드의 냉소와 우울한 그루브에 맞추어 춤을 출 수 있던 아이러니에는 오랜 시간 소리로 복무해 온 연주자로서의 언니네 이발관이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가 계속 작가 이석원의 글을 통해 그의 근황과 이야기를 즐길 수 있다고는 하더라도, 이번 앨범이 밴드의 마지막이라는 사실은 아쉽다. 분명 어떤 방식으로든 언니네 이발관의 음악을 앞으로도 만날 것이라 믿고 희망하지만, 어느새 우리도 이들도 마지막이라는 말을 입에 담아야 할 만큼 나이가 들어버렸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버린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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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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