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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타 보이즈> 전대미문의 보이 그룹(?)을 소개합니다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장소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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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성공을 꿈꿀 것도 아니면서 이들은 왜 이렇게 음악에 목을 매는가. 이런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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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느 별에서 온 캐릭터들인가. 레게머리를 한 청년, 이라고 하기에는 나이가 있어 보이지만 어쨌든, 노래가 꿈이라고 하는데 공장 일에만 열심이다. 한국에서 영어 학원 강사로 편히 돈이나 벌려 하는 레게머리 청년의 재미교포 친구는 혀를 굴려 한국말을 하는 본새가 영 미덥지 못하다. 이들이 구청에서 주최하는 사중창 대회에 나가겠다며 멤버를 모집한다. 생각이 있으면 같이 음악 하자는 얘기는 못 할 것 같은데 웬걸,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 모인 인물들도 시쳇말로 가관이다.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에 나온 '김무쓰' 헤어스타일 록커의 시골 버전인 듯한, 역시나 청년인 듯 청년 아닌 청년 같은 이 청년은 연신 열심히 하겠다고 적극적으로 구애한다. 그리고 이 청년이 데리고 온 후배라는 사람도 음악과는 거리가 멀어 보여서 지금 막 트럭에서 꽈배기를 팔다가 아내 몰래 도망쳐온 처지다.

 

각각 이름이 일록(백승환), 예건(이웅빈), 대용(신민재), 준세(김충길)인 이들이 결성하는 사중창 밴드의 이름은 '델타 보이즈', 바로 이 영화의 제목이다. 밴드명이 델타 보이즈인 이유가 있다. 한국의 '보이즈 투 맨'을 지향해서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 팬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한류 스타로 인생 역전하기 위해? 이들의 꼴(?)을 보고도 그런 얘기가 나오나. “노래하는 게 너의 드림이었잖아” 일록에게 사중창 대회에 나가보라고 옆에서 꼬신(?) 예건이 준비한 노래가 하필 미국 흑인 남성 그룹 델타 리듬 보이스의 노래인 까닭이다.

 

사실 이들의 목표는 거창하지 않다. 남들처럼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 상위권에 들어 스타가 되는 게 아니다. 그럴 마음이 전혀 없는 것 같지는 않지만, 노래 실력보다 아주 젊고 예쁘고 멋진 인물을 원하는 대중 음악계가 이들을 주목할 것 같지 않다. 외모가 아니면 어때, 노래 실력만 뛰어나다면, 이라고 반문하고 싶겠지만, 아뿔싸, 델타 보이즈가 노래를 잘 부르는 것 같지도 않다. 사중창이니만큼 하모니라도 맞았으면 좋으련만 '따로국밥'이 따로 없다.

 

그렇다면 이들이 왜 그렇게 사중창 대회에 목을 매느냐? 이를 따져 묻기에 앞서 이들의 사연부터 알아보자. 일록은 매형의 주선으로 공장의 책임자 일을 맡고 있다. 예건의 경우, 미국도 청년들에게는 ‘헬’ 같은 상황인지라 한국을 기회의 땅 삼아 찾아왔다. 근데 한국 생활도 참 ‘헬’ 같아서 공장에서 먹고 자는 일록에게 빌붙어 '벼룩의 간'을 빼먹는 중이다.

 

전국노래자랑과 슈퍼스타 K의 본선이 뭐야, 예선 탈락의 경험이 있는 대용은 양복을 차려입었지만, 단벌 신세인 데다가 시장에서 생선가게 아르바이트를 뛰고 있다. 준세는 이들 멤버 중 유일한 유부남이라는 점에서, 특히 꽈배기 장사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생활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울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음악으로 성공을 꿈꿀 것도 아니면서 이들은 왜 이렇게 음악에 목을 매는가. 이런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 엇! 이 글을 읽는 독자를 꾸짖는 게 아니다. 이런 문장을 쓴 나 자신이 부끄러워 고백하는 바다. 델타 보이즈에게 음악은 그 자체로 삶의 이유이면서, 자기만족이면서, 존재 이유다.

 

일록과 예건과 대용과 준세가 삶의 깊은 우물 속에서 허우적대는 건 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이들이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사회 분위기를 만들지 못한 제도의 문제다. 사람이 어떻게 먹고만 살 수 있나, 라는 문제의식을 느끼기도 전부터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한 기성의 편협한 사고가 우리의 델타 보이즈를 제도권 밖의 삶으로 내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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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들은 사회의 낙오자인가? 전전 단락에서 반성해놓고 내가 또 무지를 드러내고 말았다. 사회적 명성과 돈만으로 성공의 잣대를 들이미는 이 사회에서 몰개성이 생계수단이 되어버린 절대다수와 다르게 자신만의 길, 즉 개성을 사수하는 이들이 바로 델타 보이즈다. 팀으로서, 각각의 멤버로서 그 누구보다 살아 있음은 따로 또 같이 인식되는 이들 고유의 특성에 있다. 도대체 어느 별에서 온 캐릭터냐고 물은 이 글의 첫 문장은 실은 감탄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델타 보이즈>를 연출한 고봉수 감독은 이들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들이 영화와 전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이 영화의 제작 배경도 극 중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고봉수 감독은 단돈 250만 원을 들여 연출과 각본과 촬영과 편집과 제작까지 일당백을 맡아 20일 만에 뚝딱 영화 한 편을 완성했다. 배우들은 노개런티로 출연해 연기에 대한 열정과 자신의 개성을 맘껏 과시했다. 

 

10대 때부터 극장 다니기를 밥 먹듯 했다는 고봉수 감독은 영화가 너무 좋아 대학에 가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를 직접 만들 만한 조건이 되지 않아 허송세월하던 중 일만 하며 보낼 수 없다는 절박감에 그래 결심했어! 단기로 아카데미 영화 과정을 수료한 후 수백 편의 단편을 만든 끝에 <델타 보이즈>를 완성했다. <델타 보이즈>가 다루는 내용은 감독 이하 배우들의 사연이 영화에서 음악으로 바뀌었을 뿐 자전적인 이야기인 셈이다.

 

그러고 보니, 이들이 부르는 델타 리듬 보이스의 노래를 언급하지 못했다. <제리코의 싸움>(Joshua fit the battle of Jericho)이다. 이 곡은 흑인 영가로 유명하다. 흑인 영가는 주로 노예로 끌려온 미국의 흑인들이 부르기 시작한 노래다. 백인 지주에게 핍박받는 삶의 고통을 노래를 통해 이겨내고 버틴, 흑인의 혼과 정신이 깃든 노래다.

 

일록과 예건과 대용과 준세에게 음악이란 흑인 영가와도 같다. 비록 세상이 이들을 속일지라도 델타 보이즈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며 불확실한 미래 대신 현재의 삶에 더 충실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밝은 미래가 오지 않을까. 음, 델타 보이즈의 개성에 어울리지 않는 너무 상투적인 마무리다. 밝은 미래가 아니면 어떠랴. 음악이 있고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장소만 있다면 델타 보이즈는 행복할 것이다. 그 행복이 영원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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