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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재 “사랑에 관해 교감하고 싶었어요”

영화 <실미도>, <공공의 적2>, <국화꽃 향기>의 작가 김희재 첫 번째 소설 『소실점』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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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답 받기 위해서 사랑하는 것은 아닌가,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에 대해서만 사랑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은 누구나 사랑할 수 있지만, 사랑할 만한 가치가 없는 존재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진짜 사랑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보시면 좋을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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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가 ‘천만 관객 시대’에 진입할 무렵, 그 중심에는 김희재 작가가 있었다. <국화꽃 향기>, <실미도>, <누구나 비밀은 있다>, <공공의 적2>, <홀리데이>, <한반도> 등 관객에게 깊이 각인된 작품들의 시나리오가 모두 그녀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탁월한 이야기꾼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냈던 작가 김희재의 행보는 소설 『소실점』으로 이어졌다.

 

미스터리 소설 『소실점』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아나운서 최선우의 죽음, 그 속에 감춰진 진실을 쫓는다. 그녀는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인물이었고, 여대생들의 롤모델로 손꼽히던 유명 인사였다. 낯선 남자의 집 안에서 알몸의 변사체로 발견되는 건 그녀답지 않은 마지막이었다. 사건 수사를 맡은 강주희 검사는 거짓 같은 진실, 진실 같은 거짓과 마주한다. 용의자는 자신이 최선우의 섹스파트너였다고 주장하며, 그녀가 SM섹스를 즐기는 변태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고 진술한다. 최선우의 남편은 그녀가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존경스러운 아내였다고 말한다. 강주희 검사는 혼란 속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애쓴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낸 증거를 열쇠로 진실에 한 발짝 다가선다.

 

물론, 진실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나의 단서가 발견될 때마다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진실을 찾는 독자들의 추격전은 속도가 빨라진다. 끝까지, 흥미롭게, 이야기를 따라오게 만드는 김희재 소설가의 탄탄한 내공이 빛을 발한다. 미스터리 소설로써 『소실점』이 주는 장르적 쾌감은 결코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작품은 인간의 내면과 관계의 본질을 조명하면서 잊히지 않는 질문을 남긴다. 그에 답하기 위해, 어쩌면 이야기를 다시 따라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쉬이 휘발되지 않는 여운을 가진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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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멜로는 쓰지 못할 것 같아요

 

『소실점』이 첫 번째 소설입니다. 지금까지 소설을 쓰지 않으셨다는 게 의아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사실은 인터넷 교보문고에 「Free as the Wind」라는 작품을 연재한 적이 있어요. 공동 작가와 함께했는데, 지금처럼 전자책이 활성화되지 않던 시절이라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어요. 기황후를 주인공으로 한 1인칭 소설이었고, 뮤지컬 판권이 팔렸는데 제작되지는 않았어요. 워낙 대작 사이즈고 창작 뮤지컬로써는 조금 독특한 소재이다 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일차적으로 그런 시도가 있었고요. 에세이를 내면서 저자가 책을 가진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이전에는 시나리오집을 출간하신 적이 있으시죠?

 

<공공의 적2><한반도>의 시나리오집이 나왔어요. 그리고 회사 ‘올댓스토리’를 시작하면서 라이터스컷(writer’s cut) 시나리오를 출판했었는데 작가의 오리지널 시나리오와 촬영용 시나리오, 작가의 코멘터리가 실린 시나리오를 담았었어요. 그렇게 출판에 대한 경험들이 쌓여가면서, 책을 통해서 독자와 만나는 건 온전하게 저자가 책임을 지는 만남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화나 드라마는 연기자의 옷도 입혀지고 연출자의 의도도 들어가고, 여러 가지 요소가 더해지는 상황이잖아요. 책을 써서 독자와 만나는 건 굉장히 다르다는 걸 알게 됐죠. 그러면서 조금씩 마음의 준비를 해왔던 것 같아요. 그런데 워낙 많은 일들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으니까 선뜻 시도를 하지 않다가 이번에 시작하게 된 건데, 굉장히 재미있는 작업이었어요. 바로 두 번째 작업도 들어갔고요.

 

집필 중이신 작품도 소설이죠?


네. 『소실점』이 미스터리와 멜로가 섞인 작품이라면, 지금 쓰고 있는 건 호러와 멜로가 섞인 장르예요.

 

『소실점』에서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셨는데, 정통 멜로가 아닌 미스터리를 택하셨어요.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이번에는 호러와 접목시키려고 하시네요(웃음).

 

남녀가 만나서 알콩달콩 사랑하는 멜로를 보는 건 참 좋아해요. 김은숙 작가님 작품들도 다 좋아하고요. 대사도 잘 쓰시고 캐릭터도 잘 잡으시잖아요. 그런데 너무 좋아하면서도, 제가 선뜻 도전할 수 있는 장르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태양의 후예>에 보면 죽은 줄 알았던 서상사가 돌아와서 연인과 재회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저는 그냥 무덤덤하게 보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다음 장면에서 하사관이었던 친구와 만나는데 울컥하더라고요. 김하사가 열중쉬어 자세로 울먹울먹하면서 머리만 기대는데, 두 사람이 교감을 나누는 모습에 갑자기 울컥한 거예요. 그러면서 ‘나는 (멜로가) 안 되나 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사랑은 반드시 에로스적인 사랑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 사랑에 관해서 쓰려면 정통 멜로 장르의 이야기로는 조금 어려운 것 같고요. 그러다 보니까 (다른 장르와) 결합이 되는 것 같기도 해요.

 

영화 <국화꽃 향기>는 정통 멜로라고 볼 수 있는데요. 각색하실 때 어떠셨어요?

 

<국화꽃 향기>는 제가 안 하겠다고 했던 작품이에요. 그런데 영화사 대표님이 꼭 읽어보라고, 이건 꼭 김 작가가 해줘야 된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불치병 부분을 빼자고 했는데 그게 핵심인데 어떻게 빼냐고 하시고, 그러면 아기 이야기를 빼자고 했는데 거기가 바로 핵폭탄인데 뭘 빼냐고 하시더라고요. 그 두 개를 빼면 이 작품을 왜 하냐고요(웃음). 그래서 저는 못 하겠다고 말씀드렸는데 무조건 해야 된다고 하시는 거죠. 스토리라인은 바꿀 수 없다고 하시니까, ‘나는 여기에서 뭘 이야기할 수 있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 결과 원작 소설과 달라진 점이 있나요?

 

사실 영화 <국화꽃 향기>는 포장은 멜로로 되어 있지만 죽음에 관한 이야기예요. 소설은 대학교 때 만난 연인이 7년 뒤에 라디오를 매개로 다시 만나서 결혼하게 되는 이야기인데요. 저는 여자 주인공이 약혼자와 부모님을 잃게 되는 사건을 넣었어요. 사랑했던 사람들이 어느 한 순간에 다 사라져버리는 경험을 지나가게 된 거죠. 시나리오를 쓸 때 제가 생각하는 작품의 의도에 대해서 써서 넣었었어요, 일부러.

 

의도하신 바는 무엇이었나요?

 

인간은 누구나 죽음의 경험을 두 번 하게 되는데, 한 번은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떠나가는 것이고 또 한 번은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내가 떠나는 거예요. 태어난 존재들은 반드시 경험하게 되는 거죠. <국화꽃 향기>를 쓰면서 생각했던 건 이런 거였어요. 내가 남겨졌던 기억을 통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떠나야 하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거죠. 여자 주인공이 다시 찾아온 어린 후배의 사랑을 받아들일 때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에 관한 생각이 있었던 거죠. 아기를 지우고 더 치료에 전념하지 않았던 것도, 사랑하는 사람 곁에 사랑할 대상을 남겨주고 가고 싶어서였고요. 그러니까 <국화꽃 향기>는 한 사람이 죽음에 대한 두 번의 경험을 지나가면서 한 선택에 관한 이야기예요. 포장은 멜로이지만 작가의 주제적인 측면에서 멜로는 아니었어요.

 

소설 『국화꽃 향기』에서 여주인공의 이름은 ‘미주’였어요. 영화에서는 작가님과 같은 ‘희재’로 바뀌었는데요. 이름은 직접 지으셨어요?

 

이름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요(웃음). 주제를 바꾸려다 보니까 여자 주인공이 중성적인 이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아이의 이름을 미리 지어놓고 떠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그때 남자 주인공 이름은 서인하라고 지어놓은 상태였고, 아이 이름은 두 사람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와서 재인이라고 지으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재’자가 들어가는 중성적인 이름을 찾아가 재영이라는 이름을 지었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시는 거예요(웃음). 캐릭터도 김 작가님이랑 비슷하니까 희재로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절대 안 된다고 했죠. 관객들이 알면 저를 자의식 과잉의 미친 여자로 볼 거라고요(웃음).

 

결국 감독님이 이름을 바꿔버리신 건가요(웃음)?


어느 날 PD를 만나러 갔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니까 뮤직비디오가 나오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제목이 <희재>인 거예요. (영화보다) 뮤직비디오가 먼저 나온 거죠. 그래서 제가 이게 무슨 일이냐고 그랬는데 감독님이 워낙 강경하셔서(웃음), 주인공 이름도 희재로 바꾸시고 노래 제목도 그렇게 지으셨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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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해 교감하고 싶었어요

 

에세이 『나이 듦에 대한 변명』을 출간하신 후에 <채널예스>와 인터뷰를 하셨어요. 그때 “우선 시나리오를 쓸 때는 구상 단계가 굉장히 길어요. 집필에 투자하는 시간은 3분의 1도 채 되지 않아요”라고 말씀하셨는데, 소설 집필 과정은 달랐나요?


비슷해요(웃음).

 

<공공의 적2>의 시나리오는 18번이나 고치셨다고 들었는데요. 집필하시는 시간이 결코 적지 않을 것 같아요.

 

그렇게 18번을 고쳐 쓰는 것도 결국은 앞의 구상이 달라지는 거고요. 고쳐 쓰는 전체 시간 중에서 실제 집필하는 시간보다 구성을 바꾸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쓴 거예요.

 

시나리오는 대사 외의 부분은 영상으로 대체가 되잖아요. 그런데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서술해야 하니까, 더 치밀한 작업이 필요하지 않나요?


아무래도 시나리오 집필보다는 단어를 고르거나 문장을 만드는 데 훨씬 더 공을 들인 건 사실에요. 그런데 소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가 문장에서 수사를 많이 쓰지 않는 편이거든요. 제일 공을 많이 들이는 부분은 깔끔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불필요한 걸 빼는 거예요. 또 하나는, 시나리오를 쓰다 보면 지문에 의성어 의태어를 많이 쓸 수밖에 없거든요. 연출이 되어야 하는 부분이니까요. 그런 의성어 의태어적인 표현을 조금 절제하기 위해서 애를 썼어요. 그런 점에서 문장의 달라짐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인 부분은 있죠. 같은 분량의 시나리오를 쓰는 것에 비해서 시간과 노력이 조금 더 들었다고 봐야죠.

 

시나리오가 영화로 제작되는 과정에서 많은 내용이 달라지기도 하잖아요. 그에 반해 소설은 완전히 작가의 작품으로 세상에 나오니까, 느낌이 많이 다르셨을 것 같아요.


제가 온전히 책임을 지고 누군가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는 부분은 좋았던 것 같은데요. 저는 소설이든 영화든 퍼블리싱이 되는 순간에 다 보내요. 이건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굉장히 감격스러워한다든지 그런 부분이 적은 편이에요. 이 작품을 빨리 보내고 다음 작품을 써야지, 하고 옮겨가는 편이에요. 사실 퍼블리싱 되기 전에, 편집자한테 넘기는 순간 거의 다 버려요(웃음).

 

‘작가의 말’에 적으시길 다음 작품을 쓰는 것이 “작품에 함몰되지 않는 저만의 방법”이라고 하셨어요. 다 쓴 작품을 떠나 보내기 위해서 몰입할 다음 작품을 찾으시는 건가요?


그것보다, 써야 될 게 너무 많은데 시간이 너무 없는 편이라 빨리 써야 되는 거죠. 죽기 전에 써보고 싶은 게 너무 많은 거예요(웃음). 늘 시간이 모자른 편이다 보니까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 만화스토리로 시작했잖아요. 그때 워낙 많이 쓰고 빨리 썼어요. 애초에 라이팅 자체를 힘겨워하지 않도록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것 같아요. 정말 피를 찍어서 작품을 쓰시는 작가님들을 뵈면 존경스러워요. 한 문장 한 문장을 자신의 피와 살처럼 내놓으시는 분들을 보면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죠. 그런데 제가 훈련한 방식이 그렇지 않다 보니까 저는 그렇게 쓰는 스타일은 아니고요. 많이 쓰죠. 많이 쓰다 보면 좋은 거 하나 나오겠죠(웃음).

 

『소실점』은 미스터리 소설이잖아요. 장르의 특성상 ‘독자가 예측하지 못한 결말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을 것 같거든요. 어떠셨나요?


끝내 제가 독자들과 교감하고 싶은 게 ‘이건 몰랐지?’는 아니었으니까요. 사랑에 관한 걸 교감하고 싶었기 때문에, 진작 다 알게 되더라도 그게 그렇게 큰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작품의 진폭이 크니까 아마 독자들이 굉장히 의심하면서 끝까지 올 거라는 생각은 했어요. 그런데 지금 쓰는 작품을 보면, 연재 방식으로 쓰고 있는데, 눈치 빠른 사람들한테는 반전 요소가 들키더라고요. 호러 장르이지만 큰 반전이 있거든요. 제가 두 개의 반전 요소를 심어놨는데 하나는 진작에 들키더라고요. 다른 하나는 모르고요. 그래도 예상 못한 반전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세 번째 장치를 넣게 됐어요.

 

먼저 작품을 읽으신 분들이 반전을 눈치 채지 못했을 때, 쾌감이 느껴지셨나요(웃음)?

 

네. 그래도 나중에 알려졌을 때 ‘에이, 뭘 그거 가지고 그래요’라고 할까 봐, 그에 대한 초조함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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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소실점』, 영화로 탄생할까?


『소실점』은 ‘시점’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네가 인식한 나는 나 자체가 아니라 너의 시각을 통과한 나이고, 그것은 나의 실존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지”라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리더라고요.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경향들이 많이 있죠.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싶어 하고요. 거기에서 벗어나면 굉장히 화를 내죠, 많은 관계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준다고 해서 그거에 대해서 어떤 책임도 같이 나눠서 져줄 것도 아니면서 말이죠. 게다가 현대 사회로 넘어오면서 포장된 이미지로 살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는 직업들도 많아졌잖아요. SNS 시대에는 더 그렇고요. 그것 때문에 서로 간에 불행하면서도, 포장하고 사는 사람이나 그걸 감시하는 사람이나 서로 불행하면서, 본질적인 걸 오픈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는 것 같아요. 그걸 통해서 교감을 할 만큼의 에너지도 들이지 않으려고 하고요. 이런 부분들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누구나 여러 모습의 ‘나’를 가지고 있죠. 그 중에서 상황이나 상대에 맞는 모습을 뽑아서 가면처럼 쓰고요. 이런 주제로 작품을 쓰게 되신 계기가 있었나요?


겉으로 드러나는 메시지는 사회적인 가면 쓰기에 관한 것일 수 있어요. 제가 그런 메시지에 관심이 있는 모양이에요. 예전에 희곡을 써볼까 생각했을 때 가지고 있었던 아이템이거든요. 싸이월드에 그런 글을 쓴 적도 있어요. 가면을 바꿔 쓰는 연습을 부지런히 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가면과 내 얼굴이 붙어버리고, 더 이상 가면을 부지런히 바꿔 쓰지 않아도 사람들이 알아서 인사하고 알아서 높은 자리를 주는 순간이 온다고요. 그럴 때 굉장히 완고하고 무례한 사람이 된다고 썼었는데요. 저한테 사회적 가면에 대한 생각이 조금 있는 것 같아요.

 

『소실점』에 대한 따님의 반응이 궁금하다고 하셨어요.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


블로그인가 페이스북인가, 어디에 글을 올렸더라고요. 자기가 책을 잘 안 읽는데 두 시간 반 동안 내리 읽었다고, 딸이 책을 읽는 모습을 보고 싶으면 빨리 두 번째 소설을 쓰라고요(웃음). 저희 딸하고 저는 모녀 관계라기보다는 친구 같은 사이라서 격려성 이야기를 하지는 않고요. ‘잘 썼네, 재미있구만 뭐’ 하더라고요(웃음). 이번 소설이 19금 미스터리이다 보니까 제가 직접 주기는 뭐하다고 말했었거든요. 알아서 보면 몰라도 엄마로서 주기는 좀 그렇다고요. 그랬더니 ‘뭐 이걸 못 준다고 그래, 좋구만’ 하더라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작품 속에 수위 높은 묘사들도 등장해요. 쓰실 때 힘든 부분은 없으셨어요?


네. 이 작품을 내놓으면 작가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거라는 생각도 했어요. 이게 경험 없이 쓸 수 있는 거냐는 식의 이야기가 나올 텐데,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나면 제가 <실미도>를 썼다는 것도 좀 참고를 해달라고 이야기를 해야겠다 싶었어요(웃음). 상상의 힘이라고 하는 것을 양쪽 극단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작품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요. 저한테는 전투씬을 상상하는 거나 정사씬을 상상하는 거나 크게 다르지 않아요. 다 유사한 상상의 근거니까요.

 

『소실점』이 영화로 제작된다면 어떤 모습일까’라는 생각도 해보셨어요?


처음부터 영화를 보고 기획을 한 작품이고, 이미 영화 판권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요.

 

출연 배우에 대한 생각도 하셨겠네요?


제작사와도 계속 논의하고 있는 부분이에요.

 

시나리오 각색도 직접 하실 거죠?


생각 중이에요. 제작사 쪽에는 원칙적으로는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왜냐하면 작가로서 할 말을 다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시나리오로 넘어가면 굉장히 테크니컬한 작업이 될 텐데, 저는 다 쏟았으니까 영화를 통해서 새롭게 이야기할 만한 건 별로 없어요. 제 손을 떠난 작품 같거든요. 그래서 다시 이 이야기로 들어가는 거에 대해서는 조금 회의적인데... 만약 제작사가 정말 필요로 하고 감독님이 같이 작업하고 싶다고 하시면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런데 작가로서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요.

 

다른 사람에 의해서 작품이 변형될 수도 있는데, 싫지 않으세요?


그런 생각하면 영상 작업은 하기 힘들어요. 다 같이 협업하는 거고 굉장히 많은 사람의 노력이 들어가는 거라서, 협업을 위해서 내가 열어줘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 유연한 태도를 갖고 있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굉장히 마음에 상처도 많이 받고, 이게 내 작품이다 아니다 하는 마찰이 생기기도 하죠.

 

본인의 의도에 반하는 방향으로 영화가 만들어지면, 원작자 입장에서는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아요.


마음이 아프죠.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감독으로 살아간다는 건 한 작품에 목숨을 다 거는 거예요. ‘더 잘할 수 있는데 다음을 위해서 남겨둬야지’ 이런 생각을 못해요. 그 순간에 다 쏟아 부어서 증명하지 않으면 다음이 보장되지 않는 직업이에요. 현 작품에서 자신이 가진 패를 다 보여주고 목숨을 걸고 정말 최선을 다한 거예요. 그런 결과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 건 능력 없다고 욕을 하는 거거든요. 제가 그렇게 재능이 풍부한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지, 저는 능력 없는 걸 가지고 별로 욕하고 싶지는 않아요(웃음). 약간 아마추어리즘이기는 한데요. 정말 죽을 만큼 노력을 다했는데 그것밖에 안 됐으면, 거기에는 백만 가지 사연이 있었겠죠. 재능의 문제일 수도 있고, 재정의 문제일 수도 있고, 현장 상황의 문제일 수도 있고, 사람이 너무 좋아서 모질지 못해서 그랬을 수도 있고, 현장에서 괴물이 되어야 하는 순간에 괴물이 되지 못한 착한 성품 때문에 타협하다가 그렇게 됐을 수도 있고... 정말 백만 가지 사연이 있는 건데,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고 싶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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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사랑에 대한 이야기예요


『소실점』의 강주희 검사는 “인간의 내면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최선우의 사망 사건을 맡게 되는데요. 소설가로서 같은 궁금증을 갖고 계실 것 같아요. 어떠세요?


저는 크리스찬인데, 내밀한 인간의 죄성에 관한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해요. 다른 사람을 볼 게 없어요. 저를 정직하게 보면 돼요. 누구나 가슴 속에 굉장히 저열한 욕망을 가지고 있으면서, 마치 자신은 그런 게 없는 사람인 것처럼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잖아요. 대부분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참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사람은 그걸 굉장히 잘해요. 자기 자신한테 잘하는 거죠. 자신의 죄는 미워하지만 자신을 정말 사랑해요. 그러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미션은, 내가 내 죄에 대해서 너그럽게 용서하고 나를 사랑할 수 있었듯이, 나를 보듯 그 사람을 보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죄만 미워하고 사람은 안 미워할 수 있어요. 그런데 자꾸 교묘하게 그렇게 안 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런 죄성에 관한 생각을 제일 많이 해요.

 

소설을 읽을 때 결말을 미리 보는 분들도 계시잖아요. 먼저 『소실점』을 읽은 독자로서 ‘이 작품만은 꼭 순서대로 따라가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은데요(웃음). 작가님은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 없으세요?


제가 이 작품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잖아요.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에 관해서, 사랑이 도대체 무엇일까에 관해서 생각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소설에는 남녀 간의 사랑으로 그려져 있기는 하지만, 에로스적인 사랑만 이야기하는 건 아니에요. 내가 보답 받기 위해서 사랑하는 것은 아닌가,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에 대해서만 사랑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은 누구나 사랑할 수 있지만, 사랑할 만한 가치가 없는 존재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진짜 사랑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보시면 좋을 것 같고요.

 

앞으로도 계속 장르문학을 쓰실 계획인가요?


네.

 

장르문학에 대한 편견들이 있잖아요. 휘발성 강한 오락물, 킬링타임용 소설이라고 치부하는 건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장르문학을 선택하신 거예요(웃음)?


미스터리, 스릴러, 호러를 흔히 장르문학이나 중간문학이라고 하잖아요. 이런 작품들이 좋은 영화가 되고 좋은 드라마가 돼서 다양한 콘텐츠로 발전해 나가는 모델을 잘 안착시키고 싶어요. 그렇게 해서 이 일을 하시는 분들에게 좋은 길을 만들어 드리고 싶기도 하고요. 제가 알기로는 굉장히 힘들게 작품세계를 유지하면서 작업을 하시는 많은 작가님들이 계시는 장르예요. 그런 분들이 정말 애써서, 여러 가지를 희생해 가면서 지키고 있는 분야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영화나 방송은 조금 많은 부분에서 대중적인 환호를 받는 분들도 계신데,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고 여전히 많이 힘드시지만, 장르문학에 있어서는 외국 소설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것 같아요. 노력을 많이 할 테니까 조금 더 애정을 가지고 작가님들을 응원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장르문학이라는 콘텐츠가 가진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지금은 웹툰이 우리나라 원작 시장에 거의 다 기여하고 있어요. 참 좋은 웹툰을 많이 만들어주셔서 독자들도 즐겁고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도 기획을 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웹툰은 창작 시간도 굉장히 길고 노동력도 많이 들어가고, 그러다 보니까 제작비도 굉장히 높거든요. 그리고 웹툰의 특성상 이야기의 힘과 그림의 힘이 공존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영상으로 제작되거나 다른 형식의 콘텐츠로 넘어갈 때 이야기적 요소만 추려내는 작업을 해야 되거든요. 그에 비해서 장르문학은 이야기 자체의 힘으로만 가져가고 있는 거니까, 콘텐츠의 원작으로써 굉장히 좋은 토양이 될 수 있고요. 제작 시간이라든가 제작 비용이 웹툰에 비해서 굉장히 적게 들어요. 이 시장을 활성화시켜야 대한민국 콘텐츠가 세계시장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체력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소실점김희재 저 | CABINET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아나운서 최선우가 교외 외딴 집에서 알몸의 변사체로 발견된다. 당대 최고의 아나운서가 강간 살해된 사건으로 인해 대한민국은 발칵 뒤집히고, 강력부의 유능한 검사 강주희가 사건의 수사를 담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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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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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이토록 찬란한 청춘의 순간들

김화진 소설가의 첫 장편. 사람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이번 소설엔 아름, 민아, 해든 세 명의 친구가 등장한다. 삼각형의 꼭짓점에 놓인 것처럼 다르지만, 서로에게 끌리는 감정과 질투 등을 눈부신 계절의 변화와 함께 그려냈다. 숨겨놓았던 감정을 털어놓게 만들 문장들이 가득한 작품.

우리 가족 마음 보살피기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는다. 아이는 사랑스럽다. 그런데도 시간이 지나면 왜 다투고 미워하고 극단적으로는 가족의 연을 끊을까? 가족 심리 전문가 최광현 교수가 갈등의 유형, 해결책을 제시한다. 우리 가족을, 나를 지키는 심리 처방을 전달한다.

이해인 수녀가 간직해 온 이야기

수녀원 입회 60주년 기념 이해인 수녀의 단상집. 반짝이는 일상의 사진과 함께, 인생의 여정에서 품어온 단문, 칼럼, 신작 시 10편을 책에 담았다. 편지와 사물, 사람과 식물, 시와 일기. 우리가 잊고 살아온 소중한 것들을 말하는 수녀님의 이야기는 삶에 희망을 따스하게 비추어 준다.

2023 뉴베리 명예상 수상작

과거는 곧 미래다 정말 그럴까? 벗어나고 싶은 과거와 이어진 고리를 끊고 새로운 미래를 찾아 바다로 나선 열두 살 소녀의 놀라운 모험 이야기. 신비로운 여정과 진정한 희망의 메시지를 담았다. 『어둠을 걷는 아이들』에 이은 크리스티나 순톤밧의 세 번째 뉴베리 명예상 수상작.


문화지원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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