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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과 기도

『숨결이 바람 될 때』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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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석학자의 인터뷰와 그의 명상 수행법을 읽으며 나는 몇 주 전 있었던 한가지 에피소드를 떠올렸다. <곁>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생긴 일이다.

노비문장(안 이후 로소 보이는 문장)

 

너무나 불확실한 미래가 나를 무력하게 만들고 있었다. (중략)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에 대한 응답이 떠올랐다. 그건 내가 오래 전 학부시절 배웠던 사뮈엘 베케트의 구절이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나는 침대에서 나와 한 걸음 앞으로 내딛고는 그 구절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I can’t go on. I’ll go on).”

 

『숨결이 바람 될 때』,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179-189 쪽

 

1.

 

"그는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학자로 꼽힌다. (중략) 무엇보다 그에게는 통념을 깨는 파격이 있다. 중세를 전공한 역사학자가 유전공학과 인공지능(AI) 연구의 최전선을 인용해 인류의 진화와 미래를 예측하고, 옥스퍼드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서구 학자가 매년 두 달 가까이 모든 걸 끊고 '견고한 고독'(위파사냐 명상 수련)에 들어간다."

 

한 일간지에 실린 ‘유발 하라리’ 인터뷰가 눈길을 끈다. 출간 3년 만에 45개 언어 500만 부가 팔려나간 『사피엔스』를 나 역시 애독했던 터라 관심이 갔지만 기자가 서술한 파격의 이유 중 위파사나 명상 부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위파사나(vipasana)의 vi는 팔리어로 ‘세밀한’ ‘ 잘게 나눈’ 의 뜻이고 pasana는 ‘바라본다’는 뜻이다. 붓다의 수행법이라 일컬어지며 내 몸, 느낌,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세밀하게 알아차리면서 세상에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진리를 통찰해내는 명상법이다. 나는 대학원에서 위파사나를 만났고 그 명상법이 서구의 의료와 치유 현장에서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음을 목격했다. 유발 하라리는 17년째 계속하는 명상 수련이 없었더라면, 스트레스 때문에 약물에 의존하는 삶을 살았을지 모른다고 말하며 이 명상법이 일상에서도 도움이 되는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현대인은 온갖 외부 자극 때문에 집중력을 강탈(hijacking)당하고 있다. 나는 명상을 통해 집중력을 유지한다. 외부와 절연하면, 내부에만 집중하게 되어 있다."

 

유발.jpg
사진_ 김영사 제공

 

세계적 석학자의 인터뷰와 그의 명상 수행법을 읽으며 나는 몇 주 전 있었던 한가지 에피소드를 떠올렸다. <곁>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생긴 일이다. <곁>은 내가 설계한 3시간짜리 적정자기치유 교육이다. 이 프로그램의 치유적 토대가 ‘위파사나 명상’이다. 짧지만 강력한 명상, 글쓰기, 시, 그림과 연극 등을 통해 자기 객관화와 거리두기 등의 효과를 참여자들이 경험한다. 위파사나의 세밀한 바라봄(觀, 마음챙김)을 나는 <곁>이라는 네이밍으로 가공하여 보다 쉽고 탈종교적 방식으로 대중화한 것이다.

 

그날은 약 30명 정도의 참여자와 함께 했는데 프로그램 몰입도도 높았고 분위기도 뜨거웠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읽은 참여후기도 대부분 높은 만족도를 드러냈다. 그런데 어느 한 분이 진행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으라는 항목에 이렇게 남겼다. “하느님만이 진리다, 열심히 기도하고 주님을 믿으면 행복과 평화는 저절로 온다.”

 

명상을 사이비 종교 정도로 생각하는 이가 생각보다 많아서 이런 반응에 특별한 불쾌감이 올라오지는 않았다. 오히려 남들 다 명상할 때 이 분은 하느님 생각에 얼마나 마음이 불편했을까 라는 연민감이 먼저 생겼는데, 그것은 어쩌면 내가 그 즈음 아침마다 열심히 작은 기도소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2.

 

촉망 받는 서른여섯 젊은 의사가 폐암 판정을 받는다. 스텐퍼드 대학에서 영문학 학사, 석사를 거친 후 동대학 의학 전문대학원을 졸업한 이 사람의 이름은 ‘폴 칼라니티’. 1977년 생이니 ‘유발 하라리’(1976년 생) 와 또래인 셈이다.

 

수련의 6년 차에 폐암이 발병하고 그럼에도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 수련의 마지막 생활을 성실히 수행하던 중 암이 재발하여 2015년 봄 짧은 생애를 마감한다. 『숨결이 바람 될 때』는 그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삶과 도덕, 종교와 인생을 사색하고 기록한 책이다. 문학도답게 문장이 유려하고, 문학적 인용의 폭은 넓다. 무엇보다 어느 새벽 끊어질 듯한 허리를 부여잡고 쏟아지는 기침을 참아내며 쥐어짜듯 적어냈을 그의 투혼이 느껴져 한 개의 글자도 외면하기 어렵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이라는 운명 앞에서 인간은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 것인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평생 과학적 세계관과 유물론적 확신을 가지고 살았던 의료인 폴이, 다시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인 가치(희생, 구원, 용서)에 가장 큰 방점을 찍는 장면이다. 인간의 몸을 해부하고 상상이 아닌 실체로서, 신화가 아닌 물질로서 생명과 죽음을 바라보는 직업인이 자비, 용서와 같은 형이상학적 관념을 매력적인 신의 계시로 받아들이는 그의 자세는 병에 걸린 사람의 무력한 종교적 투항이 아닌 영성적 존재로 남고자 하는 한 인간의 고매한 품격이 느껴져 우아하기까지 하다. 

 

3.

 

내가 하는 일이 내 맘대로 안되는 경우가 많고, 내 바람이 더 종종 좌절 될 때, 좋은 성품을 가진 몇몇의 친한 신앙인들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하느님을 이야기할 때 그들은 더 순한 눈빛이 되었으며, 누군가 귀에 숨결을 넣어주는 듯 생기찼다. 무엇보다 외줄 타기로 위태로운 내 눈에 그들은 무언가 기댈 언덕 하나씩을 가지고 있는 듯해서 부러웠다. 나는 그들에게 당신의 하느님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고, 어떤 모습이냐고 물었다. 그들은 각각의 방식으로 답했고, 나는 들었다.

 

출근길 기도소에 들르기 시작한 건 그즈음이었다. 집 앞 병원 앞 작은 기도 공간은 적요했다. 모태신앙이었지만 오랫동안 냉담했던 나에게 기도는 낯설었다. 다만 내 기도는 무언가를 이루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노비문장 속 폴의 말처럼, 계속 나아가게 해달라고, 계속 삶을 헤쳐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했다. 살면서 나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을 절대 잊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생각보다 너무나 많은 은혜 속에서 삶을 이어온 것을 늘 감사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마음은 편안하고 든든했다.

 

그리고 명상했다. 내 발바닥에, 엉덩이에, 등에, 이마와 혀 안쪽에 주의를 기울이며 어떤 감각인지를 알아차렸다. 내 기분이 어떤지를 바라봤고 주변의 소리에 귀 기울였으며 내 호흡의 물결을 한참 동안 따뜻하게 지켜봤다. 머리는 맑고 들뜸이 가라앉았다.

 

기도가 밥이었다면 명상은 물과 같은 것이었다. 기도를 통해 든든했고 명상을 통해 맑아졌다. 좋은 아침이 계속 돼왔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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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은 하느님을 늘 곁에 모시는 습관일 것이라는 생각도 요즈음 많이 한다. 내가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어떤 마음인지를 매 순간 알아차리는 것이 명상적 삶이라면 내가 지금 하느님을 잠시라도 놓쳤는지, 그리하여 내가 또 다른 죄를 짓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시시각각 알아차리는 것이야말로 신앙인의 중요한 자세가 아닐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을 이야기하는 미래 학자는 명상을 하고, 죽음을 선고받은 의학자는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오십이 넘은 사내는 명상을 하고 기도를 한다. 유한하고 무력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세상만물의 무상함을 깨닫는 지혜이거나 절대적 신의 뜻을 따르며 유한함의 허무를 극복하려는 겸손한 태도일 것이다. 어느 쪽이든, 결국 우리는 살아서는 숨결이고 죽어서는 바람이다. 좋은 숨결이고 좋은 바람이고자 우리는 명상을 하고 기도를 한다. 나와 세상의 모든 존재가 고통 없이 편안하기를 나는 잠시 묵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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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용인(<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저자, 노매드 대표이사)

<딴지일보> 편집장을 거쳐 현재 노매드 힐링트래블 대표를 맡고 있으며, 심리에세이 《어른의 발견》, 《심리학, 남자를 노크하다》, 《사장의 본심》, 《남편의 본심》, 여행서 <<시가 있는 여행> <발리> 등의 책을 썼다. 또한 주요 매체들에 ‘윤용인의 심리 사우나’, ‘아저씨 가라사대’, ‘남편들의 이구동성’ 등 주로 중년 남성들의 심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칼럼을 써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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