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하면 안 되겠니, 편집 같은 이상한 일은?
『중쇄를 찍자!』 편집 후기
일을 더 많이, 오래 한다고 모조건 돈을 더 받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만화가의 노동가치는 지나치게 저평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만화책이 보다 정당한 대우를 받았으면 좋겠다.
“이제 그만하면 안 되겠니, 편집 같은 이상한 일은?!”
나 또한 만화계에 입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께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지만 만화 업종에 종사하다 보면 주변에서 굉장히 희귀한 동물을 구경하는 시선마냥 바라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곳에서 대체 어떤 일을 하는지 굉장히 궁금해했고 지인 중에는 심지어 내가 직접 만화를 그린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을 정도로 만화 출판사는 세상의 불모지였다. 세상엔 많고 많은 책이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출간되고 있다. 일반서 편집자들이야 주변에서 좋은 일 한다며 예쁘게 봐주시지만, 만화에 국한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만화라 하면 애들 코 묻은 돈 가지고 장사한다거나 뭔가 사회에 해가 되는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집단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이 있던 시대였다. 지금은 만화를 비롯한 서브컬처에 대한 인식이 예전보다 나아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런 시선은 존재하는 듯하다.
모뎀이 온라인을 더디게 연결하던 당시 당연히 웹툰이란 건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만화잡지란 것이 있어 만화가들은 만화잡지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연재했고 연재 잡지가 주간지냐, 격주간지냐, 월간지냐에 따라 지옥 같은 마감을 한 달에 많게는 네 번, 적어도 한 번은 치러야 했다. 무릇 창작이란 밤에 만들어지는 법이고 만화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덩달아 편집부도 집에 못 들어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만화가 중에는 마감을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마감을 어기기 일수였다. 마감 때 연락두절은 기본 중의 기본이요, 잡지에 실을 원고를 받아내기 위해 화실과 그 일대 술집을 찾아 헤매는 일이 종종 생겼다. 희한하게 그런 와중에도 마감은 지켜졌고 그렇게 수많은 작품들이 지면에서 태어났다가 사라져갔다. 어떻게든 마감을 피해보려 안간힘을 쓰던 만화가들이 밉다가도 마감 때마다 원고를 받아볼 때면 그곳에 쏟아 부은 그들의 노력과 눈물이 느껴질 때가 많아 여러 감정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만화가 왜 이렇게 비싸?”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만화책은 지금도 싼 거라고 감히 말씀 드리고 싶다. 다른 것을 떠나서 단순하게 노동이라는 측면으로만 봐도 같은 페이지 내에서 일반서에 비해 월등히 많은 노동을 하고 있는데 오히려 일반서들이 더 비싸다. 일을 더 많이, 오래 한다고 모조건 돈을 더 받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만화가의 노동가치는 지나치게 저평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만화책이 보다 정당한 대우를 받았으면 좋겠다.
각설하고 담당 편집자들도 만화가들의 일정에 따라 밤낮이 바뀌는 생활을 반복되다 보니 그걸 바라보는 집안 어른 입장에서는 만화편집이란 뭔가 비정상적인 이상한 일로밖에는 비춰지지 않았을 법하다. 이 책은 그런 만화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열정에 대한 업무일지다. 편집부 이야기지만 마케팅과 영업, 디자인, 만화가, 독자에 이르기까지 ‘책’과 관련된 이야기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원서 제목인 중판출래(重版出來)란 중쇄에 들어간다는 일본 출판업계 용어인데 마땅하게 대체할 우리나라 업계용어가 없어 그 뜻을 그대로 풀이해 제목으로 정했다.
책을 많이 팔게 되면 책의 저자는 물론 출판사와 그와 관련된 종사자들, 그리고 그 책을 산 독자 모두가 행복해진다. 저자는 수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날아가는 커다란 제트기가 되는 것이다. 환경이 변해 이제 우리나라의 만화산업은 웹툰이 주도하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도 많은 만화책이 출판되고 있다. 그리고 독자들은 여전히 목마르다. 감동받을 준비, 울고 웃을 준비가 되어 있다. 편집자는 그들의 갈증을 해소하고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좋은 작품을 기획하고 발굴하고, 작품이 넘어지지 않게 보조해야 한다. 또다른 제트기로 날아오르기 위해.
1990년대 말 출판만화계 입문해 몇몇 회사를 거쳐 주구장창 만화만 편집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이직률이 높은 출판계에서 정년퇴직하는 소박한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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