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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의 형태>, 목소리 말고 마음을 주었다
영화 〈목소리의 형태〉
용서는 어떤 언어로 구할 수 있는가, 진심은 어떻게 전달하는가, 말로 다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은 어떻게 표현되는가. 목소리만이 답이 아니다. 말로 전달될 수 없는 것들은 눈빛과 마음에 실린 ‘어떻게’의 기술적인 문제에 맞닿아 있다.
이런 일이. 애니메이션 <목소리의 형태>를 보고 나서 바로 오이마 요시토키의 원작 만화 7권과 공식 팬북을 사고 말았다. 만화를 즐긴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던 내가 주인공 쇼코와 쇼야의 모습과 대화를 더 보고 싶어 산 것이다. 무엇보다 팬북이라는 장르의 책을 처음 펼쳐본 생경함과 신선함이란! 팬북은 참으로 묘한 하이퍼텍스트구나. 팬북을 열자마자 화려한 화보 16페이지. 한 대수(이건 인쇄 용어인데 출판인으로서 매일처럼 입에 달고 산다. 인쇄기에선 펼침으로 16페이지가 한 종이에 앉혀진다는 것)가 선물처럼 펼쳐진다. 첫 페이지는 물에 빠진 니시미야 쇼코의 청순한 모습, 2013년 주간 소년 매거진 43호 제7화의 첫 페이지라고 한다. 아, 이쁘다.
공식 팬북답게 이런 친절한 설명도 있다.
“<목소리의 형태> 그 원점은 2008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바로 그해 제 80회 주간 소년 매거진 신인만화상에 입선한 이 작품은 2011년 별책 소년 매거진에 처음으로 실렸으며, 이후 2013년 주간 소년 매거진에서 단편 게재를 거쳐 연재를 시작했다.”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원작을 먼저 말해버렸네. 원작이 있는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원작과 영화의 간극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는데, <목소리의 형태>도 그랬던 것이다.
신카이 마코토가 극찬했다는, 흉내 내고 싶어도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다운 그림과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뛰어난 연출이 돋보이는 <목소리의 형태>는 얼핏 보면 ‘왕따’와 ‘청각 장애’의 테마가 보이지만 더 깊이는 ‘사람이 사람에게 어떻게 마음을 전달할까’라는 진지한 문제를 화사하고도 섬세하게 풀어내고 있다. 이 화사함은 전적으로 청각 장애인이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맑은 쇼코 때문에 얻은 빛이다. 누가 뭐래도, 그 밝고 맑음은 가슴 저릿할 정도다.
스이몬 초등학교 교실에 전학생 쇼코가 등장하면서 시작하는 애니메이션. 귀가 들리지 않는 쇼코는 친구들과 적극적으로 친해지기 위해 노트를 만들어 필담을 시도한다. 휴. 쇼코의 유일한 커뮤니케이션 도구인 필담 노트를 빼앗거나 값비싼 보청기를 강탈하는 교실 친구들의 이지메는 잔인했다.
쇼코 이지메에 앞장섰던 쇼야는 가해자였으나 그 이유로 학교 측에서 문제가 되어 결국 친구들에게 따돌림당하는 피해자가 되는 현실. 학교 교실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인생의 학교에서도 언제든 발생하는 문제. 가해자이면서 피해자가 되는 상황.
이름에 같은 음절이 있는 쇼코, 쇼야는 둘 다 편모 가정에서 자랐다. 뭔가 운명적이다. 사고를 치는 쇼야의 집이나 청각 장애인인 쇼야네 집은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일본 애니메이션다운, 세부 묘사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섬세함이 좋았다. 살림살이의 감각, 음식을 나누는 장면이 종종 드러난다. 나는 관람석에서 그들이 먹는 만두 야키소바 야키니쿠 핫케이크 등을 눈으로 이타다키마스! 무엇보다 두 집 어머니의 힘이란. 언제나 긍정적인 목소리.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지만 삶은 계속되는 거니까.
6년 후 쇼야가 용서를 구하기 위애 청각 장애인 고등학교를 다니는 쇼코를 찾아가면서 애니메이션의 주제는 선명해진다. 그사이 수화 학교에 다니며 쇼코와 대화할 미래를 그렸던 쇼야가 마침내 찾아간 것이다.
용서는 어떤 언어로 구할 수 있는가, 진심은 어떻게 전달하는가, 말로 다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은 어떻게 표현되는가. 목소리만이 답이 아니다. 말로 전달될 수 없는 것들은 눈빛과 마음에 실린 ‘어떻게’의 기술적인 문제에 맞닿아 있다.
쇼야는 해냈다. 쇼코에게 용서를 구하고 이해를 얻었다. 또한 연애의 마음도. 오글오글하고 사랑스러운 대사들과 표정들(원작에서 더 보고 싶었던 그것들). 쇼코는 왕따를 당하면서도 그 원인을 자신 때문이라고 자책했던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주체인 자존감은 깊은 이해 속에서 회복되어간 것이다.
애니메이션의 힘이란, 단지 원작 공식 팬북을 사게 만들 뿐 아니라 목소리보다 마음, 주장보다 스밈이라는 걸 알겠다. 이 나이도 다시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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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산책> 대표. 출판 편집자로 살 수밖에 없다고, 그런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일주일에 두세 번 영화관에서 마음을 세탁한다. 사소한 일에 감탄사 연발하여 ‘감동천하’란 별명을 얻었다. 몇 차례 예외를 빼고는 홀로 극장을 찾는다. 책 만들고 읽고 어루만지는 사람.
<오이마 요시토키> 글,그림41,400원(10%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