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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다이브, 과거의 영광은 현재진행형
슬로우다이브(Slowdive) 〈Slowdive〉
오랜만의 등장이지만 과거의 영광을 현재진행형으로 풀어낸다. 감각을 잃지 않았고 더하면 더했지 덜어내지 않은 이음새로 무장했다.
끊어졌던 밴드의 연혁이 22년 만에 시작된다.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Loveless>에 대적하는 슈게이징 명반 <Souvlaki>로 끝없이 회자되던 그들이 그와 닮은 음반을 가지고 기습적으로 돌아왔다. 과하지 않은 몽롱함과 비교적 소화 가능한 노이즈는 그들의 여전한 강점. 여기에 어느 때보다 잘 들리는 선율과 음반의 집중력을 높이는 찰진 드럼의 배합은 그간의 공백을 말끔히 봉쇄한다.
1990년대 타오른 슈게이징 광풍에서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이 약간은 실험적이고 조금은 마이너한 성향을 품었다면 슬로우다이브는 그 진입장벽이 낮았다. 유지하는 장르에 비해 덜 지저분한 소리 때문에도 그랬고 팝이라고 하기에는 과하지만 선명하게 울리는 ‘팝적인’ 멜로디 때문에도 그랬다. 멤버의 변화 이후 앰비언트 성향이 짙게 나타난 3집 <Pygmalion>을 제외한 모든 앨범은 이 같은 특징을 끌어안은 슈게이징 입문자들을 위한 첫 교재나 다름없다.
신보에서 반가운 지점이 바로 여기서 나타난다. 자신들의 특징적인 센스를 놓치지 않고 발휘한 앨범은 오히려 대중적으로 가장 큰 인기를 거둔 <Souvlaki>에서 한 발짝 나아가 조금 더 편안한 소구력과 탄탄한 호흡을 가진다. 데뷔작 <Just for a day>가 전반적으로 비슷하나 그럼에도 독창적인 멜로디로 맛을 냈다면 소포모어 <Souvlaki>는 거기에 조금 더 앰비언트적인 질감을 녹여냈고 4집인 이번 앨범은 그것들을 바탕으로 한결 흥겹고 밝은 분위기를 만든다.
이 변화는 속도감 있는 드럼의 전면화와 선율의 무게감에서 드러난다. 전체적인 구성을 지루하지 않게 몰고 가는 드럼의 타격감은 초반 호흡의 합을 이끄는 매력 포인트다. 리듬감에 맞춰 터지는 멜로디 기타의 캐치한 선율 또한 주지해야 할 요소. 이는 피아노 아르페지오로 골격을 다진 「Falling ashes」를 제외한 모든 곡에서 힘을 유지하며 듣는 맛을 높인다. 특히 「No longer making time」의 기타 리프는 포스트록의 기조와 어우러져 호흡 면에서나 구성 면에서 만듦새 좋은 훌륭한 곡이다.
오랜만의 등장이지만 과거의 영광을 현재진행형으로 풀어낸다. 감각을 잃지 않았고 더하면 더했지 덜어내지 않은 이음새로 무장했다. 여태까지의 디스코그래피를 꼼꼼히 살펴 유지와 보안과 발전을 적절히 해낸 양 매끄럽고 매력적이다. 장르 입문자를 위한 무난한 교재이자 듣기는 쉽지만 따라 하기는 어려운 마스터피스. 이번 여름 그들이 한국을 찾는다는데 ‘떼창’은 어렵더라도 우리를 때로 물들일 만큼의 농축된 내공이 담겨있다.
박수진(muzikis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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